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386화-역용(易用)(4)
제로는 합리적이게 행동한다. 그의 기본적인 행동 자체는 선하다 라고 생각하면 대체로 맞는것이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건드리지 않는것에 한한다. 즉 지극히 평범한 일상적인 상태였다면, 그는 평화주의자라고 할만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합리적이기에, 그는 분별을 냉철하게 했다.
그는 벤하르트와는 다르다. 집어내자면 나약하지 않다. 그 자신은 권선징악적 사고를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에 종속되지도 않는다. 필요하다면 선이라도 죽일수 있고 악이라도 살려둘수 있는게 제로라는 인간이다. 그렇기에 그의 검 하나하나는 벤하르트와는 다르게 망설임이 전혀 없었다.
불과 몇분전까지만 해도 만신창이라는 꼬리표를 달아야 하는쪽은 제로였지만, 지금은 제로보다 몇배는 더 벤하르트 쪽이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서 있는것만으로도 기적이라고 할만 했다. 본래라면 움직이지도 못해야 할 몸이었지만, 벤하르트는 계속해서 움직였다.
벤하르트 혼자 뿐이었다면 진즉에 무너졌을 정도였지만, 그가 움직이는것은 제로가 벤하르트를 노리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제로의 동선은 언제나 레니아에게로 고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를 벤하르트는 그몸이 되어서도 막아서고 있었던 것이다.
'한계는 분명히 넘었을텐데,'
이정도 까지 오면 그 의기가 대단하다고 칭할수 있을정도였지만, 그 의기가 대단하면 할수록 그의 마음은 짜증으로 일그러졌다. 벤하르트가 아직까지 목숨을 보전하고 있는것은 제로가 그의 말을 신경쓰고 있다 하나 뿐이었다.
제로에게는 얽힌 숙제가 많았다. 벤하르트에게서 그 말의 진의를 알아내는것과. 알아내기 위해서는 벤하르트보다도 레니아를 쳐야한다는것, 거기에 두가지 사항을 전부 보존하면서 친티아 공주를 죽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벤하르트의 고집을 보아하니 셋을 전부 만족시키면서 내용을 알아내는것은 결코 쉬워 보이지 않았다.
"으으.. 으흐.."
'이제 분명히 한계에 다다랐군.'
제로는 기절 시킬 요량으로 검손잡이로 그의 머리를 찍으려 했지만, 아무리 잔적인 공격에 상처를 입어도 벤하르트는 끝내기용 공격에는 당하지 않았다. 그것이 기절이던 죽음이던,
상황이 그러니 제로도 난감해졌다. 이기는건 간단하다. 죽일 각오로 기술을 넣으면 그것으로 간단하게 찬티아 공주까지 죽일수 있었다. 하지만 죽여서는 자신이 알고자 하는 사실을 알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죽이지 않으려 하니, 그런 공격들로는 끝을 낼수가 없었다.
"레니아. 벤하르트가 위험한게 아닌거냐?"
"위험해. 지금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정도로.."
"그런데 왜 가만히 있는거지?"
"너는 잘 알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저녀석은 여기 있는 누구보다도 강해. 저 모습이 되어서 조차도 네 그 아꼈던 부하 벨드조차도 상대가 안될정도로 강한거야. 내가 나서서 상황을 바꿀수 있다면 몇번이라도 바꿨겠지만, 저녀석이 마음만 먹으면 너 뿐만 아니라 나나 벤하르트마저 죽이는건 일도 아니라는 거지. 그저 저녀석의 변덕에 의해 살고 있을 뿐이야."
"그렇다고, 너는 벤하르트를.."
레니아는 찬티아를 보고 희미하게 웃었다.
"네가 그런말을 할 처지인지는 정말 의문이지만, 그 의견 자체에는 동의하지."
레니아는 벤하르트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아직까지 싸우고 있다는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참고 있었다. 참고 참았다. 공격이 안 통한다고 해도 사용하지 않는것은 그녀의 성격에는 완벽한 위반이라 할수 있을 터였지만, 족쇄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없었기 때문에 참았다. 하지만 그녀의 참을성에는 한계가 있었다.
'나는 원래 인내심이 많은 성격이 아니라서..'
"말은 잘 꺼내 줬어. 너무 심한 병을 줘서 이정도 약으로는 낫지도 않지만, 없는것보다야 나았다고 칭해둘까."
레니아의 말이 무슨 뜻인지 찬티아는 알아 듣지 못했다.
"인내는 너무 써서 참기 힘들어."
수많은 광탄이 제로 앞에 쇄도했다. 별 힘도 들이지 않고 제로는 자신의 앞에 날아오는 광탄을 되돌려 보냈다.
"제정신이냐. 이녀석이 아직까지 싸운것은 너 때문일텐데,"
"알고 있어. 알고 있으니까 나선거야. 너한테 잡히던 내가 이기던 이 싸움 자체를 막기 위해서 말이지. 보아하니 죽일마음은 없는것 같은데 아무쪼록 살살 해달라고,"
레니아의 자존심에는 상반된 말이었지만, 그녀는 그렇게라도 말할수 밖에 없었다. 이유인즉슨 저정도로 다쳐 있음에도 그런말을 꺼내서 설사 정말 봐준다고 해도 그녀가 제로를 상대로는 이길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일격을 노리고 있었다.
'기회는 한번..'
"마법은 나에게 통하지 않는다."
"그래 날리는 마법이라면 말이지."
레니아는 공간째로 왜곡 시켜 비틀어버리는 마법을 부렸지만, 그 주문을 외기 시작할때부터 제로는 피하고 있었기에 그녀는 적중시키지 못했다. 레니아의 공격은 제로의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이 공격 각도가 왜이렇게 벗어나있지?'
제로는 의아함과 동시에 역용을 사용할 준비를 했다. 하지만 그에게 날아온건 마법이 아니었다.
"읏!"
레니아는 영검을 들고 달려 그대로 제로에게 찌르기 위한 일격을 가한 것이다. 평소의 제로라면 충분히 피할수 있었고 예측하고도 반격까지 가할수 있었지만, 현 시점에서 가장 강한것과 그의 몸상태가 만전인것과는 말 자체가 다른 것이었다.
'막기라도 해야..'
제로는 검을 들고 간신히 막을수 있는 궤적에 올랐다. 하지만 레니아의 영검은 검과 함께 부숴 그의 가슴으로 날아 들었다. 순식간에 몸을 비틀어 제로는 죽지는 않을수 있었지만, 이제는 결코 웃을수만도 없는 상황이 되어 있었다.
"크허..."
'그것마저도 막아내다니.'
레니아는 독자적으로 검에 마력을 실어 더 강한 일격을 가할수 있는 기술을 사용한 것이었다. 지금까지 검을 사용하는것은 단 한번도 보여준적이 없었기 때문에 한번쯤은 걸릴까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이정도.. 제로가 제대로된 몸상태였다면 어림도 없었을것이 틀림 없었다.
"퇴로를 차단하고 피할수 없는 방법을 만들어 막을수 없는 공격을 가한다. 대단하군."
제로에게 같은것이 두번이나 통할리 없었다. 한쪽 팔을 거의 쓰지 못한다고 해도 한팔이면 제로에게는 충분했다.
"레니아..."
제로는 한합에 레니아에게서 검을 빼앗고 그 영검으로 레니아에게 서서히 다가갔다. 그때 레니아는 작게 중얼거렸다.
"!?"
그 틈에 벤하르트는 바로 검을 놓았고 검은 순간적으로 폭발해 버렸다.
"후우.."
"어떻게 그걸 알았지?"
"방심하지 않았을 뿐이야. 이런 몸이 되어서는 이제는 봐줄수 없다. 최소한 팔 하나라도 가져갈 각오로 공격을 해야 겠군."
레니아는 방어자세를 취했다. 분명 근접 격투도 그녀는 수준급이었고, 지금에 한한다면 제로보다 움직임은 더 빠르다 할수 있었지만, 제로의 느린 움직임을 보고 반응하면서도 그녀는 바로 제로에게 잡혀 버렸다. 최단 최적의 공격과 방어에 이런 상황만 아니었다면, 정말 순수하게 놀랐을 터였다.
"그럼.. 후우.."
제로는 한숨을 쉬면서 뒤로 살짝 이동했다. 백색의 빛이 그가 서 있던 곳을 겨냥했다.
"가만히 놔두질 않는구나. 너희들은.."
"하아 하아.. 레니아를 놔둬.."
"이정도 까지 와서 더 봐줄수도 없는 노릇이니, 불구가 되는것 정도는 각오해둬라."
그는 어디선가 검 하나를 불러온 그는 만월참을 날렸다. 벤하르트는 그의 공격을 몇번이고 받아 봤기에 첫 공격은 피해낼수 있었지만, 레니아가 사용했듯이 공격방향을 유도한 제로는 두번째에는 벤하르트의 팔을 제대로 노리고 들어왔다.
"잠깐!!"
팔이 짤리기 직전 제로는 검을 멈추었다. 소리가 난 쪽에는 찬티아 공주가 서 있었다.
"찬티아..?"
"공주 무슨 할말이라도 있나..?"
"죽어주겠어."
"뭐!"
벤하르트는 비틀 거리면서 시선을 찬티아 공주 쪽으로 향했다.
"오호. 정말인가?"
"그래."
"찬티아. 어째서..."
"단 조건이 있다. 네가 말하는 나를 죽이기 위한 명분은 내가 제카리트의 연금서라는 위험한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겠지? 그렇기에 혹여라도 내 자의던 상대방의 타의던 그 위험한 기술이 세상 밖에 나오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명분이었을 거야."
"그렇지."
제로는 순순히 시인했다.
"그렇다면, 그 연금서에 대한 지식을 없애는 것으로 나 자신은 용서해주었으면 한다. 덧붙혀서 저기 있는 두사람도 건드리지 않는거야."
"뭐라는거야 찬티아.."
"말했었지 벤하르트. 나는 후회는 남기지 않아. 이렇게 죽을수 있다면 오히려 좋다고 할수 있지. 죽어서 지옥에 떨어지더라도 역시 그건 자업자득이야. 이런 말을 하면 섭섭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솔직히 너를 이해할수가 없어. 그러니까 나 자신도 어떤 의미로는 죽음을 바라고 있다는 것이지. 후회가 남는게 있다면, 내 반쪽 뿐이라고,, 그러니까 나는 여기서 죽을게. 단 내 반쪽은 살려줘."
"이중인격인가.. 하지만 네 반쪽의 기억이 남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을텐데,"
"보장이라면 내가 이중인격이라는것 자체에 있겠지. 아니라면 굳이 벨드가 나를 이중인격으로 만들었을리가 없으니까, 그래 나 역시도 만들어진 인격이니까,"
사람을 사용한다. 설사 사형수라고 해도 그 자체의 행위를 묵묵히 당연하다고 여길수 있는 인간은 많지 않다. 하지만 당연하게 생각할수 있는 인간도 있다. 벨드 아니 페스돈은 찬티아를 인격 개조 했다. 몇번이고 몇번이고, 그가 바라던 인격이 나올때까지,, 지금 있는 찬티아는 그 몇번에 걸친 연구의 결과로 나온 한명임을 찬티아는 벨드의 배반으로 어렴풋하게 생각할수 있었다.
"....."
제도로 씁쓸한듯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찬.."
벤하르트가 무어라 하려고 하자 레니아는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려 강제로 꿇어 앉혔다.
"벤하르트. 너는 나를 구해줬었지. 내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구해주었다면, 네가 원하지 않던 원하던 간에 내가 나 자신의 목숨을 결정할 권리는 있는거야. 그리고 나때문에 너희들까지 죽을수는 없잖아? 나는 악녀이자 마녀니까 말이지. 그러니까 동화책에 나오는 공주님은 살아야하지 않겠냐는 말이지. 그러니까 그쪽의 검사님. 그런 조건으로 어때?"
찬티아는 허탈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하지만 나는 네 정신을 죽일수가 없다. 그점은 어떻게 할 생각이지?"
"마법사 한명이 있으니까, 내가 자진하는것을 조금만 도와 주면 돼. 본래가 나는 내 스스로가 인격을 넘겨 주고 빼앗을수 있었으니까,"
찬티아는 레니아를 보며 말했다. 사실 정신에 간섭을 할수 있는 마법사는 몇 되지 않았지만, 찬티아는 마법쪽으로는 문외한이나 다름 없기에 마법사라면 전부 정신에 간섭할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마법사를 통해 정신을 간섭한다는것을 아는것은 사실 페스돈이 정신간섭을 할때 마법사와 함께 했기 때문이지만, 그런 사실까지는 알지 못했고, 막연하게 그렇게 알고 있었던 것이다.
"찬티아 그만둬.."
"이건 어디까지나 내 자유야. 벤하르트. 네가 멋대로 나를 구했다면 나에게도 멋대로 너희들과 내 반쪽 아니 진짜 나를 구하고 싶은 욕구정도는 있어. 저기 검사의 말은 지극히 옳아. 내가 죽어야 한다는것에는 나 자신도 동조하고 있으니까, 너는 가책을 느낄필요도 없고 아픔을 느낄 필요도 없어. 이건 내가 원해서 하는 행동이니까,,"
"....."
"내 반쪽은 너를 아직까지도 복면남으로 알고 있으니까, 너 자신을 소개해줬으면 좋겠어. 부탁할게. 벤.."
제로는 그녀에게로 걸어가 찬티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찬티아는 장난스레 퉁기며 말했다.
"뭐야 당신 무례 한것 아냐? 나는 일국의 공주라고."
"일국의 신이라고 해도 나에게는 차이가 없다. 저녀석의 말대로 분명 너라면 네 스스로는 그 마도서를 사용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네 의지는 그 목숨마저도 숭고히 사용해 버릴 정도로 어떤 의미로는 분명 올곧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너를 죽일수 밖에 없다는게.. 한탄스럽군."
"뭐... 그럼 잡담은 이쯤 해둘까. 레니아 부탁좀 할게."
"후우.."
"레니아.."
레니아는 벤하르트를 꾹 눌러 디딤돌로 사용해 일어나며 그에게 살짝 말했다.
"웃으면서 보내줘."
"....."
"정말 다행이야. 내 야망을 저지 시켜준게 너희들이라서.. 고..마..워."
레니아의 손이 닿고 마치 실이 끊어진 인형같이 찬티아는 쓰러져 내렸다.
- 작가의말
첫주가 밝았습니다. 모두 즐거운 주가 되시길...
찬티아편 종료 직전. 영석은 묻히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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