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 적(敵)은 누구?(3)
스코어 4 : 3
경기종료 휘슬이 울렸다.
말도 안 되는 7 VS 11의 경기에 승리해 버렸다.
‘신참들의 반란’
훗날 707의 전설로 내려갈 축구경기였다.
그리고 또 다른 전설을 만들러 가고 있었다.
윤형빈상병을 포함한 20명의 고참팀원들이 족구장 한쪽에서 회의를 하고 있었다.
이창수과장이 태산에게 다가가 윙크인지 찡그림인지 모를 눈을 흘기며 웃고 있었다.
“태산군! 계속 할껴?”
“걱정마세요. 살살 할게요.”
팀별 4명이기에 신참들 중에 3명을 자원 받았다.
그랬더니 서로 선수로 뛰려 한다.
태산을 제외한 나머지는 로테이션 하기로 했다.
축구 심판이 족구 심판을 보기로 했다.
대대 보급계 원사였다.
원체 공으로 하는 스포츠를 좋아하는 군인이라 무조건 경기에 참여하는 주의였다.
천성이 직업군인이라 아무래도 고참편에 더 가까운 모양이다.
“자! 선수들 모여!”
고참팀이 모이기를 주저하였다.
특히 윤형빈상병의 낯빛이 볼만했다.
소대 최고참인 김병장이 윤상병에게 턱으로 불편한 몸짓을 하자, 못 이기는 척 심판에게 다가왔다.
“저희가······ 졌습니다.”
와! 이 쌈박한 놈들 보소. 딱 통밥 때려보고 질 게 뻔하니 그냥 바로 꼬랑지 내려 버린다.
저게 현명한 건지, 약은 것인지 분간이 안 가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최소한 부상자는 이제는 없다는 것이다.
전략적으로 피아(彼我)를 구별하고 선택과 집중을 위한 훈련이 특화되어 그런지 장태산을 적으로 돌리는 것을 바로 포기해 버린거다.
‘정말! 대다나다. 크’
윤형빈상병의 연초비와 급여는 소대 회식비로 편입되었다.
소대장의 입회하에 합법적으로 골키퍼를 보았던 심이병이 회식비를 관리 하기로 했다.
그리고 장태산이 그 금액만큼 추가로 보태기로 했다.
역시 멋진 녀석! 크아.
경기의 승리로 얻은 태산의 요청은 일병 이하 소대원들의 소원수리를 거쳐 윤상병을 포함한 고참들의 불합리한 요구나 부적절한 명령은 거부할 수 있도록 “방패권”이라는 한시적 제도를 부대원에게 선물하게 되었다.
***
이창수과장과 국가정보원 특작부대로 보직 이동하여 일주일간의 훈련을 마쳤다.
훈련을 진두지휘한 이과장 덕분에 태산은 자신의 신체능력을 아주 조금, 쬐금만 노출했다.
그 시작은 8명 1개조 참호격투 개인전에서 벌어졌다.
장태산을 제외한 7명이 암묵적으로 최우선 제거 대상으로 태산으로 정한 것이었다.
참호속 흙탕물에 몸을 던져넣은 일곱명의 최정예라 불리는 사내들이 태산의 양발만 들어 올리면 끝나는 경기였다.
팔이며 다리, 몸통, 특히 종아리와 허벅지에만 4명이 붙어서 들어 올리려 온갖 애를 쓰고 있었다.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게 천근추(千斤錘)인지는 꿈에도 몰랐다.
태산은 일단 팔과 몸에 붙은 세 명을 가볍게 털어내듯 휘 하고 휘저었다.
참호 밖으로 날아가 버렸다.
상체를 탈의한 상태에서 흙탕물로 마사지가 되어 잡을 수가 없었다.
한 발을 털어내자 두 명이 튕겨나듯 구덩이에서 날아갔다.
남은 두 사람은 불안함을 느껴 바로 떨어져 자세를 다시 잡았다.
태산은 팔로 밀 듯 걸음을 옮기자 그 둘은 손을 맞잡은 채로 진흙 바닥에 질질 끌려 참호 끝으로 밀려났다.
태산의 피지컬과 물리력을 인정한 그들이 명예를 회복을 노린 대인 근접전에서 또 한 번의 정체를 파악하게 되었다.
태산을 둘러싼 4명의 부대원의 손에 케이바(Ka-Bar) 군용대검과 마체테가 들려 전투 대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한 호흡이 채 끝나기도 전에 네 방향에서 무시무시한 칼날이 태산에게 날아들었다.
‘저 칼들 사이에서 한번 놀아보자.’
태산은 그들이 날려 온 칼춤 사이에서 날아다녔다.
마치 스파○이더맨이 찌리릿을 이용한 피하기를 하듯, 대검과 마체테가 난무하는 한 가운데서 재밌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의 시간차가 있는지 확인을 하고 난 후 저들의 실력을 확인해 보고 싶었다.
약간의 틈을 노출하자. 바로 합(동공)격이 들어왔다.
경동맥에 마체테가,
심장에 케이바가,
간 하단부위에 장검이,
그리고 마지막
등 부위 양쪽 신장에 쌍검이,
딱 하고 쑤셔져 있었다.
아! 물론 칼끝이나 날은 0.0001mm도 태산의 몸에 흠집 하나 내지 못했다.
“절명하는 부위가 무려 네 군데, 동시에 공격당하는데도 끄떡도 안 해.”
“완전 실전이잖아. 일부러 맞아주며 감각을 가르쳐 주기까지 하니, 오우우 소름.”
“적이 아닌 게 천만다행입니다. 그죠?”
***
국가정보원(NIS) 해외정보 3팀은 전원이 현장에 투입되어 긴박한 분위기였다. 유일하게 한 사람, 강미현만은 지원부서로 마지막까지 책상을 지키고 있었다.
대외작전 지원실의 모니터 앞에서 키보드를 조심스레 두드리던 강미현은 국정원 요원이라기보다 모델이 더 잘 어울릴법한 외모를 가졌다.
도시적이고 이지적으로 보이는 이목구비에 정갈하게 찰랑대는 단발에다 와인색 블라우스와 블랙에 가까운 다크블루지 한 정장바지와 굽이 그리 높지 않은 힐이 너무도 잘 어울렸다.
특작대를 거쳐 3년을 꼬박 국가정보원 해외 3팀의 지원부서에서 청춘을 불사른 강미현은 현장 요원으로 보직변경을 신청한 지 벌써 3개월이 다 되었다. 그런데도 아무런 낌새가 보이지 않자 더는 속으로 고민하지 말자 생각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팀장실의 문을 두드렸다.
아무 반응이 없자, 재차 노크했다.
“들어와.”
뭔가 단단히 화가 난 듯한 팀장의 음성이 들려와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방안을 살펴보니 팀장실의 회의용 탁자를 둘러앉은 세 사람이 보였다.
1, 2팀장은 상관이다 보니 알아보았지만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청년은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안녕하십니까 한팀장님! 서팀장님!”
“그냥 서서 인사해, 이쪽은 장태산!”
“반갑습니다. 장태산입니다.”
“아, 반갑습니다. 강미현입니다.”
“태산군! 여긴 우리팀 최고(?)! 강요원이고 이번 작전에 자네 파트너라네.”
“제일 뛰어난 요원······이란 말이죠?”
“아니············ 제일 오래된 요원.”
“팀장님!~~~”
음, 아무래도 고함소리를 보아하니 여기 그 누구도 당할 자가 없나 보다.
만만해 보이지는 않는다. 차라리 남자였으면 힘으로 서열을 가리겠지만······.
***
장태산과 강미현은 중국으로 파견을 나가게 되었다.
국가정보원으로써 대한민국의 핵심기술 유출을 막고, 국제범죄조직으로부터 자국민을 보호하는 임무였다.
장강 삼각주 지역에 위치한 중화인민공화국 저장성의 성도인 항저우.
상하이에 도착해서 고속열차로 약 1시간을 이동해 도착했다.
오는 동안 강미현은 태산에게 작전의 중요성과 각자의 역할에 대해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즉, 자기가 사수이며 자신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태산은 건성으로 알겠다고 했다.
내일 차세대반도체의 핵심 도면과 전기차용 배터리 설계도면이 전달되는 것을 막아내고 우리가 가져가야 한다며 기합이 잔뜩 들어가 있다.
웨스트 레이크 포시즌호텔에 신혼부부로 위장해 체크인을 했다.
“당신! 영광이죠?”
“뭐가요?”
“나처럼 미모와 지성을 갖춘 여성이 당신의 아내라니 기쁘지 않나요?”
“여보세요. 누님! 혹시 나한테 관심 있어요?”
“아니, 착각도 유분수지 뭐 어째요? 내가 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대기하던 사람들이 보이자 강미현은 금세 표정이 바뀌며 신혼부부 행세를 했다.
태산의 한쪽 팔을 살며시 휘감으며 객실로 향했다.
태산은 그런 강미현이 다소 불편한 듯 멋쩍은 표정으로 끌려가는 형세였다.
객실로 들어오자 잠금과 주변 탐색을 마친 강미현은 태산에게 따지듯 쏘아붙였다.
아마 조금 전의 앙금이 남았나 보다.
“우린 지금 신혼부부라고요?”
“네~네.”
건성으로 대답하며 태산이 강미현을 보고는 말을 이어갔다.
“제가 먼저 씻을까요?”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아니 그럼 씻지도 않을 겁니까?”
태산의 말에 강미현이 펄쩍 뛰었다. 그 반응이 재미있어서 더 놀리고 싶었다.
“씻고 할래요?”
“씻긴 뭘 씻어요!!!”
고함을 지른다.
“음, 그럼 안 씻고 할래요?”
“자꾸 뭘 해요?”
또 고함을 지른다.
무슨 상상을 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강미현의 두 볼이 빨갛게 상기되어 볼 만했다.
“안 해요. 안 할 거예요. 당신하곤 죽어도 안 할 거예요.”
태산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양손을 어깨 위로 들어 올리는 포즈를 취한 뒤 방문으로 걸어갔다.
“죽어도 안 하신다니 어쩔 수 없죠? 식사는 나 혼자 하지요.”
“······.”
강미현은 순간적으로 태산에게 네이키드 초크와 암바를 펼치는 상상을 했다.
‘저 자식을 죽일까?’
장태산이 방을 떠난 지 삼십 분쯤 되었을까?
정말 혼자 식사하러 나갈 줄 생각도 못 했던 터라 허기진 배를 부여잡고 문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때 방문을 알리는 차임벨이 울렸다.
대꾸가 없자 벨소리가 다시 울렸다.
화가 난 상태에서 손잡이를 거칠게 열어젖히자 문 앞에 두 눈을 동그랗게 뜬 보이가 룸서비스 카트를 부여잡고 있었다.
“룸 서비스”
객실 응접용 테이블에 시저샐러드, 오믈렛, 시푸드 크림 파스타, 안심 스테이크, 클럽 샌드위치와 오렌지주스, 망고주스, 수박주스 그리고 우유, 커피가 올려졌다.
강미현은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배가 고프니 너무 맛있다. 맛있으면 0칼로리! 그것은 진리.
그러나 진리는 추구하는 것이지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테이블에 빈 접시가 늘어나고 음식이 줄어든 것은 그야말로 순삭이었다.
허기가 가시니 그제야 개안이 된 것일까?
장태산이 떡하니 서 있는 것이 이제야 보였다.
“언제···부터··· 있었어요?”
“룸서비스가 나갈 때부터요.”
“말을 하죠?”
“설마 이걸 혼자 먹을 거란 생각을 못 했어요.”
양 볼 가득 음식을 머금은 강미현은 다람쥐처럼 귀여웠다.
“그래도 나는 당신 생각해서 함께 먹으려고 룸서비스 준비해 왔더니···, 메뚜기 떼가 휩쓸고 갔네. 크하하.”
강미현은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아무리 털털한 성격에 특작부대의 소문난 중성적 매력을 가진 그녀지만 장태산에게는 왠지 자신이 여자여자(?)하게 되는 듯했다.
식사 후 샤워를 마치고 태산은 소파에 베게를 가져다 두며 잘 자라는 입 모양을 하곤 손을 흔들어줬다.
강미현은 침대에 걸터앉은 상태에서 감은 머리에 물기를 수건으로 닦아내고 있었다.
아무리 작전이지만 한방에서 잘 순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영화에서보면 요원과 사랑에 빠지는 미녀 요원이 있지만······.
거울을 바라보니 너무도 매력적인 여성이 보였다.
오똑한 콧날 아래 도톰하게 살이 오른 입술라인이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태산과의 나이 차이가 무려 일곱 살이나 있었지만, 워낙 동안이었기에 20대 초반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에휴! 무슨 생각인 거야, 이 나이에······. 너무 굶었나?”
그녀의 넋두리 섞인 푸념이 들려오자 태산은 피식거리며 소파에서 잠을 청했다.
2011년 7월 23일 이른 아침,
먼저 일어난 강미현이 통화를 하고 있었다.
블랙요원에게 금일 접선 장소와 동선 및 수정된 작전 사항을 전달받고 있었다.
“태산씨! 아무래도 아침은 이동해서 하시죠.”
“일정이 변경됐나 보죠?”
“네, 빨리 고속열차 타러 가야 해요.”
“음, 거기서 접선할 모양이군요?”
“네, 얼른 출발합시다.”
서둘러 호텔 입구에서 택시를 타고 역으로 향했다.
강미현은 확실히 우수한 요원이며 뛰어난 재원이었다.
영어, 불어, 일어, 그리고 중국어를 웬만한 의사소통이 가능한 수준의 어학 능력자였다.
택시 기사에게 유창한 중국어로 ‘항저우동역’으로 가자고 했다.
길에는 수 많은 차량과 그것보다 더 많은 오토바이와 자전거가 도로에 가득 차 있었다.
택시는 요령껏 사이사이를 누비며 달려가고 있었다.
‘어, 그런데 역으로 가는 길이 맞나? 어제 나온 길이 아닌데······.’
- 작가의말
씻고 하던, 안 씻고 하던
중요한 건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자-
주말 잘 보내셨습니까?
모두 건강하고 활기찬 한 주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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