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340화-인정(1)
"그나저나 벤. 그때의 마지막 말은 무슨 뜻이었어?"
극도문을 나와 내려가던중 레니아가 물었다.
"뭐?"
"그 라질에게 한 말 말야. 노력해달라는."
꽤나 의미심장한 말이었기 때문에 레니아는 그 말을 잊지 않고 기억해 두었던 것이다. 벤하르트는 라질에게 한 일을 레니아에게 전해 주었다. 레니아는 놀란 얼굴을 하고 그에게 물었다.
"한없이 무른것 같은데도 가끔씩 이런 일을 벌여준다니까, 그 의외성에 라질녀석이 당한 것이겠지만,"
"뭐.. 가끔은 말이지. 어느쪽이 내 모습인가 하면 양쪽 다라고 말해두고 싶은데,"
"하여간 잘도 라질을 속여 먹었잖아. 마치 순한 너라면 꼭 해줄것이다 라는 포장을 보여주면서, 달콤한 향으로 유인이라도 한것마냥, 탁월한 낚시꾼이야 너도.."
"누누히 말하지만,"
벤하르트의 말을 가로막으며 레니아가 말했다.
"거짓말은 네 특기라 이거지?"
"후우."
감당할수 없는 두뇌회전에 그는 두손을 드는 시늉을 하면서 말했다.
"그래도 말야. 그쪽이 내가 해줄수 있는 극도문에 대한 최대의 선물이자, 최대의 심술이라고 생각했던거야."
"심술이라, 뭐라 뭐라 하면서 별 말을 다 꺼낸다해도 인간은 인간이라는 것이지."
"나는 말야."
또다시 레니아는 머리를 벤하르트의 입 언저리에서 까딱거리면서 말했다.
"이기적이니까,,"
"말버릇 고쳐야겠군."
"그런건 쉽게 되는게 아니야. 뭐 이건 이거대로 재밌고,"
"이쪽은 재미 없다고, 왜 이런쪽으로만 머리를 굴리는거야."
"어.. 재밌으니까?"
언제나 한수를 접어주는것은 벤하르트의 일이었다.
"최대의 심술은 그렇다 치고 선물은 무슨 말이야?"
레니아는 머리는 잘 돌렸지만, 자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건에 대해서는 설사 어느정도의 예측을 할수 있다고 해도 확실히 알아두기위해 벤하르트에게 물었다.
"극도문의 부흥을 하려면 검 하나만 가지고는 불가능하니까, 노력에 의해 성사 될수 있을만큼의 예컨데 가르침을 준거지. 그런 깨달음은 스스로가 받지 않으면 알수 없는 것이거든."
"하핫 가르침이라니, 그거야 말로 벤 답지 않은 말이네. 아니 상황이네."
"그건 실례라고. 내 기술은 그렇게 녹록한것은 아니라고 생각해. 도공술 만큼은 누군가를 가르치거나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는 된다고,"
"그 점은 인정할게. 내가 신일 시절에도 네 기술은 '신'처럼 대단했으니까,, 하지만 그 가르침이라는 말. 뭔가 어울리지는 않아서.. 누군가를 가르쳤던 적은 있지만, '가르침' 이라는 말을 들으니까, 왠지.. 웃긴데?"
킥킥거리면서 별로 웃기지도 않은 일로 즐거워 하는 레니아의 모습을 보면서 벤하르트는 중얼 거렸다.
"실컷 비웃어라."
벤하르트는 살짝 뒤를 돌아 보아 극도문을 보았다. 심술이었다는 것은 반쯤은 둘러대기에 가까웠다. 선물이자 선물이 아닌것. 극도문이 노력 여하에 따라 그 신물은 평범한 잘드는검이 될수도 극도문의 진정한 비보가 될수도 있었다.
극도문과의 만남에서 그다지 좋은것은 없었고, 굳이 따진다면 좋지 않은 일들 뿐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지만, 기이하게도 그 공방속에서 벤하르트가 최종적으로 극도문에 대해 가진것은 '호감'이라는 두글자의 단어였다.
벤하르트와 레니아는 가르마에서 여행에 필요한 물품을 사고 하루 정도를 머무르며 쉬고 난 후 출발하기로 했다. 식사를 끝마치고 옷가짐을 편하게 차려 입은 후 레니아는 벤하르트에게 앞으로의 여행에 대해 물었다.
"그런데 벤. 이제.. 어디로 갈 생각이야?"
그에 벤하르트는 잠시 생각하고는 지도를 가리켰다.
"사실 이 다음은 북쪽으로 가려고 했지만, 라질의 말을 듣고 생각을 달리 했지. 라질이 가져 온것은 분명한 영석이었어. 레니아 네가 머물던 곳에 있었던 정도의 영석이었지. 그것을 가지고 있다는 곳이라면 진짜 영석도 가지고 있을지 모르잖아?"
"그렇다면,, 다음 목표는 라군델인가?"
"그래. 라군델이라고 하면 잠시나마 겪어본적이 있었지?"
"음 잠시라고 하기는 뭐하지만, 트레이야와 여행했을때, 대르나드 에코트의 유슬딘과 빈트닌이었지?"
"확실하게도 기억하는군. 하지만 그곳은 전쟁 지역과 맞닿은 곳이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치안이 좋다고 할수는 없었지. 에코트는 조금 달랐지만, 그곳 조차도 본래의 라군델의 목적을 생각하면 라군델 다운 곳은 아니라 할수 있지."
레니아는 벤하르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흐음 하는 어조를 내며 말했다.
"그럼 벤은 라군델을 가본적이 있어? 네 과거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라군델을 제대로 갈수 있을만한 때는 없었을것 같은데,"
"사진이나 그림으로는 몇번인가 본적이 있어. 뭐 일면만으로 판단하기는 힘들다는 이야기야."
"흐음 그래? 하지만 내가 보기에 라군델로 가는 이유는 영석 하나만은 아닐것 같은데, 애초에 네가 영석을 그 주인에게서 훔칠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것 자체가 미심쩍고,,"
"굳이 훔치지 않아도.."
"백이면 백 훔치지 않으면 답이 나오지 않겠지. 그 작은 영석의 조각마저 찾으려 했던 녀석이 자신이 지키는 물건을 주세요 라고 말해서 줄것 같아? 애초에 벤 너도 알고 있을걸.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사실대로 말하시지. 라군델에는 하나 더 네가 들러야 할 곳이 있잖아."
왠지 레니아의 말에는 질타가 섞여 있는듯 했다.
"....."
잠시 벤하르트는 침묵 하다 입을 열었다.
"주와 부를 헷갈리지는 않아. 닐스 형을 만나는 것은 굳이 하지 않아도 상관 없어.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것은 영석을 얻는 일이니까,, 뭐 된다고 한다면 겸사겸사 닐스 형을 만날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레니아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고개를 든 그녀의 얼굴은 왠일인지 화가 나 있는듯 했다. 너무 갑작스러워 벤하르트는 벙찐 이해불능의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 자신을 속이려 드는거야?"
완연히 짜증섞인 목소리로 레니아가 말했다.
"뭘 속이려 들어?"
"아니. 너는 속이고 있어. 닐스가 있는곳을 그렇게 까지 알고 싶어 했으면서 지금 내 앞에서 말로는 그게 부가 된다고 거짓말 하고 있잖아."
"영석을 얻는일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을뿐이야."
덤덤하게 그가 답했다.
"하! 말도 안되는 소리. 영석을 얻는것도 닐스를 만나는것도 모두가 주야. 엔쿠라스는 내가 바라는 것일지 몰라도 지금 하고 있는 여행은 '엔쿠라스'를 위해서 하고 있는게 아니잖아."
"레니아 무슨 말을 하는거야. 우리가 여행을 하고 있는것은 엔쿠라스를 위해서잖아."
레니아는 냉소하며 말했다.
"그래 목적은 그렇겠지. 하지만 네가 지금 말한것처럼 이건 '내' 여행이 아니야. '우리'의 여행이지. '엔쿠라스'를 찾는것도 네 잃어버린 과거를 찾는것도 똑같이 소중한것인데, 너는 지금 나를 배려한답시고 한발자국 뒤로 물러나서 생각하려 하고 있잖아. 그건 이미 나에게 있어 배려가 아니야. 확실히 말해줄게. 불쾌해. 어째서 네 자신을 위하지 않고 나를 위하려 하는거지? 자신을 팔아 서로를 구하는 행위는 그때 분명히 싫다고 서로가 인정한 부분이 아니었던거야?"
"이건 그런의미가.."
"이것도 똑같아!"
벤하르트가 생각하는 그 심층의 생각. '레니아를 위해서.' 자신의 행복보다도 그녀를 위해서라는 것은 너무나도 희생적인 것이며 일방적인 것이었다. 레니아는 그런 것을 원하지 않았고, 벤하르트의 말에서 그가 필요 이상으로 자신을 죽이면서까지 레니아 본인을 위한다는것을 단번에 알아차렸고 그것은 곧 짜증과 화로 바뀌었던 것이다. 언제나 벤하르트는 그러했다. 말로는 레니아와 그 자신을 동일시 하는것 같았지만 언제나가 한발 뒤에서, 동등함을 요하는게 아닌 자신 스스로의 희생을 요구 하고 있었다.
"만나러 가고 싶다면 가고 싶다고 확실하게 말해. 은근스레 같은건 나는 모르고 안다해도 기분 나쁘니까, 알아 줄수는 있어도 행해주기는 싫어. 요구할게 있으면 똑바로 말해달란 말야."
"....."
할말을 해 조금은 후련해 진 레니아는 조용한 어조로 말했다.
"사실 나는 엔쿠라스는 어찌 되도 좋은지 몰라."
벤하르트는 그녀의 말에 의문의 표정을 지었다.
'어찌되든 좋다니..?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곳이 아니었나?'
"엔쿠라스를 바랬던 것은 신으로써 너무도 무료한 시간을 해결하지 못했기에 생긴 소망이었으니까, 신의 성지가 어떤 곳인지, 인간이 꿈을 꾸듯 신도 꿈꿨던 거야.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런 무료함 따위는 없으니까.. 이제 와서는 아무래도 좋을지 몰라. 평생을 걸려서 못본다고 해도 상관 없어. 서두를 필요도 없어. 그런 이야기야."
말하면서도 그녀는 살짝 깊은 한숨을 내었다.
"그래도 가보고 싶은거지?"
"너야말로 닐스를 보고 싶은것이잖아?"
"그래."
둘은 동시에 답했다. 레니아를 위해 라는 그 생각이야 말로 원점으로 돌아가 보면 가장 서로가 싫어하는 행동이었다. 서로를 위해 위하면서도 자신을 위해. 서로가 서로를 위해, 그것이 그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모습이었을 것이다.
정리된 마음은 훈훈하게 달아 오르는 듯 했다.
'찝찝한곳은 망설이지 않고 쑤시는군 레니아녀석.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레니아가 아니지.'
처음 자신이 망설였을때도 그녀는 언제나 이랬었다. 언제부터였던가. 이런 의견을 그녀가 잘 내지 않게 된 것이..
'그래 신의 힘을 잃어버렸을때부터.'
그리고 지금은 생각해보면 조금 강해졌다. 벤하르트가 쉽사리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런 차이 때문일까 생각하니 그는 피식 웃음이 세어나왔다. 정말 그런 이유라면 어린애 같은 이유였기에..
"왜 웃는거야?"
"아니. 웃을수도 있는 거잖아."
"그건 그렇지만,"
어느샌가 분위기는 누그러져 있었다.
"그럼 다음 목적지는 라군델이지? 인간이 만든 제국의 위엄이 어느정도나 되는지 감상하는게 포인트 일까?"
"글쎄. 나도 가보지 않아서 말이지."
"가보지 않았으면 더 잘됐네. 기대할 여지가 남아 있으니 말이지."
"그래 네 말이 맞다. 정말 기대 돼."
영석을 얻는것도 닐스를 만나는것도 그리고, 레니아와 여행을 한다는것은 확실히 분명 가슴이 떨릴 정도로 기대가 되는 일이었다.
==================================
연참대전 탈락... 이 되어 버렸습니다.
Comment '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