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432화-에린델(5)
라프라는 마수였기 때문에 벤하르트와 레니아가 다니는 길로 다닐수 없었다. 때문에 마력석으로 이루어진 벽 건너편에서 그들을 따라다녀야만 했다.
내면이야 마수라고 쳐도 겉모습은 영락없는 어린아이였고, 실제로도 어렸기 때문에 벤하르트는 그녀가 불쌍했는지 마력석의 밖으로 나와 같이 걸어주었다. 그에 레니아도 눈치를 보고 마력석의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마수들은 어째서 마력석을 싫어하는거지?"
"싫어하는건 아니에요. 다만 저 마력석은 인간이 아닌것을 배제하는 성질을 띄고 있다고 했어요. 마수는 만질수도 없지만, 만지면 견뎌내질 못해요."
"그래?"
레니아가 심드렁한 어조로 말하자 라프라는 움찔거리며 벤하르트의 뒤에 숨었다.
"너 말야."
"참아 레니아. 아직 어린데다가 사실 네가 한 짓을 생각하면 무서워하는것도 당연하잖아."
"흥."
그녀는 퉁명스레 말하고는 조금 떨어져서 걷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너희 일족은 어째서 너를 버리고 간거지?"
"버리고 가지는 않았어요. 제가 낙오된거죠."
"낙오?"
"저희는 변신 마수. 근본적으로 인간과 같은 생활을 하고 싶긴 하지만, 변신을 특기로 사는 마수라는것에는 변함이 없죠. 해서 이렇게도 변할수 있어요."
그녀는 흐느적 거리는가 싶더니 펑 하는 폭발음과 함께 연기속에서 멋진 독수리로 변신했다.
"오.."
"이렇게 변한 저희들은 날아서 이동을 하곤 해요. 그런데 이번에는 제가 실수를 하는 바람에 낙오가 되고 말았던 거에요."
"실수라면 뭘 말하는거지?"
라프라는 잔뜩 울상을 지은 얼굴로 말했다.
"가던길을 우회해 버렸어요."
"우회?"
"저는 무지개를 좋아해요."
"그래?"
"그날은 무지개가 너무 너무 아름답게 만들어져 있었어요. 그래서 조금만 보고 일행과 합류하려고 했었는데,"
"그게 이유야?"
"네."
'어린애구만,'
고작해야 무지개를 보기위해서 일행에게서 이탈해 결국 길을 잃어버리고 만 미아. 거기에 그 미아는 악한의 손에 잡혀서 강제적인 노동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도 일족은 너를 찾지 못한거야?"
"찾았을거에요. 하지만 한번 날기 시작하면 역시 파악하는데에는 시간이 걸리게 되어 있거든요. 저희 아버지는 굉장히 완고하셔서 저를 챙기지도 않았을거에요. 지금도 저를 버렸을지도 모른다고 종종 생각나기도 하고요."
"그럴리가. 자식을 위하지 않는 부모는 없어."
"에이 그렇지도 않아요. 라고 불리우는 마수는 더 강한 힘을 가지기 위해서 잉태한 자식을 잡아 먹거든요. 그렇게 하면 타고난 힘이 더 강해지고 자식의 수명을 흡수하기도 한다고 했어요."
"미안. 마수들의 상식은 인간으로선 따라가기가 엄청 어렵구나."
"인간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그렇진 않아. 전부라고 할수는 없을지 몰라도, 인간이란 그렇게 삭막하지만은 않아. 뭐든지간에 예외라는게 있지만, 보통의 인간은 자식을 버리거나 하지는 않지."
"알것도 같아요."
라프라는 벤하르트를 빤히 쳐다보면서 중얼 거렸다. 인간답게. 라고 하며 인간에 대한 교육을 잔뜩 받아온 그녀는 여러가지 지식으로 인간을 알고 있었다. 경험으로도 알고 있었다. 그렇게 배워온 인간의 악영향이 모든게 맞지 않는다는것도 알고 있었지만, 그 못지 않게 그녀는 여행을 다니며 그런 모습을 많이 보아 왔다. 하지만 눈앞의 남자는 그녀가 만났던 어떤 사람과도 뭔가 달랐다.
"그래? 그건 다행이네."
"그런데 이곳에 있으면 위험하잖아요. 저는 괜찮으니 저쪽에 들어가셔도 괜찮은데, 아까부터 노리고 있기도 하고,"
"염려해주는거냐? 마수에 선악구분 같은건 없지만, 너희종족은 조금 괜찮은것 같기도 하다. 뭐 인간을 꾀어낸건 잘했다고 볼수는 없지만, 걱정해주는건 고맙지만, 난 괜찮아. 되려 네가 걱정이지. 네가 말한것에 의하면 마수들은 언제고 너를 노릴수 있다는 이야기니까,"
"하지만,, 저는 이미 인간을 죽였다구요."
"그래. 뭐 그것 자체는 나도 사람이니까, 묵과하기는 어려워. 하지만 후회하고 있지? 난 너를 도와주기로 했으니까, 일단은 도와주겠어. 내가 이렇게 대해주는것에 혹시라도 고마움을 느낀다면 말야. 아무것도 해줄 필요는 없어. 대신에 너는 지금 느끼고 있는 그 감정을 제대로 기억해줘. 언제가 되었든 잊지 않도록."
"그걸로 괜찮아요?"
"그래. 괜찮아. 개인적으로는 조금 찝찝하지만, 아마 레니아는 괜찮다고 말했을거야."
라프라는 벤하르트의 찝찝하다는 말에 조금 실망한듯 싶었지만, 곧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네. 저 잊지 않을게요."
"좋아. 그런데 레니아를 너무 무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하 하지만, 아까 그 마법은.."
"저녀석은 나쁘게 말하면 깐깐하지만 좋게 말하면 냉철하고 주도면밀해. 네가 적인지 아닌지 판단하기 위해 그렇게 강경책을 쓴것 뿐. 악감정은 없을거야. 있었다면 당장에라도 버리고 가자고 했을걸?"
"하지만 말이죠."
라프라는 벤하르트의 옆에 살짝 숨어서 레니아를 바라 보았다. 이따금씩 저기압의 눈빛이 그녀를 잡아먹을듯이 강타했다가도 바로 고개를 돌리는 레니아의 모습을 확인하며 라프라는 뭔가의 느낌을 받았다.
"이대로는 내가 너무 힘들거든. 사실 이렇게 지내는것보다야 다들 친하게 지내는게 앞으로의 일에는 도움이 되니까 말야. 저래뵈도 저녀석은 정을 많이 타니까 괜찮을거야."
라프라는 비장한 얼굴로 레니아를 향해 한발자국을 내딛었지만, 레니아의 눈을 보자마자 겁을 집어 먹고 뒷걸음질 쳤다.
"무서워.."
그녀의 떠는 모습을 보고 벤하르트는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네 원래 성격인거니?"
"원래 성격이라뇨?"
"원래 그렇게 누군가를 두려워 하느냐는 말이야. 아니면 그 형제인지 뭔지 하는 녀석들에게 당했다거나,,"
라프라는 얼굴을 새파랗게 질렸다.
"후우, 무슨 일을 당했는지는 묻지 않을게. 사실 알고 싶지도 않아. 하지만 레니아는 그런 녀석들과는 전혀 달라. 안심해도 좋아. 네가 나를 대하는것 만큼만 한다고 하면 저녀석만큼 좋은 녀석은 없을테니까 말야."
"정말요?"
"나를 믿어라 나는 거짓말의 달인이지만, 이 순간만큼은 진지하기 그지 없어."
"거짓말의 달인이라구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데요."
"나름 전직이었다고 할수 있을까.. 지금은 그렇게까지 거짓말을 하지는 않지만,"
"어쨋든 믿을게요!"
그녀는 다부진 얼굴로 성큼성큼 레니아에게 다가갔다.
"그래서 그녀석이 이런 몰골로.. 이랬다 이거지."
왠지 거만한 목소리와..
"정말이요?"
그에 꼬리를 살랑이는 강아지와 같은 목소리..
"....."
그리고 약간 저기압 스러운 벤하르트의 모습. 그들의 여행길은 아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 되어 있었다.
"왜 그래? 벤. 왠지 저기압인것 같은데?"
"그야 당연하지! 온갖 치부를 들춰 놓는데 누군들 화 나지 않겠어?"
"이런거야.. 농담이잖아. 덕분에 난 이녀석과 조금 친해질수 있었고 말야. 고맙게 생각해."
"사실이 아닌것도 날조를 해서는! 나는 말야. 네가 친해지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네가 나를 팔아서 까지 하라는 이야기는 아니었어."
"좋은게 좋은거잖아."
"이쪽이 나쁘다고."
라프라는 그들이 투닥거리는 광경을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지켜 보았다. 레니아가 말할때는 레니아 쪽으로 벤하르트가 말할때는 벤하르트쪽으로 시선을 오가면서 그녀는 낄낄 거리며 웃었다.
"어?"
"한심스러운 모습을 보이기는, 봐 저게 바로 벤의 진짜 모습이야."
'그나저나 웃은건 처음인것 같은데,'
"잡담은 거기까지만 해둬. 일단 여기서 잠을 청할거니까 말야. 그런데 라프라 너는 잠을 어떻게 자지?"
"그냥 이렇게 자면 되요."
"아니 그래도, 춥지는 않은건가?"
"아 이렇게 변하면 되요."
다시 귀여운 폭음소리와 함께 그녀는 털뭉치로 변해 있었다.
"뭐야 이건.."
"책에서 본건데 어딘가의 눈괴물이라고 했어요. 이름은 라고,,"
"아 그건 이해할수 없으니까 됐어. 어쨋든 그런 모습이라면 추위 걱정은 없을것 같군."
"아니 따듯해보여."
레니아는 약간은 부럽다는듯 그 털뭉치를 바라보았다. 보통이라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침낭만으로도 충분했지만, 에린델의 추위는 상당히 혹독해서 침낭안에서 자는데도 가끔은 추위에 몸을 떨 정도였다. 벤하르트와 레니아가 아닌 일반 사람들이었다면, 추위만으로도 벌써 몇번은 불평하거나 문제가 일어날법 한 기후였다.
"그럼 안녕히 주무세요."
벤하르트는 잠을 자고 있었지만, 평소보다 더 살기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뭐라해도 그들이 있는 곳은 마력석결계의 밖. 언제 마수들에게 당해 고깃덩이가 될지 알수 없는 까닭이었다. 그의 반경으로만 오십여 딜(약 :미터) 안에 들어오는 마수들은 완전히 감지할정도로 기를 집중시킨채 그는 자는둥 마는둥하게 누워 있었다.
"읏."
오십딜안 무시무시한 속도의 무언가가 들어오는것을 느낀 벤하르트는 재빠르게 검을 잡아 일어섰고, 그보다는 느렸지만 레니아조차도 방심하지 않아 재빠르게 반응해 마법을 준비했지만, 그 1초가 되었을까한 그 짧은 시간에 이미 마수는 그를 통과해 지나갔다.
"이런!"
벤하르트는 마수를 눈으로 쫓았지만 이미 따라가기는 늦었다는것을 깨달았다. 마수가 노린것은 벤하르트도 레니아도 아니었다. 바로 라프라를 노린것이다. 덩그러니 옆에 놓여 있었어야 할 털뭉치는 마수의 다리에 대롱대롱 걸려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잡을수 있어."
마수는 자유 비행을 하는것은 아니었다. 50딜을 1초도 안될정도로 돌파해버리는 그 속도로 자유자재로 이동할수는 없었다. 결국 직선으로 날아가는것에 불과한 움직임은 더한 속도로 따라잡는다면 충분히 적중 시킬수 있는 것이다.
"놓칠것 같냐!"
그는 검을 들어 채찍을 휘두르듯 휘둘렀다. 그야말로 섬광과 같은 빛의 속도로 날아간 빛은 그대로 마수에게 당도해 적중하는듯 싶었다.
"벤!"
레니아는 벤하르트의 공격이 성공했다고 생각해 밝게 웃었지만, 마수는 전혀 이상 없다는듯 날아갔다. 그것을 보고 그녀는 실망하며 물었다.
"저게 뭐야?"
그녀는 실망한 기색을 감추지도 않고 물었다.
"저기까지는 아무래도 힘이 닿을것 같지가 않아서 말야. 쓰러뜨릴수는 없을것 같아서 일단 내 기로 표시만 해뒀어. 쫓아갈수 있게 말야."
"뭐라고? 그건 그렇고, 어째서 저녀석을 눈치채지 못한거야?"
"저정도로 빠를줄은 생각도 못했어. 일반적인 마수로 생각했는데, 내 착각이었던 모양이야. 어쨋든 이럴때가 아니야. 추격하자."
"또 달리는거야?"
"그래 전력으로."
"하아.."
한숨을 쉬면서도 그녀는 마력을 다리에 한껏 집중시켰다. 그들은 라프라를 납치해간 마수를 향해 쫓기 시작했다.
- 작가의말
연참대전 종료가 한발 한발 다가오고 있습니다. 하루 하루가 지날때마다 왠지... 시원 섭섭한 이 오묘한 느낌을 벌써 몇년째 느끼고 있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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