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 이봐! 갑질 어디까지 해봤니? (3)
“알겠습니다. 지금 당장 가지요. 네, 거기서 기다려 주세요.”
강철중부장은 서둘러 자신의 옷가지와 소지품을 챙겨 들고는 급히 이동하였다.
지난주였다. 온 집안이 난리가 났었다.
할머니가 실종되신 거였다. 일남 삼녀를 두신 할머니께서는 자기 아들인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강 부장 내외와 함께 3대가 사는 집이었다. 항상 가족들과 계셨기에 그리 큰 걱정은 없었다.
그런데 지난해 초부터 초기 치매 증상으로 병원치료를 받으시다 최근에 갑자기 악화가 되신 거였다. 그러다 일주일 전에 집주변에서 할머니가 사라지셨고 경찰에 실종신고를 접수하고 일가친척이 총동원되어 찾던 중이었다.
급하게 전단을 제작, 배포하는 수고를 계속해오던 중이었고 조금 전 제보 전화를 받은 것이었다. 찾는 할머니를 본 것 같으니 빨리 와보라고 했다.
그러면서 결정적으로 전화가 오기 직전에 전단에는 정보가 없는, 할머니가 끼고 계시던 실반지와 옥반지의 사진을 보내준 것이었다.
이동하던 중에 부모님께 연락드려 약속장소로 오시도록 했다.
강부장은 부모님이 생활전선에 뛰어드셔서 어릴적부터 할머니의 손에 자라난 전형적인 ‘그랜드마 보이’였다.
그래서인지 누구보다 할머니를 좋아하고 따랐었다. 치매라는 판정으로 몹시 속이 상해 술에 잔뜩 취해 친구들에게 꼬장부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했다.
경기도 포천의 구도로 초입에 다다르자 내비게이션의 안내음이 목적지가 근처에 있다는 알림을 읽어왔다.
강철중부장은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민가라고는 없었다. 다만, 숲 안쪽으로 들어가는 외길이 시작되는 바로 옆에 공터가 있었고 그곳에 SUV 한 대가 주차되어 있었다.
자신의 차가 도착하자 그 차량에서 사람이 내리며 전화기를 흔들었다. 그리고는 통화버튼을 누르는 듯 보였다.
곧이어 자신의 전화기로 전화가 걸려왔다. 번호가 아까 제보 전화로 만나기로 한 사람의 연락처가 맞았다.
전화기가 울리는 채로 차량에서 내려 그에게 다가갔다.
“전화 주신 분 맞으시죠?”
“네, 제가 전화 한 사람입니다.”
“제 할머니를 보셨다구요? 어디에서 보셨는지 ···, 혹시 지금 어디 계신지는 아시는지요?”
“네, 우선 이걸 보시죠.”
그가 건네온 스마트폰의 화면에 사진이 있었다. 할머니의 모습이 분명했다.
“긴가민가해서 찍어 두었습니다. 찾으시는 할머니 맞나요?”
“네, 제 할머니가 맞습니다.”
“아! 다행입니다. 찾으시는 분이 맞아서···.”
“어디에 계신지··· 알려주시면···.”
그가 잠시 강철중부장을 빤히 바라보더니 종이를 한 장 내밀었다.
그것은 아주 간단하게 작성된 합의서 양식이었다. 핵심적으로 어떠한 민형사상의 법적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항목이 포함되어 있었다.
“뭡니까?”
“할머니를 찾는데 든 수고비 정도로 해두죠!”
“제가 이 건에 대한 책임자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죠?”
“금천유통 법무팀장 장동수씨와 통화하셨죠? 연락처 전달 주셨고요. 그래서 알게 되었습니다.”
“과연 금천그룹 기조실이군요! 대단합니다.”
“뭐, 그런 칭찬보다 서로가 원하는 부분을 취하는게 좋지 않겠습니까?”
그러면서 그가 한 장의 프린트물을 더 내밀었다.
피해자 세 사람에 대한 피해보상으로 인쇄된 내용이었다.
그것은
보상금 인당 삼억 원,
치료비와 심리치료비 일체 전액 부담,
그리고 금천유통의 정직원으로 채용이었다.
아마도 자신들이 봤을 때는 꽤 그럴듯한 보상안이라 생각이 들었나 보다.
“이정도면 강철중부장님의 면도 깎이는 것은 아니실 듯합니다.”
“그런가요? 난, 왜 당신들이 엄청 야비하게 느껴지죠?”
“워, 워, 오해하지는 맙시다. 당신 할머니는 백방으로 우리의 네트워크를 동원해서 찾은 것이고, 보상안은 나름 성의를 담은 것인데···. 단지, 이 모든 정보를 전달하는 과정이 불편했다면 양해 바랍니다.”
강철중은 심각한 고민을 했다. 그사이 부모님께서도 도착하셔서 상황을 알게 되고는 더욱 당혹해하셨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아버지는 어떻게 하던 할머니를 찾고 싶은 자식 된 마음이 더 컷기에 자기 아들에게 부담 아닌 부담을 계속 가하고 있었다.
여기서 더 망설이거나 이끌려 갈 수 없다고 판단한 강철중 부장은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모두가 자신을 바라보는 가운데 전화를 걸어 통화하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본부장님! 저 강철중입니다.”
‘누가 넌 줄 몰라서 그래 왜?’
요즘 전화기는 성능이 좋은 것인지 상대방의 목소리가 큰 것인지는 몰라도 강철중의 통화 소리가 너무도 선명하게 잘 들렸다.
강철중은 조곤조곤하게 현재 자신의 처지와 자기가 맡은 역할, 그리고 손주로서 자식으로서 할머니를 찾아야 하는 마음마저 상세히 설명을 마치고 본부장님께 마지막으로 인사를 전했다.
“본부장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업무로 재단에 불편을 끼쳐드려 송구합니다. 사직서와 사물정리는 조만간에 가서 처리하겠습니다.”
강철중이 선택한 것은 강수였다.
재단에 잘못하지 않기 위해 퇴사하겠다는 것과 담당자로서 일에서 배제되겠다는 것을 행하고 보여준 것이었다.
협상의 주도권을 쥐었다고 생각했던 제보남은 인상을 심하게 구기고 있었다.
부모님께서도 놀람과 미안함이 묻어나는 표정을 하고 계셨다.
그때였다.
전화기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야! 너 지금 금천유통측 사람이랑 같이 있는거 맞지?’
“네? 네!”
‘지금 스피커 폰으로 바꿔!’
강철중이 본부장님의 말을 듣고 스피커 폰으로 바꿨을 때였다.
“강철중부장님! 안녕하십니까?”
강부장은 깜짝 놀랐다. 아니 장태산마스터님께서 왜 전화기로 인사를 다 해주시고···? 당신이 거기서 왜 나와요?
“조금 전에 본부장님과 미팅 중에 함께 내용을 들었습니다.”
“마스터님 죄송합니다. 제 문제는 제가 알아서 해야 하는데 본의 아니게 재단의 일에 누를 끼쳐드립니다.”
“아닙니다. 그런 생각 마시고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 잘 들으세요.”
“네, 경청하겠습니다.”
“강철중부장님! 할머니에 대해 제보를 해준다는 금천유통측 사람의 제안을 받아들이세요. 그리고 빨리 할머니를 찾으세요. 그리고 당신의 심적 부담을 덜어드리기 위해 사표는 받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만 약속해 주세요. 할머니의 정보를 받는 즉시 다시 이곳으로 전화해서 우리에게 알려줘야 합니다. 그게 조건입니다.”
다소 착찹하고 의아했지만, 지금은 할머니가 우선 이었다.
“네, 감사합니다.”
강철중은 전화를 끊으며 제보남을 바라보자 그자의 입에서 그제야 득의양양한 미소가 가득 피어올랐다.
“자! 당신이 들었다시피 내 직무를 걸고 당신이 내걸은 합의서에 서명할 권리를 얻었고 이제 해주지.”
강철중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일필휘지로 서명을 해버리고는 그에게 서류를 건네주었다.
그리고 세 사람에 대한 계좌번호를 넘긴 문자를 받고는 바로 답장을 보내왔다.
세 사람에게 각 삼억 원씩 송금된 내역의 문자였다. 그리고 주소와 시설명이 기재된 또 하나의 문자가 당도했다.
“당신의 할머니는 거기 계십니다.”
강철중부장은, 아니 이제 부장이 아니지, 강철중은 문자를 전달하고는 다시 전화를 걸었다.
본부장님께서 전화를 받으시더니 이내 스피커 폰으로 바꿔서 장태산마스터와 함께 전화 통화를 하게 되었다.
“강철중님!”
마스터의 입에서 직함이 빠져있다. 이는 이제 자신은 더 이상 재단측 관계자가 아니라는 의미였다.
“네, 듣고 있습니다. 주신 문자 잘 받았습니다. 할머니의 안위를 우리 시큐리티 팀이 확인하는 것이, 당신이 찾아가는 것보다 빠를 것 같아 제가 출동시켰습니다.”
“감사합니다.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곁에서 듣고 선 부모님께서도 연신 전화기에 대고 고개를 숙여 감사의 인사를 하고 있었다.
“아! 그리고 금천유통 측에서 온 사람 아직 가지말고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양해를 구해 주세요.”
“네? 네, 알겠습니다.”
강철중이 그를 바라보자. 그는 이미 자신은 합의서를 받았고 돈은 송금되었기에 법적인 문제는, 더는 없다고 판단이 되었는지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렇게 대략 삼 분 정도가 지났을 즈음이었다.
“강철중님!”
“네, 마스터! 말씀하십시오.”
“조금 전에 출동한 시큐리티 팀장에게 보고 받았습니다. 할머니의 안전을 확보했다고 합니다. 축하합니다.”
“아아! 너무 감사합니다.”
자신과 부모님은 연신 전화기에 대고 울면서 절을 하였다.
“지금부터 잘 들으세요.”
돌연 장태산마스터의 톤이 바뀌었다.
“특히 강철중님의 부모님께서는 아들이 갑작스레 직장을 잃어 많이 놀라고 당황하셨을 겁니다. 그러나 너무 겁먹지 마세요. 지금 이 시간부로 강철중은 티에스글로벌재단에 특별채용합니다.”
전화를 듣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가 놀라서 그저 눈만 크게 뜨고는 서로를 바라볼 뿐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소속은 티에스글로벌재단 본사의 특별본부 갑질횡포 대응 3팀장으로 발령합니다. 참고로 본사 팀장의 권한은 지역본부의 본부장급 권한과 동일합니다.”
장태산마스터의 그 말에 부모님은 기뻐서 말문이 막혔지만, 금천유통의 협상남은 충격으로 말을 못 하고 있었다.
“강철중팀장님!”
“예, 마스터!”
“당신은 우리 재단의 훌륭한 인재이자 미래의 자원입니다. 당신의 너무도 뛰어난 대응과 일처리 방식은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는 방향과 너무도 필요한 부분이기에 당신을 절대 놓칠 수가 없습니다. 당신은 우리 재단 사람입니다. 내 사람입니다. 그러니 더는 고통받지 마세요.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마음고생 많았습니다.”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 아닙니다.”
강철중의 눈에서 눈물이 배어 올랐다. 얼마나 가슴 뛰는 말인가. 같은 편이란다. 자기 사람이란다. 이제 강철중은 장태산이 죽으라면 죽는 시늉, 아니 진짜 목숨을 내줄 정도가 되었다.
그는 찐찐 장빠였다.
그가 감격에 겨워 머뭇거리자 장태산이 말을 이었다.
“자! 그럼 우리의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이제부터 제대로 갑질 한번 해 봅시다. 됐나요? 강철중팀장님! ”
“예쓰, 마스터!”
강철중팀장의 힘차고 강맹한 대답이 쩌렁쩌렁하게 그들이 있는 공간에 요동치고 있었다.
‘기다려라 금천유통! 이 새끼들 다 죽었어!’
장태산은 순간 수화기를 통해, 강철중팀장의 혼잣말이 들리는 듯했다.
- 작가의말
코로나-19가 우리를, 세상을 힘들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그랬듯이 이겨 낼것입니다.그러니여러분부디, 제발,몸도 마음도 건강하세요.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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