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357화-도로호우이(11)
"레니아 정말 이대로 갈꺼야?"
집으로 들어가는 브레시를 내려다 보면서 벤하르트가 말했다.
"물론 번복은 없어."
"너의 확신이나 계략 확률을 못믿는것은 아니지만, 만에 하나라는 가능성은 분명히 있어."
"만에 하나? 아니야 벤. 열에 하나나 다섯에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브레시는 이번 싸움에서 충분할 정도로 심하게 다칠수 있어. 확신 같은건 그렇게 자주 내릴수 있는게 아니지."
"뭐! 그럼 어째서 내일 있는 곳에 브레시를 데리고 가려는거야!"
"그녀석이 결정했으니까,"
레니아는 브레시의 집으로 시선을 돌렸다.
"사람은 누군가의 의지로 조종할수가 없어. 강제로 못가게 하는것도 우리들이라면 가능하겠지. 하지만, 그게 브레시를 위한 최선의 답일까?"
"이게 최선의 답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데,"
"최선의 답 따위는 어디에도 없다는거지. 그렇다면, 브레시가 원하는대로 해주는것도 나쁘지 않아. 그래서 죽는다고 해도 불구가 된다고 해도 결국은 자신이 결정한 일일테니까, 너라고 해도 그리고 나라고 해도 말이지."
그것은 전날 벤하르트의 행동에 대한 답이나 다름 없었다.
"죽지야 않을테니까, 이 경험이 쓴맛의 후회가 되던 단맛의 추억이 되던, 스스로 도박을 하게 하는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 말에는 답하지 않았다.
"이 도시는 조용하다."
그는 아름다움을 머금고 그 빛이 점차 퇴색되어 가는것처럼 죽어가는 도시같다고 생각했다.
"그래."
전쟁의 폐혜라고 해도 좋지만, 그것뿐만은 아닐것이다.
"너는 감정이입을 잘하니까, '우리와는' 아무 관련 없는 이 도시마저도 생각하게 되겠지. 실컷.. 감정이입을 하도록 해. 벤. 그게 내일 승리의 원동력이 될수 있을테니까,"
다음날 저녁까지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선전포고를 한것은 벤하르트의 일행. 결국 싸움을 거는것도 그 싸움을 받는것도 선공은 벤하르트가 맡아야 할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브레시 괜찮겠어?"
벤하르트의 물음에 브레시는 밝게 대답했다.
"물론이죠."
한없이 가벼운 이 소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벤하르트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가 아닌 레니아마저도 그녀의 생각을 알지는 못했다. 철없어 보이면서도 그만큼이나 영리했다. 벤하르트는 늘 스스로가 거짓말을 잘한다고 말하고 다녔지만, 그녀에 비할수 있을까.. 공포에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생각하는 이성을 억눌러 천연덕스럽게 생각하며 그녀는 그곳에 서 있었다. 그녀는 영웅기의 일행이 되고 싶었던것이 아니었다.
"시간이야."
"시작인가."
"그런가보군요."
각자의 목적은 전혀 다르다. 벤하르트와 레니아는 라군델에 가기 위해서, 파리스는 자신이 원하던 것을 느끼기위해 히얄은 브레시를 지키기위해 그리고 브레시는 그 용병이라는것을 '몸소 느끼기위해' 참가했다.
"개전이다."
벤하르트와 레니아 파리스는 정면에서 싸우는 역할을 그리고 브레시는 보조로 그런 브레시를 보조하는것이 히얄의 역할이었다. 히얄이라는 전력을 너무 터무니 없는 곳에 낭비했다고 다들 생각했지만, 레니아만은 달랐다. 만에 하나가 아닌 20% 30% 그이상으로 상할수 있다는 그녀의 말의 진의는 그것이었다.
"후우."
가로막고 있는 십수명의 용병들은 바로 멀직이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나타난것은 어제 파리스와 한바탕 했던 셋과 처음보는 셋이었다.
"바보같은. 어째서 너희들이 이곳에 있는것이냐?"
파리스는 당황해하며 말했다.
"네가 이곳에 있는것과 비교하면 답이 되지 않나. 파리스."
"척스... 그리고 테서스. 한명은 스래던 인가."
"만나서 반가워 호크 용병단. 세피아 용병단 소속에 있는 테서스 라고 해. 이 묵뚝뚝 하게 생긴녀석은 그 캡틴이지."
금발과 은갑의 조화를 이루며 테서스가 말했다.
"쳇.. 어이 대장. 이 게임은 우리의 패배가 아닐까?"
세피아 용병단의 이름은 벤하르트도 몇번 들었기에 그 수준을 짐작할수 있었지만, 파리스가 치를 떨 정도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게 강합니까?"
"일대일로는 나도 당해내기 어려워. 하물며 여섯에 주위의 용병들 완전히 당했군."
"포기하고 싶다면 나가도 좋아. 단 돈은 돌려줘야겠지만,"
레니아의 권유에 파리스는 웃음반 침울함반을 뒤섞은 미묘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건 곤란해. 용병이라는 녀석들은 돈에 환장을 하거든."
그렇게 말하며 그는 검은 연기를 흩날리며 돌진했다. 도로호우이의 최후 개전이 시작된 것이다.
'내게 있어서 벤하르트라는 녀석은 죽여야할 대상이었을뿐이었는데,'
지금도 좋냐고 묻는다면 그다지 좋지는 않다. 나쁘냐고 묻는다면 나쁘지 않다. 그저 그렇다. 밍숭맹숭하다. 하지만 이 관계만큼은 확실하게 좋다 할수 있었다. 리드에게서 명을 받고 날뛰는 그때로 돌아간듯한 기분이었기에..
'이맛에 용병을 그만둘수가 없지.'
그는 끊임없이 싸운다.
그의 앞을 기스과 사고스가 가로막았다.
"둘씩이나 대령해주다니 이건 영광인데,"
"그런 기술을 숨기고 있었을줄은 몰랐다. 전력으로 상대하도록 하지."
"이쪽도."
남녀 한쌍의 공격에 파리스는 무음이동으로 대처했다. 미세하게 개개인의 실력은 파리스가 위였지만, 이대일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벤. 나는 너를 믿고 있어."
"갑자기 무슨 말이야?"
"너도 나를 믿어줘."
"어. 믿고 있어."
벤하르트는 백광을 휘날리며 용맹하게 용병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일시에 전투가 시작되었다. 용병 셋정도를 제한 나머지 전부와 벤하르트 레니아의 대결이었다.
"무모하군. 이래서야 도로호우이를.."
척스는 말을 삼켰다. 예리한 공격때문에 방어를 하지 않을수 없었던 것이다. 그 사이를 비집고 벤하르트가 공격하자 완벽하게 비어있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그 빈공간은 테서스가 간신히 메워주었다.
"뭐하는거야?"
"아니."
그 짧은 문답동안 벤하르트가 기절시킨 용병수가 다섯이었다. 헤럴와 스래던이 맡서고 있음에도 상처가 늘어나는건 용병들 쪽이었다.
'과연 그런건가.'
파리스는 그의 특기를 어김없이 발휘하면서도 서서히 밀리고 있었다. 온몸에 상처 아닌곳이 없을 정도였지만, 아직도 버티고 있는것은 그가 익히고 있는 기술의 특성 덕이었다. 취향에 따라 다르긴 해도 용병들은 괴롭히는것보다 실용성을 더 선호하기 때문에 어줍잖게 괴롭히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용병은 손해를 보는 일에는 나서지 않는게 아니었나?"
약간 여유를 찾은듯 사고스가 물었다. 파리스의 행동은 그에게는 의문밖에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네 용병론이겠지 그건."
"일반적인 용병론이다."
"틀려. 용병은 그저,, 대가를 받고 싸울뿐이다. 나머지는 그저 시시한 부가적인 것들에 지나지 않아."
"그런가. 확실히 말은 맞을지도 모르겠군. 하지만 그것을 선택하는것은 어디까지나 용병이다."
단검과 갈고리검이 교차했다.
"물론. 그리고 나는 이곳을 선택했을 뿐이다."
그때 미숙한 공격이 그의 옆을 노리고 들어왔다. 엉겁결에 사고스는 검을 휘둘렀지만, 그 검이 휘둘러 지기도 전에 손이 저려왔다.
"양쪽 꼬마가 겁도 없구만,"
"그런가요?"
웃는 브레시와
"저는 꼬마가 아닙니다."
무표정한 히얄이 그곳에 서 있었다.
지키는 쪽이라면 전력외라고 생각했지만 레니아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 지킬것이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쓰임새는 완전히 달라질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었다. 브레시의 속내를 읽지는 못한 것이었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으로 브레시의 행동을 예상할수는 있었다.
"분명 상대하고 있었던 녀석들은."
"이미 기절했습니다."
사고스는 히얄을 상대로 갈고리 검을 휘둘렀다. 세갈래로 갈라진 검은 기세좋게 히얄에게 쇄도했고, 히얄은 그 검을 피하지 않고 받아내었다. 피가 떨어져도 피하지는 않았다. 그의 뒤에는 브레시가 서 있었으니까,
"용병의 앞에서 약점을 달고 오다니,"
"약점? 글세요. 그렇게 부를수도 있겠죠. 하지만, 약점도 이용하면 강점이 될수 있는겁니다."
사고스는 검을 든 손을 움직였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안움직이는것은 아니었으나, 엄청날정도로 힘이 빠져있었다.
"첫 공격에 마비가 오기 시작했겠지요. 아직 한팔뿐이지만, 그걸로 충분합니다."
히얄은 자신의 몸에 박혀 있는 검에 손을 가져가 손쉽게 갈고리 검을 뺏어 들어 챙겨 쥐었다. 도리어 공수가 전환된 사고스는 왼손으로 비상시 사용하는 단검을 들어 히얄을 상대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브레시는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이곳에 모여있는 용병들은 하나같이 브레시보다는 격이 월등히 위인 자들이었다. 그들중 하나는 브레시에게 달려들어 일격을 꽃으려 했다.
"아."
"크윽..."
"히얄!"
"어딜 보는거냐?"
기스의 일성과 함께 쇄도하는 공격에 파리스는 더 보지 못하고 공격에 집중했다. 히얄은 브레시를 대신해서 검을 맞아준것이다.
"하하.. 내가 뭘하고 있는건지. 빨리 사라져주세요. 역시나 걸림돌이니까,"
"스승님 그래도 저는 가지 않아요."
히얄은 있는 힘을 끌어모아 용병을 베고 사고스의 단검을 막아내었다.
"그 상처로 나를 이길수 있을까?"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 와는 반대겠군요."
'죽이지 않으면 지키지 못한다고, 어이없게 생각합니다.'
"언제든지 저는 당신을 이길수 있습니다. 단 방법의 문제일 뿐이죠."
육참골단. 살을 내어주고 뼈를 친다. 레니아도 써먹었던 그 한수. 하지만 그 위치만은 레니아의 한팔과는 비할수 없었다. 심장을 약간 빚긴곳. 반 강제적으로 내몬 약점과 그 약점을 문 먹이에 히얄은 일격을 넣었다.
"끄릅"
비명다운 비명도 아닌 너저분하게 사고스는 쓰러져 내렸다.
"스승님."
"저는 당신의 아버지를 죽인 원수에요. 스승따위 될수 없는 존재입니다."
"알고 있어요. 처음부터 들었거든요."
히얄은 놀랄 기력도 없이 브레시를 바라보았다. 곧 죽을것 같은 자신의 모습에 그녀는 걱정 어린 시선과 또 다른 시선을 보이고 있었다. 기대와도 비슷한 느낌의..
바쁜 아버지. 놀지 못했던 어린시절. 그리고 아직 철이 들기도 전에 일어난 아버지의 죽음. 원수가 무엇인가에 대한 사실은 철이 들어서야 알수 있었다.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면, 철이 들기 전에 히얄을 만났다는것이었을까. 더없을 사제관계는 깨져도 이상할게 없었건만, 깨지지 않았다. 그녀는 이성과 감성의 사이에서 혼란한 것이다. 때문에 그녀는 연기했다. 아무것도 못들은것처럼, 히얄이 거부해도, 자신은 모르는것처럼 천연덕 스럽게, 그를 대하려 했다.
그리고 그녀는 용병들에 대한 자기 합리화를 무의식중에 품게 되었다. 사정이 있었을것이다. 라는 것은 용병에 대한 이해를 촉구했고, 원래 밝았던 성격은 밝아야 하지 않아야 할때도 밝게 행동했다. 레니아가 자신의 칭찬에도 그녀를 껄끄럽게 여겼던 이유는 거기에 있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히얄이 아버지를 죽인것은 무언가 이유가 있을거라고, 그렇게 합리화 시켜왔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정말 비틀린 합리화라 할수 있었다.
"스승님은 저를 싫어하세요?"
"물론입니다."
마음에도 없는 말을 히얄은 당연하다는듯이 입밖으로 꺼냈다.
"용병이란, 이다지도 명령에 종사하는 것이네요. 명령을 받는다면 어쩔수 없다고, 곧죽어도 명령을 행한다고,,"
아무리 명령이라고 해도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은채로 누군가를 지키는 용병은 흔치 않다는것을 그녀는 익히 알고 있었다. 하물며 '그것이 아무런 제약도 없는 그저 자신을 지키기 위한 용병'임에야 더할나위가 있으랴. 그녀가 보고싶었던것은 자신의 모순된 생각을 입증시켜줄 그 한 장면이었다.
"그말대로군요."
'이사람은 아버지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었어도, 죽인것이겠지. 그런 잔혹한 짓을 했는데도,, 나는 왜... 이사람을 원수라고 생각할수 없을까.'
그것이 얼마나 큰 죄악인지는 그녀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어머니가 좋다면 필시 시간이 주어졌다면 아버지도 좋았을터, 그것을 몰랐다고는 하나 자신의 감정이 틀렸다는것에 대한 자각은 분명히 있었다.
"스승님. 저는 원수를 갚을줄도 그런 감정도 몰라요. 죽음에는 죽음이라는 말이 있지만, 그런 어려운말도 몰라요. 원수에 대한 죗값은 제가 받아가도 되겠지요?"
"무슨.."
"용병은 곧 죽어도 명령을 듣는다고 했을테니까, '죽는다고 해도' 들어주세요."
히얄의 수호로 인해 상처 하나 없는 그녀는 벤하르트와 레니아가 있는 전장터로 몸을 날렸다.
"브레시!!"
=========================
반전을 집어넣고자 한것인데, 반전이 아니라, 뜬금포가 되어버린 느낌입니다. (--);;;;
Comment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