엔쿠라스 380화-난중(亂中)(3)
나타난 두명중 한명은 붉은색 머리를 한 거칠게 보이는 사내였고, 한명은 진중해 보이는 사내였다. 둘중 하나는 벤하르트와 레니아가 언젠가 본적이 있는 얼굴이었다.
"저 사람은.."
그 남자는 이전 트레이야와 함께 다닐때, 한번 마조 디노사인트에 당할뻔한것을 구해준 자신을 제로라고 밝힌 검사였다. 너덜너덜한 옷과 칠흑의 머리는 처음 만났을대 그대로여서 쉽게 그를 알아 차릴수 있었다. 기척을 내보이지 않고 접근한것이 제로였다면, 다른 한쪽의 사람은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근육질의 다부진 몸매에 꽤나 많은 상처를 지니고 있는 남자였는데, 척 보기에도 상당히 고수라는것을 알수 있었다. 붉은 머리를 기르고 손에는 작은 작대를 쥐고 있는 그 남자는 버벨 브란츠였다.
레니아도 곧 제로를 알아 보고 벤하르트와 눈을 맞추었다.
"때마침 등장한 원군이라면, 얼마나 좋겠느냐만은 그럴리는 100% 없을테고 어떻게 보더라도 내 편이나 네 편일것 같지는 않은데, 벨드. 이자들을 알고 있나?"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공주님."
벨드는 차분하게 말했다. 그 대답을 듣고 찬티아가 물었다.
"그쪽의 남자분은 무슨 일로 이곳에 오셨는지요?"
버벨을 향해 찬티아가 물었다.
"지나가다가 한차례 기가 폭발하는것을 보고 싸움이 벌어지는 곳인가 해서 왔을 뿐인데, 역시나 교전이 일어나고 있어 한번 들려 봤다만, 혹 밖에 괴물들을 처치한 녀석이 누군지 알고 싶은데 좀 알려 주겠나?"
버벨이 레니아가 만들어 놓은 참상에 대해 묻자 즉시 벨드가 답했다.
"그것이라면, 이쪽의 여인이..."
"내키지 않는군. 저렇게 다쳐서야.. 그나저나 네녀석도 꽤나 한 솜씨 하는것 같은데, 어때? 나와 붙어보는게?"
벨드는 아쉽다는듯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원한다면, 불가능한것도 아니지만, 정히 그것을 해야 겠다면, 여기 있는 방해꾼을 몰아낸다면 생각해 보도록 하지."
"그래. 그게 문제야."
아쉽다는듯이 버벨은 표정을 달리하며 말했다.
"!?"
"너에게 흥미가 있기는 하지만, 너와 마주하고 있는 녀석들또한 그렇다. 저녀석도. 그리고 저 여자도, 그리고 저기에 서 있는 저 남자 조차도, 어찌 해야 할지 갈피를 못잡겠다는것이지."
'엄청 제멋대로인 사람이다. 애초에 이런곳에 들어오는것 자체부터가 이상하지만, 저런 성격이라면 이해를 할만도 하겠군.'
헤이로카의 신등장의 제 부터 시작해서 용병들까지 벤하르트는 지금껏 무인들을 굉장히 많이 상대했기 때문에 저런 호승심을 굉장히 많이 보아 왔었다. 실제로 디레인인 자신에게 명예를 걸고 결투를 신청하는 사람만 해도 수백을 넘길 정도였으니 그런 심정이 이해가 가는것도 무리는 아니었으나, 버벨의 그것은 다른 사람들보다 배는 더한듯 보여서 조금 놀라고 있었다.
'하지만 저 사람은, 어째서 이곳에 온거지?'
벤하르트가 보았던 제로는 덧없는 살생을 즐기지 않았다. 디노사인트들 조차도 자신을 구할때를 제외하고는 멀리 쫓아버렸다. 이곳의 마물들이라 해도 같은 이유로 퇴치를 하러 오지는 않았을것이고, 그런 성격을 가진 사람이 버벨과 같은 이유로 이곳에 왔을리는 만무했다. 그런 사람이 동시에 둘이나 있어서 이런 곳에 들어올 확률은 천문학적인 수준이 아니면 불가능 한 것이다. 하지만 경우를 따져 보아도 벤하르트가 가지고 있는 정보를 가지고는 제로가 왜 이런곳에 왔는지는 알수 없었다.
"벤. 어떻게 된거야?"
"모르겠어. 도대체 저 둘은 왜 이곳에 왔는지도, 아군인지 적군인지 좀체 감이 잡히질 않아."
"벤?"
버벨의 말꼬리가 올라갔다.
"벤이라.. 벤? 혹시 네 이름 벤하르트 하르크냐?"
"그렇습니다만,"
벤하르트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도우러 왔을까 하는 기대를 품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 기대는 보기 좋게 와해 되어 버렸다.
"이거야 작은 취미생활을 즐기려다 목적한 바를 이루는 꼴이 되어 버렸군. 요즘은 어떻게 보면 정말로 운이 좋다고 할수 있겠어."
"무슨 말씀이신지.."
버벨은 작대를 두어바퀴 돌리더니 빛의 대검을 만들어 내었다. 제로는 흥미로운듯 버벨의 대검을 바라보았다. 버벨은 대검을 들고 일체의 망설임도 없이 벤하르트에게로 돌진했다. 만약 그가 벤하르트가 어떤 사람인가를 알았다면 그런 행동은 하지 않았을수도 있었지만, 버벨의 머리에서 벤하르트는 루크 못지 않게 냉철하고 강할것이라는 인상이 깊게 실려 있었다. 버벨의 생각에 응할수 있을정도만큼은 벤하르트도 충분히 강했기 때문에 그 공격은 곧바로 빗겨낼수 있었다. 그리고 연 이어지는 공격에 날렵하게 몸을 움직이면서 회피했다.
"무슨 짓입니까?"
"네게 관심이 있는것은 이것이다."
"지금은 그럴때가.."
벤하르트의 말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버벨은 대검을 마치 단검처럼 움직이면서 공격했다.
"공주님. 저자가 상대하는 틈에,"
"좋아.."
찬티아는 놓여 있는 피리를 세차게 한번 불고는 뒷 통로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벤하르트와 버벨의 싸움을 지켜보던 제로는 찬티아와 벨드를 따라갔다.
"벤. 찬티아가.."
"알아. 하지만,"
버벨의 공격은 그야말로 쉬지 않는 맹공이었다. 맹공이면서도 무거워서 하나하나를 막고 흘려내는것만으로도 기운이 빠질 정도였다. 전체적으로 보면 버벨이 벤하르트보다는 실력이 좋다고 할수 있었지만, 벤하르트는 강자를 상대하는 수에 굉장히 강했기 때문에 벨드때처럼 능숙하게 버벨을 상대할수 있었다.
'이녀석의 움직임은 그녀석들과 비슷한걸.'
루크와 제온이 언급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버벨은 자신이 가진 수를 퍼부어서 벤하르트를 공격해 나갔다.
벤하르트는 공격을 흘리면서 수를 이용해 벨드를 멀직이 밀어내었다.
"읏."
"잠깐!"
"뭐지?"
벤하르트는 숨을 골랐다. 그 모습에 버벨은 시간 벌기라고 생각해 다시 검을 휘두르려 했다. 하지만 그것에 맞추어 다시 벤하르트의 수(守)가 버벨의 샤스리엘의 목을 강타해 거리를 벌렸다.
"저기 저에게 이렇게 싸움을 거시는 이유가 뭡니까?"
"설명하자면,, 긴데다 너는 이해를 하지도 못할테니까, 별로 하고 싶지 않은데, 간단하게 말하자면, 마음이 내키는대로 움직인것 뿐이다. 별로 이유랄것도 명분이랄것도 없이 단순하게 내가 너의 소문을 듣고 싸우고 싶어졌던 것이지."
'디레인의 이름을 원하는 사람인가.. 하지만 수많은 도전자들 중에서 이정도로 강한 사람은 처음인것 같다.'
"그렇다면 좋습니다. 이번 일을 끝내어 놓고, 다시 한번 붙는것은 어떻습니까? 정말 다급한 일이어서 마무리를 지었으면 좋겠는데요."
"그런가. 정말 다급한 일이란 말이라.."
버벨은 바로 대검을 휘둘러 벤하르트의 머리를 노렸다.
"무 무슨.."
"미안하지만, 내가 너의 사정을 봐줄 필요는 없는데다가, 본래 급할때야 말로 진정한 힘을 내는 녀석들이 많아서 말이지. 지금 이 기회를 사용해야 네 진정한 실력을 볼수 있을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내 감은 굉장히 잘 맞아서 말야. 감으로 지금껏 살아오기도 했고, 유감이지만, 나는 여기서 너와 한판을 벌여야 겠다."
벤하르트는 손에 힘을 살짝 빼었다. 그 모습을 보고 버벨은 답지 않게 날카롭게 지적했다.
"져줄 생각일랑 하지 마라. 이미 한번 실력을 봤으니까, 어느정도가 진심이고 거짓인지는 충분히 파악할수 있다. 그게 아니어도, 여기서 네 진심을 돕게 하는거야 간단하지. 네가 지면 이 여자의 목을 치겠다."
"....."
"이 여자와는 별로 관계도 없고, 고작해야 목 하나로 네 진심을 끌어낼수 있다면, 이정도 충분히 할수 있지. 여자쪽도 꽤나 강한 모양이지만, 저래서야 나를 당해낼수는 없을테고,,"
빛의 대검을 까딱 거리면서 버벨은 벤하르트를 도발했다. 도발에 응한다면, 그가 바라는 대로였고, 응하지 않는다고 해도, 어차피 벤하르트는 자신의 뜻대로 움직여 줄것이었다.
"굉장히 개인적이구나 너?"
레니아는 경멸어린 어조로 말했다.
"부정은 하지 않겠다. 나는 지금껏 이렇게 살아왔으니까 말이다. 너희들에게는 미친개에 물렸다고 생각해도 좋고, 더럽다고 속으로 경멸해도 어쩔수 없는 일이겠지. 그러니까 만약 네가 나를 이긴다면 그때는 죽여도 좋다. 잡담은 길어봐야 무의미해. 내가 하고 싶은건 진심인 너와 싸우는 것이고, 네가 하고 싶은건 빨리 이곳을 지나가는것이라면, 더이상의 대화는 서로에게 득이 되지 않겠지."
버벨은 샤스리엘의 목을 들고 허공을 휘저었다.
그리고는 칼창의 빛을 날리며 벤하르트에게 접근했다. 벤하르트도 그 칼창의 검기를 백뢰로 맞받아 치며 접근전으로 들어갔다. 10합 30합 50합 수가 늘어나도 누구하나 이기고 짐에 조짐이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무예를 아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신기하면서도 놀라운것이었다.
실력으로는 벤하르트가 분명 열세임에 분명한데도 공수자체를 버텨낼수 있었다. 속도는 비슷 힘은 버벨이 위 정론이라고 한다면 점점 밀리는것이 정상이었지만, 서로가 호각을 이루게 하는 기술.
그야말로 벤하르트의 기술의 연장선이 바로 루크나 제온이라는것을 버벨은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승리하는것으로 이루어 지는것은 아니었기에, 그는 자신의 패배는 전혀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상황은 버벨에게 굉장히 유리하다 할수 있었다.
버벨은 생사를 건 결투의 경험이 풍부했고, 이 결투 하나에 모든것을 걸어 싸울수 있었지만, 벤하르트는 가뜩이나 힘에서도 밀리는 상태에서 자신의 몸을 보전한 상태로 버벨을 이겨야만 했다. 그는 벨드와의 결투도 생각하지 않으면 안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전력을 다해도 이길수 있을지 없을지를 알수 없을 그에게 그런 생각은 점점 패색의 색을 짙게 만드는 요인이 되어갔다.
"크으.."
팔 하나를 내어주고 이길 각오를 해도 이길까 말까, 상대는 이미 자신의 몸의 상처대신 공격에 집중을 하고 있는 상황. 최소한도 그정도의 각오를 다져야할 시점에 벤하르트는 머리로 알고 있으면서도 그 뒤의 대결을 생각하지 않을수 없었다.
"왜 그래? 겨우 이정도인거냐!"
샤스리엘의 목과 벤하르트의 인도(人刀)가 맞붙었다. 그 광채에도 둘은 정신없이 서로에게 공격을 하고 스스로를 방어했다.
"우웃."
한 수에 벤하르트의 몸이 흔들렸다. 바로 목이 채여도 이상하지 않을 그 상황에서 버벨은 어이 없게도 몸이 고꾸라졌다.
"으엇?"
고꾸라진 버벨에게 벤하르트는 혼신의 힘을 다해 손잡이로 그의 급소를 찔렀다. 기로 집중된 일격에 찍소리를 내밀고 버벨은 서서히 쓰러져 갔다.
"어 어째서."
버벨은 자신의 발 부분을 보았다. 발밑에는 작은 빙판이 있었다. 레니아가 만들어놓은 오직 미끄럼 용으로 만들어놓은 빙판이었다. 그는 너무도 벤하르트에게 집중하고 있었기에 레니아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고 있지 않았다. 최소한의 신경을 쓰고는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일반인적인 기준에서 자신과 벤하르트의 싸움에는 참여 하지 못할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그런 생각이야 말로 최대의 오산이었다.
레니아는 벤하르트의 싸움을 돕는 보조의 차원에서는 극을 이루고 있을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작은 힘을 들여 판세를 뒤바꾸는것은 레니아를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녀에게는 너무도 쉬운일이었다.
"치 치사한.."
"상관 없잖아? 이건 벤의 뜻은 아니고, 내뜻인걸? 세상에는 너보다 더 개인적인 사람도 있는 것이거든."
"그렇지. 특히나 이녀석의 경우는 안하무인이다. 치사하고 말고가 없는것도 당연할지도,,"
"그으래?"
레니아의 가시섞인 말투에 벤하르트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바보같은 끄윽."
버벨은 외마디 신음을 내뱉으며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 작가의말
동생이 군대를 가버렸습니다. 오늘 날짜로요.
맨날 티격거리면서 좀 심하게도 싸우고 했는데, 가니까 가슴 한켠이 뻥 뚫린듯,,,, 공허합니다. 슬프다고 해야 할까,
이럴줄은 몰랐는데, 좀더 잘해줄걸 하고 혼자 후회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후회는 늦어요...
동생아 잘 다녀와...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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