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325화-계략(2)
"벤. 그래서 검은 만들어 줄거야?"
"글세. 아직 르바를 만나 보지는 않았으니까 확답은 내릴수 없지."
"확답이라, 뭐 이런 경우에서 너는 굉장히 못미더운데 말이지."
그녀는 그 뒤에 붙어야 할 여러가지 의미로란 말은 구태어 붙히지 않았다.
"확실히 나는 루크형님과는 다르니까, 하지만 이제부터는 확실하게 가지 않으면 안되니까, 아니라고 생각되면 만들지 않을거야."
"과연.. 그럴까?"
"그렇다니까,"
"그럼 다른쪽은 어때? 이긴사람과 결혼 하겠다는 쪽은?"
"그 이야기가 지금 필요한건가?"
레니아는 조금 뜸을 들이듯 벤하르트를 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별로 필요하지는 않은듯 하네."
"뭐 마음에도 없는 사람과 결혼을 할수는 없으니까, 거기에 나는 너와 함께 엔쿠라스에 가기로 했으니까, 그 생각은 절대 바뀌지 않을거니까, 그쪽도 걱정하지 않아도 될꺼야."
"걱정따위 누가 했을것 같아?"
"그럼 내일은 르바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 봐야 겠군."
'물러'
레니아가 보기에 벤하르트는 너무나도 물렀다. 처음부터 그러했다. 누군가를 죽이려 한것은 자신도 죽을 각오가 된 사람들만이 할수 있는 행위나 다름 없는 것이다. 처음에는 자신이 인간을 몰라 그렇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벤하르트라는 인간이 어떤 의미로는 특별한것이었다. 디논때의 일이나 지금까지의 일. 그런 점이 좋지만서도 때로는 이질감을 느끼게 되었다. 신과 인간의 차이때문이 아닌 가치관의 차이로..
하지만 뭐라고 말한들 그것이 벤하르트라는 인간인 것이다.
"잘해보도록 해. 나는 그녀석들과 노닥거리기라도 해볼까?"
'윽.'
극도문에서의 하루는 그렇게 지나갔다.
라질의 정리가 있었다고는 해도 극도문은 아직 벤하르트를 대하는것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고작해야 10년전의 일. 그 일로 인해 극도문의 평판은 떨어졌고, 뒤로 문원도 줄게 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문원들은 거진 그 사건을 알고 있는 사람들 뿐이었기에 일섬류라는 벤하르트를 고운 시선으로 볼수는 없었다. 벤하르트가 설사 도장파괴와 연관이 없다고 해도 일섬류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편을 가르는 것이다.
편을 가른다고 해도 직접적으로 드러난것은 아니었고 쉬쉬하는 분위기가 나올 뿐이었다.
"바늘 방석이 따로 없군."
"바늘방석이라 죄송하군요."
르바를 만나려 하기는 했지만 르바쪽에서 먼저 다가올줄은 생각치 못했던 벤하르트였기 때문에 그는 살짝 멈칫했다. 어젯밤 카몬이 했던 말이 문득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것이다.
"저 무슨 일인지?"
"아. 아버지에게 당신의 안내를 명 받았거든요. 그런고로 오늘 하루 이곳 극도문에 대해서 안내하도록 하겠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그녀의 제안은 그에게 있어서도 안성맞춤이었다. 그녀에 대해서 알아 둬야 할 그에게 있어 이렇게 붙어 다닐수 있는 기회를 자연스레 얻을수 있는것은 괜찮은 일인 것이다.
"그럼 처음은 극도문의 본관부터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장내의 중앙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거대한 극도문의 도장 그 안으로 그녀는 벤하르트를 초대했다.
'브렌모스 최고의 도장이라 하더니 과연 대단하군.'
나무의 은은한 냄새가 감도는 도장안을 걷다가 벤하르트는 살짝 걸음을 멈추었다. 방중 하나의 문이 열려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열려진 문 사이에 보이는 것에 멍하니 발을 멈추고 쳐다본 것이다. 아마도 검을 놓아둔 자리였을터로 보이는 검걸이였다.
"무엇을 보고 계십니까?"
"아니 잠시."
"그 방은 역대 내문주가 쓰시던 방입니다. 전대의 내문주도 이 방을 사용했지요."
"전대의 내문주라면 할아머지가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당신들 일섬류가 죽인 할아버지입니다."
"들이라니."
"실수라고는 말하지 않겠어요. 분명 당신에게는 죄가 없고 혐의가 없다는것도 인정합니다. 그렇기에 죄송한 마음을 가진것도 확실합니다. 하지만 저는 아버지처럼 그렇게 까지 확실하게 정리를 할수는 없습니다."
벤하르트는 충분할 만큼 그녀를 이해할수 있었다. 죽이려한 사실을 인정하는것이 아닌 쉽사리 인정할수 없는 기분쪽의 문제는 되려 르바쪽의 반응이 일반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제가 이런 말을 하는것은 실례일지 몰라도 어느정도 이해합니다. 저는 원수가 아니지만, 원수와 관계 있을지도 모르는 사람을 상대호 쉽사리 좋은 반응을 내보이기는 어렵겠지요."
"..... 그런데 이곳에 무엇을 보고 멈추신건가요?"
"아. 저기에 비어 있는 곳을 조금."
"그곳은..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다음곳으로 가도록 하지요."
마음에 안든다고 확실하게 말한 주제에 르바는 벤하르트를 꽤나 성심성의껏 돌아다니면서 가르쳐 주었다. 본래부터 외문주인 그녀는 그런일을 자주 했기 때문에 꽤 자연스러운 모습이었고 벤하르트도 그런 그녀를 따라 마음 편히 도장안을 돌수 있었다.
"별채는 이미 구경하셨을테지요."
"뭐.."
라질이라는 어느정도는 거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상대하고 있었으니 자연히 퇴로를 확보해 두려 해 그는 밤에 별채를 조사했었다.
"그렇다면 남은것은 공방 뿐이겠네요."
극도문이라는 곳은 명성 대로 거대한 문파였지만, 그 이상으로 하나의 검을 만드는 공방이기도 했다. 실제 극도문의 검은 평판이 좋아 여러 무기상으로 팔릴 정도였는데, 그런 공방의 크기란 벤하르트가 상상했던것 이상이었다. 그가 지금껏 극도문을 제외하고 가장 거대한 공방을 본것은 가렌더부크의 공방 뿐이었는데, 극도문은 그 배는 되어 보이는 크기에 대장장이또한 많아서 그는 묘하게 들뜬 기분이 되어 버린 것이다.
"....."
"어 뭡니까?"
"아니 조금 놀랐습니다. 어제는 분명 거짓이라고 단언했습니다만, 그런 얼굴이라면 제가 잘못본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길래?'
자기 자신만은 자신의 얼굴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저희는 도공과 검술 두가지를 병행하는 문파로써 어느쪽도 소홀히 할수 없지만, 지금 세대에 와서 이미 도공술 쪽은 쇄하고 있습니다. 그런 와중 저는 카몬왕자님에게서 그 검을 볼수 있었고, 그때 카몬왕자는 벤하르트씨라는 사람을 이곳으로 데려올 생각을 하신 것이겠지요. 온것은 그 손자라 칭하는 당신입니다만,"
"쇄하고 있다는건 무슨 뜻입니까?"
"저희 문파는 외문주와 내문주가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내문주를 기점으로 대(代)를 잇습니다. 현대 저희 아버지는 그 11대에 속하고 있습니다. 약 200년전 초대가 세운 이곳의 공방은 굉장한 검을 만들수 있는 최고의 공방으로 꼽혔다 합니다. 하지만 그 대부분의 비전은 어느 날을 기점으로 잃어 버리게 되고 많은 검들도 시대가 흐름에 따라 잃어 버리게 되었습니다. 시대는 필요로 하는것은 잊혀지지 않고 필요로 하지 않는것은 잊혀지기 마련. 현재의 이 공방의 몰락은 그에 따른것일지도 모릅니다."
"검이 필요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까?"
"검이란것은 베는것. 잘라내기 위해 존재하는것. 그 연장선상에는 목숨을 빼앗는것을 기점으로 둔 것이에요 하지만 저희는 공방임과 동시에 검술마저도 가르치고 있는 곳. 검을 만드는것이 먼저인가 검을 사용하는 방법이 먼저인가. 하는 것을 놓고 보았을때. 문원들의 답은 후자였던 것으로. 4대째부터 그런 경향이 두드러 졌다고 하더군요. 검을 익히는자는 마치 특권이라도 받은듯 더 높은것처럼 칭하고, 검을 만드는자들을 무시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지금까지도 계속 되어 와 결국 이렇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 현재의 극도문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는 보이지 않습니다만, 개중에는 검사들도 있는 모양이고,"
르바는 열심히 일하고 있는 대장장이들을 보면서 잠시 향수에 잠긴듯한 얼굴로 말했다.
"제가 말한 이야기는 불과 10년 전까지의 일입니다. 이렇게 바뀌게 된것은 아버지나 내문주가 되고 난 후부터의 일이에요. 아버지는 극도문을 사랑하시니까요. 극도문을 다시 살리고 싶다고 생각하신것의 근간은 이렇게 나타난 겁니다. 그 생각은 저도 마찬가지입니다만,"
"공방과 검술이라.."
왠지 연철장과 비슷해 그도 잠시 과거를 떠올렸다. 이제는 돌아갈수도 돌아가려고 하지도 않는 과거는 가슴을 아리게 만들었다.
[쳇]
리스의 불만을 뒤로 하고 그는 만들어진 검을 하나 들어 올렸다.
"하지만 이상하군요. 몰락이라고 하기에는 검이 굉장히 정교하다고 생각됩니다만,"
"그게 10년의 시간을 틀어 올라온 실력입니다. 브렌모스에는 몇몇의 명검의 소리를 듣는 검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꽤 많은 수의 검은 이곳 브렌모스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 검들은 질은 좋아도 명검의 소리는 들을수 없지요."
벤하르트가 보기에도 질은 좋지만, 보물이나 명품 신물이라고 불리기에는 손색이 너무도 많은 검들이었다.
"한번 검을 만들어 보시겠습니까?"
르바의 권유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만들때에는 마음을 정했을때입니다.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되는군요."
"그렇군요."
공방의 구경을 끝내고 벤하르트와 르바는 밖으로 나왔다. 더운 열기가 가시자 시원스런 가을바람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럼 극도문의 안내는 이것으로 끝난것입니까?"
벤하르트의 물음에 르바가 답했다.
"네. 하지만 한가지 개인적으로 부탁드리고 싶은 일이 생겼습니다."
"!?"
스릉 거리며 그녀는 검을 뽑아들었다.
"뭐 뭡니까."
"대련입니다 대련. 당신같은 실력자와 붙는다면 저도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되겠죠."
'허락한 기억은 없는데,'
바람에 흔들리는지 스스로가 흔들고 있는건지 눈앞에서 살랑이는 검은 거부의 뜻은 받아 들일것 같지가 않았다.
"무 문주 무슨 일을 하시는겁니까."
"아 걱정하실것 없어요. 단순한 대련이니까."
"하지만 외문주가 다른 사람에게 지는건."
"최강은 내문주 하나로 족하겠지요? 후학을 위해 미리 한번쯤은 져두는것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이것은 문주의 뜻입니다. 정 원치 않는다면 내문주라도 불러 오시던지 하시는게 어떻습니까? 조르스."
조르스라고 불리운 남자는 벤하르트를 살짝 노려보고는 자리를 뒤로했다.
'내가 무슨 잘못을 한거야. 나도 대련 같은건 하고 싶지 않단 말이다!'
라는 생각으로 가득했지만, 그 말을 입밖으로 내어 변명을 할수는 없었다.
"뭐 좋습니다. 하지만 굳이 대련을 해야 겠다면, 인적은 드문곳으로 가셨으면 좋겠군요."
"그것을 바라신다면,"
"하아 하아."
벤하르트의 검집에 둘러쌓인 검을 상대하면서 그녀는 있는 힘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반보를 비킴으로써 그 공격을 피하고 벤하르트는 그녀의 손목을 쳐 검을 떨어 뜨렸다. 15전 15승으로 점차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녀의 움직임에서는 정교함이 떨어져 나름 대등한 대련을 할수 있었던 처음과 다르게 지금은 벤하르트의 옷자락 조차 스칠수 없게 되어 버렸다.
"명불허전 그것이 디레인의 실력이란 것인가요."
왠지 처음과 달리 독기가 사라져 있는것 같은 그녀의 말에 그는 살짝 거리를 벌렸다.
"음."
다시금 카몬왕자가 했던 말이 떠오른 것이다.
"왜 그러시는 건지?"
벤하르트는 나중에 거절하기가 뭐해질 상황이 나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머뭇거리면서 전날밤에 카몬왕자가 했던 이야기를 그녀에게 말해주었다.
"하. 제 어디서 당신에게 반했다는 것을 느낄수 있었던 건가요."
다시금 그녀의 검에 살기가 띄워 졌다.
"확실히 독기는 풀어졌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이 대련으로 조금 다시 보게 되었을 뿐인 내용입니다. 거기에 제 거짓말을 그대로 믿어버린 왕자님도 왕자님이군요. 심히 불쾌합니다. 자신을 이긴 남자와 결혼이라니, 그런것 변명으로 삼기 위해 내뱉은 말일게 뻔한 것이잖습니까."
"아 확실히 그렇지요."
하지만 요 1년간 그는 너무도 이질적인 여자들을 많이 만났었다. 그리고 그들중 대다수는 벤하르트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것을 그 자신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혹시나 르바도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수 없었던 것이다.
'하긴 지금까지가 이상했던 것이었지.'
돌이켜보면 정말로 이상한 일들이었지만, 지금은 그것에 신경을 쓸때가 아니었다. 눈앞에는 어이가 없어 연신 헛기침을 내고 있는 르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시겠습니까? 원수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시시덕 거릴정도로 친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어디까지나 저 자신을 위해서 대련이 필요했던 것일뿐. 제 마음은 아까 말했던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아 네. 확실히 알았습니다."
"그럼 다시 한번 부탁드려요."
검을 뽑아들고 그녀는 왠지 진심이 서려 있는것 같이 검을 휘둘렀고 그에 벤하르트는 대적해 대련에 응해주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녀도 힘이 들었는지 옷깃으로 흘린 땀을 닦고 검을 허리에 집어 넣었다.
"대단합니다."
"아 아버지!?"
"후."
'대단하군.'
근처에 왔을때는 알아 차렸지만, 카몬왕자에 비하면 멀었다고 말할수 있다고 해도 라질의 기척을 죽이는 실력은 뛰어났다.
"이거 실례했습니다. 딸애와 대련하는것을 몰래 지켜보고 말았군요."
"뭐 실례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아니 앞으로 실례를 끼칠것 같아 미리 말해둔것입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벤하르트를 보면서 라질은 공손히 고개를 숙여 말했다.
"내문주인 저 라질과 비무를 겨뤄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아버지!"
외문주인 르바 본인은 설사 벤하르트에게 몇번을 진다고 하더라도 아무런 제약이 없다 할수 있었다. 실질적으로 상징인 내문주만 당하지 않으면 되는것이다. 라질이 당한다고 생각하는것은 아니었지만, 달인의 대결에서는 무슨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이상할게 없었고, 벤하르트도 굉장한 실력이라는것을 그녀는 스스로 당해서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당황 할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저도 무인인지라 딸애와의 대련을 보니 몸이 근질거리더군요. 부디 저와 한번 어울려 주십시오."
고개 숙여 공손하게 부탁하는 라질을 매몰차게 거절할 성격은 아닌 벤하르트는 당황스런 신음을 내뱉었다.
"으음."
이긴다고 해도 진다고 해도 너무도 난처한 대결인 것이다. 차라리 르바에게 도장의 소개를 듣지 않았다면 모를까 실컷 소개를 들어 내문주가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마저 알게 된 마당에 쉽사리 끄덕일수도 없는 노릇인 것이다.
"부탁드립니다."
라질을 대하는것은 정말로 어려운 것이었다. 고개를 숙인 그 행위 하나만으로도 기백에서 압도 당해 차마 거절을 할수가 없는 분위기로 이끌려 버린 것이다. 레니아가 그를 싫어하는 이유를 이때만큼은 몸에 와닿을만큼 느낄수 있었다.
"단순한 비무만이라면,"
"아 그렇지요. 단순한 비무입니다. 그렇지? 르바?"
"네. 네.."
르바마저 라질의 말을 동의해 비무는 아무도 없는 극도문의 북동쪽 숲속에서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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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이지 않습니다!
라고.. 말해두도록 하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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