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290화-신산(神山)(4)
"나를 만나려 하다니, 자네는 굉장히 로맨티스트로군? 환상을 쫓는다거나, 기적을 찾는다던가, 현실적이지 않은 그런 부류겠지?"
벤하르트는 의기양양하게 말하는 나가샤를 보고 놀라고 있었다. 레니아에 못지 않은 훌륭한 외모를 가지고 있는 까닭이었다. 사랑의 신이라고 할 정도면 그정도야 당연한 것이었으나 그녀를 처음 본 벤하르트가 한 생각은 '신이란 전부 이런식으로 생긴건가.' 하는 것이었다.
"아 뭐.."
'로맨티스트..? 잘 모르겠군.'
나가샤는 고개를 젓는 벤하르트를 보면서 살짝 오해하며 말했다.
"아 그러고 보니 자기 소개도 하지 않았군. 나의 이름은 '나가샤' 헤이로카와 브렌모스를 수호하는 애신(愛神)이지. 자네 이름은?"
"벤하르트 하르크입니다."
벤하르트가 자신의 이름을 소개하자 뒤의 공간이 일그러지며 루크와 레니아 세레니르가 차례로 들어왔다.
세명을 데리고 올수 있다는 규칙을 만들어 놓은것은 다름아닌 나가샤 자신이었지만, 실제로 세명을 데리고 올라온 사람은 처음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놀라며 그 광경을 재밌어 하다가 문득 시선을 멈추었다.
'음?'
"음. 자네 고개를 들어봐라."
"....."
"신이 내리는 명령인데 거절할 셈은 아니겠지?"
레니아는 머리를 들며 말했다.
"신의 명령 따위는 아무래도 좋지만 말야."
나가샤와 레니아의 얼굴이 마주쳤다. 마지막에 보고 나서 약 500년. 그 많은 세월동안 서로의 생김새는 전혀 달라진게 없었지만 처지는 하늘과 땅만큼 변해 있었다.
"으하하하하. 레니아 꼴이 그게 뭐냐."
'어?'
"꼴이 그게 무어냐."
금새 목소리를 가다듬어 나가샤는 근엄한 표정으로 말했다.
'잘못들은건.. 아니겠지.."
"내숭을 보이는건 세레니르와 엄청 닮았구나. 나가샤."
"무슨 소릴 하시는 거에요?"
세레니르가 발끈하면서 레니아에게 말했다.
"응? 사실을 말한것 뿐인데?"
"쓸데 없는 소리는 하지 마시죠."
조용히 협박을 섞어 말하는 세레니르를 가볍게 무시하고 그녀는 나가샤를 보았다.
"이야기는 들었다. 노시엘트를 버리고 현재는 신이라고 하기에도 뭐한 그런 존재가 되어 버렸다면서?"
"소문 빠르네. 어떻게 여기까지 그런 소문이 퍼졌나 몰라."
"그거야. 나는 레니아 자네와는 달리 다른 신과의 교류도 활발한 편이니까, 두보엔의 소문도 충분히 들을수가 있지. 허나 네가 왜 이런곳에 있는거지?"
"그건.."
"그런가. 벤하르트 하르크. 자네가 바로 '레나스트'를 먹은 인간이로군!"
"레나스트."
레니아는 침묵했다. 벤하르트와 사이가 아무리 가까워 졌다고는 하나 그때의 일이 그녀에게 막연하게 좋은 추억으로만 남을수는 없는 일이었다.
"레니아 자네는 어째서 이런 원수와 함께 다니고 있는거지? 너의 꿈을 집어삼킨 인간과 함께라.. 그거야 말로 우스갯이야기로는 더할나위 없는 소문이야. 아니면 인간과 눈이 맞기라도 한것이냐?"
벤하르트는 걱정 스러운 눈으로 레니아를 쳐다보았다. 방금의 말은 레니아에 대한 명백한 시비였다. 하지만 벤하르트의 염려와는 달리 레니아는 그다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정도의 시비를 참는다는것은 신이고 인간이고를 떠나서 레니아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을법 했는데도 그녀는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뭐 이런저런 인연이 닿아서 말이지."
"신을 버려가면서까지 유지해야할 인연이라고,"
키득거리면서 명백하게 비웃는듯한 어조로 나가샤가 웃었다. 그제야 벤하르트는 레니아가 어째서 나가샤를 만나고 싶어하지 않았는지 알수 있었다.
'앙숙이잖아.'
리스나 세레니르같은 경우처럼 서로가 좋은 쪽으로의 앙숙이 아니다. 서로를 물어뜯고 할퀴는 완연하게 돌아선 앙숙. 그런 분위기가 둘의 사이에 흐르고 있었다.
'이래서야 영석을 달라는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할..'
"뭐 그 이야기는 나중에라도 하기로 하고, 자네는 어디선가 본적이 있지 않던가?"
나가샤는 루크를 보면서 아리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신은 인간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다. 예외가 있다면 레니아겠지만, 보통의 신은 인간을 보면 곧 그 사람이 누군인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는지를 잊어 버리게 된다.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세월에 그들이 기억할 필요가 있는 인간들은 극히 드물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잊어야 할 인간중에도 가끔은 기억에 남는 경우도 있었다.
"이상하군. 얼굴은 기억나지 않는데 어디선가 본적이 있는것 같아. 자네 이름이 어떻게 되지?"
"나는 그저 이곳에 구경을 온 사람. 벤하르트와는 경우가 달라. 설사 신이라고 해도 너는 내가 생각하는 신이 아니니까, 대답하고 싶지 않다. 신이라면 스스로 알아내도록 하라고,"
"이곳은 내가 다스리는 곳인데도 그런식으로 나오겠다는 건가? 살아 돌아가지 못할수도 있을터.."
'형님 이 이상 상황을 악화 시키지 말라고요.'
"이녀석은 사정이 있어서 이름을 버렸다. 정 부르고 싶다면 '개'로 좋아."
레니아는 루크가 이름을 숨기려 한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서 나가샤에게 말했다.
"뭐..?"
루크가 뭐라 하려 했지만, 나가샤는 그 이름이 마음에 들었는지 곧바로 루크를 불렀다.
"개. 라 레니아 왜 그렇게 불리는지 혹시 물어봐도 되려나."
"한번 작정한 사람은 죽어도 놓지 않거든. 그래서 '개'다."
'이 여자.'
나중에 한번은 기필코 잡아 낸다고 주먹을 불끈 쥐었지만, 이름을 밝히는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는 애써 표정을 관리하고 묵묵히 서 있었다.
"그나저나 나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레니아 네가 벤하르트라는 인간을 '디레인'으로 만들어서 까지 나를 찾아온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겠군. 아니그런가? 벤하르트군."
"벤에게 묻지마. 저녀석은 내게 이용당했을 뿐이니까,"
'이용?'
나가샤를 만난 뒤로부터 이야기가 왔다 갔다 하는 터에 벤하르트는 약간 혼란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가 상상하던 화기애애함속에서의 영석을 원하는 광경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영석은 커녕 이곳에서 고문이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일것이라고 밖에 생각할수 없었다.
"후후 하기사. 너같은 녀석이 인간과 '같이' 다닐리 없지. 가장 무난한 대답이야. 그렇다면, 그쪽의 인간 벤하르트는 나를 따라 오게나. 나머지는 이녀석을 따라 쉬는 곳으로 가게."
"나도 같이 가도 되겠지?"
"그럴수야 없지. 설사 어떤 이유를 붙힌다 해도 레니아 자네는 디레인에 끼어 온 손님일뿐. 하지만 나는 신으로써 이곳에 올라온 디레인을 만나야 할 의무가 있지. 그것이 '헤이로카'와 '신등장'을 만든 이유니까."
'불안한데,'
벤하르트는 머리가 나쁘지는 않았고 거짓말도 수준급으로 할수는 있다는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상한쪽으로 외곬수 기질이 있었기 때문에 왠만하면 교섭은 레니아 자신이 맡아서 하고 싶었던 것이다.
"벤 잠깐 이리로.."
"뭐야?"
"일단 어떤것에도 대답을 해도 되지만, '영석'의 건은 이야기 하지 말도록 해. 그건 네가 말한다고 들어줄수 있는게 아니니까,"
"너라면 가능하다는 거야?"
"달라고는 할수 없어. 하지만 '교섭'이라면 어떨지.. 어쨋든 가봐."
레니아는 벤하르트를 걷어차는 시늉을 했다. 그리고 레니아와 그 일행 루크와 세레니르에게 한명의 남자가 인사를 하며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앞으로 이곳 신산에 머물때에 손님들을 모실 후야라고 합니다. 따라오시지요."
벤하르트는 애신 나가샤를 따라 신전의 안으로 들어갔다. 확실히 나가샤의 신전은 레니아의 동굴과는 다른 느낌이어서 레니아가 인정하는 자신보다 높은 신이 무엇인지 말해주는듯 했다.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레니아의 심정도 어느정도는 이해가 갔다. 안으로 걸어가는 도중 나가샤가 벤하르트에게 말했다.
"자네는 레니아에게 이용당하고 있다면서?"
"뭐.. 분명 그런 셈이죠."
"이제 신의 힘도 없는 레니아는 '디레인'정도의 실력을 지닌 자네라면 충분히 배신할수 있을텐데 어떤것을 미끼로 이용을 당하고 있는건가?"
"제 몸에 흐르는 레나스트가 한번씩 발작을 일으키는데, 그것에 대한 억제를 할수 있는건 레니아 뿐이기 때문입니다."
전혀 이상없이 태연자약하게 벤하르트는 거짓말을 해대었다. 나가샤는 신. 인간의 잔재주인 거짓말을 분간하지 못할리는 없었지만 벤하르트는 보통의 인간이 아니었고 거짓말을 할때의 요령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럴 마음만 먹는다면 나가샤라고 해도 쉽사리 거짓말인지 아닌지 판단하기는 힘들었다.
"호오. 그런가. 확실히 '약'에 관해서는 빠삭했었지."
신전의 안 웅장함을 넘어 신성함마저 느껴질 정도의 광경을 보고 벤하르트는 갑작스런 가슴의 격통을 느꼈다.
"큭."
"무슨 일이 있느냐?"
벤하르트 자신도 무슨 일인지는 정확하게 알수 없었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자신이 말한 거짓말과 섞어 말할수 있는건 하나뿐이었다.
"조금 레나스트가 발작을 한것 같습니다만, 이제는 조금 괜찮아졌습니다."
서서히 고통은 사그라 들었다.
'무슨 일이지.'
"뭐 좋겠지."
여신의 옥좌에 앉아 벤하르트를 여유로운 얼굴로 바라보았다. 금발의 긴 머리 하늘거리는 옷은 처음만났을때의 레니아를 보는듯한 기분이었지만, 그때처럼 흔들리는 모습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이게 내성이라는 걸지도,'
신전 외에도 인간과는 떨어진 이세계라고 해도 무방한 도원. 손님을 맞이하는 수십년간 쓰이지 않았던 객실에 그들은 덩그러니 들어가 있었다.
"나가샤녀석 무슨 일로 벤을 데리고 간거지?"
"낭군님에게 반했다거나."
"세레니르 너같은줄 알아. 백에 하나 아니 아니지 만에 하나라도 그런 일은 없어. 심문이라던가 그런걸 할 속셈이 아닐까."
제멋대로 생각을 하고 있는 레니아를 보고 한심스럽다는듯이 루크가 한숨을 지었다.
"뭐야 뭔가를 알고 있는 듯한 행동인데? 루크."
"'개'라면서?"
이글거리는 눈으로 루크는 무섭게 레니아를 노려 보았다.
"그거야 네가 말하고 싶지 않은 눈치니까,"
"어이가 없군. 그래서 가져다 붙힌게 '개'라는 말이냐?"
"무슨 소리야. 내 딴에는 가장 어울리는걸 가져다 붙힌건데."
"큭."
"사실.."
세레니르는 조심스럽게 루크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원래 사나웠던 루크의 얼굴은 더욱더 험상궃게 변해 세레니르를 바라보았다.
"저도 '개'가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하여간 그런 문제는 됐다. '개'던 '사자'던 그런건 아무래도 좋아."
"사자라는 말이 듣고 싶었던거야?"
"헛소리. 나가샤가 벤을 데려간것에는 별로 걱정하지 않아도 될거다. 아니 그건 아닌가?"
루크의 말로는 전혀 의미를 파악할수 없었기 때문에 레니아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루크에게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나가샤는 수집가다. 그녀는 신이면서 신을 만들지. 아까의 남자도 아마도 숭배받는 대상은 아닐지언정 아마도 '신'의 힘을 가지고 있을거다. 그러니 별볼일 없는 디레인이라면 소량의 선물과 신이 사는것을 만끽하게 해주고 끝을 내겠지만, 혹시라도 마음에 든다면 이곳에서 '신'으로써 살아가도록 하려 애쓰겠지. 하지만 '신'이다. 보통은 거절하지 않겠지, 단지 그녀에게 충성을 맹세하는것만으로 영생을 약속 받는거다. 왠만한 사람이라면 백이면 구십은 넘어오겠지.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벤하르트는 다르다. 그러니 빌수밖에 그녀가 벤하르트를 마음에 들지 않도록 하는것을.."
"수집가라.. 확실히 그럴지도 몰라. 그녀는 자신이 애신이면서, 그 밑으로도 신을 부리고 있었으니까, 순수한 신도 따르는 '신' 마음에 안드는걸."
"마음에 안든다는것에는 동의하지."
"어 잠깐 루크 너 설마.."
루크는 세레니르쪽으로 살짝 눈을 옮겨 눈치를 주었다. 레니아도 그 뜻을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대단한 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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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참대전이 끝났습니다. 근데 일요일에 끝났다고 써 있어서 굉장히 헷갈렸는데, 어차피 올릴거 확실하게 오늘까지 올려두기로 했지요.
근데 사실은 이 뒤의 부분까지 써서 올리려고 했는데, 시간이 모자라서,,, ㅠㅠ
그러고 보니 전 화에 한분이 댓글을 남겨줬는데 그 내용이 너무 좋았습니다.
제가 엔쿠라스를 쓰면서 두번 그런 댓글을 받았는데요. 여기까지 쉬지 않고 읽었다. <-이런 내용의 댓글이었죠.
하도 길다보니까, 선작도 이제 잘 안늘고,, 조회수도 늘지 않지만, 소소한 즐거움으로 계속 써나가는것 같아요.
항상 댓글 남겨주시는 앤드류님 서글픈인형님 감사합니다. 다른 모든 댓글남겨주시는 분들도 감사해요.
그럼 연참대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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