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428화-에린델(1)
벤하르트와 레니아는 북쪽 경계를 넘어 에린델로 향하는 산을 올랐다. 그 산맥은 마치 땅을 양분이라도 하려는듯 에린될과 룬델을 나누는 경계로 라군델 뿐만 아니라 브렌모스나 샤이한에 이르기 까지 끝이 나지 않는 만년설의 산으로 이어져 있다.
레니아가 머무르고 있었던 노시엘트도 그 산맥중에 하나였다. 군데군데 강한 마수들이 벤하르트와 레니아를 덮쳐 왔지만, 마수가 개별로 덤벼봐야 그들에게 상대가 될리 없었다. 사나운 마수들이 많다고 했던 데베스로의 말은 사실이었지만, 웨이즈의 공간에서 꽤나 멀리 떨어져 온 이곳의 마수들은 응집력이 없었기 때문에 별다른 위험은 나오지 않았다.
"과연.."
그는 끝도 희고흰 산을 오르면서 왜 경계지역에서 이런 저런 충고를 했는지 알수 있었다. 만약 멋도 모르고 탄티노 도시에서 입고 온 옷을 입고 갔다면 지금쯤은 살이 딱딱히 얼려 있을것이 틀림 없었다.
'정말이지 경계와 어울리는 산이로군.'
경계 라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는듯, 이 땅을 건너기를 방해라도 하려는듯 추위는 그들을 가로 막았다. 기를 사용하는것에 능한 벤하르트 조차 옷을 껴입은 지금에도 춥다고 느낄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으으.. 오감을 생생히 느낀다는건, 역시 좋으면서도 나쁜 오묘한.."
"무슨 소릴 하는거냐?"
"옛날 생각. 눈은 내 친구라고 생각했었는데, 에에 푸흥."
그녀는 손수건으로 기침을 막았다. 그러더니 살짝 술에 취하기라도 한듯 휘청였다.
"감기 걸린거야?"
"감기?"
레니아는 지식으로는 감기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걸려본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자신이 걸린게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우우.. 그런건가? 이게 감기라는 녀석인가.. 신이었던 내가 꼴사납기 그지 없군."
"얼굴이 빨갛잖아."
벤하르트는 장갑을 벗어 레니아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말할것도 없군. 엄청난 열이잖아. 아 맞아. 레니아 이럴때야 말로 약신이 나설때다! 해열제 같은,,"
레니아는 벤하르트는 찔끔 노려보면서 말했다.
"말했잖아 약은 없다고... 그 쓸데 없는 일에 사용하지 않았다면, 우 우.. 크훙"
조금이라도 액체가 빠져 나가면 그자리에서 얼것 같은 무시무시한 추위와 자신의 치태를 보이고 싶지 않았던 레니아는 반사적으로 연신 얼어붙은 손수건으로 기침을 막아냈다.
"마법을 쓰면?"
"마법은 이런 일에 써도,,, 나는 병을 치료하는 마법은 능숙하지 않아. 외상을 치료하는 쪽이야 조금은 쓸만해도, 이제와 느끼는건데,"
레니아는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말했다.
"이 상태로는 마법도 사용하지 못하는것 같아. 마법은 몸상태와는 그렇게 관계있는게 아니지만, 집중도 잘 안돼. 머리가 지끈지끈 거리고 어지러운데다,, 뭐야! 감기라는게 이렇게 무서운 병이었어? 그냥 민간병이잖아."
"글세 상황이 상황인지라 민간병으로 생각하다가는 위험하겠어. 그나저나 이거 큰일인데, 지도도 없고, 굳이 지도가 아니라도 여길 빠져 나가려면 아직도 한참은 남았을텐데, 레니아 고개를 숙여."
벤하르트의 다급한 말에 레니아는 망설임없이 쓰러지듯 고개를 숙였다. 그에 그는 지체없이 검을 뽑아들었다. 검끝에서 쇄도하는 백색의 빛은 마수를 감아 멀직히 던져버렸다.
"우욱.."
눈에 얼굴을 파묻은 레니아는 금방이라도 기절해버릴것 같은 얼굴로 멍하니 서 있었다. 눈이 촛점이 없이 흔들려 마치 기절한듯 잠이 든 그녀를 보고 벤하르트가 말했다.
"어쩔수 없군."
벤하르트는 그녀를 엎어 들고 바람이 들어가지 않도록 그 위에 자신의 겉옷을 덮었다.
'보자..'
마수들이 응집 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걸음으로 약 300보 걸으면 한마리가 나올정도로 그 양은 심심찮을 정도로 많았다. 그는 기를 최대한으로 흩어놓아 마수들을 감지해냈다.
"눈밭이 어디까지 계속 될지는 몰라도, 어쩔수 없지."
한팔에는 레니아를 조심스럽게 받치고 한팔에는 검을 들어 그는 한발로 새하얀 눈산을 향해 뛰어 들었다. 한팔로 안는것은 쉬운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레니아를 똑바로 고정시키기 위해서 그는 기를 이용해서 그녀가 미끄러지지 않도록 잡아 챘다.
이미 왠만한 무예의 달인들을 훌쩍 뛰어넘은 그의 신체능력은 그야말로 대단해서 정신없이 엉망진창으로 뛰고 있었음에도 레니아는 그것을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검에서 세어나오는 백색의 빛은 마치 결계 처럼 세어 마수가 나올때마다 재빠르게 몸을 구속해 벤하르트가 올라 왔던 길 아래로 던져 버렸다. 그렇게 내던져 버려도 생명에 전혀 지장이 없을만큼 마수들은 강인 했지만, 지금의 벤하르트에게는 전혀 위협이 될수 없었다.
레니아에게 충격이 가해지지 않도록 그리고 수많은 마수들을 상대하느라 진을 뺀 그는 온몸에 땀이 일었다.
"이거 벌써 해가 지고 있잖아."
노을이 진것처럼 하늘이 붉그스레 하게 이는 것을 보고 그는 조금 더 서둘렀다. 강철 같은 체력의 벤하르트라고 해도 힘이 무한한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슬슬 몸도 지쳐 오기 시작했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을수만은 없었다. 그리고 얼마쯤이나 갔을까 그는 발을 멈추었다.
"....."
눈은 보이지 않았다. 위에 보이는것은 불그스레하게 물든 하늘 그리고 아래에는 웅장하게 펼쳐진 눈덮힌 산맥들로 가득했다.
"어이 레니아. 일어나봐."
"으음.. 어? 벤!"
레니아는 벗어나려고 했지만, 벤하르트는 그녀를 저지 하고 말했다.
"가만히 있어. 아직도 심하니까, 지금 네가 여행을 하려고 한다는건 짐이 되겠다고 스스로가 말하는거야. 너라면 지금 자신의 상태가 어떤지 잘 알것 아냐. 내 등에 엎힌줄도 모르고 자고 있었으니 말 다했지."
레니아는 그의 머리를 사정 없이 두들겼지만, 마치 꼬맹이가 알밤을 먹이려고 징징대듯 그는 전혀 아프지 않았다. 벤하르트의 힘은 어디까지나 기와 그 자신의 신체의 조화였지만, 레니아의 기본적인 힘은 그렇게 세지 않았다. 그녀는 그런 부분을 최면이나 마력으로 극복했고, 마력의 부분이 월등하게 높았기 때문에 벤하르트에게도 타격이 있었던 것이었지만, 지금은 몸상태가 최악이었기 때문에 레니아의 그런 공격이 벤하르트에게는 앙탈처럼 느껴졌다.
"으으.."
"깨운건 놀리려고가 아니야. 저기나 보라고,"
벤하르트가 가리키는 곳을 보고 레니아도 눈을 반짝 였다. 산 아래에 펼쳐진 진백의 풍경 아마 보통의 사람은 절대 보지 못할 지고(至高)의 풍경에 그녀도 입을 다물지 못하고 놀라했다.
'이크'
자신의 모습을 깨닫고 그녀는 곧 평정심을 되찾았다. 하늘과 땅 산의 색색의 풍경을 보며 그녀는 물었다.
"벤 내려줘."
벤하르트는 레니아가 경치 구경을 더 잘 하고 싶어 하는가 싶어서 선뜻 그녀를 내려주었다.
"경치를 보고 나니까 한결 후련해진것 같아. 여기서부터는 내 힘으로 내려가도록 할게."
"뭐?"
"이대로 너에게 계속 신세를 질수는 없잖아."
"뭘 이제와 새삼스레.. 거기에 계속 업어서 알고 있는데, 지금 넌 스스로 내려갈수 있는 상황이 아니야. 여긴 엄청 가파르다고. 알고 있을텐데 왜 그래?"
"시 시끄러워. 할수 있다니까,"
그녀는 신경질스레 쏘아붙히고는 한걸음을 내딛었다. 그 순간 휘청거리면서 발에 힘이 탁하니 풀려버렸다. 지체없이 쓰러지는 그녀의 등을 받쳐 벤하르트는 지탱했다.
"거봐라."
레니아는 벤하르트를 전력을 다해 밀치더니 반대쪽을 보고 손수건을 꺼내들었다.
"우훙."
필사적으로 자존심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레니아의 모습이 왠지 귀엽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 더 그 모습이 보고 싶어진 벤하르트는 그녀를 놀릴 생각을 했다.
"....."
벤하르트는 그녀를 살짝 딱하다는 듯이 보고 말했다.
"저기 이런 말을 하긴 뭣하지만 말야."
"뭐야."
"네가 업혀 있을때 말야. 이미 수도 없이 기침을 했었거든. 변호해주자면 최대한 새근새근 조용히 라고 비유할수 있을..."
레니아는 그 안좋은 몸으로 힘껏 달려서 벤하르트의 얼굴을 양발로 차려 들었지만, 벤하르트의 눈에 그녀의 공격은 정지 한것마냥 보일 뿐이었기에 여유롭게 잡아서 업어 들었다.
"너무 자존심 내세우지 말라고, 정말이지 우리 사이에는 새삼스러운 일이잖아?"
"..... 으흡."
벤하르트는 레니아의 기침을 참는 소리에 살짝 웃었고 레니아는 얼굴을 붉히고 말했다.
"어차피 지금 상태로는 너를 당해낼수는 없으니까, 마음대로 해. 어차피 이대로 내 의견을 들어줄 생각따윈 없을테니까."
"어차피 너도 알고 있잖아.. 그 몸으로는 내려갈수 없다는걸 말야."
"그러니까 마음대로 하라고 하잖아."
"그럼 마음대로 할테니 조금 꽉 잡아줘."
"꽉... 이라고,"
레니아는 중얼 거리면서 얼굴을 홍당무처럼 붉히고 벤하르트를 안았지만, 정작 벤하르트는 뒤의 그녀의 얼굴을 볼수 없었기에 순순히 포기했나 싶어 레니아도 성장했구나. 싶은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둔해 빠지기는.'
"친절히 모셔."
그녀가 퉁명스레 말하자 벤하르트가 대답했다.
"맡겨둬. 한번 더 봐둘래?"
그들은 경계를 나누는 산맥중 하나 소이안 산맥의 정상에서 그 경치를 한번 더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는 쏜살같이 달려 산맥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으음 음.."
몽롱하게 약간 무거운 몸으로 레니아는 잠에서 깨어났다.
"어떻게 된거지?"
벤하르트에게 매달려 내려오는것 까지는 기억하고 있었지만, 그 뒤의 기억은 끊겨 있었다. 레니아에게 이처럼 가까히에 있었던 일을 잊는다는건 거의 있을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또 자신이 정신을 잃었다는것을 깨달았다.
"그나저나 왜이렇게 따듯한거야?"
주위를 둘러보니 자신의 근처에 염령검이 박혀 있었다. 하루종일 레니아를 업은채 연신 기를 사용해야만 했던 벤하르트는 꽤나 피곤했는지 레니아가 깨어난줄도 모르고 구석에서 곤히 자고 있었다.
'후우. 정말이지. 둔해빠져서는..'
레니아는 한숨을 쉬면서 벤하르트의 자는 모습을 바라 보았다.
"그나저나 이놈의 감기라는 녀석은 정말! 재수없어. 그런 치태를 보여 버리다니!"
레니아는 그 모습이 벤하르트에게는 호감을 주었다는것은 생각치도 못한채 분해서 무겁게 움직이는 발을 동동 굴렀다.
'그래도 뭐.. 병주고 약준 셈으로 칠수는 있으려나..'
살짝 감기 덕을 보았다고 생각한 그녀는 코가 간질거리자 다시 짜증을 내며 투덜거리고는 자신의 쪽에 와있는 염령검을 벤하르트와 자신의 중간 사이에 꽃아 두었다.
"내가 감기가 든것도 손해지만, 이 상황에서 너까지 감기가 들게 할수는 없지."
그렇게 손질해두고 그녀는 침낭안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다음날 아침 레니아의 몸은 아직도 성하지 못해서 빌빌 거리고 있었고, 벤하르트는 전날의 피로를 회복해 쌩쌩하게 몸을 풀었다.
"레니아 어때? 이게 바로 어제 내가 만든 얼음집이지. 검으로 사르르 손질해서 하나하나 쌓아서 만든.. 꽤 좋지 않았나?"
'얼음으로 만든거구나. 책에서 본적이 있었지. 모양새를 보니 벤도 본적이 있었던 모양이군.'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때 그녀의 이마에 찬 손이 닿았다. 몸이 둔해서 일일히 반응을 하는게 어려운 레니아는 갑작스러운 행동에 화들짝 주춤 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뭐 뭐야!?"
"아니 아직도 꽤나 열이 심해서, 염령검도 소용 없었나 보군."
"그렇진 않아. 그래도 꽤 나아졌어."
그 말은 사실이었다. 전날과는 다르게 레니아도 이제는 단순하게 걷는것은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몸은 나름 나아 있었다.
"그럼 가자."
"괜찮겠어?"
레니아는 흘끔 자신의 다리밑을 쳐다보고는 자신있게 말했다.
"물론이지. 아.. 꺄아!"
돌아왔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일반인 정도로 돌아왔기 때문에 사실상 그녀가 이 산을 내려가는것은 상당히 버거운 일이었지만, 지금의 사태는 그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눈이 부서져 떨어져 내리는 그녀의 손은 어느샌가 벤하르트가 잡고 있었다.
"역시 안되겠다. 매달려."
"어쩔수 없지."
"순순하네?"
의아한듯 벤하르트가 물었다.
"어제 네가 말했잖아? 그래서 짐이 되는것 보다야 내가 참는게 나을것 같아서 말야."
"좋구나. 성장이라는건."
벤하르트는 최근들어 태도가 바뀌는 레니아를 생각하며 흐뭇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런 그를 보며 레니아는 바보같다고 생각하면서 그의 등에 매달렸다.
"좋아 그럼 가보자. 오늘 내로는 내려갈수 있을것 같아."
레니아는 벤하르트가 모르게 살짝 웃으면서 그를 안았다. 그리고는 자신의 그 행동에 스스로가 얼굴을 붉히며 그것을 숨기기라도 하려는듯 크게 소리쳤다.
"달려!"
- 작가의말
자연스럽게 레니아가 벤하르트를 좋아한다는것을 묘사하고 싶었는데, 자연스럽긴 한가 모르겠습니다. 이정도면 뭐 거의 빠진 정도지만요.. 인물간의 심리편을 후기에서 다루면 재미가 빠지므로 여기까지만 쓰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화는 재미있나 모르겠네요. 사실 쓰는 저는 은근히 재밌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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