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384화-역용(易用)(1)
"찬티아 공주는.."
"구차하게 설득하려 들려 해도 소용없다. 말은 필요 없을텐데,, 설득 하려 한다 해도 공주는 이미 그 지식을 알고 습득 하고 있으니까, 본인의 의지와는 관계 없이 언제가 되었든 혼란을 야기할수 있을만한 가능성은 제거해 두어야만 한다. 그게 내가 지금 이자리에 있는 이유다."
자신의 몸보다 더 긴 장도에 손을 가져가고 벤하르트는 그 궤적에 섬칫한 느낌을 받으며 공격을 막아내었다. 벤하르트와 제로의 거리는 걸음으로 따져도 10보 밖이나 되었지만, 그 거리는 서로간에 아무런 제약이 되지 않았다. 벤하르트에게는 백뢰라는 기술이.. 제로에게는 10보 밖이라도 다다를수 있는 거합이 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저렇게 긴 검으로 저정도로 빠르게 휘두를수 있지.'
뽑은 상태로 휘두르는 벤하르트보다 일발적인 속력이 더 난다는 것에는 기술적인 차원에서 이해를 할수 있는 일이었지만, 한번 뽑고 다시 되돌리는 시간의 차이도 없었다. 즉 벤하르트가 검을 뽑은 상태로 막으며 공격을 하는 이연격 보다도 뽑아 베어내고 다시 돌아가 다시 베어내는 시간, 오가는 시간이 더 빠른 것이다. 제로가 사용하는 거합의 단점 조차도 벤하르트는 노릴수 없었다. 굳이 벤하르트가 아니라고 해도 그 틈을 노릴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할수 있었지만,,,
벤하르트는 휘둘러지는 참격을 막고 피해냈다. 처음 제로가 휘두르는 검격보다는 더 느렸다. 벤하르트는 직접 대하지는 않았지만, 그 차이를 감으로나마 대충 느낄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막는다고 해도 아까의 기술이 나온다면 이길수 있을리가 없는데,"
공간 째로 도려내 버리는 무색의 참격을 생각하면 언제라도 소름이 끼쳐왔다. 하지만 제로의 앵화참월이라는 기술은 하루에 한번을 사용하기도 벅찬 기술이었다. 검의 속도가 떨어진것도 앵화참월을 사용한 여파나 다름없었다. 사용한다면 하루에 한번. 오늘내로는 벤하르트가 다시는 볼일이 없는 기술이었다.
"백뢰!"
백색의 번개가 제로를 향해 쇄도했다. 맞기만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제로에게는 상당할 정도로 타격이 될 일격은 별다른 변화도 없이 제로를 덮쳐나갔다. 그 안에서 제로는 한차례의 발도를 시전했다. 휘감아 오던 백뢰는 역으로 돌아 벤하르트에게 쇄도했다.
"!?"
벤하르트는 자신의 백뢰를 피할 겨를도 없이 검을 들고 막아낼수밖에 없었다. 작은 차이지만 제로는 벤하르트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퇴로쪽에도 한차례 검격을 날린것이었다.
"끄으으윽.."
엄청난 무게의 바위가 어깨를 짓누르고 온몸을 휘젓고 지나가는듯한 느낌을 받아 벤하르트는 몸을 들썩이며 무릎을 꿇었다. 평소 쏘아낼때는 몰랐지만, 그의 일섬 백뢰는 그만한 정도의 위력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한번을 정확하게 맞는다면 그것만으로 치명상이 될정도로 그 검기는 굉장한 위력이 아니라 할수 없었다.
"벤!"
"오지마. 레니아."
상대적으로 레니아에 비해 멀쩡했던 벤하르트조차 제로의 검술을 제대로 상대하기 어려울진대 레니아의 실력으로는 설사 만전이라 해도 제로에게 상대가 될수 없었다. 검사가 마법사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마법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하듯이 마법사가 검사를 상대하기 위해서도 그에 상응하는 검술을 알고 있어야만 했기에 그는 그녀를 만류했다. 벤하르트는 비틀거리면서 일어났다.
"아직도 막아설 셈인가."
"당연하겠지요."
"그 미숙한 생각때문에 앞으로 벌어질지도 모르는 위험을 감수하겠다는 것이냐."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위험때문에 마음을 다잡은 사람을 죽이겠다는 겁니까."
"웃기는 일이다. 그녀가 마음을 다잡았는지 다잡지 않았는지 네가 어떻게 알수 있지? 그건 자기 자신 외에는 아무도 알수 없는 것일터.. 그 구멍난 논리는 역겹군."
제로는 자신의 떠올리고 싶지 않은 과거를 떠올렸다. 벤하르트의 모습은 그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과거를 떠올리게 하기에 대하기 싫었다.
"역겹다고 해도 되돌리지 않겠지."
'나도 그랬으니까,"
그는 몸을 살짝 돌렸다. 명백하게 거합 발도를 노리는 자세. 막아볼테면 막아 보라는듯 정면에서 부터 그 공격은 시작되었다.
"앵화참.(櫻花斬)"
벤하르트는 일선의 검을 보았다. 잔상에 흐릿하게 세갈래로 뻗혀져 오는 검을 그는 분명 제대로 막아내었다. 하지만 막아내는것과 완전히 동시에 허리와 다리를 베여 버리고 말았다.
'분명 제대로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상처는 얕았기에 벤하르트는 다시 거리를 벌렸다. 제로는 서서히 한걸음씩 벤하르트를 조여 나가다 느닷없이 검을 휘둘렀다. 레니아가 쏘아낸 마법을 쳐낸 것이다.
"나서지마 레니아!"
"하지만.."
설사 벤하르트를 완전히 보조한다고 해도 제로에게만은 그것이 통하지 않을것을 레니아는 직감할수 있었다. 제로의 경우는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한 경험을 끝마친 강함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두보엔이나 고야마 같은 선천적으로 강하기에 경험보다는 힘으로 밀어 붙히는 자들과는 달리 벤하르트는 산전수전을 다 겪어 단련된 강함을 가지고 있었기에 허를 찌르고 허를 만드는 레니아의 공격이 통하기 힘든 것이었다.
다시 제로는 한번을 더 휘둘렀다. 보이는것은 세개의 검기 흐릿하게 잔상이 남는 검기와 남은 하나를 벤하르트는 제대로 알아내어 그 공격을 막아내었고, 그 느낌마저도 분명히 잡았다.
'막았다.'
하지만 그 생각을 인지하기 1초도 안되어 그에게는 또 두개의 상처가 벌어졌다.
"....."
'저건 막아서는 안되는 거구나. 저만한 속도로 뻗혀져 오는것을 완벽하게 피해야 하다니,'
제로의 이어지는 제 삼격을 벤하르트는 아예 멀직이 발을 놀려 피해냈다. 피하면서 그는 백뢰를 날리려 했으나 차마 아까의 고통이 떠올라 그렇게 할수 없어 백색의 빛만을 제로에게 날렸다. 역시나 제로는 그 검기를 벤하르트에게 돌려내었다. 그 광경을 보고 벤하르트의 눈이 떨렸다.
제로가 하는 기술의 본질을 알아낼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재능과는 다른 벤하르트에게는 그저 천운이라고 해둬야 맞는 행운이었다.
벤하르트는 언제나 검을 만들때 자신에게 조금의 상처를 내었다. 얼마나 잘 베이는가 어느정도로 만들어 졌는가를 따지기 위한 그 행동은 자신이 가진 검의 기운을 느껴보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제로가 사용하는 검기를 되돌리는 기술은 기술의 기를 읽어 되돌리는 궤적을 베는 행위라는 것을 알수 있었다. 그렇게 느낀것은 수십년을 단련해온 대장장이로써의 눈이 있었기 때문이겠지만, 벤하르트에게 그런것을 느낄 시간은 없었다.
자신이 쏘아낸 백색의 기가 되돌아 오는것을 보고 벤하르트는 유심히 지켜보았다. 더 다행인것은 그 기가 자신의 기였기에, 너무도 잘알고 있었다는 것에 있었을 것이다. 되돌리기에는 그만큼 적격인게 없을 정도로 모범답안을 보고 베끼는것 같이 벤하르트는 제로가 한 기술을 그대로 표현낼수 있었다.
"으윽."
완벽하지는 못해 작게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지만, 명백하게 그의 기는 제로에게 되돌아갔다.
"내 기술을 사용한건가."
제로는 결정을 내리는게 빨랐다. '어떻게 내 기술을 익혔는가.' 보다도 더 빠르게 벤하르트를 이기기 위한 최선의 선택을 요해 벤하르트에게 접근해 앵화참을 사용하려 했다. 하지만 벤하르트도 언제까지고 멍하니 있지만은 않았다. 이번에는 진짜로 전력을 다한 백뢰가 제로를 향해 쇄도했다.
'크윽'
피하고 싶지만, 앵화참월을 사용한 반동때문에 몸이 둔해 그는 기를 벤하르트에게 되돌렸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벤하르트도 그 기운을 제로에게 되돌렸다.
"고작 두번만에 역용(易用) 완벽하게 마스터하다니, 이렇게 놀란것은 정말 오랜만이다."
제로는 다시 백뢰를 휘감아 벤하르트에게 돌리며 말했다.
사실 벤하르트의 경우 제로의 기술의 본질을 알수는 있었지만, 다른 검기를 받아 치라고 하면 할수 있을리 없었다. 아무리 검기를 읽는데 뛰어나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처음 사용해본 기술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벤하르트가 제로의 기술을 완벽하게 소화해낼수 있는것은 자신의 검기이기 때문이라는것을 제로가 알리 없었다. 제로도 백뢰를 피할수 없었고, 벤하르트도 백뢰를 피하는것으로 이길수 있는 수를 고안할수는 없었기 때문에, 둘은 완벽하게 역용의 싸움으로 접어들었다.
백뢰가 좌우로 몇번을 오갔을까 완연히 둘의 싸움은 인내심의 대결로 넘어가고 있었다.
'으윽.'
제로가 사용하는 역용은 자신의 기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 역용이었지만, 벤하르트의 경우는 그 수련이 미미했기 때문에 자신의 기를 계속해서 소모하지 않을수 없었다.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벤하르트는 점점 지쳐만 갔다.
'더이상은!!'
벤하르트는 한계에 다다랐다는 것을 느끼고 피하려 했지만 이제와서 팽배해진 백뢰를 피할길은 없었다. 점차적으로 자신이 실어 넣은 기가 있었기 때문에 백뢰는 겉잡을수 없을정도로 강대해졌다. 울며 겨자먹기로 턱까지 차오른 기운을 수습해 그는 혼신의 힘을 다해 역용으로 되돌렸다.
"으으으.."
되돌아오는 자신의 백뢰를 상대하려 했지만, 기는 되돌아 오지 않았다. 앞을 보니 백뢰를 완벽하게 맞은채로 비틀 거리면서 서 있는 제로가 눈에 보이고 있었다.
"어째서?"
자욱하게 동굴에 번져 있던 먼지가 슬슬 사라지면서 벤하르트의 눈에 제로의 검이 드러났다. 긴 장검은 반토막이 난채로도 모잘라 손잡이까지 금이 가 있었다. 백뢰의 기를 제로는 충분할정도로 감당할수 있었지만, 벤하르트의 검과는 다르게 그 기운을 제로의 검은 더 받아낼수 없었던 것이다. 벤하르트는 조용히 서 있는 제로의 모습을 보고 자신의 승리를 예감했다. 백뢰를 몸소 맞아보고 나서야 자신의 기술이 얼마나 대단한 위력을 가지고 있는지 몸소 알게 되었고, 처음의 백뢰보다 몇배는 더한 백뢰를 맞았으니 아무리 제로라고 해도 더 이상은 힘들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의 예상은 언제나 순순히 맞아 주지 않는다.
"크으.. 훌륭한 역용이었다. 이 검도 어딘가에서는 명검이라고 불리웠던 검이었건만, 당해내질 못했군."
타격은 분명히 있어 보였지만, 싸우지 못할정도도 아닌것처럼 그는 비틀거리면서 몸을 추스렸다. 그 모습에 벤하르트는 리스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괴..물.."
- 작가의말
가끔씩 이럴때가 있습니다. 선작이 갑자기 확 줄어 버리는 경우죠. 물론 제 소설이야 선작 거품이 가득한 작품이라 언제 줄어도 할말은 없습니다만은, (선작은 1000대 조회수는 50~70대.. 연재한담에 올라온 글을 보고 꽤 놀랐습니다. 선작삭제라니..)
선작이 6가량이 떨어져서 갑자기 힘이 팍 풀려 버리는 경우죠. 최근에는 덧글도 적어서, 다행히 내일이 토요일이군요. 내일까지만 딱 쓰고 하루만 쉬어야지...
여차저차 해 그런 의미에서(?)
앤드류님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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