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인연(3)
‘띵 디리링, 띵 디리링···.’
“어, 말해.”
“······.”
“어, 어.”
“알았어. 내가 전화하면 바로 움직여.”
무슨 내용인지는 모르지만, 또 뭔가 사고를 치는 듯했다.
“야! 도일아!”
“니 동생은 왜 아직 안 보이니?”
“시간 맞춰 온다고 해도 지금쯤은 개구멍 근처에라도 와야 하는 거 아냐?”
싸늘한 표정으로 박춘식이 도기훈의 말을 거들었다.
“으, 으응 저기··· 사실은 말야···.”
도일이 어렵게 입을 떼자 술잔을 들고 있던 패거리들이 일제히 멈춰버렸다.
“저기, 오늘 내 동생 안 올 거야.”
“아직 어리고, 남자를 만날 시기도 아닌 것 같아서, 기훈이 너랑 그냥 내가 풀면 안 될까?”
‘슈~욱’
‘퍽~석’
도기훈이 집어던진 소주병이 도일의 무릎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나고 있었다.
‘큭’
“이 새끼, 내 이럴 줄 알았어.”
“야 비켜봐.”
도일이 앉은 자리로 다가온 도기훈은 쭈그린 자세로 도일의 머리채를 부여잡고 침을 내뱉었다. 얼굴에 범벅된 침 때문인지 담배 냄새와 비릿한 체액의 내음이 코를 파고들고 있었다.
“니가 아주 무덤을 파지.”
“내가 너랑 뭘 풀어 이 시X놈아.”
거세게 머리채를 뿌리치더니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야! 데려와.”
‘누굴?, 누가?, 어떻게 데려온단 말인가?’
도일이 혼란스러운 생각을 떠올리는 가운데 전화기를 소파에 집어던지며 도기훈은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제부터 안 봐줘. 내 맘대로 할 거야.”
‘우당탕당’
요란한 소리가 창고 밖에서 울렸다.
패거리들도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나며 창고밖을 주시했다.
창고의 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들어왔다.
마침 서쪽으로 걸쳐진 햇빛에 자연조명을 받은 듯,
스미는 빛을 등뒤로 한 사내는 키가 185~190Cm 정도 되어 보였다.
잘 다듬어진 몸매에 근육의 볼륨이 드러나는 소매 없는 티를 받쳐입은,
겉으론 상, 하의 트레이닝복으로 깔맞춤을 한 모양이다.
문이 스르르 닫히며 드러난 그 남자는
한마디로 잘생겼다(?)···기보다 남자답게 생겼다.
아니, 남자스럽다. 정확히는 남성미 풀풀 풍기는 마초맨 같아 보였다.
얼굴의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선이 굵으며 다부져 보이면서 눈은 맑아 보이고, 외꺼풀이지만 적당한 안광을 뿜고 있었다. 무엇보다 콧날만큼은 멋져 보였다.
‘어랏, 그러고 보니 전체적으로는 상당히 매력적인데 한눈에 모아서 보니 어딘지 모르게 잘 생겼다기보다 호감이 가는 스타일이랄까.’
남자의 등장에 일진 패거리들은 머뭇거리며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
“개 썅, 넌 뭐야? 시X놈아!”
“뭔데 졸라리 이상한 18색형광파스같은 새뀌가...”
“이봐! 뭔데 남의 학교에 와서 지랄이야!”
애새끼들이 저마다 욕지거리를 뱉어내자 남자는 인상을 찌푸렸다.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욕만 배우는 모양이다. 니들”
“나는 오늘 여기 한도일 학생의 초대를 받고 온 ... ”
“장. 태. 산. 이다.”
그러자 모두 한도일을 쳐다보았다.
‘그래서 어쩌라고?’ 라는 표정이다.
***
한 시간 전,
도일은 전화 약속을 한 상대방과 만났다.
그는 현수형이 소개해준 현수형의 대형 같은 존재란다.
현수형이 도일을 돕자고 나서니 아무래도 본인뿐만 아니라 정말 큰 힘이 될 수 있는 인연을 만들어 주겠노라고 큰소리 쳐가며 이 자리를 만든 거였다.
‘어른은 도움이 안 되던데. 아, 어떡하지’
“현수에게 네 이야길 모두 들었다. 걱정마 내가 도와줄게.”
‘이 양반이 도와준단다.’
‘우리 부모님도, 경찰도, 선생님도 도움이 안 되는데. 뭘 어떡하려고 하나.’
그런 걱정이 드는 순간, 현수형의 말이 생각났다.
“도일아! 그 형은 말야.”
“이 지구상에서 가장 강한 남자란다.”
“경찰이든, 군대든, 국가든, 누가 어떤 방법을 동원해도 그 형을 이기지 못해!”
"아니, 태산형은 다 이겨“
”그러니 걱정하고말고 그 형이 시키는 대로 만 해! 알았지?“
‘무슨 뻥을쳐도 정도라는 게 있지 해도 해도 너무한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를 쳐다보자 그는 조용히 말을 이어갔다.
“도일이 니가 기훈인가 하는 일진 녀석과 다이다이만 붙게 해달란 거잖아”
“나머지 녀석들은 꼼짝 못하게 참관하게 만들면 되는거고, 맞지?”
“그리고 학교에 문제 안 생기게 뒷수습 도와주면 되는 거고.”
“네, 네넷.”
도일은 얼떨결에 대답했다.
“걱정마. 그 정돈 내가 책임지고 해줄게.”
왠지 못 미더웠지만 지금 와서 달리 다른 방법이 없었다.
현수형을 믿듯이 이 형을 믿는 수밖에···.
‘근데 믿음직하게 생기긴 했다.’
장태산은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삼진고 근처로 와 도일을 내려주며
“시간 맞춰서 창고로 가마.”
“혹시 먼저 시작하게 되더라도 쫄지 말고 머리만 잘 보호하면서 대항하렴.”
“머리만 무사하면 부러지던, 찢어지던 다친 곳은 고칠 수 있단다.”
“명심해! 그리고 이 형님 믿어라. 그러면 돼!”
“있다 보자.”
‘뚜꾸뿌따다당’
요란한 소리를 내며 할리는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게 한 시간 전이었다.
***
한도경은 간만에 맞은 추석 연휴가 한가로왔다.
부모님도 일보러 나가셨고, 오빠도 나갔다.
홀로 차지한 TV 리모콘이 온전히 제 것이었기에 더 기뻤다.
소파에 반쯤 드러누운 채 채널을 올렸다 내리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심심하다고 느끼며 스마트폰을 들어보니 친구들의 카△오톡에 확인하지 않은 메시지가 잔뜩 있었다.
마침 무료했던 터라 냉큼 집어서 확인 창을 눌러 살펴보기 시작했다.
대부분 용돈을 얼마 받았는지,
그 돈으로 무얼 샀는지, 무얼 했는지, 무엇을 할 것인지 등의 수다들이라서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때마침 한도경의 단짝인 김미경이 자기도 심심하니 만나자는 카△오톡 메시지가 도착했다.
기쁜 마음에 답장을 작성하던 도경은 순간적으로 오빠의 당부가 생각났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나가지 말라고 오빠가 신신당부 했는데···.’
통화버튼을 눌렀다. 전화해서 집으로 오라고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미경아! 응 고마워 카△오톡 땡큐~”
“안 그래도 심심했는데, 내가 나가기가 좀 그래, 괜찮으면 우리 집에 오면 어때?.”
“엄마, 아빠는 일 보러 가셨어. 어, 오빠도 일 있다고 나갔어. 혼자야! 얼른 와!”
‘도경아! 그냥 우리 밖에서 보자.’
‘혹시 오빠가 일찍 올 수도 있잖아?’
미경은 도경을 설득해서 집 앞 상가에 학생들이 자주 애용하는 노래방에서 보자고 하였다.
도경은 잠깐 친구랑 놀다 온다는 생각으로 집을 나섰다.
‘항상 일이 틀어지고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하지 말라고 하는걸. 해서 그런 거다.’
오빠가 그리 부탁을 했건만 결국에는 집을 나섰다.
기쁜 마음으로 친구를 만나러 갔다.
도경은 친구를 만난다는 부푼 기대를 안고 노래방 문을 활짝 열고 까꿍 하듯이 들어갔다.
노래방안은 공포 그 자체였다.
친구 미경은 노래방 가운데 무릎을 꿇고 앉은채 울먹이고 있었다.
주변에는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언니들이 무려 7명이나 있었다.
하나같이 불량스러운 모양새였다.
교복치마가 미니스커트다. 아니 똥꼬치마다.
블라우스가 배꼽티처럼 보인다. 저런 것이 개좋단다.
‘삼진 칠공주’란다.
“니가 한도경이냐?”
“쌍년이 까리하게 생겼네.”
“도기훈이 뿅갈만 하네.”
불량스러운 모습을 일부러 연출하려 해도 저렇게 하진 못할 것 같았다.
문 뒤에선 여학생 한 명이 도경의 머리채를 잡아 바닥으로 패대기쳤다.
머리카락이 헝클어지며 쓰러진 도경의 비명이 방안을 울렸다.
노래방에 울려 퍼지는 비명을 감추기 위해 씨스타의 ‘쉐이크잇(SHAKE IT)’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도경과 미경, 둘은 서로 손을 맞잡은 채 벌벌 떨고 있었다.
‘제발 누구라도 도와줬으면······.’
그 바람을 듣기라도 한 걸까?
노래방 창문에 드러난 시커먼 그림자가 복도 쪽으로 지나다 다시 돌아와서 출입문의 반투명 유리에 어른거렸다.
‘여기요. 제발 우리 좀 도와주세요.’
큰소리로 외쳤지만,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구원을 청하는 소리 없는 외침이었다.
그런데 그 소리를 들은 것일까? 그림자는 지체없이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20대 초반의 훤칠한 운동복 차림의 청년이었다.
“네가 한도경이니?”
도경과 미경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울고 있었다.
“아이쿠야, 많이 놀랐구나? 오빠가 집에 바래다줄게.”
현수는 바닥의 두 중학생을 일으키며 좌중을 둘러 보았다.
칠공주라는 학생들은 독기를 품은 눈으로 현수를 노려보았다.
“아 씨발, 누군데, 왜?”
“우리랑 노는데 왜 그래요?”
오만 쌍욕을 쏟아내며 현수의 행동을 제지하려 했다.
명색이 여자 일진이란다.
현수는 버르장머리 없는 학생들이 바로 되는 방법은 사랑의 매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이내 사랑의 매를 전개하여 칠공주를 무릎 꿇렸다. 그러자 급기야 칠공주들이 울며불며 경찰에 신고한다고 했다.
노래방에 정장 차림의 말쑥한 신사가 한명 들어왔다.
변호사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칠공주들이 지금까지 벌인, 그 이전의 상황과 대화를 모두 녹취, 녹화했단다.
노래방이 좋은 점이 녹화기능이 있는 기계였다. 거기다 CCTV까지···.
현수가 아이들에게 웃으며 조용히 한마디 했다.
“용서를 빌지 않고 객기부리면 경찰 부르고 집에 연락할거고, 학교 못 다니게 퇴학시켜 주겠다. 전학도 못 하게 할 거다.”
그러니 살려 달란다.
잘못했단다.
엉엉 운다.
싹싹 빈다.
현수가 두 중학생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두 중학생이 웃으며 끄덕였다.
***
- 작가의말
재미 있게 읽으셨다면, 추천과 선호작 등록 부탁드립니다.
열심히 그리고 재미있게 완결까지 달리겠습니다.
코로나에 몸 건강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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