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385화-역용(易用)(2)
벤하르트의 백뢰를 제대로 맞아버린 제로의 몸은 만신창이나 다름없었다. 육안으로 보기에도 내부의 상태도 어린아이가 보아도 상태가 좋지 않다는것을 알수 있을 정도로 그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벤하르트는 제로가 어떤 인간인지 잘 알지 못했지만, 그가 악인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수 있었다. 도리어 제로의 눈에는 자신이 얼마나 이상하게 보일지도 충분히 납득할수 있을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제로와 더 싸우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제로는 만신창이가 된 몸을 가지고서도 물러설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후우."
한차례 숨을 고르고 제로는 양손을 뻗었다. 그 행동에 벤하르트는 더 없을 정도로 경계했다.
제로의 양손에는 한쌍의 소도가 들려 있었다. 하나는 은청색의 빛을 띄우는 검.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붉은빛을 띄고 있는 검이었다. 그 쌍검의 형태는 색을 제외하고는 완벽하게 대칭을 이루고 있었다. 별다른 문양이 없는것은 벤하르트의 검과도 비슷해 보였다.
허공에서 소환된 검을 들고 제로는 벤하르트를 향해 다가섰다. 그런 제로에게 한차례 광탄이 쏟아 내렸다. 하지만 그 마법들은 한번의 칼부림으로 죄다 레니아에게 되돌아갔다.
"으읏."
"다음번에는 맞추겠다. 이제 봐주어서 해결할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으니, 필요하다면 너희들의 목숨을 빼앗아서라도 나는 찬티아공주의 목숨을 빼앗아야 하니까,"
제로는 시선도 채 돌리지 않고 레니아에게 말했다. 그가 말하지 않더라도 레니아는 더 마법을 쏠 생각이 없었다. 다행히 마법을 자신에게 돌려주었기에 망정이지, 사실상 제로가 벤하르트에게 되돌리는 상황이 언제 나온다고 해도 이상할게 없었다. 벤하르트가 사용할수 있는 역용은 자신의 검기에 한정한 것이었기 때문에 방금의 마법을 벤하르트에게 돌렸다면 막아낼수 없었을 터였지만, 제로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역용을 사용할수 있다고 해도 역용 자체가 무적의 기술은 아니지."
'역..용?'
제로는 쌍검중 푸른빛이 감도는 검으로 벤하르트에게 휘둘렀다. 그 한번의 휘두름으로 제로가 서 있는 자리를 시작으로 주변이 얼어붙었다. 되돌리고 말고 할 겨를도 없는 기술 하지만 그보다도 벤하르트가 놀라고 있는것은 검의 완성도에 있었다.
부딛혀 보지 않고도 알수 있는 검의 완성도에는 사람의 손이 전혀 닿아 있지 않았다. 벤하르트의 검이 인위적인 손을 타서 만들어진 검이라고 한다면, 제로의 검은 마치 검자체로 탄생해버린것과 같았다. 서서히 다가오는 냉기의 파도를 피하자 제로는 다른 한쪽의 벤하르트를 향해 휘둘렀다. 그렇게 다시 타격전이 시작되었다. 오히려 다친 상태나 신체의 조건으로 보면 벤하르트가 제로보다 곱절은 더 유리하다 할수 있었다. 그만큼 제로는 지쳐있었고, 제대로 된 힘을 구사할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서로의 승부는 팽배하게 이루어졌다.
보통이라면 압도적으로 벤하르트가 이겨야 할 승부임에도 도리어 상처를 입히는것은 제로의 쪽이었다.
"윽!"
순간 벤하르트의 눈에 무엇인가가 비춰졌다. 붉은 검과 벤하르트의 검이 맞붙을때 보인것은 붉은 머리칼의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또 다른 한쪽의 푸른 검과 맞닿았을때는 청색의 머리를 한 예쁘고 귀여운 여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뭐지.."
이상한 환상인지 환각인지 모를 영상에 벤하르트는 눈을 껌벅이다가 그는 한차례 깊게 상처를 입고 말았다. 제로는 벤하르트를 향해 검을 들이밀고는 표정을 일그러 뜨리며 말했다.
"더 막아서지 않아줬으면 좋겠지만, 막아선다면, 나로써도 어쩔수가 없겠군."
"그 검.. 뭡니까."
"!?"
제로는 그 말에 의아한듯한 얼굴을 보였다.
"이 검이 뭐냐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이지?"
제로가 묻는 질문에 벤하르트는 자신이 본것을 회상이라도 하는듯 자연스레 대답했다.
"그 검은 지금 곪아 있습니다. 두명의 여자.. 는 지금 고통스러워 하고 있습니다."
"....."
두명의 여자라는 말을 들은 제로의 눈은 동그랗게 커졌다. 무언가 감이 잡히는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너... 뭘 본거냐."
"....."
"말해!"
제로는 성난 얼굴을 하며 다급하게 언성을 높혔다.
"물러나 주신다면 말하겠습니다."
"흥. 억지도 정도껏 부려라. 그렇다면 이쪽도 억지로 입을 열게 만들어주지."
제로는 벤하르트에게서 시선을 돌려 레니아에게로 방향을 틀었다. 하지만 그의 이동경로에는 벤하르트가 검을 바로잡고 막아서고 있었다.
"마음대로는 되지 않을겁니다."
검과 검이 맞붙었지만, 제로는 검에 제대로 된 힘을 실을수가 없었다. 벤하르트의 말이 신경 쓰였기 때문이었다. 그가 목숨보다도 아끼는게 바로 이 검이었기에 몸을 사릴수 밖에 없었다. 결국 그는 두 검을 되돌리고 평범한 검을 소환해 들었다. 하지만 평범한 검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벤하르트의 명검을 상대하기 위한 절제하는 공격을 해야했기 때문에 쉽사리 우위를 가져갈수는 없었다.
'정말 성가시다. 끈질긴것도 자기중심적인것도 정말,, 역겨워..'
"그런건.. 한번 당해보지 않으면 절대로 고쳐지지 않는 사고지. 후회하고 나서야 겨우 고쳐지는 악질적인 바보병이다."
대각으로 검을 쥐어들며 제로가 말했다.
"??"
"만월참(滿月斬)."
제로가 검을 휘두르자 둥근 검은 구체가 겨냥한 공간에서 나타났다.
'이건 루크형님의 그 기술과 비슷하다!'
위험하다는것을 알고 벤하르트는 몸을 뒤틀어 피했지만, 그와 동시에 두개의 초승달형의 같은 검기가 그에게 쇄도했다.
벤하르트와 제로가 싸우고 있을때 버벨은 아래에서 정신을 차렸다. 몸을 추스르며 그가 말했다.
"하아.. 하아. 젠장. 내가 이렇게 당하다니 그 여자 가만놔두지 않겠다. 사실로 말하면 방심을 한 내탓이라고 말해야 겠지만,,"
'분해..'
이글거리는 눈으로 비틀거리면서 버벨은 동굴을 올랐다. 그 오르는데에 특별한 이유가 없었지만, 그는 눈으로 자신을 이기고 간 벤하르트와 레니아의 상황을 그저 눈으로나마 보고 싶었던 것이다.
"좋아 다 왔군. 어디 어떤 일이 벌어지나 확인해봐야겠다."
버벨은 문을 열어 검은 검기를 볼수 있었다. 얼마전에 본적이 있었던 검술. 살면서 그정도로 질리는 기분을 느꼈을때는 떠올렸다.
"저건.. 이 주변에 제온이 있나!?"
놀라움과 기쁨과 졌다는것에 대한 만가지 생각이 겹쳐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제온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것은 제온의 기술을 사용하고 있는 제로의 모습 뿐이었다.
"저녀석이 제온의 기술을?"
버벨은 자신을 손쉽게 이긴 제온의 기술을 제로가 사용한다는것이 상당히 불쾌하게 느껴졌다. 그런쪽으로는 솔직하며 단순한 그는 제로에게 망설임 없이 외쳤다.
"어이! 그건 제온이라는 녀석의 기술일텐데! 어째서 네가 사용하고 있는거냐?"
"음?"
제로는 이미 버벨이 당도했다는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의 말을 듣고서야 반응했다. 잠시 한눈을 돌린 사이 벤하르트는 몸을 추스릴수 있었다.
"제온을 알고 있나본데, 웃기는 소리는 하지 않는게 좋아. 농담이라고 해도 설사 몰랐다고 해도 그런 말은 이 기술의 원 사용자에게 실례가 되는 말이니까, 이 기술은 본래가 내 스승의 기술이다. 되려 훔쳐간쪽은 제온쪽이다. 너도 검사라면 그 차이는 스스로 생각해라."
"읏."
제로가 사용하는 원형의 검기를 보고 버벨은 입을 다물었다. 정확하게 말할수는 없었지만, 제로가 사용하는기술은 분명 제온보다 완성도가 높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최강을 목표로 하던 그의 자존심은 이미 산산조각이 날것만 같았다.
검은 검기가 나오고 나서 벤하르트는 굉장한 위기에 몰려 있었다. 그 검기에 맞설만한 무기가 벤하르트에게는 없었던 것이다. 공간째로 공격하는 제로의 '만월참'을 벤하르트는 역용으로 반사해낼수 없었다. 설사 역용을 완벽하게 다룰수 있다고 해도 그 기술은 성질상 반사할수 없는 기술인 것이다. 그것과 동시에 백뢰로도 그 기술을 받아칠수가 없었다.
검을 단련하고 기술을 단련한 기본적인 시간과 공들인 노력의 차이가 명백하게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누가봐도 패색이 짙어 보이는 그 와중에서도 벤하르트는 한발자국조차도 밀리지 않았다. 벤하르트가 강해서도 아니었고, 제로가 봐주는것도 아니었다. 누군가를 지킨다는 마음가짐 하나로, 벤하르트는 그 자리를 사수하고 있었다.
초승달의 검기는 일섬 '수'로 막아내었고 만월참은 피하면서 벤하르트는 백뢰로 기회를 만들었다. 쉽사리 약점을 내어줄 제로가 아니었고, 쉽사리 지키는것을 포기할 벤하르트가 아니었고, 벤하르트는 미숙하나마 제로가 사용하는 검술과 비슷한 쪽을 취하고 있었기 때문에 서로는 일격을 적중할수 있으면서도 그 한발자국을 내딛지 못했다.
100여합. 제로의 몸도 만신창이였지만, 승부에 있어 제로가 유리하게 이끌어 간지 벌써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벤하르트는 아직까지도 제로를 상대해나가고 있었다. 레니아보다도 훨씬 더 검술에 눈이 뜨인 버벨이 보기에 그것은 기적과도 다름 없었다. 승부가 났어도 옛날에 났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미 몸 자체의 수준을 따져도 벤하르트는 확실하게 제로보다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버벨은 질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어떻게... 저럴수가 있지?"
- 작가의말
비하인드 스토리가 뚝뚝 묻어져 나오는 화였습니다만,
이전에 말했듯 엔쿠라스에서는 그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 않을겁니다; 숨김의 맛으로... 남겨 둘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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