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 적(敵)은 누구?(5)
객실 칸의 복도로 걸어오는 호리호리한 체형의 남자가 보였다.
그는 더운 계절에 안 맞게 정장 차림에 노타이였다.
걸을 때마다 재킷 상의의 옷자락이 두툼해 보이는 것이 총기류가 있어 보인다.
그가 걷는 움직임은 열차의 흔들림과 묘한 일치감이 느껴졌다.
이윽고 그가 권영훈과 장태산의 객실 앞에 도착해서 손을 내밀었다.
“给我我该收的东西。(받아야 할 것을 주세요.)”
“很可惜 刚刚这位拿走了(안타깝습니다. 방금 막 이분이 가져갔습니다.)”
태산은 주먹 쥔 엄지를 자신에게 가리켰다.
“이미 거래 끝났어요. 근데 아직 이야기를 전달받진 못했나 보네?”
“你在说些什么?(뭔 소리야?)”
“조용히 그냥 간다면 봐 드리지.”
“胡说八道(개소리)”
설계도면을 받으러 온 사내는 순간적인 자세를 취하며 태산을 공격했다.
‘퍽~’
짧은 타격음이 들렸지만 변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태산의 목젖을 부숴버릴 정도의 강력한 권격(拳擊)이었다. 그러나 맞은 사람이 어떤 미동도 없었다.
남자는 자신의 주먹을 쳐다본 후 호랑이 형상의 몸동작을 구사하였다.
아! 호권(虎拳)이구나
동작은 앞서 만났던 중국요원들 보다 배는 빠르고 주먹의 강도는 서너 배가 더 높았다.
중국 측 스페셜요원으로 해결사가 확실해 보였다.
‘아까 내 말을 알아먹었으니 한국말도 좀 안다는 것이겠지?’
“이봐, 그만하지. 지금 여기서 멈추면 서로 피해 없이 다음을 기약할 수 있지만 여기서 더하면 나도 어쩔 수 없다구.”
“你这个家伙早该死了。(네놈은 벌써 죽었어야 했어.)”
놈의 주먹이 안면을 강타하자 가볍게 흘려보냈다.
반대편의 주먹이 펼쳐지며 얼굴을 노려왔다.
고개를 피하지 않고 그대로 놈의 품을 파고들며 숏 훅을 날렸다.
손바닥으로 가볍게 막아내며 몸을 회전하며 뒤돌아차기를 해왔다.
태산이 왼팔로 막으며 놈이 뒤돌아차기 한 발을 거둬들이는 순간에 앞차기로 몸통을 적중시켰다. 짦은 비명을 내지르며 차창에 부딪혔다.
간신히 바닥을 짚고 일어선 놈이 자신의 부자연스러운 팔을 들었다.
그러자 복도 반대편에서 너덧 명이 보였다.
‘이런 젠장, 강미현이 잡혔구나.’
강미현의 목을 감싼 거구의 사내 손에는 소음기가 장착된 권총이 들려있었다.
비명을 지르거나 살려달란 말은 안 했지만, 강미현의 얼굴에는 번져 흘러내린 마스카라로 몰골이 형편없었다.
“풀어주면 니들은 살려줄게.”
“乖乖不听我们的话, 这个女人就死了(순순히 우리말을 듣지 않으면 이 여자는 죽는다.)”
“이봐! 권영훈씨! 이놈들 뭐라는 거죠?”
“말 안들으면 죽이겠데요. 저부터.”
권영훈이 답하기 전에 강미현이 울먹이며 통역을 했다.
태산이 호권을 구사하던 사내에게 다가가자 놈은 의기양양해져 태산과 마주했다.
아마도 태산이 설계도면을 넘겨주리란 생각을 했나 보다.
태산은 조금의 지체도 없이 놈의 멱살을 잡고 돌려버렸다.
놈의 몸이 축 늘어지며 생을 마감했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맞은편 복도 끝의 놈들이 웅성거렸다.
아랑곳하지 않고 태산이 놈들에게 경고를 날렸다.
“너희들을 이곳에 보낸 자가 누구냐?”
“······.”
“마지막 기회다.”
태산의 말을 권용훈이 큰소리로 통역하자 되려 놈들이 강미현을 겁박하여 태산에게 항복할 것을 종용했다.
“이봐들, 비겁하게 여자를 방패 삼아 숨지 말고 나랑 해결하자.”
아주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원형 화구 통을 벗고 있었다. 한 놈이 팔을 뻗어 전해 받으려고 행동을 취했다. 녀석의 시선이 놈과 뒤에 있던 강미현을 붙잡은 놈의 실루엣이 겹쳐지며 태산을 확인할 시선이 사라졌다.
‘파~앗’
태산의 몸이 찰나에 움직였다.
눈으로 인지하고 뇌에서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해 근육을 통해 명령이 전달되어 손가락을 움직여 방아쇠를 당기는 일련의 과정이 일어나는 시간보다, 장태산이 팔을 뻗은 놈의 팔을 잡아당기며 좌석 위로 몸을 날려 강미현에게 겨눠진 총을 가로 차기로 차서 날림과 동시에 회전 뒤축으로 남은 두 놈을 사정없이 날려버렸다.
착지하는 탄력으로 강미현을 안아 돌리며 등으로 강미현을 잡고 있던 덩치에게 몸통 박치기를 먹였다. 열차의 출입문과 함께 화장실 구역까지 날아가 구겨지며 쓰러졌다.
강미현은 멍하니 태산에게 안긴 상태로 앞을 보게 되었다. 바로 앞에는 조금 전 태산에게 설계도면을 받으려고 했던 한 사람만이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둘은 경악한 눈으로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미현씨! 괜찮아요?”
“네,네~”
아무래도 얼이 빠져 보였다.
“이놈에게 통역을 부탁합니다.”
“네, 말···씀하···세요.”
놈의 멱살을 잡아당기자 얼굴을 마주 보는 형세가 되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한 손으로 칼과 다른 한 손엔 총을 들어 장태산에게 무자비하게 쏟아냈다.
‘푹’
‘탕탕탕!’
놈의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왜냐하면, 자신의 대검은 목의 경동맥을, 총은 간과 신장을 비스듬히 관통하는, 즉사시킬 수 있는 부위였다. 그런데도 태산은 멀쩡했다.
놈을 한번 흔들자 그의 손에서 총과 칼이 떨어져 나왔다.
“누가 시켰는지 말해?”, “연락해봐.”
태산의 말을 통역하자 놈은 주저하며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단축버튼을 통해 연결되자 음성이 들려왔다.
“장태산이다. 누구냐?”
태산은 너무도 당당히 한국말로 말했다.
상대방이 알아듣는다. 그러나 곧 중국말 하는 사람을 바꾸라고 한다.
전화를 강미현에게 전하고 통역을 시켰다.
“내가 분명히 경고했는데, 무시한 다른 이유라도 있나?”
“무시한 것은 우리가 아니라 당신이다. 여기는 중국이다.”
“한국 기술과 사람을 강제로 빼돌리려 한 것은 중국이 벌인 범죄다. 인정하는가?”
“아니. 그것은 그 연구원 개인의 선택이지 우리와 연관된 부분은 없다. 당신의 착각이다.”
“끝내 인정 안 하시겠다는 것인가? 그럼 내가 직접 가서 죄를 물을 수밖에, 괜찮지?”
“흐흐, 얼마든지.”
“당신은 누구인가?”
“그것도 모르면서 이리 날뛰는 건가? 크크크.”
태산은 잠시 대화를 멈췄다. 이놈이 지금 나를 진정으로 무시하는 것이구나 생각되어 마음을 고쳐먹었다.
“기껏해야 상하이방과 손잡으려던 계획이 틀어진 공청단을 내가 겁먹을 거 같은가? 상하이방이 아무리 세력이 줄어들어도 태자당과 손잡으면 게임 끝 아닌가? 이미 너희들의 시대는 저무는 것 같은데.”
강미현은 눈을 말똥거리며 태산을 바라보기만 했다.
특출한 전투능력으로 현장을 통제하기 위해 선택된 요원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중국 내부의 정치적 상황까지 이리도 해박하단 말인가?
강미현을 보고 통역하라고 제스쳐를 해 보였다.
“내 경고를 무시한 대가를 받으러 당신과 총서기장에게 가겠다. 그때 보자.”
강미현이 통역을 마치자 태산은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리곤 전화의 주인을 열차 밖으로 던져 버렸다.
주변 정리를 마치고 권영훈에게 강미현을 소개해주었고 한국으로 돌아갈 일정에 대해 알려주며 본국 팀장에게 상황을 보고 하고 있었다.
전화를 끊은 공청단 제1서기 루오하는 전임이자 차세대 지도자로 손꼽히는 후화춘에게 연락을 취해 상황을 공유하였다.
중국공산주의청년단, 줄여서 공청단은 중국 공산당에서 젊은이 중에서 명석한 사람들을 모아서 지도하며 차세대 지도자로 키워나가는 곳이며 세력이 가장 큰 집단이었다.
중국의 어느 사람도 공청단의 위세에 반기를 들 수 있는 사람과 조직은 없었다.
더군다나 상하이방과 태자당의 움직임을 알고 맞대응을 해온 장태산이라는 한국놈이 핵심을 찔러오자 왠지 두려웠다.
후화춘이 벌써 손을 써 두었으니 항저우와 푸저우에 통제 인력을 보내라고 했다.
놈과 연구원까지 모두 지워 버린다고 한다.
아예 없던 일로 덮어 버린다는 것이었다.
그제야 안심이 되었다. 그런데 방법이 어찌 되냐니 말을 안 해준다.
대의를 위한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답변만을 들었을 뿐이었다.
장태산은 해외 3팀장에게 연락을 취해 일련의 과정을 보고하고 단독작전을 요청하였다.
죽어도 강미현을 데려가라고 한다. 당사자가 옆에 있으니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팀장님이 미현씨를 너무 신뢰하는데요.”
“뭐가요?”
“다 들었잖아요?”
“그···럼요. 팀장님 말이 맞죠. 파트너가 함께 움직여야지요.”
“알았어요. 권연구원의 귀국행 전달하고 함께 움직여 봅시다.”
‘끼이익! 철~껑’
갑자기 열차가 멈췄다.
태산은 순간 쎄한 느낌을 받았다. 주변을 살펴 보니 기차가 철교 위에 걸려 있었다.
“미현씨! 권영훈씨! 간단한 짐만 챙겨요. 나갑시다.”
“여기서 어디로 가자구요?”
“원래 중국은 기차가 한 두 번씩 멈추곤 합니다. 괜찮아요.”
그둘은 장태산을 말렸다.
그러나 태산은 서둘러 내리자며 강제로 열차의 문을 개방했다.
열차에서 내린 세 사람은 서둘러 철교의 반대편 평지로 내려섰다.
5분쯤 지나서였다.
열차의 뒤편에서 커다란 빛이 나타나 열차를 향해 오고 있었다.
곧이어 엄청난 굉음과 비명이 사방을 뒤덮었다.
‘쿠와앙, 키~이익, 콰쾅쾅’
철교 위에 멈추어 있던 열차를 뒤에서 멈추지 않고 달려온 열차가 그대로 충돌해 버린 것이었다. 달려온 속도로 인해 두 열차는 선로를 이탈하고 4량의 객차가 철교 위에 뒤엉키며 다리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사람들의 비명이 끊임없이 들려왔다.
그 광경을 목격한 두 사람은 입을 벌린 채, 그저 멍하니 태산만을 바라보았다.
“알고 있었던 거에요?”
“우릴 노릴 것은 알았지만, 자국민까지 희생시킬 줄 몰랐어요.”
불길에 휩싸인 열차가 철교아래 물속으로 잠겨들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을까?
저 목숨값은 당신들의 역사가 받겠지, 역사는 돌고 도니까?
장태산 일행은 미리 연락을 취한 블랙요원의 차량이 도착하자 바로 탑승과 동시에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
장태산은 강미현과 함께 상해 최대의 식당 VIP별관에서 별도의 자리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평범하지만 단정한 세미 정장을 한 태산과는 다르게 강미현은 중국 전통의상 치파오를 입었다. 붉디붉은 색에 금장의 다채로운 무늬가 인상적이었지만 무엇보다 인상 깊은 것은 치파오의 옆트임이었다.
원래 정상적인 옆트임이었지만 강미현의 몸매와 다리 선이 그녀의 아름다움을 숨김없이 드러내 보여주었다. 한마디로 예술이었다.
태산은 눈을 둘 데가 없었다.
바로 옆자리에 앉았는데 하필 치마의 벌어진 틈으로 강미현의 백옥같은 피부가 드러났다. 더군다나 허벅지에 그치지 않고 골반까지 이어져 팬티 선이 보일 지경이었다.
그런데 안 보인다. 저 정도면 보일 수밖에 없는 위치이건만 어찌 속옷이 안 보인단 말인가?
설마, 안······입···었을···라구.
‘아, 저 여자! 오늘은 또 왜 이리 나를 힘들게 할까?’
‘음, 그렇지만 라인이 환상적이긴 하다.’
장태산도 남자였다.
그것도 피 끓는 팔팔한 20대 초반의 힘(?)쎈 남자다.
남의 속도 모르고 강미현이 오늘따라 더 매혹적인 미소를 흘리고 있었다.
그렇게 태산이 걱정 아닌 걱정을 하고 있을 때였다.
VIP별관의 메인 출입문이 열리며 엄청난 기도의 사내와 그를 따르는 대여섯 명의 무리가 들어왔다.
그를 바라보자 왠지 후광이 빛을 발해, 그 사람을 감싸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태산이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왠지 무협지의 한 문장이 떠올랐다.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独尊)’
그런 기세를 품어대던 그 남자가 손을 뻗어 악수를 청했다.
“반갑습니다. 나 시핑진이요!”
- 작가의말
헉, 누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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