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339화-강
"음?"
작게 나지막한 소리를 내며 은빛머리의 사내는 발을 멈추었다. 조금 떨어진곳으로 부터 호쾌한 발딛음 소리가 들려오는가 싶더니 그의 눈앞에 붉은 머리의 남자가 바닥을 긁으며 앞길을 가로 막았다.
그를 쳐다보지도 않은채 은빛머리의 사내. 제온은 입을 열었다.
"누구냐."
상대를 업신여기거나 깔보는것도 아닌 그렇다고 높게 치지도 않는 지극히 중용을 지키는 조용한 말투에 붉은 머리의 남자는 웃으면서 말했다.
"네가 최강의 검사라고 불리우는 '제온' 이라는 녀석이냐?"
"최강이라는것을 스스로가 증명할수 있는 방법이 있는가?"
그제서야 제온은 눈을 떠 붉은머리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아오이스의 명령에 따라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는 그를 찾을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자신을 찾을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과 능력을 지니지 않은 사람으로 나누었을때 눈앞의 남자는 분명 후자였다.
"그렇군. 그렇다면 질문을 달리, 네가 제온이냐?"
"그렇다."
"최강을 증명할수 있는 방법 따위 존재할리가 없지만, 이것 하나 만큼은 확실하군. 내 야성의 감이 지금껏 내가 겨룬 녀석들중 네가 '최강'이라는것을 증명하고 있다!"
팔근육이 팽배해지고 그의 손에 든 작대에 힘이 들어가는것을 보고도 제온은 전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나저나 분명 묻지 않았던가? 너는 누구냐 하고."
"최강을 노리는 남자다."
"이름을 밝힐 생각은 없다는 건가. 아무래도 상관은 없다. 나는 최강은 아니다만, 네가 최강을 노린다면 확실히 상대가 되어 주는것이 옳겠지."
"무슨 소리를 하는거냐."
"최강이라는것은 자신이 힘이 정상에 선다는것. 그 앞에 있는것은 무엇이든간에 넘어서야 할 벽이라는 이야기. 그러니 네 앞쪽에 서 있는 나는 최강을 목표로 하는 너에게 있어서는 목표나 걸림돌이 되는것이다. 네 정체나 이름 같은것은 상관 없이, 원대로 상대해주도록 하지. 하지만 너는 나를 상대하기에는 조금 부족한것 같군."
붉은 머리의 청년은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분명 제온이 말한것은 광오함이 느껴질 정도의 자부심. 자기 자신보다 확실하게 위에 있다는 실력의 표출이었지만, 그 말에는 과도한 포장도 없었고 자신에 대한 멸시도 담겨 있지 않았다. 어중이 떠중이가 스스로에게 떠벌리는 허언이 아닌 진짜를 발견했다는 쾌감에 젖어든 것이다.
"너같은 녀석에게 이름을 말하지 않는것은 굉장한 실례가 아닐수 없겠군. 내 이름은 버벨. 버밸 브란츠다."
대답없이 제온은 허릿춤의 검을 뽑아 들었다. 은은한 빛이 서린 검을 보고 감탄과 빈정이 섞인 목소리를 내고 버벨은 자신이 들고 있는 작대에 힘을 주었다. 작대는 신기하게도 빛이 부풀어 오르는가 싶더니 거대한 대검의 모습을 취하게 되었다. 놀랄만한 상황에도 제온은 눈하나 까딱하지 않고 묵묵히 버벨을 쳐다본다.
"보통 녀석들이라면 눈이라도 껌벅일 모습에도 미동조차 하지 않다니.."
"사스리엘의 목(木). 이미 본적이 있는 물건에 놀랄 필요는 없겠지. 누가 그것을 가지고 있다 한들 처음 본것도 아님에 놀라지는 않는다. 그럼 실력을 보여 주겠나. 버벨."
제온의 말에 되려 버벨이 놀라 물었다.
"이 것을 알고 있는건가?"
하지만 제온의 눈은 이미 전투에 들어가 있었다. 그 눈은 '빨리 오지 않는거냐.' 하고 묻고 있었다.
"좋아 말하지 않아도 가려던 참이었다!"
그 거구 거목 거검을 들고 믿기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내달려 삽시간에 대검의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온 그는 제온의 허리를 양단하려는듯 검을 휘둘렀지만, 제온은 가벼운 움직임으로 공격을 받아 흘려 보내었다. 그런 검술을 많이 보아왔는지 베벨은 당황하는 기색조차 없이 여유롭게 공방전을 펼쳤다.
"그정도의 가벼운 검으로 내 검을 상대하다니 대단하군. 하지만 어째서 실력을 숨기고 있는것이.."
말을 끝내지 직전 제온의 검이 그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제서야 그는 말할 여유를 잃고 검과 검을 맞대었다. 힘으로는 제온이 밀리는지 연신 검을 뉘여 그 공격을 분산하면서도 제온은 착실하게 그에게 공격을 적중 시켰다. 살살 아주 바늘 구멍만큼의 차이로 살갖만 벗기는것 같이, 아니 되려 그 바늘구멍만큼의 차이를 자신이 찾을수 있다면 역공을 가할수 있을것만 같이 아슬아슬하게 제온은 그를 이겨나가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되겠군.'
제온이 자신보다 실력이 한수 위라는것을 인정할수 밖에 없었던 그는 검을 힘껏 쳐 제온과의 거리를 벌리고 자세를 잡았다. 사스리엘의 목은 소유자의 기를 든 나무에 구현화 시키는 것으로 기를 자유로히 사용하는 사람이나 사용할수 있는 무기였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가장 자신있는 기술을 사용하고자 자세를 잡았다. 그것을 제온은 한번 해보라는듯 검을 들고 가만히 응시했다.
'먹어라.'
버벨은 발길질로 필요 이상의 모래를 흩뿌리며 시야의 사각으로 돌아갔다. 자신보다 역량이 뛰어난 누구와 붙어도 한번도 져본적이 없었던 남자는 제온을 상대로도 자신의 이 기술은 상처를 줄수 있을것이라 확신했다. 하지만 그 사각조차도 제온에게는 닿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야 말로 미끼로 다음 공격을 성공시키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것이었다. 빛으로 이루어진 대검이 기이하게 흔들리더니 제온을 향해 몇가닥의 칼창으로 화해 날아들었다. 확실하게 먹었다고 생각한 순간 제온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뭐."
제온의 검은 버벨의 목에 닿아 있었다.
"이것으로 되었겠지?"
"내가 지다니,,,"
승부에 인정을 하고 싶었지만, 인정할수 없었다. 선선히 제온에게 서서히 밀렸을뿐, 지금까지는 한번의 실패도 없었던 자신의 가장 쓸모 있는 기술을 한번 보여주고 이렇게 어이 없이 패배가 난다는것을 그는 인정할수 없었다.
"이렇게 당할수는 없다!"
제온은 자신이 목을 대고 있는 검을 치려는 움직임을 보면서도 굳이 숨을 끊지 않고 손에 검을 흘리게 두었다. 마음만 먹었으면 그 즉시라도 숨을 끊을수 있었지만, 그런 행동을 하지 않은 것이다. 그는 자신의 무위를 전부 보여줄 생각으로 제온에게 덤볐지만, 마치 안개를 상대하는것처럼 상대할수 없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종이한장 바늘구멍만큼의 차이였던것 이라고 생각했던 움직임이, 마치 자신의 까마득한 위에서 노는것 같은 착각을 들게 만들었다.
처음 붙을때부터 그는 제온이 자신의 위라는것을 느끼고 있었다. 체감하지 못할 정도의 강함을 가진 사람과 싸우는것은 한두번의 일이 아니었고, 그때마다 목숨의 위협을 받았지만 그는 살아남았다. 아니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수 있을까 하는것을 위기중에서도 알아 낼수 있었다. 이기는 방법이 1퍼센트도 되지 않는다고 해도 언제나 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눈앞의 남자에게는 그 1퍼센트조차 너무도 터무니 없을정도로 마음을 공허히 만들었다.
"검. 검만 닿는다면."
"포기 하지 않는가."
제온은 움직임을 멈추었다. 오로지 검술로만 상대해 줄 요량 기마저도 두르지 않은채 그는 버벨과 대치했다.
"이 이자식!"
버벨은 자존심이 강했다. 이미 자신이 졌다는것은 기정 사실이었지만, 단 한방이라도 지금껏 표정의 변화를 보이지 않았던 제온의 얼굴에 먹여 주고 싶었는지 전력을 다해 덤벼 들었다. 하지만 그 전력의 공격, 자신의 혼신을 다한 공격마저 그는 움직이지도 않고 막아내었다.
"라 오르피도."
그간 말을 꺼내지 않던 제온은 처음으로 먼저 말을 꺼냈다. 버벨의 혼신을 다한 일격을 단 한손의 검으로 아무 이상없이 자신의 기술로 흘려내지도 않고 정면으로 막아내었다.
"....."
'꿈적도 하지 않아.'
"라 에르피도."
제온의 몸이 사라지더니 그는 다시 뒤춤에서 버벨의 목을 겨냥하고 있었다.
"무엇하나 네가 나를 이길수 있는 것은 없었다만, 그 마음마저 꺽여서야 더더욱 이길수 없지."
버벨은 그 말에 왠지 참을수 없는 기분을 느꼈다. 그 말은 자신을 바보 취급하는것이나 다름없었지만, 되려 자신이 방금까지 생각한 '포기'를 말하는것 같아 가슴이 뜨끔했던 것이다. 망설임 없이 그는 자신의 과거를 모두 포함한 공격을 제온에게 가했다.
"이건 훌륭하군."
제온은 막았지만, 원래 막았던 것에서 반치 정도나 밀려 있었다. 하지만 그뿐으로 버벨은 검을 놓았다.
"졌다. 죽여라."
"최강이 된다고 하지 않았나?"
"설마 나는 최강이 될때 까지 한번이라도 지게 될것을 생각한적이 없다. 강한자와 싸울때도 약한자와 싸울때도 그러했다. 지금까지 한번도 진적 없고 앞으로도 지지 않기 위해. 적수가 없게 하기 위해 싸워 왔다. 하지만, 아쉽게도 너라는 녀석을 만나버렸다. 나는 앞으로 얼마가 되었든 너같은 강함은 손에 넣지 못할테니까,, 최강이 되지 못할 강함이라면 여기서 죽는게 낫다. 내가 최강이라고 인정한 녀석에게 죽는다면 별로 슬플것도 없군."
"포기하는건가. 그것도 나쁘지는 않지. 하지만 아쉽군. 분명 너는 나를 능가할수 있을 재능을 가지고 있는데도,"
"빈말은 하지 마라. 내 주제는 내가 더 잘알아. 지금까지 강한자를 이겨온것도 어떤 의미에서는 기적이라는것도, 기적은 기적이기에 많이 일어나지 않는다는것도.."
"빈말 따위는 하지 않는다. 빈말이라 생각했다면, 그건 네가 자신이 최강이 될수 없다고 생각했기 따름이겠지."
검이 선을 따라 움직였다. 제온은 할말은 하지만, 강요는 하지 않았다. 상대가 그것을 원한다면, 그대로 이행을 해줄뿐. 살기를 바랬다면 살려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버벨은 죽기 원했고, 그의 원을 들어주기로 한 것이다.
"그럴지도."
되고 싶었다. 하지만 되고 싶은것과 되는것은 다른것이었다. 그것을 고작해야 이 일전으로 깨달았다고 그는 생각했다. 검을 휘두르려는 순간 제온은 움직임을 멈추고 살짝 거리를 벌렸다. 그가 서있던 자리에는 뭔가의 바퀴가 돌고 있었고 버벨은 슬슬 그 바퀴에 빨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제온이 시선을 돌렸다.
"루크 샐던인가."
"아 그래. 오랜만이군 제온씨."
"그렇게 불리는것도 오랜만이지만, 설마 아직도 그 모습을 할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거기에 설마 네가 나를 찾아올것이라고는... 더더욱."
"아 그런가. 사실 제온씨 라고 높혀 불러주고는 싶지만, 이제 나는 '아오이스'가 아니니까, 쓸데 없는 포장을 할 필요는 없겠지."
버벨은 루크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놀랐다. 그는 자신에게 제온의 위치를 알려준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한창 강한 사람에 대한 수소문을 하고 있을때 나타난것이 저 남자였다. 검을 차고 있었으나 자신의 상대는 안되어 보일것만 같았는데, 지금의 위용은 그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로오나 이녀석을 데리고 물러서라."
"하지만,"
로오나도 루크가 대하고 있는 인간이 어느정도의 괴물인지 눈치채어선지 물러설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알고 있겠지. 나는 언제라도 너를 버릴수 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이런것 때문이야. 나는 저녀석을 상대로 너를 지키며 싸울 자신이 없다."
'저녀석이 그런 행동을 할리는 없겠지만,'
제온은 결코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 언제나 정공법으로, 어떤 일이든 자신의 능력으로 아오이스중 최강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행동해 나가는 그가 로오나를 공격할리는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루크가 로오나를 데리고 다니는 최소한의 조건으로 제온에게서조차 지키지 못한다면 그는 로오나를 데리고 다닐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알겠습니다. 루크님 그럼 그곳에 읏."
로오나는 한손으로 버벨의 공격을 막았다.
"어?"
그 행동에 놀란것은 공격한 버벨이었다. 단순한 완력으로도 져본일이 없었고 그런 지근거리에서 자신이 내지른 주먹을 그렇게 쉽게 막아버릴줄은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이다.
"무슨짓입니까."
냉기가 풀풀 날리는 눈빛으로 로오나가 말했다.
"나는 이미 죽기로 결심했다."
"아 그럼 죽으십시오."
로오나의 공격에 버벨은 허리를 젖혀 피하려 했지만 미처 피하지 못하고 허리를 찔려 극심한 고통을 느꼈다.
"끄으윽."
'이런 여자 하나 못이기는건가.'
그것만큼은 상상하기 싫었던 그는 발로 로오나를 걷어찼다. 우락부락한 사내가 미인을 괴롭히는것 같은 분위기를 풍겼지만, 실상은 그 반대나 다름 없었다.
"로오나. 너만 떠나라."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버벨을 두고 가기에 그녀는 너무도 기분이 찝찝했다.
"됐다. 가."
더 이상 거절할수 없이 그녀는 몸을 날려 자리를 뒤로 했다.
"딱히 건드릴 생각은 없었다만,"
"제온씨 아니 제온. 너라면 그랬을것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에 제온은 답없이 검을 치켜들었다.
"제온. 나는 별로 너와 싸우러 온게 아니다."
제온에게 있어서 루크의 그런 말은 생전 처음 듣는 말이었지만, 그것이야 말로 루크 다운 말투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왜?"
"한가지 부탁을 하고 싶다."
"부탁?"
"그래. 벤하르트 하르크를 알고 있겠지?"
그말에 제온은 눈을 살짝 까딱였다.
"그 신과 함께 다니는 녀석을 말하는것이냐."
"그렇게 말하는건가. 그래 그녀석이다. 아마 아오이스는 그녀석들을 노리고 있겠지. 그것은 분위기를 보면 알수 있다. 전면적으로 나오지 않는것은 다른 큰 일이 있다고 생각하면 되려나. 내가 부탁할것은 하나다. 아오이스의 다른 녀석들이 그녀석을 노리는것은 상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제온 너는 그녀석을 노리지 마라."
"'대행자'의 명령은 절대적이라는것을 잊은건가."
"하지만 그것을 얼마만큼이나 들을것인가는 개개인의 자유지. 그 이상으로 너는 거부권마저도 가지고 있을터. 벤하르트에게는 나서지 말아다오."
"내가 그것을 사용하는것은 내 개인의 권한이자. 내 개인적인 감상 때문이다. 누군가에 의해 주도 되어 사용할만한 종류가 아니지. 대답하지. 거절한다."
루크는 살짝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 '당신이라면' 그럴것이라 생각했다. 제온씨."
누구에게도 구속받지 않으면서 확실하게 구속당한채로 명령을 이행하는 아오이스의 최강자. 벤하르트가 다른 대행자에 당할것이라면 이미 그 여행은 절대 이루어 질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루크는 알고 있었다. 아니 반대로 벤하르트라면 제온 외에 다른 대행자를 상대로는 살아남을수 있을거라고 믿었다.
그래.. 상대가 이 제온만 아니라면,, 제온은 다르다. 제온과 비할수 있는 강함을 가지고 있는 대행자는 아오이스에는 몇 있었지만, 그들과 벤하르트가 겨루는것과 제온과 겨루는것은 다르다. 그들은 강하다고는 하나 패배할수 있지만, 제온의 경우는 지금의 벤하르트로는 만에 하나. 아니 그보다 더 심한 확률일지라도 '이길수 없다.' 만나는 순간 그 여행은 종착점이나 다름 없게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 여행을 지속시키는 몫은 자신이 해주어야 한다고 루크는 생각했다.
"이제와서 그런 말투인가."
"한번쯤은 옛날로 돌아와도 좋을거라 생각했을 뿐이다. 뭐 잡담은 이정도로 해둘까."
루크는 웃으며 검을 뽑아들었다. 이런 상황이 올거라는것을 예상이라도 한듯이 자연스럽게 제온도 그것을 받아 검을 대치한다.
"그래. 루크 너라면 내가 전력을 다해도 좋을 몇 안되는 녀석중 하나겠지."
'뭐야?'
버벨은 제온의 말에 놀랐다. 자신이 훨씬 아래로 생각했던 루크가 실상 제온과 맞닿을 정도의 실력자라는것을 믿을수가 없었던 것이다.
"라 에르피도."
몸이 사라지는가 싶더니 한 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루크의 앞에 신형이 도착했다. 루크는 검을들어 공격을 하는가 싶더니 바로 자신의 뒤를 향해 공격했다. 잔상이 사라지기도 전에 검과 검이 부딛히는 검명이 들려왔다.
"처음부터 신의 속도인가. 과대평가 받아서 기분이 좋다고 말해둬야 하나."
루크는 검을 차분하게 휘두르면서 제온의 검격을 막아내었다. 제온은 모습을 드러내는가 싶더니 한번 다시 읊었다.
"라 오르피도."
루크는 검을 들어 그 공격을 막자 마자 방향을 비틀어 흘리고는 제온의 팔을 스치기에 이르렀다. 순간 제온의 공격이 기이할정도로 빨라져 루크의 이마를 스치고 지나갔다. 제온이 가볍게 휘두르는 검을 루크가 피하고 그 뒤의 바위에 검이 살짝 닿자 바위는 산산조각이 나 파편이 튀었다.
"두번째 신의 힘을 보는것은 이번이 두번째지만, 역시 보는것과 실제로 싸우는것은 다르군. 역시나 삼신(三神)의 힘을 다루는 자다."
제온은 빠른 움직임과 무식할정도의 힘 그리고 그것을 메우는 기술로 루크를 공격했다. 루크는 최소한 약한자가 강한자를 상대하는 극기를 사용해 팽팽한 싸움을 할수 있었다.
'저럴수가.'
그 공방을 보면서 가장 놀란것은 버벨이었다. 그 싸움은 마치 처음 제온과 자신의 싸움을 보는것 같았다. 속도도 힘도 강하게 밀어 붙히는 자신을 최소한의 힘으로 제압하는 제온과 루크의 모습이 겹쳤다. 아니 그것이 바로 최강에 속하는 자들의 싸움법이라는것을 그는 이해했다. 그리고 드는것은 제온의 말이었다.
'너는 나를 능가할 재능을 가지고 있는데도....'
'가능한건가? 나도..?'
불가능할거라 생각한것을 실제로 루크가 보여주고 있었다. 실로 두 사람의 대전은 인간의 궤를 벗어난듯 했다. 믿기지 힘든 움직임에 그 힘과 속도를 받아내는 기술 틈과 틈을 노리는 보기만 해도 토가 나올것 같이 숨막히면서도 한치의 오차도 없는 완벽한 움직임에 그는 넋을 잃었다.
"일섬. 루."
"!!"
일섬에 관해서 만큼은 제온도 방심할수 없었기 때문에 검으로 제대로 막아낼수 밖에 없었다.
"나는 싸우기 위해서 너를 만나러 온게 아니다. 제온."
루에 의해 튕겨나간 제온은 즐기는듯한 싸움에서 진지한 살기를 내뿜는 루크를 향해 검을 바로 잡았다.
"차륜."
톱니의 검기로 공간을 가르며 루크는 제온을 압박해 들어갔다. 제온은 그 검기를 향해 검을 휘두르자 검은 초승달의 검기가 차륜을 가로질렀다. 그와 동시에 검과 검이 맞붙고 제온의 모습이 사라지면서 검은 구체가 루크를 향해 날아 왔다. 검은 구체는 주변의 모든것을 흡습 하는 차륜과 같은 기운을 풍기고 있었지만, 그 위력은 터무니 없었다.
"대차륜!"
거대한 검기와 검은 구체가 맞닿아 상쇄하고 둘은 다시 검기를 두른 검술에 접어 들었다. 수백합이 넘어가고 루크는 물론이고 제온마저 살짝 움직임이 둔해지고 있었다.
'역시 저렇게 신력을 사용하면서도 내가 더 밀리는건가. 확실히 내가 말하긴 했지만 '최강'에 걸맞는 녀석이군.'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루크도 질릴수밖에 없었다. 고야마를 만난뒤 오랫동안 진심을 다하지 않았던 검술이나 기에 대한 수련을 죽을정도로 한 자신을 상대로도 제온은 우위에 있었다. 고야마를 잡기위함이 아닌 제온을 잡기 위한 수련 조차도 그는 웃돈 것이다. 새삼 그에 대해 존경심까지 일 정도였지만, 그는 이 자리에서는 존경하거나 그에게 패배를 시인할수 없었다.
서서히 상처가 늘어가면서 분명 그는 패배를 직감했다. 혹 이기기 위한 싸움을 해야 한다면 그는 이 방법을 써서는 안될 터였지만, 그는 망설임 없이 검을 쥐어 잡았다.
"그래 이번만큼은 질수 없지."
"검기가 많이 달라졌군.. 루크 나는 굳이 너를 죽이고 싶은 마음은 없다. 지금이라도 물러서라."
"나는 아니 너조차도 그런걸 바란적은 없다. 바라는것은 네가 벤하르트를 쫓지 않는것. 네가 거절한다면 내가 만들뿐이다. 각오해둬라 제온."
루크는 제온의 검에 맞춰 하나 둘 기를 모았다. 천도를 통한 비기. 자를수 없는것은 무엇하나 존재하지 않는 검. 알면 제온은 절대 당하지 않지만, 지금이라면 제온이라도 당한다는것을 알고 있었다.
제온은 루크의 준비를 두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잔영을 남기며 움직이는 하나하나가 일격필살의 검격에 루크는 지금까지 처럼 대응해 나갔다. 최소의 힘으로 최대를 제압한다. 만약 루크와 제온이 반대였다고 해도 둘은 같은 싸움을 가능하게 할 기술이 있었다.
"음?"
제온은 검과 검이 부딪히기 직전 루크의 검에 대한 이변을 알아 차렸다. 급히 검을 뺐지만 그 움직임 때문에 피하는것이 한발 늦어 버렸다.
'기술을 보이지 않을수 있는건가.'
천도에 의한 기술을 접고 루크는 그 틈을 타 제온의 발목 부근을 베며 어깨쪽으로 공격을 옮겼지만, 제온은 그 공격을 막아 내었다. 막자 마자 검에서는 그을음 소리가 들려왔다.
"일섬 참도(斬刀). 처음은 아니겠지. 신검(神劍) 제온."
"그때의 꼬맹이가 여기까지 올라온건가. 등한시 한건 아니지만, 훌륭하군."
반토막난 검을 보면서 제온은 처음으로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크윽."
토막의 끝에는 루크의 심장에서 살짝 벗어난 어깨가 닿아 있었다.
"설마하니 '성좌'가 만든 검이 부서질줄은 몰랐군. 아니 이건 나보다 성좌가 더 놀라워해야 할 부분인가."
설사 검을 부수는 쪽으로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터라 방심을 했다고 해도 대행자에게 주어지는 최강을 기리는 무기가 부서진것에 대해 제온은 자신의 상처보다도 진심으로 놀라고 있었다.
"....."
"네 승리다 루크. 확실히 한동안은 임무를 받지 못할것 같군."
발목의 피가 흥건히 바닥에 고여 있었다. 상한 검을 챙겨 든채 제온은 서서히 비틀거리면서 그 자리를 뒤로 했다.
"쳇. 검이나 뽑아 주고 갈 것이지.."
루크가 서 있는 자리도 피의 바다를 이루고 있었다. 그는 서서히 무릎을 꿇었다. 고통이 멎는가 싶더니 눈앞에는 거구가 서 있었다.
"최강자와 만나게 해준다는 말에 대한 빚은 갚았다."
버벨은 그렇게 말하고 루크를 뒤로해 달리며 생각했다.
'벤하르트 하르크...인가..'
===========================================
후우,, 한달동안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연참대전을 시작하겠습니다.....;;
Comment '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