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311화-라프티(4)
어느정도 정리를 하고 나자 처음 들어왔을때와는 달리 벤하르트의 집도 볼만할 정도가 되었다.
벤하르트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것은 굉장히 드문 일이었지만, 좀체 잠을 이룰수 없었던 대장장이는 이른 아침서늘한 공기에 잠에서 깨어났다. 수십년간 살아온 기억 때문일까 그는 일어나 몸을 움직였다.
[왠일이야? 이렇게 이른 시간에 다 일어나고?]
'왠일 같은건 없어. 일찍 일어나고 싶을때는 일찍 일어나기도 하는거지. 인간은 예외덩어리로 이루어져 있거든.'
[하지만 이정도로 이른 아침이라니, 너에게 씌여 있는 내 입장도 생각해주지 그래?]
'애초에 흡혈귀란 녀석이 밤에 잔다는것 자체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거든.'
[예외덩어리인건 인간만은 아니잖아? 하암.]
"그럼 공방에 있는 만큼 해택을 받아가도록 해야지. 천년만년 라프티에 있을것도 아니니까,"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자신의 네자루의 검을 꺼내들었다. 자신의 인도(人刀)와 그 외에 세개의 영검을 놓아두고 그는 레니아를 잠시 보다가 레니아의 물품을 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레니아의 물품을 모아놓은 곳을 아무리 찾아 보아도 그녀의 영검은 보이지 않았다.
'허리에 있나?'
[뭘 하시려고?]
'네가 생각하는 그런 짓을 할것 같냐. 그리고 사사껀껀 나서지는 말아줘.'
벤하르트의 말과 같이 리스는 진심으로 후회하고 있었다. 차라리 가만히 두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관찰할걸 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벤하르트의 손이 재빠르게 레니아의 허리춤으로 향했다.
'응? 이래서야 나에게 뭐라 할 자격이 안되잖아.'
"어때?"
[어떠긴 뭘 어때. 그냥 변태같다고 밖에는 느껴지지 않는 행위구만,]
'무슨 헛소리를! 레니아가 눈치 채지 못할정도로 빠르게 움직인 것에 초점을 두어야지.'
[하지만 말야. 네 손에는 아무것도 없잖아. 뭘 어때? 라는거야. 초점을 두고서도 감상을 할 내용이 전혀 들어있지 않잖아. 거기에.]
'거기에?'
"뭘 하고 있는거야?"
"으아아아앗."
리스와의 대화도 그렇고 사실 조금은 흥분 상태에 있었던 벤하르트는 레니아의 말에 혼비백산하며 놀랐다. 하마터면 무예를 익힌 사람 답지 않게 엉덩방아를 찍을 수모를 겪을뻔한 그는 오싹해 맺힌 식은땀을 닦아내면서 말했다.
"레니아 네 영검은 어디에 두고 다녀?"
"그게 지금 이 상황과 무슨 관련이라도 있는건가?"
레니아의 허리를 싸매놓은 옷은 확연히 들여다 보일정도로 겉어 올려져 있었다.
"당연하지. 잘 들어둬. 나는 오랜만에 일찍 일어나 잠시 생각했어. 내가 지금 무엇을 할수 있을까 하고, 그렇게 생각을 하다 보니 곧 무엇을 해야 할지 깨닫게 되었던 거야. 이곳은 나의 공방. 그리고 여행을 하면서 무뎌져 있을 나의 검들이 눈앞에 보였지. 그래서 조금 다듬을 생각으로 공방으로 내려 가려 하는데 네 검이 생각난거야."
"그래서?"
눈을 감고 목소리만 들어도 머리칼이 설정도로 차가움이 뚝뚝 느껴지는 목소리로 레니아가 말했다.
"네... 검도 갈아 줄까 하고 말이지. 찾아 보니 없더라고,"
"그걸 변명이라고 하는건 아니겠지?"
"변명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만. 너는 원래 그렇게 까지 몸에 대한 방어를 하지는 않았었잖아! 피곤할것 같은 너를 깨우지 않고 검을 갈려고 했던 나 나름대로의 배려였어."
"그게.. 변명인것이냐고,"
더 이상 따지거나 변명을 할수 없이 벤하르트는 납작 업드리면서 말했다.
"죄송합니다."
"나에게 이정도는 기상 시간이라고, 나를 위한다니 당치도 않아. 거기에 이미 인간 세상의 물을 실컷 먹은 내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건 당연한것 아냐?"
"옳은 말씀. 입니다. 아주."
"거기에 잘도 이런곳에 말이지."
레니아는 살짝 허릿춤을 둘러보고 다시 정돈한뒤 벤하르트를 툭 하고 걷어찼다. 하지만 전혀 힘은 실리지 않아 그것이 장난이라는것을 벤하르트도 쉽사리 알아차릴수 있었다.
"으윽."
"벤. 네가 준검은 호신용 검이잖아. 당연히 잘때도 가지고 있었지. 물론 네가 찾을수는 없을만한 곳에."
"어 어디?"
이번에는 조금 세게 그는 턱쪽에 발길질을 맞았다.
"자 이걸로 됬지? 그런데 검을 정리하는것은 여행 도중에는 할수 없는거야?"
"그런건 아니지만, 왠만하면 이가 빠지는 일은 없고, 지금 하는것도 겸사겸사인데다가 가능하면 이런 시설에서 하는게 좋지. 물론 여긴 내 공방이니까, 여타 공방에서 하는것과는 기분상의 문제도 다르고,,"
검 처럼 생긴 무언가를 가지고 와서 벤하르트는 검을 서로 맞대어 비비기 시작했다.
"뭐하는거야?"
"날을 가는거야. 내 검은 다른것으로는 날을 갈수가 없거든. 그래서 특수적으로 만들어낸 이런 일회용 검으로 대체하곤 하지. 단단함만을 내세운 검인데, 일회용이라고 해도 그냥 한번 쓰고 버리지는 않아."
"지금 와서 말하는거지만, 너는 무엇하나 '버리는'게 없구나."
"새삼스럽구만, 적어도 이건 검이잖아. 나나 루크형님이 검을 만드는것은 조금 달라도 자신의 분신을 만들어내는것이나 다름 없는 행위야. 뭐 팔기도 하고 엉터리 주인에게 간것도 없다고는 말하지 않겠지만, 하나하나가 소중한 검인것은 사실이지."
"그게 얼마만큼이나 모순된 말인지는 알고 있지?"
"당연하지. 고야마에게 간 내 검은 일부러 망친 망작. 내 과거에 만들어 주고 싶지 않았던 작자들에게 만들어준 검은 버린 자식들. 이렇게 생각해도 어쩔수 없지. 나쁜건 검이 아니라 나니까, 너도 알다시피 나는 굉장히 이기적이거든."
반짝반짝하게 빛이 날정도로 광택을 내는 검을 레니아에게 건네주면서 그가 말했다.
"그러니까 나는 평등하지 않은거야."
오후가 되자 벤하르트는 레니아에게 라프티를 소개해 주었다. 소개 라고 해봐야 벤하르트는 라프티의 지리를 빼고는 별다르게 알고 있는것이 없어 새로히 여행하는것 같은 양상이 되어 버렸지만 그것은 그에게 그 나름대로 좋은 일이었다.
"그러니까 이곳이.."
벤하르트는 들고 있는 안내 책자를 보면서 석상을 설명하려 했다.
"됐어. 내가 볼게."
레니아는 그를 무시한채 석상의 밑 글을 읽었다.
"그런데 벤. 우리는 이제 무언가의 교환할 물건도 찾아야 하잖아."
"그렇지."
"라프티는 대도시잖아. 이런곳에서도 내가 말한 조건을 갖춘 무언가의 소문이 있지 않겠어? 아니 그거야 말로 수십년간 산 네가 가장 잘 알고 있으면 좋을텐데, 현실이란 자신의 고향이 어떤지도 모르는 상태라니.."
"전설.. 이라. 그러고보니, 하나 있었던것 같아."
"뭐?"
"그것도 네가 말하는 보물에 관련한 전설이.."
반쯤은 농담삼에 꺼낸 말에 반응하는 벤하르트를 보면서 그녀는 입을 벌리고 살짝 놀랐다.
"정말이야?"
"그래. 옛날 이곳에는 대 해적이 살고 있었어. 각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수집한 많은 양의 보물을 자신의 고향인 라프티에 숨겨 놓았다는 이야기. 뭐 전설이지만, 그 보물은 거대한 나라를 만들수 있을정도의 가치가 있다고 하는데, 이곳 라프티 사람들은 모르는 사람이 없는 전설이지. 그러니 나도 알고 있는 것이고,"
"그럼 그 보물은 어디에 있는데?"
"레니아. 너 말야. 전설이라고 했잖아. 책처럼 보물의 위치를 알수 있는 정보가 있다면 이미 보물은 전부 털렸을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우리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건 한둘이 아니란 말이지."
"그것도 그렇네. 그래도 대해적이라고 하고 전설이 남을 정도면 이름정도는 남지 않았을까?"
벤하르트는 위를 보며 잠시 머리를 굴려 생각하고는 전설을 기억해냈다.
"그러니까, 이름은 스이그마 였을거.. 우욱."
그는 갑자기 느껴진 가슴의 통증에 상체를 앞으로 젖혔다.
"벤 왜그래?"
"아니 왜 이러지? 잘못 먹었나? 속이 뒤틀리는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지금은 조금 괜찮아 진것 같아."
"실없기는 사실은 놀리려고 그런거지?"
"..... 내가 그런짓을 할것 같아?"
벤하르트는 갑자기 레니아를 한손으로 밀쳤다. 하지만 밀려 나가면서도 레니아는 전혀 놀란 표정이 아니었다.
"질리지도 않는건가."
"내 머리카락의 원수!"
벤하르트가 밀치지 않았다고 해도 레니아는 그가 오고 있다는것을 알고 있었지만, 사실 그도 상당한 실력자 였고 모종의 이유때문에 살짝 위험한것은 사실이었다. 레니아는 남자가 자신을 노리고 '공격'해 온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조금 여유롭게 피하려 했던 것이었지만, 사실 레니아에게 머리를 잘렸던 남자는 레니아의 머리카락을 노리고 들어온것이었기 때문에 거리상으로 충분히 레니아가 당할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바로 알아차린 벤하르트는 레니아를 밀쳐 공격을 피하게 한것이었다."
"어이 네 상대는 나잖아."
"시끄러워! 너따위는 이제 아무래도 관계 없어. 내 목표는 소박해도 좋다. 저 여자의 머리를 빡빡 잘라주는거야."
"당할리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보다도.."
'당할리 없다니 방금 당할뻔 했다고 레니아.'
그것을 아는것도 벤하르트정도여서 그는 너무도 당당한 레니아의 태도에 혼자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응?"
"너 꽤 머리가 자라 있는데?"
레니아는 무심결에 마력으로 가위를 만들어냈다.
"크 크윽! 젠장."
"....."
"그러니까 스이그마라는 녀석이 '어디에' 보물을 넣었는지는 모르는거야?"
"그것을 알고 있다면 누구나 다 보물을 차지하려고 했겠지?"
정신없이 이야기를 하다가 보니 어느샌가 그들은 공원을 지나고 있었다. 그때 벤하르트의 옆에 접근한 옵니트가 반가운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 벤하르트의 손자분. 어디 갔다 오시는 길인가 보군요."
평소와 다름없는 온화한 눈으로 옵니트는 벤하르트에게 말을 걸었다.
"아 네. 조금 도시를 둘러 보았었는데, 할.머니라고 불러도 됩니까?"
"그러세요."
방긋 웃으면서 그녀는 순순히 말을 허용했다. 레니아가 손가락으로 찌르는것을 손가락으로 잡아 채는 고난이도의 공방을 뒤에서 쉴새없이 하면서도 그것을 들키지 않게 벤하르트는 여유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할머니는 여기서 뭘 하고 계시는거죠?"
"산책이지요. 나이가 드니 산책을 하지 않으면 금새 골병이 나버리니 원. 그나저나 방금전 두사람이 하고 있던 이야기는?"
"아 그것 말이지요. 그 이곳에 있는 전설의 이야기인데,"
"벤!"
레니아는 벤하르트의 실수를 지적해 잡아내었다. 손자인 벤하르트는 이곳의 전설의 이야기를 알고 있어서는 안되는 것이었던 것이다.
"아. 할아버지에게서 들었던 것이었는데, 이곳에 해적 스이그마의 전설의 이야기가 있다고 해서요. 사실 그게 관심이 있어서 핑계를 대고 왔었던 것이었거든요. 한번 조사를 해볼까 하는 마음도 있고 해서.. 하하."
"그렇군요. 스이그마에 대한 전설은 굉장히 오래되었지만, 그 보물을 누군가가 발견했다는 이야기는 한번도 들은적이 없었는데,"
"네 역시 전설이다보니 위치에 대한정보도 없더라구요."
"위치? 그거라면 전설의 이야기중에서도 기록되어 있을텐데,"
"네!?"
옵니트는 당연하다는 얼굴을 보였다.
"이 도시 토박이라면 대부분은 알고 있는 전설이지요. '대해적 스이그마 스이그마. 그가 숨겨 놓은 보물은 어디? 푸른빛이 감도는 저 너머의 우시울 동굴속에 파묻힌.. 이라는."
음율을 넣어 옵니트는 노래를 부르다가 곧 주책이라고 생각해 그만두었다.
"그런것도 있었습니까."
"물론이지요. 어렸을때는 줄곧 불러오곤 했어요. 저도 그리고 틴프린이나 가온트군도.. 뭐 우시울 동굴은 명칭은 아니지만, 뜻하는곳이 어딘지는 알고 있지요. 서쪽의 바다를 넘으면 수곡의 섬이 있는데 그곳에 있는 동굴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이전에 한번 들은 기억이 있군요. 그곳에는 온갖 귀신과 마물들이 넘쳐나는 악의 소굴이라고도 들었지만, 실상 그런것이 있는지 없는지 지금에 와서는 알 길이 없지요. '욕심으로 인해 파먹힌다.' 라는 말이 있다고 하니 위험한것은 분명한 모양이지만,"
"수곡의 섬."
"그래 도움은 되었을까요. 벤하르트."
"아 네....... 어?"
그 뒤에 와야할 손자분이란 말은 들리지 않았다. 어어어 하면서 벙찐 얼굴을 해보였다.
"바보녀석."
그것을 쯧쯧거리면서 레니아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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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참대전이 내일이면 끝이 나네요. 이번 연참대전이 끝나면 뭘... 해야 하나..?
소 소설 같은걸 써야 하겠죠?
라스트 D-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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