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387화-전언(傳言)
"스위치를 끄는것 마냥 껏다 켰다 잠들었다 깨어났다. 하긴 했어도 이렇게 존재를 자각해 보기는 처음이야."
순백색의 공간에서 찬티아는 흐릿한 미소를 띄운채 레니아가 서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참고로 말해두지만, 나는 벤과는 달라. 어중간하지 않고, 확실하게 임할거야. 거기다 네 경우는 확실하게 해줘야.. 다른 한쪽이 더 안전할거라고 생각해."
"알고 있어. 말을 하기는 했어도, 너에게는 미안한 일을 시켜 버리게 되었네. 이제 나는 사라지니까, 반쪽을 대신해서 사과하도록 할까.."
"됐어. 그 값은 네 목숨으로 대하고도 남을테니까, 솔직히 말하면 나도 놀랐거든. 네가 죽겠다고 나설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거든. 그런 의미에서 벤의 사람 보는눈은 정확했나봐."
찬티아는 아쉬운듯 주변을 둘러 보았다.
"죽는다고 생각하니, 죽기로 각오했는데도, 무서워. 죽어야 한다고 스스로 생각하면서도 그 결심이 무뎌질정도로 공포 스러워. 나는 찬티아이면서 찬티아가 아니었는데, 결국 내가 죽으면 나는 어디로 가게 될지.. 나라는 존재를 어느 누구도 기억하지 못한다는게.. 두려워."
레니아는 그녀의 심정을 말로는 느낄수 있을것 같았다.
"걱정 하지마. 나는 한번 본것은 지금까지 잊어본적이 없거든. 너에 관한것은 네가 이 세상에 존재했다는 것은 내가 평생토록 기억해줄게. 뭣하면 책으로라도 남겨주지. 나는 애독자라서 말야. 글쓰는데에는 아마 재주가 있을거야."
"희대의 악녀로 길이길이 전해지겠어."
"희생의 성녀로 기억되게 열심히 왜곡시켜볼게."
찬티아는 피식 하고 웃으며 레니아에게 걸어갔다.
"이제 끝내자. 더 있으면 마음이 돌변할것 같아."
"내 생각에는 그럴것 같지는 않지만,,"
"한가지 부탁을 해도 될까?"
"..... 그건 반쪽의 나에게는 최고의 선물이 될거야."
새하얀 방의 공간이 무너지며 레니아는 잠에서 깨어났다.
"으으."
"정신이 들어?"
벤하르트의 목소리에 그녀는 살짝 안도하면서 말했다.
"어. 여기가 어디야?"
"여관이다."
얼굴에 튄 피를 닦으면서 제로는 무신경한 어조로 말했다.
"으힉. 제 제로?"
"무슨 귀신이라도 보는듯한 눈을.. 불쾌하게,,"
"하지만,, 어?"
레니아는 무언가의 덩치의 낌새를 느끼고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고 있는 버벨의 모습이 있었다.
"너 너는."
"신세를 지고 있다."
"제로.. 씨. 아직도 계속 하실겁니까."
"아니 이제 손을 떼겠어. 내가 목적한 바는 이미 달성한것이나 다름 없으니까,, 그녀는... 그래 네 말대로 였을지도 모른다. 네 행동은 인정할수 없지만, 불안정한 네 생각이 정답이었을지도 모른다는것에는 동의할수 있을것 같다고 본다."
제로는 본래라면 찬티아를 죽여 완벽하게 씨를 말려 놓았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합리적이라는 것도 어디까지나 그 자신의 합리화. 사라질 각오를 한 찬티아에 대한 예우를 지킨것이다.
"그럼 공주는 성에 데려다 주어야 겠군."
'아직 저정도의 기운이 남아 있다니,,'
제로는 한 팔로 찬티아 공주를 들었다. 그리고 벤하르트의 앞을 지나다가 멈추어 서서 말했다.
"아마도 너는 이 결말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없었던 것 같군."
"네?"
"심한 거부감이 있었다면, 분명 그 몸으로라도 막으려 했겠지. 결국 너는 이런 결말이라면 되어도 좋을지 모른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일거다. 그 결말에 이르기 까지의 방법은 분명 잘못되었다. 적어도 지금의 너에게는 잘못되었어. 결국 네 잣대로 판단해 버리는 것은 어느쪽도 정답이 될수 없는 미숙한 생각이다. 언젠가는 그것으로 인해 반드시 후회를 하게 되겠지."
'바로 나처럼...'
"....."
벤하르트는 뭐라 말도하지 못한채 우두커니 서 있었다.
"바라는 결말인지 아닌지 알수 없지만, 허락 될정도의 결말이었다고 한다면, 내 검에 대해서 이야기해주는것도 가능하다고 생각하는데,"
"이야기 해드리겠습니다."
"후우 고맙군. 내가 공주를 데려다 준 후에 듣고 싶은데, 나에게는 정말로 중요한 이야기니까.. 이런 곳에서 듣고 싶은 마음은 없거든."
"그렇게 하도록 하죠."
제로는 품에서 치유의 보주를 꺼내 들었다. 그는 벤하르트의 상처를 치유해 주었는데, 벤하르트가 생각하지 않았던 곳에도 치료를 해두었다.
"여긴 왜."
"아 더 싸웠으면 아마 이쪽의 뼈가 나갔을거다. 그런 공격을 해뒀으니까,,"
벤하르트는 제로의 기술에 질려 버렸다.
"그리고.. 저 여자의 상처는 네가 답을 알려 주었을때 치료해주도고 할까."
벤하르트는 몸을 돌려 보주의 치료에서 벗어나며 말했다.
"어차피 알려줄 생각이지만, 그런 조건이라면 저보다 레니아를 치료해 주셨으면 합니다."
"농담이다."
제로는 레니아와 벤하르트와 버벨의 상처를 다 치료해 주고 나서 찬티아를 들고 나가려 들었다. 치유의 보주는 자기 자신만은 치료하지 못하는 마도구였기에, 제로의 현 상태는 아주 좋지 않았다. 레니아의 공격 때문에 팔 한쪽은 너덜너덜 했고, 벤하르트때문에 전체적으로 상해 있었다. 움직이는것만으로도 벅차 보일 정도였음에도 그는 선뜻 찬티아 공주를 등에 메어 들었다.
"그럼.. 이후에.."
"아니 몸이 성한 저분이 찬티아 공주를 데려다 주는게 맞지 않나 싶어서.."
제로는 슬쩍 버벨을 쳐다보았다. 버벨이 움찔거리면서 제로를 마주하자. 제로는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아니 내가 가는게 나을것 같군. 별로 신용이 가질 않아서 말야."
"뭐야!? 내가 누군지는 알고 하는 말이냐!?"
섬칫한 살기에 버벨은 한발자국 물러섰다.
"그다지 알고 싶지는 않지만,, 네가 잘못한다는 뜻으로 그렇게 말한건 아니야. 다만, 너는... 오해를 살수 있을것만 같아서 말이지. 가령 공주를 납치한 괴한 이라던가.."
"그러고 보면 그런 일도 있었던가.. 뭐 그때는 주변의 녀석들을 다 곤죽으로 만들어 놓았었지만,,"
"진심입니까?"
벤하르트가 믿기지 않는다는듯한 눈으로 버벨을 보았다. 순간 그는 버벨에게 맡기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공주의 친위대라고 하면 많이 강하지 않겠냐? 어때?"
기대에 찬 눈빛으로 버벨이 벤하르트에게 물었다.
"아니 제로씨 당신이 가주세요. 부탁드립니다."
"그러지."
'눈앞에서 무시당해보는건 처음 겪는 일이로군.'
제로는 성큼성큼 걸어 동굴의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당신 이름이 뭡니까?"
"아 이야기 하지 않았던가? 내 이름은 버벨 브란츠라고 한다. 저 여자는 내가 들어줄까?"
심술궃은 미소를 지어 보이면서 버벨이 그렇게 말하자 벤하르트는 전력으로 거절했다.
"아니 제가 들도록 하겠습니다. 그보다도 그렇게 도울 생각이 있으시다면, 한가지 도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만,"
사실 레니아를 살짝 괴롭힐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말한것이었기에 버벨은 당황했다.
"어? 아니 그렇게 돕고 싶은 마음은.."
"사양하지 마세요. 찬티아공주나 레니아나 잘 알지도 못할텐데 그정도로 도우려 했다면 필히 심심해서 그런 것이겠죠. 이 길로 쭉 따라가면 철창 안에 갖혀 있는 사람들이 있을겁니다. 사형수라고 하는데, 지금껏 연구재료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그들을.."
순간 벤하르트는 풀어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의 갈림길에서 머뭇거렸다.
"죽이면 되나?"
버벨은 태연하게 물었다.
"어째서 그런 결론이 나오는 겁니까?"
"사형수잖아? 죽일 녀석들이니까,"
이전에도 버벨이 아닌 사람들에게서 몇번이나 본것같은 무미건조한 눈빛을 한 버벨에게 벤하르트가 답했다.
"감옥으로 데려가 주시겠습니까? 현상금 수배서를 보고 잡아 왔다 라고 하면서요.."
"무르구나 너는."
빈정거리면서 버벨은 벤하르트가 가리킨 쪽으로 투박하게 걸어갔다.
그리고 상황을 모두 종료한 시점에 제로와 버벨은 벤하르트의 여관에 묵고 있었던 것이다. 레니아는 벤하르트를 데리고 옥상위로 올라와 투덜거렸다.
"아니 저녀석들은 어째서 여기 묵고 있는거야? 돈도 없대?"
"제로씨는 나에게 물을게 있어서 있는거고, 버벨씨의 경우는.... 없는 모양이야. 전의 마을에서 다 썼다고 하는걸 들은적이 있는것도 같고,"
게걸 스럽게 먹고 호쾌하게 싸우던 버벨의 모습을 생각하며 레니아가 말했다.
"왠지 동물 같은 녀석이야."
"그 의견에는 동감한다만, 나름대로는 생각을 하긴 하는것 같아. 문제는 생각을 하면서도 결정이 동물 같다는것에 있지만,,"
버벨은 결코 바보가 아니고 냉정함이나 생각도 겸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생각을 해서 스스로 결정하는것을 동적인것을 삼기가 일수 였다. 생각이 없는게 아닌 일생 자체를 도전적이게 살아가려 하다 보니 생각이 없는것처럼 보이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나도 잘 아는건 아니지만서도,,"
"언제까지 붙어 있으려나.."
"둘다 길게 있을것 같지는 않은데, 버벨은 둘째 치더라도 당장에 제로씨만 해도 검의 이야기를 들으면 곧 일테니까, 그런데 무슨 이유라도 있어?"
레니아는 살짝 당황해하며 대답했다.
"이 이유는 무슨.. 그냥 답답하잖아."
레니아는 말끝을 흐리다가 눈빛을 달리했다. 무언가를 낚을 생각을 하는 초롱초롱한 고양이 같은 매의 눈을 반짝이며 그녀가 말했다.
"벤. 제로에 대해서 검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었지?"
"어 어어.."
"그럼 그걸 이용해서 제로에게 아오이스에 대해서 알려달라고 하자. 제로는 아오이스를 잘 알고 있는것 같았어. 아마 네 검에 대한 이야기와 바꾸자고 하면 충분히 응해줄거야."
"하지만 말야. 이미 대가는 받았는데,"
벤하르트는 제로가 레니아와 자신을 치료해준 것을 설명해주었다.
"바보같이 이런건 나 스스로가 고칠수도 있는거잖아. 어쨋든 이야기라도 해봐야 겠어. 아오이스녀석들에게 죽을뻔한게 도대체 몇번인데 아직도 그 조직에 대해서 잘 모르냐는 말이지."
"그것도 그래."
벤하르트는 한창 아오이스에 공격을 당했을때에는 아오이스에 대한 정보를 모아보려고 노력을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아오이스에 대한 작은 단서조차도 알아내지는 못했다. 이정도의 일을 꾸미는 조직이 이처럼이나 드러나지 않는다는것은 대단한 것이었다.
"찬티아는 돌아갔어?"
"제로씨가 데려다 주었으니까, 아마 잘 들어갔겠지."
"제로를 본건 겨우 이번이 두번인데, 뭘 그렇게 믿는거야?"
"하기사.. 하지만 도저히 실패하는 상상을 할수가 없어서 말야."
레니아는 그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만신창이가 된 상태를 보면서도 이길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그때를 상기하면 지금 살아있는게 기적과도 같이 느껴졌다.
"루크 보다도 강한것 같아."
"뭐... 비슷하지 않겠어.."
"하. 자기 사형이라고 엄청나게 편을 드는데 그래? 루크라고 해도 저런 괴물을 이길수 있을까."
"그거야 모르는 일이지."
"알았어. 모른다고 하자. 그나저나 로오나는 잘 따라다니고 있으려나?"
"그럴걸."
확답은 하지 못하지만, 루크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벤하르트는 루크가 그녀를 잘 데리고 다닐것이라고 확신했다.
"찬티아의 일도 있었고 하니, 잊고 있는게 있지?"
그녀는 웃으면서 품 안에 넣어 두었던 영석을 살짝 보여 주었다. 역시나 투박하게 생긴 영석이 그녀의 주머니 안에 곤히 들어 있었다.
"이번것은 수의 빙령석인가."
"그래. 그렇기에 그런 액체 마물을 만들어 낼수 있었던 걸거야. 그 마물을 만들어내는것에 영석이 필요한건지 아니면 수령석이 필요한건지는 알수 없지만, 그리고 이건 빙이라기 보다는 수 라고, 물의 기운을 자연스레 담고 있지."
"영석의 본체는 원래 이렇게 평범한건가? 이래서야 네가 가지고 있던 영석이 더 영석 같아 보일것 아냐."
"하지만 너도 알잖아? 이래보여도 그것과는 비할수도 없어. 그건 미완성품이지만, 이건 완성품과도 같아. 그런데 이게 어떻게 그곳에 있었을까?"
"어쨋든 대단해. 이걸로 두개나 얻은 것이잖아!"
"그래. 우연이지만, 우연이기에, 더 영석이라는게 실감이 되는걸. 이건 노려서 얻을수 있는 물건이 아니니까 말이지. 그런 의미에서 벤 네가 이 일에 관심을 보인건 멋진 선택이었어."
"그렇지?"
둘은 팔을 한껏 엮어서 기합을 넣었다.
"그리고 찬티아로부터의 마지막 말을 전할게."
아무렇지도 않게 그녀는 툭하니 말을 건넸다.
"뭐?"
"그녀석을 죽인건 나니까, 마지막에 대화를 한것도 나잖아? 마지막에 전한 말을 말하려는거야. 내가 말하는건 죽기직전의 지금은 사라진 찬티아의 부탁의 전언."
벤하르트는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그녀석 나머지 반쪽은 너를 복면남으로만 알고 있다고 하면서 정식으로 친구가 되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어."
"....."
"들어 줄거야?"
"물론이지. 그로인해 무슨 일을 당하더라도 말이지."
"확실히 최고의 선물이라 할수 있겠네.. 이건.."
- 작가의말
영석을 두개 획득. 여행의 반이 끝났다고 하지만,,, 글세요. 지금까지 걸어온것보다는 훨씬 적게 남아 있을겁니다.. 하지만 두개 얻을 분량일지는 저도 잘 모르겠네요. 생각해놓은걸 보면 아직도 조금;;;; 길어저서 죄송합....
연참대전 마지막 7회~8회(계산이 귀찮아 대충) 아잣 힘내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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