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392화-청탁(請託)(2)
"웃기는 일이다. 제로. 당신은 합리적인 인간일것이라고 생각했거늘. 찬티아를 죽이지도 못하고, 또 이렇게 내 앞을 막는다는건 도무지 이해할수가 없다."
페스돈은 제로를 바라보면서 실제로도 조소를 머금고 있었다.
"굳이 이야기를 해서 설득을 요하는 사이도 아니고, 이해할수가 없다면 이해할수가 없는대로 서로가 하고자 하는걸 하면 그뿐인 이야기가 아니었나? 아오이스의 개여.."
"아무리 제로 당신이 강하다고 해도 내 눈은 속일수 없다. 겉으로는 멀쩡한듯이 보이지만, 지난날의 상처가 아직 다 아물지는 않았다는것을 나는 알고 있다."
페스돈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풀이 정신없게 들추어 치고 마치 회오리라도 이는듯이 사납게 일기 시작했다.
"애초에 당신은 나보다는 신체 능력이 좋지 않았었지. 설사 당신을 상대로 했던 나라 해도 그때 조금은 힘을 절제하고는 있었었다. 지금에 와서 당신이 이정도의 격차를 어떻게 줄일수 있을까!?"
모습이 보이지 않을정도로 빠른 페스돈의 움직임에도 여유롭게 제로는 일일히 눈으로 반응해서 읽어내고 있었다.
"한가지.. 물어볼게 있는데, 찬티아 공주를 내가 놓아줄 생각을 했다는것은 곧. 너희들에게서의 그 위험 또한 없다는것을 의미했을거야. 너희들이 그토록이나 아끼는 정보의 노출은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몸소 나타난 이유는 뭐지?"
"당신이 그런 어수룩한 결말을 할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설사 백점 만점에 구십점을 맞았다 하면 남은 십점의 위험은 어떻게 되나. 나는 그저 그 틀린 오점을 남기고 싶지 않을 뿐이다."
"그런것을 가지고 나와 겨뤄 보겠다는 이야기인가.. 정말 우습게 보였나보군."
제로는 허릿춤의 장검에 손을 가져가며 웃었다. 그에 또다시 페스돈은 그를 향해 비웃었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제로 너는 내가 이곳으로 올것이라는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것이 아닌가. 내가 우습게 보았다거나 그렇지 않다거나 하는 말따위는 포장에 지나지 않을터.. 어차피 내가 이곳으로 올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그런말을 하는것은 자신의 일에 대한 포장이라도 된다는건가? 정말이지 우습기 짝이 없다."
제로가 페스돈을 잡으러 온 이상 페스돈이 어떤 용무로 이곳에 온것인지는 어차피 왈가왈부할 대상이 될리 없었다. 굳이 제로가 그 이야기를 꺼냈다고 한다면, 그야말로 페스돈의 비웃음을 신경썼다고 할수 있을 것이었다.
"확실히 그 말대로다. 실언했군."
페스돈은 정신없이 놀리던 발을 멈추었다. 아니 멈출수밖에 없었다. 제로는 한걸음만에 그가 이동하려 했던 공간을 침범했던 것이다. 그대로 이동했다면 상하체가 양단 되었음에 틀림 없었다.
"네게는 아직 보여주지 않았지."
그의 손이 움직이는가 싶더니 페스돈은 단번에 하나의 상처를 입어 버렸다. 벤하르트가 당했던 동시에 세번을 베어넘기는 거합에 쌍검을 이용해 막았지만 막은것은 유유히 흩어졌고, 막지 않았던 한 궤적만이 그의 가슴팍을 베어넘겼다.
"뭣.."
뒷걸음질 치는 그를 한발로 따라잡아 제로는 두번째 공격을 가했다. 이번에는 그 자체로부터 벗어났지만, 그 사이에 제로는 중얼거렸다.
"앵화참월."
베어낸곳을 기점으로 어둠밖에 존재하지 않는 공간을 상대로 페스돈은 벗어나려 했지만, 공간을 먹는 어둠의 속도가 훨씬 빨랐다. 곧 페스돈은 달아나기를 포기했다.
"이곳은 뭐냐."
대답 없이 벤하르트는 손을 들어 올렸다. 무색 투명 어둡기에 판별해낼수 있는 검기를 페스돈은 뒤로 넘어 피해낼수 있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사방에서 그의 사지를 스치고 지나갔다.
"하하하.. 그렇군. 완전히 광대가 아닌가.. 어째서 그 대단하신 대행자마저도 당신을 피하는지 왜 피해야 한다고 말했는지 이제 알았군."
페스돈은 제로를 노려보면서 말했다. 제로는 너덜너덜해진 그의 팔과 다리를 끊어 내는 공격을 가해내고는 앵화참월을 그만두었다. 움찔 거리면서 숨이 끊어지기 일보직전인 페스돈을 그는 묵묵히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공교롭게도 그 꼴은 찬티아가 벤하르트에게 농담을 했던 능지처참형과도 비슷했다.
"늦을뻔했군."
"음?"
제로는 움찔거리면서 놀랐다. 무려 그 자신이 코앞에까지 누군가가 왔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붉은머리와 푸른 머리를 섞어 놓은듯한 풍만한 머릿결을 바닥에 끌며 그녀는 페스돈을 내려 보고 있었다.
"페스.. 너는 운이 좋구나. 대충 시간을 찍어 보았는데, 완벽하게 제대로 맞추어 오다니.."
".... 님."
"제로. 너도 오랜만이구나. 아직도 아오이스를 방해하고 다니는건가?"
여인은 제로의 쪽은 보지도 않은채 페스돈의 팔과 다리를 하나씩 모았다.
"설마하니 너까지 나서게 될줄은 몰랐다. '시간의성좌.' 그녀석이 그렇게 중요한 녀석이었나?"
"아니 그렇게까지 중요하지는 않아.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냥 이녀석은 내 부하여서 잃기가 싫었을 뿐으로 여기에 나온건 단순한 내 변덕 때문이라고 해도 좋아.. 그나저나 페스 너도 참 희안한 녀석이구나. 아오이스에서 제로는 불가침적인 존재일텐데, 공격을 오면 받아주는것 정도는 상관 없지만, 스스로가 공격하는것은 설사 대행자들에게도 금기로 되어 있지 않았던가? 이 헷병아리 거지 녀석이.. 환검술(幻劍術)의 먹이가 되어 버렸네. 그래 페스가 하려던 일이 뭐였나? 제로군?"
환검술이라고 타인이 칭하는 말을 듣는것도 제로에게 있어서는 상당히 오랜만의 일이었기에 제로는 살짝 반가운 기분과 씁쓸한 기분을 느꼈다.
"아오이스의 임무에 쓰였던 장기말을 제거하는데에 실패해서 다시 죽이려 하고 있었다."
제로는 간략하게 대답했다.
"아오이스의 장기말이라,, 그런 쓰레기들은 대부분 네가 알아서 처리해주는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니었나?"
"대부분이 전부는 아니니까, 차라리 당신이 나와서 잘되었군. 이 일에 아오이스는 손을 떼어줬으면 좋겠는데.. 어차피 해가 되는일은 거의 없을테니까,"
"거의.. 란 말이지. 그정도로 너와 싸우지 않는다고 한다면 얼추 맞는 장사라고 생각하긴 해. 기분은 구질구질하게 더럽지만?"
제로 못지 않게 여인도 제로의 모습을 보고 반가운 기분이 들었기 때문에 실실거리면서 조금 말을 끌었다. 그 모습을 본 페스돈은 입술을 지끈 깨물었다.
"하지만 제로. 여기서 내가 싸워서 그 공주를 죽이러 간다고 해도 너는 어쩔꺼지? 이미 앵화참월은 써버렸고, 그 완벽하지도 않은 약하디 약한 육체로 나와 싸워 볼건가?"
"허세 부리기는.. 너야 말로 이곳으로 오느라 힘을 썼을텐데, 그것도 페스돈이라는 녀석이 죽은 기점을 시간조율 했을터.. 어느정도인지는 몰라도 최소 수일의 역사 자체를 바꿔버린 네가.. 체력이 남아있지 않은건 피차 일반이 아닌가?"
여인은 박수를 치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
"역시나 제로.. 전부 읽고 있었나. 하지만 말야. 너.. 라니 너무 새삼스러운걸. 기분이 아주 뭐같아!"
여인의 모습이 사라지자 마자 제로는 한발을 퉁겨 이동해 뒤를 걷어찼다. 그곳에서 여인은 페스돈의 손을 들어 제로의 일격을 막아내었다.
"역시 빈틈이 전혀 없어. 육탄전에는 자신없는 나는 이길수가 없을테니,, 결국 이런 구더기 같은 선택밖에 할수가 없네... 그럼. 물러가주도록 할까.."
"찬티아의 건은 어떻게 되지?"
"없던걸로 해둘게. 이런 사소한 일로 너와 싸우게 되는것은 아오이스로써는 더할 나위 없는 피해를 입을수도 있으니까 말이지. 버릴 말은 말그대로 버려 버린 다는 논리일까? 그나저나 이쯤 되면 묻고 싶어지는데,, 나를 적으로 삼으면서까지 그렇게 그녀석을 지키려고 하는 이유가 뭐지? 암만 봐도 너는 그런 인물은 아니잖아?"
"죽기전의 청탁을 들어주려 하는것 뿐이다. 약속을 어기는건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말이지."
"냉혈 냉철 냉정한 너답지도 않아."
그녀는 그렇게 말을 남기고 팔다리와 페스돈을 데리고 곧장 그 자리를 이탈했다. 그에 제로는 한숨을 쉬며 중얼였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찬티아 공주.. 저세상에서는 자랑스러워 해도 좋을거야. 아오이스의 육성좌와 내가 이렇게까지 놀아난것은 세계를 뒤흔든거나 다름 없는 일이니 말이다."
벤하르트와 레니아는 궁 내부로 들어와 숨어 들었다.
"여기까지는 잘 들어온것 같지만, 이제 앞으로가 문제겠군. 우리가 올라야 할것은 다름아닌 저 성이니까,"
"후후후.."
레니아는 자신이 섞인 웃음을 띄워 보였다.
"이제 내가 나설 차례인가 보군."
"음? 왜 여기가 네가 나설 곳이야? 그런 이야기는 한적도 없고 기대하지도 않았다고,"
"호응이 약해. 여긴 나에게 방법을 묻는 장면이 나와야 하는거잖아."
"제멋대로 나를 바꾸지 말아줬으면 좋겠는데, 그래서? 어째서 레니아 네가 나설 자리가 이곳이라는 건데?"
레니아는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저번 찬티아를 죽... 아니 소멸 시킬때 나는 뜻하지 않게 마법에 눈을 뜨게 된거야."
"마법이야 원래 사용했잖냐."
"재능에 눈을 뜨게 된거야.."
"그러니까 원래.."
"정신쪽의 조작을 하는 쪽으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솔직히 실험 대상도 없고 스스로 연구를 할수도 없어서 발전시키기는 어려웠어. 하지만 찬티아의 공간에서 수련을 할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던 거야."
"정신조작이라 이건가.. 그런데 그거 너무 악독한것 아냐?"
벤하르트는 인상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어디가? 정신조작을 할수 있다고는 했지만, 이건 꼭두각시처럼 조종하는것과는 근본적으로 틀려. 나는 인식을 전환할 뿐이지. 벤 네가 생각했다고 하면 인형처럼 사람을 조종하고 이정도의 수준을 들것 같은데, 그런 수준이 되려면, 사람의 인격이나 마음 자체를 파괴할정도로 강력하게 주술을 걸지 않으면 안돼. 내가 그런짓을 할리가 없잖아. 간편한 최면술이지."
"최면술?"
"즉석 최면술이지만, 다행인것은 내가 그녀석의 얼굴을 알고 있다는 거야."
"그녀석은 또 누구야?"
"이곳의 수비대장 베이든 말이야."
- 작가의말
오늘을 빼면 3일 남았습니다. 연참대전도 이제 곧 끝이군요.
최근에 첫화의 조회수를 보니 3만이 넘었더라구요.
좋게 보면..... 아니 좋은걸 떠올릴수가 없네요.
여기까지 왔으면 뒤로 돌아갈수도 없고,,(400화 가까히나 써두고 뒤로 돌아갈까보냐..) 완결까지 가겠습니다.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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