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 웰컴 투 아메리카(4)
혹시 여러분들은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이야기를 들어보셨나요?
‘여자의 눈치는 레이저 광선(?)보다 빠르다.’
마침 그 순간에 울린 전화는 아니나 다를까 조아라에게서 온 전화였다. 그것도 영상전화로 말이다.
황급히 장태산은 전화기를 들고 욕실로 뛰어들어 갔다.
“아라씨! 그렇지 않아도 방금 막 샤워를 마쳐서 전화하려고 했는데, 정말이지 무슨 텔레파시가 통하나 봐요.”
스마트폰의 화면 넘어 조아라는 화사한 복장에 너무도 잘 어울리는 헤어스타일을 하고는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머리를 예쁘게 했네요? 설마 나 보여주려고?”
“그럼요! 안 그러면 누구겠어요. 제가 직접 해봤는데 마음에 드세요?”
“완전! 마음에 들다마다요. 안 그래도 예쁜 당신이 더 예뻐지면 우와! 그건 반칙이죠!”
장태산의 호들갑을 난생처음 접하는 조아라였기에 왠지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그런 좋은 분위기도 잠시였다.
밖에서 우당탕거리며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장태산도 놀라고 조아라는 더욱 놀랜 표정으로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일인지 염려되어 조심스레 물었다.
“태산씨! 뭔일이에요?”
“글쎄, 그게 저도 잘······ 일단 나가봐야 알 것 같아요.”
목욕가운을 걸치고 거실로 나가보니 권혁팀장이 와있었다. 그는 놀란 모습을 하고는 어버버 거리며 손가락으로 맞은편을 가리키고 있었고 맞은편에서는 침대 이불을 몸에 감싼 금발의 아름다운 그레이스가 서 있었다.
“미스 그레이스 ······ 당신이 여기에는 왜······ 그것도 이불보를 감고···?”
권혁팀장의 당황한 음성이 고스란히 스마트폰의 통화로 선명하게 전달이 되어 버렸다.
그러자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조아라는 장태산에게 화면을 돌려 달라고 부탁했고, 마지 못해 카메라 전환을 하자 누구라도 오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아라씨! 지금 보고 있는 이 장면은 오해니까 섣부른 상상은 안 했으면 좋겠어요. 나 알죠? 나 믿죠?”
당황은 했으나 차분하게 전화로 상황을 이해시켜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조아라를 진정시키려 애쓰고 있었다.
“반가워요. 권혁··· 이제는 팀장님이시죠? 티에스글로벌재단의······.”
그 와중에 그레이스는 권혁에게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권혁역시 그녀의 인사를 받고는 화답을 해주었다.
장태산만이 이 곤란한 상황에 쩔쩔매고 있었다.
당황하고 안절부절못하는 장태산을 알기라도 한 듯 조아라의 담담한 음성이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권혁 팀장님! 그리고 이렇게 전화로 인사를 하는 것이 결례인 줄은 알지만,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처음 인사드립니다. 티에스글로벌재단 수석비서실장 조아라입니다.”
그녀의 차분하면서도 똑 부러지는 미국식 억양에 다소 놀란듯한 그레이스가 이내 표정을 고치고는 반갑게 화답을 하는 것이었다.
“네, 저 역시 불편하고 원치 않는 방식이지만 실례를 무릅쓰고 인사를 하지요. 반갑습니다. 그레이스 채프먼입니다.”
비록 전화상의 형식적인 인사이지만 그녀들은 나름대로 자신들이 갖추어야 할 격식을 충분히 갖추고 상대에 대한 배려와 예의를 지켜가며 대화하고 있었다.
장태산은 전화기를 들고 있기가 너무 머쓱하게 되서, 권혁팀장에게 잠시 들고 있어 달라며 전해주고는 두 여성에게 이렇게 전화상으로는 올바른 대화가 힘들 것 같다 그러니 잠시 기다려 달라며 그레이스에게는 옷을 갈아입을 것을 권하고 자신도 옷을 갈아입으러 간다고 하고는 자리를 비워 버렸다.
권혁은 환복하고 온 그레이스에게 미스 페레이라가 잘 있는지 안부를 전하고는 그동안의 궁금했던 여러 가지를 대화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그녀 부친의 죽음에 우리가 관여한 것이 아니라는 오해를 풀었다는 것이 가장 기뻤다.
권혁팀장이 들고 있던 수화기는 통화가 종료되었지만, 장태산이 환복하고 나오면 다시 통화를 재개 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아직 이 자리에 오지 않고 있었다.
‘오기 싫은가? 아니면 ······.’
혼자 그런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염려하던 중이었다.
펜트하우스의 거실로 통하는 작은 침실의 문이 열리며 장태산이 나왔다. 검정 바지에 화이트 톤을 가볍게 받쳐 입는 난방 느낌의 셔츠를 걸쳐, 일상적으로 보이면서도 점잖게 느껴졌다.
그런데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장태산이 나오는 그 방에서 왜 조아라실장이 따라 나오느냐 말이다.
태산이 신세계의 열쇠를 사용하여 조아라를 데려온 것이었다. 물론 그녀에게 당부하였다. 자신의 이런 능력은 처음부터가 아니라 우연한 기연의 결과라고 말이다. 그래서 1년에 겨우 2~3번밖에 사용할 수 없는 재주라고 약간의 하얀 거짓말을 보태어서 말이다.
장태산은 옷을 갈아입자마자 방문을 통해 조아라에게로 갔던 것이었다. 그리고 전후 사정의 일부를 설명하고 그녀를 데려온 것이었다.
그레이스 역시 미리 컨시어지 서비스를 이용해 준비해둔 옷으로 갈아입은 뒤였다.
간단한 룸서비스를 곁들인 티타임겸 미팅이 되어 버렸다. 장태산은 직원들에게 미팅일정을 일부 변경하라고 일러두었다. 그들은 깜짝 놀랐으나 어쩔 수 없다는 듯 그리 처리하겠노라고 돌아갔다. 미국 대통령과의 면담은 장태산의 일방적인 스케쥴 변경으로 그렇게 뒤로 밀려 버렸다.
그런 사실을 어느 누가 알겠는가.
그레이스는 조아라가 통화로 짐작한 것보다 훨씬 멋진 여성이라는 것을 만나고는 한 순간에 알아보았다.
단아하면서도 고운 이목구비가 마치 황금비율을 이룬 듯 했고, 이마위로 드러난 검은 머리카락은 같은 여성이 봐도 매혹적이었다.
게다가 몸매는 신이 내린 완벽한 비율로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투피스 정장 차림이었으나 치마가 몸매를 바로 드러낼 정도로 쫙 달라붙어서 더욱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오뚝하게 솟은 콧날 아래에 도톰하게 오른 입술의 매력은 키스를 부르는 마법이 걸린것처럼 보였다.
“와우! 이토록 아름다운 분인 줄은······ 못 보고 갔더라면 정말 후회할 뻔 했어요.”
“과찬이십니다. 미스 그레이스. 당신이야말로 눈부신 미모와 우아한 아름다움을 지니셨군요. 이렇게 만나게 되어 영광입니다.”
자기들끼리 서로의 미모에 대한 찬사만으로 벌써 몇 분째 인사 중이었다.
그러나 장태산은 현명했다. 절대 그 둘의 대화를 막거나 끼어들지 않았다.
그리고 조아라와 그레이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해주었다. 모두들 설명을 듣고는 그레이스가 무사한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그만하길 다행이라는 분위기로 잘 마무리되는 듯했다.
유독 권혁팀장만이 묘한 아쉬움의 여운을 남기고 있는 듯 보였다.
그레이스의 핸드폰이 꺼져 있어 충전을 대신해준 서비스맨이 그녀의 전화를 가져다 주었고 별 생각없이 전원을 켜서 확인한 그레이스는 적잖이 당황하고 있었다.
부재중 전화와 문자가 너무도 많이 와 있었던 거였다.
그녀는 서둘러 전화를 했다. 신호음이 채 가기도 전이었다. 헬기 소리와 함께 펜트하우스 위로 특수부대원들로 보이는 무리들이 사정없이 사방으로 뛰어내리며 총구를 겨누자 그와 동시에 권혁팀장과 티에스시큐리티 알파팀원들이 들이닥치며 동시에 그들과 총구를 마주하였다.
그레이스는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고는 골이 아픈 시늉을 하고 있었다.
“미안해요. 내가 미리 연락하지 못했어요. 앞으로 경호부대 없이는 아무데도 가지 않을테니 그만 총을 거두세요.”
그리고는 앞으로 나서며 대치 중인 그들을 모두 진정시켰다.
긴박한 상황이 일단락되자 그레이스는 여러 가지로 미안한 생각이 들어 태산과 권혁팀장에게 다시 한번 자기 뜻을 전했다.
“저는 일루미나티와의 협력을 연장하지 않겠습니다. 이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니 두 분도 우리를 오해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권혁팀장이 그 말에 확인했다.
“그 말인즉 우리와는 적이 아니란 말이지요? 그럼 과거의 오해도 풀고 더는 척을 질 필요 없으니 이제 동지가 되는 건가요?”
어째 그의 사심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어수선한 분위기가 정리되고 장태산과 권혁팀장은 미루었던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자리를 떠나자 조아라와 그레이스만 남게 되었다.
“아라씨! 라고 불러도 되겠죠?”
“그럼요. 편하게 대해주세요.”
“당신을 만나면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어요.”
조아라는 얼마든지 라며 흔쾌히 답했으나 속마음과 표정은 조심스럽게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을 뜸을 들인 그녀가 조아라를 바라보고는 겨우 입을 뗐다.
“그 사람을 잊었다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제 ······ 오늘 보고나니 ······ 내 마음을 나도 모르겠어요. 아직도 그 사람을 그리워 하나봐요. 이런말을 당신에게 해서는 안되는줄 알면서 ······ 말하지 않으면 너무도 큰 상처가, 고통이 될 것 같아요.”
조아라는 그레이스가 말을 하는 동안 그저 그녀가 미안해하고 당황해하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그녀의 말이 끝나자 조아라는 너무도 밝은 웃음을 지으며 그녀를 안아주었다.
“사람이 사람을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감정을 가지는 것이 미안한 일은 아니잖아요.”
조아라의 말에 그레이스는 순간 눈물이 왈칵하고 샘솟는 것을 느꼈다.
조직의 수장의 누이이자 조직의 마법사이며 총괄 대리를 해온 그녀였기에 한 인간으로서의 삶보다 모든 것을 꾹꾹 억누를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과거가 아니었던가.
너무도 고마웠다. 자신을 이해해주는 그녀가 너무도 사랑스러웠다.
“마스터가 왜 당신을 사랑한다고 했는지 알 것 같군요.”
“그 사람이 그러던가요?”
“너무도 당당히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더군요. 솔직히 부러웠어요.”
“저 역시 그 사람을 사랑합니다. 그런데 그거 아세요. 이렇게 사랑한다고 표현하기까지 저 역시 힘들었어요. 하지만 말을 하고보니 오히려 극복해야 될것이 더 많아졌는걸요.”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간단해요. 그 사람을 사랑하니까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이 내가 원하는 게 되면 되니까요.”
“모든 걸 그 사람에게 맞출 필요가 있을까요? 그건 너무 자아와 자기 주도권이 없는 것 같은데······.”
“사랑과 맹종은 분명히 다르죠. 저는 그저 단순히 생각했어요. 저 사람을 위해 내가 어디까지, 무엇까지, 그리고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그랬더니요?”
“내 생명이 다할 때 까지요.”
그 답을 들은 그레이스는 결국 못 이기겠다는 제스쳐로 항복을 표했다. 그렇게 주제를 바꾸어 서로에 대한 수다를 떨다가 헤어질 즈음이었다.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도 돼요?”
“그럼요!”
“만일 그 사람이 ··· 다른 사람과 ···동침을 한다든가 사랑에 빠진다면 ··· 그 때는 당신은 어떨 것 같나요?”
조아라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밝게 웃으며 그레이스에게 답해주었다.
“제가 사랑하는 것이지 그 사람에게 사랑을 강요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리고 그 사람을 품기에는 내가 너무 작은 것 같아요. 누군가를 그 사람이 사랑한다면 그 사랑도 이해해 보려구요.”
그레이스는 조아라의 사랑에 대한 숭고한 마음에 결국 백기를 들고 말았다.
“와아! 아라씨! 내가 졌어요. 항복.”
둘은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다정해 보였다. 건물 옥상 측면에 마련된 헬기 착륙장으로 이동하자 조아라는 배웅을 위해 함께 올라갔다.
그레이스가 아쉬운 작별의 포옹하는 순간에 갑자기 쇳소리가 날아오더니 강렬한 폭발음이 헬기에서 화염과 함께 두 동강 나버렸다.
“조심해요!”
- 작가의말
몸 건강!
마음 건강!
언제나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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