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398화-세프로(3)
레니아는 기란을 데리고 벤하르트에게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기란을 가르쳤다. 하지만 그녀가 하는것은 검술 수행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둘이서 무어라 쑥덕 거리기만 할뿐 정작 검을 휘두르는것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몇분을 지났을까 마지막에나 벤하르트가 가르쳐준 검술을 몇번 휘둘러본것이 그들이 한 연습의 전부였다.
레니아는 의기양양한 얼굴로 벤하르트에게 걸어왔고, 기란은 그 밝은 성격에도 조금 불안한 듯한 얼굴을 지어 보였다.
"다 됐어."
"뭐가 다 되었다는 거야. 네가 가르친건 휘두르는 움직임 뿐이잖아."
"그렇지도 않아. 자세한것은 이녀석에게 몸소 물어보도록 해."
레니아는 바닥에 떨어져 있던 작대를 들어 벤하르트에게 슬쩍 던졌다. 능숙하게 받아든 벤하르트는 의아한 얼굴로 기란을 바라보았지만, 기란도 불안에 떠는게 뭔가를 가르쳤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벤. 이제부터 네가 아까 하던데로 가르쳐도 좋아."
벤하르트는 그녀가 하는 말이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했지만, 최대한 힘을 절제하고 단순하게 기란을 공격했다. 경쾌한 나뭇가지의 타격음과 함께 기란은 멋드러지게 완벽한 자세로 벤하르트의 공격을 막아내었다.
순간 놀란 벤하르트에게 기란은 재빠르게 그의 손목을 공격했지만, 워낙에 둘의 실력은 차이가 나는 지라 성공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그 뒤로 벤하르트는 서서히 속도를 늘려가면서 기란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아까와는 사뭇 다르게 기란은 나름대로 그의 공격을 잘 막을수 있었다.
'어떻게 된거지?'
벤하르트에게는 놀이 수준이었지만, 딴에는 제법 훈련다운 훈련이 되어 끝나고 난 기란의 온몸은 땀으로 적셔져 있었다. 벤하르트도 놀랐지만, 그보다 놀란것은 기란쪽인듯 했다. 설마하니 자신이 이정도까지 할수 있을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까닭이었다.
"어때? 너 자신도 꽤 쓸만하지?"
숨을 헐떡이면서 기란은 미소를 띄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몸을 움직여본건 정말 처음인것 같네요. 정말 후련한 기분입니다. 또 부탁드려도 될까요?"
"마을에 머무는 한은 이쪽도 신세를 지게 될테니까,"
"네 고맙습니다. 벤하르트형 레니아 누나."
한바탕 몸을 움직이고 난 후 여관방에서 벤하르트는 레니아에게 물었다.
"어떻게 된거야?"
"뭐가?"
"어떻게 기란을 그렇게까지 성장시킬수 있었던 거냐고,"
"기란은 몸치일까 아닐까?"
"뭐?"
벤하르트는 갑작스럽고 뜬금없는 그녀의 질문에 멍하니 생각하다가 말했다.
"굳이 따지자면 몸치일것 같은데, 평균보다 조금 못한 정도? 기란에게는 미안하지만, 마지막 대련때도 힘을 굉장히 많이 빼주었기도 하고,"
"내 생각에도 그래. 하지만 재능이 없으면 뛰어난 검사가 될수 없는건가? 하면 또 그건 아니거든. 절대로 아니야. 어떻게 노력하느냐에 따라 다르지. 기란은 일반적으로 보면 재능이 뛰어나다고는 할수 없을지도 몰라. 보통의 일반인보다 못할수도 있지만, 그녀석은 대신 머리가 좋아."
"머리가 좋다고? 그런데 그게 검술과 무슨 관련이 있는거지?"
머리와 검술 언뜻 들어보기에는 별 차이가 있어보이지는 않았다.
"몸이 느끼는 감각에 대해 행동으로 따라오지는 못하지만 그녀석은 생각하는것에 있어서는 남들보다 더 빠르거든. 그래서 이렇게 말했지. 아까 당했던 것에 대해서 생각해서 미리 대응할수 있도록 머릿속으로 생각하라고, 다른사람이 감각적으로 들어올리고 행동하는것을 기란은 생각으로 정리해서 움직이는거야. 그렇게 해도 그정도의 움직임을 낼수 있는것은 머리가 굉장히 좋기 때문이지. 천재라기 보다는 회전력 성능이 좋은 꼴이야."
"그런데,, 그것 뿐이야? 생각을 하고 행동하라는 그거?"
레니아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래 그것 뿐이야. 그것만으로 충분해. 어차피 네가 훈련한것은 애들 수준의 검술이잖아? 그것만으로도 보통의 연습할수 있는 수준으로 올리기에는 충분할정도로 기란은 머리가 좋아. 좋다 좋다 하지만, 막말로 너희들이 깐깐하다고 여기는 내가 좋다고 말할정도라면 얼마나 좋을것 같아?"
"그래. 그나저나 레니아 용케도 그런걸 알아내었네. 이번건 확실히 내 패배야."
벤하르트는 정말 감탄했다는 듯이 그녀에게 말했다.
"감상이 그것뿐이면 곤란해."
"또 뭐가 남은건데?"
"여기서 벤 너와 나의 차이가 드러난거야. 벤 너는 분명히 남을 위하려고 생각하고는 있지만, 결국 그건 자기 자신을 위한 행동일 뿐이야. 자기 자신에게 아픔을 주지 않기 위해서 믿음으로 그 생각을 위선 시키는 거지. 실제로 너는 남을 무시하고도 평생을 살아올수 있었던 녀석이잖아? 그 반대라고 해도 결국 그건 타인을 위하는게 아니라 그 행동은 너를 위하는 거였다는 거야."
"그거야.."
"위선적이면서, 결국은 이기적이라고도 할수 있지. 그게 거짓은 아니겠지만, 그 행동 자체가 숭고하다고는 할수 없어. 왜냐면 너는 언제든지 내가 위기에 처하면 네가 죽으려고 할테니까, 물론 나를 위해서가 아니야. 그건 너 자신을 위해서.. 겠지."
"....."
"이전에는 철저한 무시과 의심 이후에는 철저한 믿음과 독선. 어느쪽의 선악을 따질 필요도 없이 그 본질은 같은거야. 결국. 비유하자면 남에 대한 심정을 이해할수는 있어도, 그것을 알려고 노력하지는 않는것정도가 되려나.."
무시에 이은 의심은 그저 자신의 지레짐작으로 위기를 회피하려는 노력 철저한 믿음을 기반으로한 자기희생의 독선은 자신의 이기주의적 사고를 반영한 좋은쪽으로써의 결과. 급격할정도의 인식변화도 결국 둘다 벤하르트 본인이었다.
벤하르트는 레니아의 말에 무어라 말하지 못했다.
"하지만, 벤 너는 그렇게 살아도 좋아."
"뭐?"
레니아가 말한 의외의 말에 벤하르트는 놀라면서 반문했다.
"말은 이렇게 해도 쉽게 고쳐질리도 없고, 네가 남에 대해서 생각하는것도 익히 알고 있으니까, 이쪽으로써의 생각은 내가 감당해줄게. 너는 네 방식대로 살라 이말이야."
"아니 그런식으로 말해도.."
사실 레니아가 말한것이 틀린말도 아니었고, 분명 자신이 잘하는것이 아니라는것 정도는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내심 찜찜한 기분을 감출수는 없었다.
"그럼 고쳐줄래? 아까 말한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나를 배려해준다고 약속이라도 해줄수 있어?"
"글세.."
즉답은 내릴수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그런 상황이라면 아마도 자신은 움직여 버릴것이 눈에 선하기 때문이었다. 되려 레니아가 그런 이야기를 선뜻 꺼내는것 자체가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결국 이런 문제야.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 하는 이야기가 되어 버릴걸? 그러니까 네가 모자란것은 내가 보조해줄게."
"네가 모자란것은 내가 보조하고?"
잘 대답했다고 생각했으나 정작 그 말을 들은 레니아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내가 모자란게 뭐가 있어? 이런 세세한것까지 신경써주는 동료는 많지 않다고,"
'그거야 잘난 부분이지만, 아마 찾아보면 모자란 점들도 수두룩할걸..'
순간 스치고 지나간 생각은 생각으로 그쳤다.
"그런데, 굳이 이런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었던 거야? 이전에도 몇번인가 툭툭 나왔던 이야기가 아니었나 이건?"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제대로 집어줘서 고마워. 이게 중요하지. 벤. 너는 그대로 살아도 좋지만, 그렇다는 자각은 반드시 하고 있어야 해. 네가 남을 위하는건 결국 자신을 위한 행동일 뿐이라는것에 대한 자각 말야."
"자각.."
"그 마음 자체가 남을 위한다는건 확실하지만, 그 진심이 근본적으로는 너자신을 위한다는것을 알게 하고자 오늘의 일을 꺼낸거야."
"거창하구나.. 이런걸 가지고."
레니아가 진지하게 이야기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냥 지나가듯 말할수는 없었지만, 벤하르트는 그렇게까지 이 일에 대해 신경을 쓰지는 않았다.
"이런거라니 이건 중요한거야. 잘 새겨들어두라고.."
레니아는 꼼꼼한 얼굴로 몇번이고 벤하르트에게 다짐을 듣고 나서야 만족스러운 얼굴로 여가시간을 보냈다.
기란의 머리가 좋은것이 정말 마음에 들었는지, 레니아는 검술을 배우려 하는 기란에게 반 강제적으로 자신의 마법도 가르쳐 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강제적으로 배우다가 얼마정도가 지나자 기란은 검술보다 마법을 더 배우고자 해서 벤하르트는 약간의 서운함 마저 느낄 정도였다.
세프로에 살아 벤하르트와 레니아를 만난것 때문에 기란은 우연하게 총아가 되었다.
기란을 수일간 가르치고 그들은 닐스 프레이머와 관계가 있다고 하는 문파로 향했다.
"문파라는곳은 왜 언제나 산을 올라야 하는걸까."
그다지 힘들지는 않았지만 투덜거리면서 레니아는 산을 올랐다.
"그러고 보면 우리 연철장도 산쪽에 위치하고 있었지. 쌀을 오락가락 했을 그때가 떠오르는걸."
"루란을 만나서 직접 지원했다는 그일 말이야?"
앙칼지게 레니아가 꼬집자 벤하르트는 툴툴 거리면서 말했다.
"남의 추억을 여자를 기억하는 꼴로 변질시키지 말라고.."
한발 한발을 걸을때마다 벤하르트의 심장은 두근거렸다. 생각해보면 루크조차도 자신이 연철장에서 사라졌을때의 일을 말해주지 않았기에, 닐스가 어떤 일을 저지른가 보다도 먼저, 과거 자신이 사라졌을때 닐스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듣는것도 떨리는 일이었다.
'작은것부터 큰일까지 어느것 하나 쉬운일이 없구나.'
산 계단을 올라 도착한 허름한 문파의 그 이름은..
"연철장..?"
- 작가의말
오늘은 후닥후닥 쓸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네요. 오랜만에 주욱 써내린듯해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다음 화에 뵙도록 해요 ^^;
루란.. 기억 하시려나요? 문맥으로도 충분히 알수 있을법하지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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