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 태산의 비밀(3)
기다렸다는 듯이 주먹과 발길질이 날아왔다.
그 광경을 목격한 경찰들 역시 놀래며 큰소리로 그들을 제지하였다.
“뭐 하는 겁니까? 당장 그만두세요.”
“멈추세요.”
“워~워, 진정하세요. 짭새양반.”
“우린 그냥 친목 다지기 좀 하는 것뿐입니다.”
태산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들은 폭력이 일상이고 경찰을 두려워하지 않는구나. 그럼 범죄를 일삼는 집단이란 말인가?’
“당신들은 지금 경찰 앞에서 폭력을 행사했습니다.”
“이보슈, 경찰 양반! 우린 그냥 친목 도모하다 보니 몸의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겁니다.”
“폭력이라니 아이고 무서버라.”
경찰의 제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은 태산과 찬열을 짓밟고 있었다.
“경찰 아..저..씨, 살..려.. 주세요.”
폭행 피해로 인한 통증과 공포는 겪어본 사람만이 안다.
그러니 폭력의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은 그 굴레를 벗어나기 힘들기에 두려움에 복종하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가해자 역시 무자비한 폭력이 가져다주는 쾌감과 굴종시키는 힘을 맛본 경험이 더욱 그 행위를 정당화시키곤 한다.
‘이들은 전형적인 범죄 가해자들이다.’
장태산은 손에 잡힌 의자를 맹렬히 휘두르며 몸을 일으켰다.
주위를 둘러싸고 발길질을 하던 몇몇이 의자에 맞아 나가떨어졌다.
‘쿠당탕’
출동한 두 경찰관이 다가오며 사람들을 갈라 세웠다.
“그만 하세요.”
경찰관의 제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내들은 다시 주먹과 발길질을 날렸다.
‘퍼벅’
‘윽’
‘으헉’
사내들은 경찰관들에게도 무자비한 린치를 가했다.
무전기를 꺼내 들 새도 없이 얼굴과 상체를 두들겨 맞은 경찰들이 경찰봉과 테이저건을 꺼내는 순간이었다.
날렵한 두 명이 경찰의 팔과 손을 제지하듯 비틀며 마치 중국무협 영화의 한 장면처럼 턱을 손바닥으로 쳐올려 버렸다.
짚단이 넘어지는 소리를 내며 두 경찰관은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시발, 경찰이 오면 니들을 구해줄 것 같지?”
“세상이 그리 만만해 보여, 좆만아.”
“다음부턴 우리같은 사람을 보면 무조건 대가리 팍 처박고 잘못했습니다. 하고 살아.”
꿈틀거리는 네 사람을 바닥에 내버려 둔 체 놈들은 그렇게 가버렸다.
***
태산과 찬열이 눈뜬 곳은 병원 입원실이었다.
얼굴은 부을 대로 부었고 온몸은 멍투성이에다 갈비뼈에 손상이 갔지만, 뇌와 다른 뼈에는 이상이 없는 폭행 피해자의 모습이었다.
경찰이 병실 앞을 지키고 조사를 위해 찾아왔다.
놈들은 인천을 무대로 하는 조폭들이었다.
하필 그날은 대림동파와 친선 축구경기를 하고 난 뒤풀이 중 우리와 충돌이 있었던 거였다.
경찰도 무서워하지 않는 조폭에 대해선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고소도 했다. 경찰이 나서서 그놈들을 잡는단다.
그런데 퇴원을 하고 난 이후에도 그들을 처벌할 수가 없었다.
주취폭력에다 쌍방 과실을 주장했다.
놈들도 진단서를 끊어서 제출했단다.
그나마 경찰 폭행은 술 먹고 넘어지면서 발생 된 일이란다.
초범인 잔챙이들을 데려다가 자진 출두시켜서 축소했다.
대부업. 불법 사채와 채권추심으로 벌어들인 돈으로 실력 있는 변호사들을 고용했다.
그리고 공직자와 깡패의 유착 관계..., 흔해 빠진 이야기다.
관할 정치인들과 윗선 경찰조직, 검찰 라인을 동원해 조사와 재판을 무마하고 있었다.
‘법치국가 대한민국에서 이게 말이 되는가?’
말이 된다.
예로부터 폭력은 3가지 형태의 다른 이름으로 불려왔다.
‘무력(武力)’
‘금력(金力)’
‘권력(權力)’
이런 힘을 잘못 휘두르면, 그게 폭력(暴力)인 거다.
대한민국은 위의 3가지의 힘을 가진 자들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아니 전 세계가 그렇다.
장태산은 분노했다.
자신의 덩치와 피지컬에도 한없이 나약할 수밖에 없는 무력(無力)함에,
가진 자들이 무자비하게 휘두르는 금력(金力)에 고개를 숙이는 부(富)의 무능력(無能力)함에,
정당하고 합당한 법과 규율을 무시하고 불의한 제도와 규범에 타협하는 어긋난 힘의 무기력(無氣力)함에 치를 떨며 분노했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찌해야 할까?’
부모님을 찾으러 갔을 때도,
단순한 시비에 휘말렸을 때도,
자신이,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다면 바꾸자.
‘내가 바꾸자.’
‘내가 할 수 있도록 바꿔보자.’
‘어떡해?’
***
경찰에 쳐들어가서 난동도 부려보았다.
경찰들도 그놈들은 형사건으로 진행중이고 처벌 될 거란다.
믿고 기다리라고는 하지만 형사들도 분통을 터트린다.
솜방망이 처벌에다 잔챙이들 한두 바퀴 돌고 나오면 오히려 훈장이란다.
‘미친 새끼들, 선량한 사람들을 괴롭히는 독충들이다.’
‘때려잡아야 한다.’
‘어떡해 힘을 키우지?’
‘운동을 졸라리 해서?’
‘산속에 도를 닦아 도통(道通)해서?’
‘무협지처럼 무공(武功)을 익혀서?’
말도 안 되는 방법이지만 그렇게라도 할 수 있다면 좋겠다.
‘내가 정말 어마무시한 힘을 가진다면 세상을 바로 잡을 텐데 아오~씨.’
그런저런 생각으로 하루를 마감하던 날.
부모님의 방에서 앨범과 함께 어릴 적 추억의 물건을 모아둔 서류함을 찾았다.
007 서류가방 크기의 사각 함에 나전칠이 십장생도와 어우러진 고혹 서러운 서류함이었다.
여기에 어머니는 태산의 어릴 적부터 기념될 만한 물건들을 타임캡슐처럼 보관하셨더랬다.
‘철컥’
열쇠고리 함이 벗겨지며 가지런히 정돈된 색 바래진 물품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학년별 학생증,
돌잡이에서 잡은 실패
왕구슬,
별딱지,
만화시계,
열쇠,
복주머니,
곱게 접혀진 한지
·········,
태산은 열쇠를 집어 들었다.
‘어디 열쇠지?’
마치 옛 사극에서나 등장할 법한, 길고 끝은 요철이 서너 번 각져 있는 열쇠였다.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고 내려놓았다.
그리고 복주머니.
그냥 평범한 오색무늬 복주머니다.
테두리와 주머니 가운데 수 놓인 복(福)자가 새겨져 있다.
실들이 헤어져 있는 모양이 세월을 가늠케 했다.
‘할머니가 만들어 주신 복주머니’
태산은 가물가물한 기억의 파편을 조각해 보았다.
아마 대여섯 살이었나보다.
명절날, 할머니가 태산의 손에 꼭 쥐여주곤 빙긋이 미소짓던 그 날이 떠 올랐다.
“산아! 내 강아지, 이 할미가 줄건 이것밖에 없구나.”
“조상님들의 은덕(恩德)이 담긴 이 주머니가 너에게 ······.”
‘어, 맞아. 그 때 할머니가 이 복주머닐 주면서 뭐라 그랬는데, 왜 기억이···.’
몇 번을 되뇌어봐도 떠오르지 않았다.
머리만 더 어지럽고 아프다.
이런 젠장, 진통제라도 하나 먹어야겠다.
약함을 뒤져 진통제를 찾았다.
찾을 땐 꼭 그것만 없거나, 있어도 빈 통인 것은 뭔 현상일까?
이것도 법칙인가?
아픈 머리 때문에 관자놀이에 갖다 댄 손가락 끝에,
힘을 꽉 준 채로 거실의 커튼을 젖혔다.
노을이 지는 저녁 무릎 새빨개진 구름에 하늘 전체가 붉은빛의 향연이었다.
그 덕분인지 두통이 가라앉는 듯했다.
보고 있자니 왠지 눈물이 났다.
엄마, 아빠, 할머니 생각이 났다.
보고싶고 그리웠다.
혼자 있는 집안은 너무 처량했다. 혼자다. 그래서 여전히 무기력했다.
그렇게 노을이 어둠에 잠기고 달빛이 새로이 베란다를 비출 즈음,
태산은 소파에 기댄 채 잠이 들고 있었다.
***
‘번쩍’
마치 개안을 하듯 주변의 사물이 선명히 들어왔다.
소파에서 기절하듯 쓰러져있던 태산의 몸이 놀란 미어캣 마냥 상체를 벌떡 세웠다.
‘집이다.’
“뭐지, 내가 꿈을 꾼 건가?”
갑자기 몸을 일으켜 방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어제 열어보았던 옛 서류함에서 복주머니와 한지를 들고왔다.
그리곤 한지 한 장을 조심스레 꺼내어 붓 펜을 집어 들었다.
‘이소룡’
‘성룡’
‘수퍼맨’
‘배트맨’
‘······.’
태산은 자신이 알고 있는 강한 사람, 히어로 등을 적었다.
그리곤 그 종이를 돌돌 말아서 복주머니에 넣고는 자신의 러닝셔츠를 들어 올리고는 허리에 둘러 숨겼다.
잔뜩 상기된 얼굴을 하고 무언가를 기대하는 호기심 많은 소년이 되어있었다.
‘정말 될까?’
태산은 꿈을 꾸었다.
꿈은 단편적이었다.
할머니가 엄마와 함께 태산의 손에 복주머니를 쥐여주며 무어라 당부를 했다.
서류함에 함께 있던 한지에 글을 적어 복주머니에 넣었다.
태산은 수퍼맨이 되었고, 배트맨이 되었다.
이소룡과 성룡처럼 무술도 잘하고 강했다.
무협지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축지법과 장풍을 마구마구 뿌려댔다.
자신이 되고 싶은 존재, 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 무엇이든 다 이룰 수 있었다.
복주머니는 태산에게 상상하는 능력을 만들어 주었다.
꿈에서 본 그대로 해보는 것이었다.
‘파아앗’
허리에 둘렀던 복주머니 주위로 강렬한 빛이 쏟아져 나왔다.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의 백색광은 마치 너무 밝아져 오히려 암전에 빠져버린 감각을 떠올렸다.
빛이 서서히 줄어들고 태산은 복주머니를 만져보았다.
자신이 소원을 적어넣은 한지가 만져졌다.
조심스레 주머니를 열어 한지를 꺼내었다.
한지를 접은 역순으로 펼쳐보던 태산은 너무 놀라 그 종이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거기에는 태산이 적은 내용이 없어지고 다른 글이 적혀 있었다.
너무나 엄청난
‘단 한 글자!’
- 작가의말
본 작품은 가상의 인물과 사건으로 만들어진 허구의 이야기 입니다.
특정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과는 무관하며 작품 내 나오는 내용 또한 극적 전개를 위해 과장, 변형이 존재함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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