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화 : 추악한 추억(3)
강남대로 변에 위치한 50층짜리 빌딩 꼭대기 층, 전망이 가장 좋은 그곳에서 아래를 내다보며 쌍화차를 홀짝거리던 턱수염의 사내가 등 뒤에 도열 해있는 날렵해 보이는 사내 세 명에게 입을 열었다.
“우리가 이 건물 차지하려고 얼마나 고생들 했니? 너거들이 진짜 고생 많았데이.”
턱수염의 남자는 마치 감회가 새롭다는 듯이 자신의 턱을 어루만지고는 눈을 살짝 감아서 과거의 여운을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표정을 바로잡고 세 명의 사내들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하고는 말을 시작했다.
“우리 회사 이름이 뭐꼬?”
맨 앞 오른쪽 사내가 나직하지만 중후한 음성으로 답했다.
“청소용역 크리너! 입니다.”
“야야! 발음 잘 해라! 크리너 하면 바로 해결사로 어감이 연결된다 아이가. 그니까, 클린 너! 이렇게 딱 끊어서 해줘야 깨끗한 청소 회사가 나를 위해 청소해주는구나 하는 느낌이 있잖아.”
“알겠습니다. 클린 너!”
좌중의 사내들이 동시에 대답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라고 어제 그거는 어찌 처리했냐?”
“네, 출혈이 좀 많아서 그렇지 통나무로 쓰는 것에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넘겼습니다.”
“인적사항은?”
“신분증과 핸드폰을 조사했는데 한국대 대학생이었습니다. 가족은 할머니와 같이 살고 부모는 모두 사망한 것으로 확인 되었습니다.”
“집안이나 주변은?”
“크게 권력이나 정계쪽 연줄은 전혀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경제상황도 생활보호대상자라서 뭐 문제 요소는 없어 보입니다.”
“아이다. 요새 실종 신고가 많다 캐서, 경찰 가들도 신경을 많이 쓴다 안카나? 그니까 느거들이 좀더 세심하게 신경 쓰고, 알았제?”
“알겠습니다. 대표님!”
대표라고 불린 사내는 다시 자신의 턱수염을 어루만지며 서류를 집어들더니 왼편의 사내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가락으로 그를 불렀다.
그가 무슨 말인지 경청하기 위해 고개를 숙여 대표에게 머리를 가까이 갖다 대자 턱수염의 사내는 가차 없이 그 사람의 머리통을 들고 있던 서류째 주먹으로 두들겨 패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퍼~억! 퍽, 퍼벅!’
그런데 맞고 있는 녀석은 맞으면서도 신음이나 비명조차 지르지 않고 고스란히 맞고만 있었고 그런 분위기라면 웬만한 직장인이라도 안절부절못하거나 주눅 들기 마련일 텐데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태연하게 폭행이 멈추길 기다리는 것이었다.
턱수염 사내의 일방적인 주먹질이 멈추자 두드려 맞은 사내는 자신의 옷매무새를 바로 한 뒤,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턱수염 사내가 담배를 꺼내물자 불을 붙여온다. 그는 담배를 깊게 한 모금 폐부 깊숙이 들여 마신뒤 그에게 말을 했다.
“니! 와 맞은 줄 아나?”
“모르겠습니다. 대표님!”
“모르면 알려주께! 내가 회사에서 일반 직원들은 건들지 말라했제. 기억나나 안나나?”
사내는 대표의 말이 무엇인지 순간적으로 생각이 났는지 놀라며 즉시 자리에서 내려와 무릎을 꿇는 것이었다.
“죄송합니다. 대표님! 다시는 그런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니! 이번이 두 번째다. 한 번만 더 걸리면 그때는 알제. 쥑이삔다.”
그의 말이 곧 법인 곳이었다. 사내는 머리를 바닥에 처박으며 맹세를 해댔다. 그러자 옆의 두 녀석들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턱수염에게 크게 고개를 숙이며 같은 대답을 복창하였다.
“명심하겠습니다. 대표님!”
그제서야 턱수염은 그들에게 앉으라는 손을 까닥여 주었고 좌중은 평안을 되찾았다.
“우리가 회사에서 일반용역부서하고 너거들 특수용역부서하고 구분해 놓은 게 다 이유가 있는기라. 그런데 이노무 자슥이 지 힘좀 쓴다고 알바알라들하고 여직원한테 갑질을 해? 내가 다른 건 몰라도 니들이 술빨고 기집질 하는거는 얼마든지 룸빵 가라고 했제. 단디해라 단디!”
턱수염은 호흡을 가다듬고 난 후말을 이엇다.
“우리가 올해 매출이 얼마나 되노?”
“일반 부서와 비교해서 대략 3배 정도 규모가 더 커졌습니다.”
“와이구마 우리 없으면 우찌 되겠노 그자?”
특수용역을 부탁하는 고객이 많다는 사실 자체가 은밀한 뒤처리를 부탁하는 일이 많다는 뜻이고 이는 엄청난 보수의 용역비를 부담하는 고객이 늘어나고 있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일전에 표사장이 의뢰한 껀은 와 아직 보고가 안 올라오노?”
“그게 두 여자에 대한 정보는 어차피 표사장 용역업체 이력카드를 받아 확인 했지만 장태산이라는 남자 놈은 강남서에 조회부탁을 했는데 인적사항 자체가 아예 대외비로 나왔다고 합니다.”
“뭐라? 대외비?”
“네! 그럴 경우는 대게 국가 기관이나 관련 단체에서 락을 걸어놓는데 아무래도 특작대 쪽이 아닌가 하면서 조심하라고 하던데요.”
“우리가? 니 지금 장난하나? 우리더러 조심하라고 와 내 살다살다 ···”
“아닙니다. 대표님! 경찰서 강경감 말이 그렇다는 거지 우리 상대나 될까 싶습니다.”
“알았다. 근데 글마 집 주소도 모리나?”
“지금 동선 파악 끝냈고 최근 출몰지역 확인이 되었기에이번주면 완전히 알아낼 수 있습니다.”
“알것다. 그라몬 그 두 년들 먼저 잡아 오이라.”
“오늘 당장 말입니까?”
“봐라! 오늘이 올해 마지막 날 아이가. 내일부터 신년이다. 신년! 다시 매출 올려야 할 꺼 아이가?”
“넵! 알겠습니다.”
세 사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 큰절을 하고 조용히 방을 빠져나갔다.
턱수염은 탁자 위에 흩어져 있던 서류에서 사진을 하나 집어 들었다. 그 속에서는 환한 미소의 모녀가 마치 턱수염 자신을 보고 웃는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아름다운 미소였기에 자기도 모르게 웃고 있었다.
“모녀라고 했겠다. 재밌겠네! 넘기기 전에 먼저 보지 뭐, 그런다고 표나 나겠나?”
턱수염은 다시 사진을 바라보며 혼잣말 끝에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
서울 흑석동 노들길 인근의 버스 정류장에 막 도착한 버스에서 내려선 여학생 한 명!
긴 생머리에 단정한 헤어밴드로 살짝 묶어 더욱 세련되어 보이는 흑발이 너무도 잘 어울리는 그녀는 바로 조아라였다.
연예인 쌈 싸 먹을 외모를 마구 발산하는 그녀의 등장으로 주위 남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
과잠을 걸쳐 풍성해 보이는 상의에 비해 늘씬하게 뻗은 다리맵시가 돋보이는 스키니 진이 그녀의 매력을 더욱 빛나게 하는 듯 보였다.
“엄마! 응 이제 막 버스에서 내렸어. 알바 다 끝났으니 엄마랑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나 지금 버스 정류장. 알았어. 금방 갈게.”
그녀가 기쁜 발걸음을 옮기며 길을 걷자 맞은편에 서 있던 봉고차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은 의외로 사람을 들뜨게 만드는 마법의 날인 모양이었다. 의외로 이 동네가 사람이 많이 없었으나 오늘은 유난히 많아 보여 조아라는 왠지 더 흥이 난 마냥 콧노래를 부르며 사람들 사이를 지나가고 있었다.
비탈길이 시작되는 골목 어귀에서 조아라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는 마치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고 주인을 마중 나가는 모습처럼 신나서 뛰어가는 것이었다.
“언제부터 나와 있었어? 추운데.”
“너 오면 바로 가려고 기다렸지. 얼른 가자.”
모녀는 정답게 팔짱을 끼고 다시 버스정류장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봉고차 조수석의 한 사내가 동료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사람이 너무 많아서 안 돼! 어디로 가는지 동선 파악하고 어두워지면 그때 작업하자.”
그들은 청소용역 클린 너!의 특수용역부서의 정예들이었다.
조아라 모녀는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시청으로 가서 광장에서 벌어지는 행사를 보고, 종로에서 저녁을 먹고, 을지로에서 차를 마시고, 종각에서 시행되는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려고 서서히 사람들이 모여드는 타종 행사장을 향하고 있었다.
특수용역부서의 한 사내는 가죽장갑을 낀 자신의 손을 비비며 혼잣말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시팔! 이럴 줄 알았으면 아까 작업하는 건데, 몇 시간째 뭐 하는 거야. 젠장!”
비를 맞은 중처럼 혼자 계속 중얼거리니 주변의 사람들이 그를 피하자 그 사내의 주변에 원이 만들어졌다. 그는 서둘러 다른 곳으로 숨어 들어가 버렸다.
제야의 종의 타종 행사를 보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은 저마다의 사연과 설렘과 기쁨과 각오를 당은 표정으로 사방팔방에서 모여들었다. 조아라 모녀도 그런 사람들 중의 한 무리였다.
지난해의 감사와 다가올 새해에 대한 서로의 행복을 기원하며 타종 행사를 기다리며 즐기던 두 사람에게 방송국 카메라가 불쑥 들어오더니 잠깐 인터뷰를 부탁한다며 카메라를 돌려 대는 것이었다.
아마도 생방송이라 양해를 구하기보다 시민들의 생생한 반응을 담으려고 그랬나보다 하고 이해하는 차원에서 모녀는 간단한 인사와 시청자들에게 새해의 만복을 빌어주었다.
방송에 나온 그녀와 모친의 미모가 실물도 아름다웠지만, 화면에서는 그야말로 대폭발을 일으키고 있었다.
‘제야의 종 미녀’, ‘종각녀’, ‘엘프모녀’, ‘천상선녀들’, ‘신급미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타이틀이 모녀의 아름다움을 전국적으로 전하고 있었다.
마침 제야의 종 행사를 티브이로 시청 중이던 장태산도 조아라 모녀를 보게 되어 반가웠다.
“와! 화면으로 보니 더 이쁘다. 근데 반갑고도 신기하네. 내가 아는 사람이 TV에 나오니 말이야. ”
자신도 모르게 흘러나온 진심이었다.
인터뷰가 끝나고 화면이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광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을 비추느라 카메라가 물러서며 화면 뒤쪽에서 두 모녀를 매섭게 바라보던 한 사내가 눈에 비치었다.
“어라, 즐기지 못하는 이상한 놈이 있네?”
장태산은 자신의 시계를 쳐다보았다. 아직 제야의 종이 울리려면 십여 분은 족히 더 걸리기에 서둘러 겉옷을 들고는 문을 나섰다.
차를 가져갈까 하다 주차도 쉽지 않을터이니 그냥 자신의 장기를 발휘해야겠다며 옥상으로 올라갔다.
잠시 무릎을 구부리는 듯하더니 온몸을 일직선으로 펴면서 솟구치자 그의 몸이 밤하늘로 높이 날아올랐다. 그렇게 두세 번을 뛰어오르니 어느새 장태산은 한강을 건너고 있었다.
그가 집을 나선 지 오 분도 안 되어 남산타워를 뛰어 넘어가고 있었다.
이윽고 장태산이 종각 부근에 당도하여서 한 건물의 옥상에서 타종 행사를 기다리는 무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조아라 모녀를 힘들게 찾을 필요가 없었다. 여자가 남자의 등짝과 어깨를 강하게 때리는 장면이 자주 나타나는 장면 옆에는 그녀들이 있었다.
쯧쯔, 남자들이란······
재미있는 것은 그 모녀의 뒤쪽 부근에 아까 화면에 잡혔던 사내가 잡아가겠노라는 강렬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큰길가의 방송국 차량 사이에 시커먼 봉고와 그 앞에 정자세로 있는 사내가 눈빛으로 무언가 신호를 주고받는 것이 보였다.
‘이제 보니 우발적인 것이 아니구나.’
오기 잘 했다는 생각에 여유를 가지고 광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뎅!’
첫 타종음이 울리고 제야의 종소리가 계속해서 광장을 메우고 있었다.
장태산은 조용히 읊조렸다.
“해피 뉴 이어!”
- 작가의말
모두 건강하시고
행복 가득한 9월 되세요.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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