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405화-사연(死緣)(8)
벤하르트는 로코와 싸울때 힘을 맞춰 주었다. 힘을 억제해서 그들이 마치 자신과 싸울때 이길수 있다는 생각을 심어줄 정도로 그는 그들을 봐주었다.
일단 세명과 싸울때에도 여섯과 싸울때에도 마음만 먹었다면 언제든지 로코를 이길수 있었다. 그럴 실력도 기술도 그에게는 충분했다. 하지만 이기지 않았다. 되려 밀리는 기색을 남겨 줌으로써 마치 로코가 유리한것처럼 유도를 한것이다.
사실 그는 로코를 벌하려고 처음부터 마음먹었었지만, 아라나나 리핀이 말하지 않은 다른 것을 그들도 혹시나 알고 있을것 같아 은근히 떠볼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한 것이다. 그 요량으로 일단은 그를 도발하고 밀리는것처럼 응수해 대답을 끌어내려 했었다.
때마침 온 세명은 그들에게 유리하다는 느낌을 받게 해줄 좋은 발판이었다.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로코는 진짜 벤하르트를 이겼다고 착각했다. 그도 그럴것이 여섯명은 서로를 믿지는 않아도 최소한도 그들의 실력은 믿고 있었다. 어지간해서는 여섯이 모여 이기지 못할것은 없다고 생각한것이다. 그런 믿음은 확신으로 확신은 자신으로 바뀌었고, 밀려서 힘겨워 하는 벤하르트를 보고 그는 있는말 없는말을 다 해버리게 된 것이다.
그건 로코가 한 하고 많은 실수들중에서도 평생 잊을수 없는 가장 큰 실수였다.
"처음부터 나는 너희들을 별로 용서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만, 지금은 그때와는 마음가짐이 다른줄로 알아라."
"허풍떨지마라 벤하르트 너는 우리 셋과 싸워도 이기지 못했.."
"그러니까 그건 연기였다고 말하고 있는거잖냐."
벤하르트는 털털 거리며 말했다.
"그럴리가 없다."
로코는 제멋대로인 성격에 악한 인간이었지만, 그렇다고 벤하르트가 말하는것처럼 바보는 아니었다. 온힘을 다해서 비슷한게 아니라 정말 자신들에게 전력을 다한것처럼 느끼게 하면서 상처를 받으면서까지 연기를 할수 있다는것은 이미 그들보다 더 강하다는것을 뜻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로코가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자 그를 따라 다섯명도 주춤거리면서 벤하르트를 감싸안았다. 그야말로 방금전까지 벤하르트에게 지옥을 선사했던 합격술안에 벤하르트는 자신의 발로 들어가 주었다.
"미친녀석!"
여섯명은 진안으로 들어온 벤하르트에게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각자의 최고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벤하르트는 검을 휘두르며 외쳤다.
"일섬. 백뢰!"
백색의 번개가 그의 주변에서 사방으로 퍼져 나가 삽시간에 세명을 공격했다. 다들 왠만한 수준을 가지고 있어 그 공격을 피할수 있었지만, 그 뒤의 공격은 피할수조차 없었다. 굳이 말하자면 벤하르트가 일부러 막을수 밖에 없는 공격을 했다는것에 있었다.
이미 몇수나 아래인 여섯의 육색도를 확실하게 파악한 상태인 벤하르트는 곧바로 검을 그어 냈다. 그것은 연철장의 문원들 중에서도 벤하르트와 루크만이 사용할수 있는 절기 참도였다.
"말도 안돼."
묵언 수행을 하는 이매그는 흩어지는 자신의 칼날 조각을 보면서 탄성을 내질렀다. 그 이변을 확인할때 이미 코렙트의 검이 산산조각 났고 코렙트가 놀라 주춤거릴때 동시에 드니드와 보닐의 검이 부서졌다.
"뭐 뭐 뭐냐. 너는."
"너희들의 사숙? 우습지도 않은 벤하르트다."
"로코 이건 이야기가 다르잖아. 더 좋은검은.."
"너희들이 쥐어야 할 연철장의 검은 어디에도 없어."
벤하르트는 일섬 참도로 둘의 검을 바로 부숴 버렸다. 허탈감에 빠진 여섯은 슬그머니 뒷걸음질 쳤다.
"내가 말했잖아. 진짜 도로호우이를 성공했었다고,"
"칭얼 칭얼 거리지 마라. 저녀석의 몸은 하나 지금 여기서 검이 없다고 해도 우리 여섯을 전부 쫒지는 못할터 사방으로 흩어져서 달아나면 기회는 있다."
'저녀석이 언제까지고 이곳에 있을리도 없을테니 사라지면 와서 다시 검을 만들면 그것으로..'
"도망가도 좋지만, 로코 너만은 안놓칠거다."
그 한마디로 로코는 자신이 도망칠수 없다는것을 깨달았다. 이미 벤하르트와 자신의 실력차는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등뒤는 식은땀으로 가득했다.
"크윽."
"네 입으로 말했지? 닐스를 죽인건 너 자신이라고,"
"아니 아니야. 내가 아니다."
로코는 치졸하게 뒷걸음질을 치면서 변명했다. 그런 그의 뒤에 섬뜩한 기운이 서렸다.
"왜 죽였어."
아라나는 검을 그의 목 뒤에 바짝 붙혀 겨누고는 말했다.
"아 아라나."
"왜 죽였냐고!"
로코는 아라나만이 있었다면 얼마든지 그 검을 자신의 수중에 놓고 아라나를 인질로 잡을수 있었지만, 눈앞에서 대기하고 있는 벤하르트를 상대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것을 알고 그만두었다. 뭐라해도 일부러 지는것처럼 행동해 자신들을 손위에서 가지고 놓은 주도면밀한 벤하르트가 자신이 아라나를 인질로 잡는것을 눈으로 보기만 할리 없다는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정말이다. 이 위기를 타계하려는게 아닌 진짜로 내가 죽인게 아니라고, 단지 벤하르트를 분하게 만들어 내기 위해서 내가 한것처럼 꾸민것 뿐이야. 진범은 따로 있다."
로코가 사정을 비는 모습을 보고 다섯명의 멸문인들은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굳이 말을 오가지 않아도 그들은 서로의 눈빛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어차피 맨날 구박이나 하며 자신들을 수족처럼 부려먹으면서 강함을 빌미암아 이득만을 챙기는 로코를 그들이 봐줘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던 것이다.
차라리 지금껏 고통을 받은 값을 청산한다고 생각하고 로코를 미끼로 삼아 다섯은 각자 다른 방향으로 도망치기 위해서 준비를 끝마쳤다. 눈빛의 신호와 함께 그들은 기다렸다는듯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잘있어라 로코!"
"너희들! 나를 버릴 생각이냐!"
로코는 단말마처럼 외쳤지만 코렙트는 약이라도 올리려는듯이 가볍게 말하며 쏜살같이 내달렸다.
"너도 언제든 우리를 버릴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 피장파... 끄악."
코렙트는 비명을 지르면서 공중에서 뚝 하고 떨어졌다. 그리고 쿵쿵 거리면서 부딛히는 소리가 들린후 다른 사람들도 탈출하지 못하는 상황이란 것을 알았다. 그들은 몇계단을 전후로 더 나갈길이 없다는것을 깨달았다.
"어떻게 된거지? 밖으로 나갈수가 없어."
"기.. 아니 마법과 비슷하군 마력으로 이루어진 벽이 쳐있는것 같다."
이매그는 눈을 감고 벽을 만지며 말했다.
"누가 이런짓을 한거지?"
"누구긴 누구야. 나지."
"으앗 저여자. 저여자다. 귀신!"
가디는 귀신을 본것처럼 뒷걸음질 쳤다. 바로 앞에는 레니아가 웃으면서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던 것이다.
"저 저여자도 본적이 있어."
코렙트는 중얼거리면서 말했다.
"그래. 도로호우이때 그 용병단에 있었던 가장 마지막까지 벤하르트와 붙어 있었던 그 여자였어."
"뭐 뭐라고? 도로호우이?"
남은 일행이 얼굴을 사색으로 만들며 말했다. 벤하르트와의 일을 이제 막 올라돈 세명은 잘 알지 못했지만, 그 긴박한 상황에서도 자신들에게 불리한 사실들은 어느정도 막연하게나마 몸소 체험하고 있었기 때문에 최악의 상황만을 상정해서 예상했다.
그리고 그 예상은 아쉽게도 제대로된 추측이었던 것이다.
용병들의 사이에서 도로호우이는 전설이었다. 이룰리가 없다고 생각되는 전해내려오는 이야기. 그런것을 실제로 이룬 사람이라는 것은 벤하르트 스스로는 알지 못해도 실제 그 소문과 더불어 실력을 보게 되면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가 쉬운게 아니었다.
지금 그들에게 벤하르트나 레니아는 본래의 실력보다 더 괴물 같은 사람 처럼 생각되어 있었다.
"너희들도 공범자잖아? 그런데 저렇게 동료를 버려두고 달아나려는 건가?"
"그럴리가 있겠습니까? 저녀석은 동료고 뭐고도 아닙니다."
가장 서러웠던 코렙트가 선두에 서서 말하자 그 뒤를 이어 네명도 로코의 욕을 해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매그 만큼은 말을 하지 않았다. 이미 깨진 묵언수행 때문이 아니라 그런 행동이 너무 치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동료를 팔던 팔지 않던 그런 자잘한것 까지 내가 알필요는 없으니까, 어쨋든 벤의 말을 들어보고 결정할거니까, 일단 너희들은 잡혀줘야겠어."
여유롭게 뒷짐을 진채 레니아는 그들에게 서서히 접근했다. 처음 만났을때부터 레니아의 외모에 시기하는 마음을 가졌던 드니드는 손가락으로 레니아가 그녀자신이 친 마법벽 안으로 들어오면 치자는 의견을 내세웠고 나머지 넷도 그에 동의했다.
레니아가 안으로 들어 오자마자 다섯을 일제히 맨손으로 달려들었지만, 무기도 없는 그들이 레니아의 실력을 당해낼리가 없었다. 한명씩 차례대로 제압당해서 그녀의 마력에 구속되는것에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마치 평상시에 해오던 일처리를 마저 끝마친듯한 느낌으로 레니아는 바로 다섯명을 구속해 흘리지도 않은 땀을 닦으며 뿌듯해했다.
"후우."
한편 코렙트 일행이 달아나는것을 본 로코는 벤하르트에게 참회라도 하는듯 침울해져서는 말했다.
"정말이다. 물론 내가 그 일에 대한 주모자인것은 확실하지만, 나는 닐스를 죽이지 않았어. 그 일을 한것은 엄연히 다른 사람이다."
여전히 말은 짧았지만 벤하르트는 그를 어차피 곱게 볼 생각이 없었기에 차라리 그 짧은편이 독기를 품기에는 더 좋다고 생각했다.
"그런가."
벤하르트는 온화하게 웃다가 표정을 돌변해 말했다.
"말했지. 네가 말한것에 대한 진의를 알 생각은 없다고, 그렇게 이야기 한것이 진실인지 이미 닐스가 죽은이상 이 연철장이 형식상으로만 남게되고 멸문한 이상 그 일 자체에는 나에게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벤하르트는 자신의 검을 집어 넣으면서 말했다.
"하지만 네가 내 질문에 대답을 잘 해준다면, 선처는 해보도록 하겠다."
"알겠다. 성심성의것 대답해주겠어."
"네 말이 사실이라 치고 닐스를 죽인건 누구냐."
"연철장은 상당히 오래된 문파다. 문주를 비롯해 장로등 여러가지 사람들이 있었지. 그런 사람들의 눈을 피하면서까지 독을 타는 행동을 나같은 인간이 하기 쉬울것 같나? 상식적으로 생각한다고 해도 그게 쉬운일이 아니라는것쯤은 네가 모른다고 해도 리핀이나 아라나가 잘 알고 있을거다."
"아라나 그 말이 사실이니?"
"그럴거에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녀석이 우리를 속여온것을 생각하면,"
아라나는 감쪽같이 자신의 사부가 병으로 돌아갔다고 생각했다. 아니 아라나 뿐이 아니었다. 연철장의 참극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아마 흑막을 알지 못하는 모든사람들은 닐스가 죽은 이유가 노환으로 인한 병이었다고 생각했을 터였다.
"하지만 그게 아니란 말이다. 너희들도 잘 알고 있을거다. 그게 가능한 사람이 단 한명은 있었다는 것을."
"아니야. 그는 그렇게.."
"그렇게 네가 믿는 그 녀석이 연철장을 멸문시키는것에 가장 큰 공을 세웠다는걸 모르는건 아니겠지? 네가 생각하고 있는 루켈은 그저 가면을 쓴 인격에 불과하단 거다."
"루켈?"
"그러고보니 루켈은 어디에 있지? 육색도중 하나는 그녀석이 가져야 하는게 아니었던가?"
어느새 몸을 추스른 리핀이 로코에게 물었다. 그날 연철장을 멸문시킨것은 7인 이곳에 있는 여섯명의 사내를 뺀 나머지 하나. 닐스의 제자들중 가장 실력이 뛰어났던 루켈이라는 남자였다.
"그녀석은 이미 아오이스다."
"뭐? 아오이스?"
"그래. 한동안은 육색도를 그녀석이 가지고 있었지. 그렇게 2년 그녀석과 나의 명성은 점차적으로 벌어져만 갔다. 그리고 어느날 그녀석은 우리 여섯명을 불러모아놓고 육색도중 하나를 건네주고는 자신이 아오이스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말했다. 우습지 않나? 닐스가.."
"닐스는 네 사부가 아니냐?"
벤하르트가 노려보며 이야기 하자 로코는 어쩔수 없이 그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닐스 사부가 그토록이나 가고 싶어했던 아오이스에 그녀석은 단 2년만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좋아. 그 루켈이라는 녀석이 죽였다는건 알겠다. 그럼 그 다음이야기다. 내가 아오이스에 들어가는것을 거절했다는건 무슨 말이지? 아까 한껏 비웃었었더랬지?"
"그건 이쪽이 묻고 싶은거다. 이건 나만 알고 있었던 사실이 아니다. 리핀도 아라나도 저 멍청이같은 코렙트 같은 녀석은 기억을 못할테지만, 그런 녀석을 제외하고 연철장에 있던 제자들은 한번씩은 들어 봤던 닐스의 젊었을적 이야기에 나왔던 부분이란 말이다. 네가 모른다는건 이쪽이 더 이해가 안가는 일이다."
"뭐..?"
벤하르트로써는 그런 기억은 전혀 없었다. 그가 기억하고 있었던것은 행복했던 연철장의 나날과 하루아침 사이에 깨진 일들 뿐이었다.
"무슨 이야기지..?"
머릿속이 혼잡해 왔고, 그는 깨질듯이 아픈 머리에 무릎을 꿇고 고통을 참아야 했다. 벤하르트의 이변을 보고 로코는 바로 아라나의 검을 빼앗아 아라나를 사로잡았다.
"아라나!"
"으으윽."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형세가 다시 역전된것 같군. 역시나 아무리 생각해도 기회주의는 정말 멋진것 같아!"
[벤. 고통은 잠시 내가 감당해줄게.]
'리스. 무슨 말이야?'
순간 벤하르트의 머리가 깨질것 같은 고통은 씻은듯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의 눈앞에 휘둘러지는 검의 궤적에 그는 반사적으로 몸이 반응 했다. 맨손으로 검의 궤적을 흘려버린 것이다.
"이 이럴수가!"
로코는 아라나를 방패로 삼아 슬그머니 뒷걸음질 쳤다. 벤하르트는 검을 뽑아 그가 정비할 태세를 주지도 않고 바로 휘둘렀다. 아라나의 몸은 절반이나 되는 검이 휘둘러지는 영역을 막고 있었기 때문에 로코 정도가 되면 틈을 내어준다는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벤하르트의 일격도 충분히 막아낼수 있을거라고 생각해 로코는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뭐 하는거냐!"
되려 당황한 리핀이 벤하르트를 향해 소리쳤을때 이미 백색의 빛은 그들에게 쇄도한 후였다.
"어어.."
달그락 거리는 소리와 함께 로코는 순간 검을 놓았다. 정신이 아득해져서 무의식중에 검을 놓아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의 의아한 행동에 아라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정말 다행이구나. 네가 끝까지 나쁜인간으로 남아줘서 말이다."
벤하르트의 검은 아라나와 로코를 갈라놓았다.
"이 이런."
그는 즉각 오체(五體)에 각각 한번씩 다섯번 공격을 가했고 로코는 그중 한가지도 막아내지 못하고 그자리에서 쓰러져 기절해버렸다.
- 작가의말
음.. 오늘 일찍 돌아오면 12시 이전에 한번 읽어보고 수정의 시간을 가지고 싶네요. 영화를 보러 가야 되서 일단은 일찍 올려봅니다.
사실 그렇게 수정할게 많은건 아니지만, 혹시나 잊고 안쓴게 있을까 싶어서 말이죠 ^^;
보러가는 영화는 기대했던 캐리비안의 해적이네요. 죠니뎁의 맛깔나는 능청연기를 맛보고 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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