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 새로운 각성(1)
드럼통 속의 사람이 태산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의 두 눈은 파낸 듯, 아니 눈알을 파내어 퀭하니 비어 있었다.
팔, 다리가 통속에 알몸으로 접혀 흉측하고 기괴한 상태였다.
몸의 반쯤이 콘크리트에 파묻혀 있었다.
말을 끝맺지 못한 분노는 태산의 이성을 극도로 흔들어 버렸다.
눈빛이 초점을 잃었다. 머리가 온통 흔들렸다.
상단전과 중단전의 사이, 몸의 내부에서 격한 진통 같은 폭발이 울렸다.
“니들은···, 사람도··· 아니구나.”
“이새퀴 뭐라고?”
“절마, 통나무통 보고 겁먹었네.”
태산의 몸과 머리에서 자꾸 큰 울림이 공명하듯 울렸다.
그리고 그 울림에 마치 물에 휩쓸려 부유하듯 속에서 끊임없이 자극이 전해져 왔다.
생전에 느껴보지 못한 기분이었다.
신기하게도 그 울림이 보였다.
‘초월극기(超越克己)’
‘지선자여수(之善者如水)’
‘초극무위자연(超克無爲自然)’
‘자기 자신을 이기고 한계를 넘어서서 물을 닮아 자연을 넘어선 경지로 이기고 이기게 된다.’
뭐, 말은 더 어려웠지만, 아득한 몽롱함이 오감을 모두 진정시켰다.
그 모든 과정이 엄청나게 긴 시간이라 여겼으나 눈 떠보니 혼자 다른 세계에 시간이 멈춘 여행을 다녀온 듯했다. 그야말로 찰나였다.
박후만의 음성이 귓가를 때렸다.
“네놈이 싹싹 빌면 고민해 볼까 하는데?”
태산은 찰나의 경험으로 오히려 모든 것이 안정되었다.
“뭘 빌어야 하지? 잘못했다고, 용서해달라고, 살려달라고?”
“허! 저놈이 충격을 받아 말이 짧아졌네?”
오호대장군이 박후만의 심기를 헤아려 움직였다.
태산의 몸을 눌러 무릎 꿇리려 하였다.
꿈적도 하지 않는다.
무려 두 명이 양쪽에서 짓누르다시피 힘을 주었지만 역시 미동조차 없었다.
마초라 불리는 사내가 태산의 오금쟁이를 사정없이 걷어찼다. 그러면 대부분 충격으로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기에 완벽한 로우킥을 강력히 전개했다.
“······.”
역시 아무 반응이 없었다.
“이봐! 사장, 아니 회장이라고 했나?”
“지금부터 니들을 인간으로 대하지 않겠다.”
“내가 묻는 말에 성실히 답변해야 한다.”
박후만은 오호대장군(五虎大將軍)을 향해 턱짓했다.
‘전장군 한수정후 관우’
‘거기장군 서향후 장비’
‘표기장군 태향후 마초’
‘후장군 관내후 황충’
‘진군장군 영창정후 조운’
별명에 걸맞은 덩치와 무력을 지닌 듯 보였다.
일제히 다섯 방향에서 집채만 한주먹들이 사정없이 날아들었다.
‘퍼~억!’
‘팍!’
‘투확!’
주먹이 모두 태산의 얼굴과 머리 그리고 몸통에 정확히 닿아있어서 험상궂은 분위기에 적막이 감돌았다. 오호대장군들의 표정이 오묘했다.
자신들의 폭력에 아무런 데미지도 없는 듯했기에 자존심이 '확' 하고 상한 기분을 강하게 느꼈다. 반면 태산은 아랑곳하지 않고 박후만에게 다가갔다.
“지금까지 힘으로 밀어붙이면 다 통했지? ”
“나한텐 안 통해!”
“그러니 이번 기회에 정신 차리는 건 어때?”
어떠한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음성이었다.
얼굴은 더 놀라우리만치 무표정이었다.
박후만의 눈빛이 흔들리자 오호대장군의 뒤편에서 대기하던 인원들이 삽시간에 달려와 태산의 몸을 난도질해댔다.
그들의 손에는 서슬 시퍼런 빛을 흘리는 칼들이 들려있었다.
칼의 군무(群舞)가 창고 안에 파란빛의 향연을 이루었다.
‘슈와왁~’
‘서거걱’
‘쉬~익’
‘푸~욱’
칼을 전문으로 사용하는 그들은 프로였다.
어디를 베고 찌르면 대상이 어떤 반응을 하는지 너무도 잘 아는 전문가였기에 태산의 반응에 절로 인상이 구겨졌다.
‘이럴 리가 없는데?’
‘뭐지? 분명히 베었는데?’
‘제대로 쑤셨는데 아무 느낌이 없어?’
고민도 잠시였다.
태산이 팔을 한번 휘두르자 오른편의 세명의 덩치들이 2~3미터 날아가 처박혔다.
다시 왼편으로 휘두르자 너덧 명의 사내들이 포개지며 뼈가 부딪히는 소리가 나며 밀려나 쓰러졌다.
‘퍼버벅’
‘푸각’
‘끄아악’
태산은 쓰러진 놈들에겐 자비가 없었다.
몸을 앞으로 움직여 그대로 밟고 지나가자 팔이든 다리든 그야말로 짓뭉개졌다.
오호대장군들이 태산을 저지하기 위해 제각기 몸을 날렸다.
그들의 손에 쥐어진 대검과 넉클, 도끼, 그리고 삼단봉이 짓쳐 들었다.
조폭들의 지역전쟁에서 언제나 선봉에 서서 무자비한 폭력으로 상대조직을 압살한 그들이었다. 백여 명을 상대할 때도 오호대장군 그들이면 충분했다.
관우의 주먹을 살짝 머리를 젖혀 피함과 동시에 손바닥으로 그의 턱을 쳐올렸다.
그의 귀 안쪽에서 머리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와 동시에 장비의 도끼가 태산의 뒤통수를 노리고 파고들었다.
머리를 살짝 장비의 몸쪽으로 밀어 넣자 뒤통수가 장비의 도끼 손잡이를 잡은 손에 부딪혔다.
어깨로 장비를 밀어내며 반대 손으로 조운이 찔러오는 대검의 방향을 비틀어 장비의 목을 그어 내렸다. 그리곤 마초가 내지른 넉클을 발바닥으로 막음과 동시에 그 반탄력으로 황충을 뒤돌려차기로 턱을 부숴버렸다.
어깨로 밀쳐진 장비의 중심이 무너져 주춤하는 사이였다.
태산이 황충에게 빼앗아 내리친 삼단봉이 그의 빗장뼈에 작렬했다.
무협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
‘크아악’
‘우아악’
‘컥’
저마다 단말마의 비명을 지른 오호대장군은 처참하게 널브러졌다.
박후만은 그저 눈만 껌뻑였다. 무슨 말을 하려 했으나 턱이 벌어진 채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를 가리키는 손가락이 심하게 덜덜 떨리는 걸 보아 공포와 충격에 사로잡힌 모양이다.
건물 안과 밖에 있던 덩치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쾅’
‘우직끈’
‘퍽’
‘크와악’
‘으아악’
‘아악’
처절한 비명이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가 서서히 줄어들었다.
창고 안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어깨가 등 뒤로 돌아간 놈,
발의 무릎 관절이 앞으로 꺾인 놈,
허리가 젖혀져 실신한 놈,
팔이 덜렁거리는 놈,
머리통이 깨진 놈,
갈비대가 왕창 나간 놈,
가장 무시무시한 장면은 창고의 바닥에 펼쳐졌다.
바닥에 팔이며 다리, 몸통 등이, 살과 근육이 짓눌려 박혀 있었다.
고통을 못 이겨 앓는 소리를 내며 기어나가려 애쓰고 있었다.
박후만을 제외한 이백여 명에 가까운 조직원들이 결딴이나 바닥에 처참한 광경을 연출했다.
“이보게, 내가···, 잘못했네.”
“살려주게.”
무릎을 꿇은 박후만을 멱살을 잡아 들어 올리자 울먹이며 살려달라고 빌기만 했다.
“넌, 살려달라고 비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했지?”
“그···건······.”
“살려줬나?”
“······.”
“아닌 모양이군”
“제발···.”
“걱정마, 살려줄게. 그러나 그 사람들이 느낀 고통이 어땠을지는 알려주마.”
‘뿌각’
“으아악”
태산은 박후만의 새끼손가락을 꺽고 하나씩 반대쪽으로 젖혔다.
고통에 터져나온 울음 섞인 외침이 냉동창고 건물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
냉동창고 안, 손과 발이 꽁꽁 묶인 세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 사람은 이미 입술의 미세한 떨림조차 없어 보였다.
눈을 감은 속눈썹에 서리가 잔뜩 껴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정신을 붙들기라도 하듯 몸을 규칙적으로 흔들어댔다.
“변···호···사님!”
“안···사장···님!”
서로를 부르는 소리가 마치 시각화되듯이 서리로 변하는 입김이 만들어졌다.
“정···신···차려···야 합···니···다.”
“우···리··· 반드···시··· 살아··· 나···가······.”
변호사라 불린 사내는 얼굴 전체가 이미 시퍼렇게 변한 데다 두껍게 서리가 껴 있었다.
그렇지만 층층이 쌓인 얼음막 뒤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눈빛 만은 주위를 녹일 듯이 타오르고 있었다.
반드시 살아남겠다는 의지를 담아 연신 몸을 흔들어댔다.
그의 흔들림에 따라 과거의 의식이 마치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고등학교 학창시절,
서울대학교에 합격해 기뻐하던 순간,
사법고시 합격해 고함치던 순간,
검사 패찰 집어던지며 때려치운 순간,
인권변호사로 농성에 동참해 막걸리로 밤새우던 순간,
결혼식에 늦어 당황한 순간,
첫딸을 얻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던 순간,
정치인들과 술자리하고 와서 마누라랑 부부싸움을 대판하곤 싹싹 빌던 순간,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사촌들과 감정 싸움했던 엿 같은 순간,
그러고 보니 평범했지만, 정말이지 열심히 살았구나 싶었다.
그의 기억의 조각들이 눈앞에 겹겹이 쌓여갔다.
‘아직, 할 일이 많은데······.’
‘해보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은데······.’
‘만약 여기서 살아난다면 정말 후회 없이 살리라.’
그는 마지막 힘을 쥐어 짜내어 소리 질렀다.
“살려···주세···요”
불과 몇 시간 전이었다.
1회용 용기 납품공장을 운영하는 안사장과는 친한 친구처럼 허물없이 일 봐주고 소주 한잔하는 사이였다.
돈이 급히 필요하여 납품대금의 어음 할인을 받기 위해 마을금고를 통해 업체를 소개받았다.
간단한 업무를 도와주고 한잔하자고 해서 함께 자리했었다.
이놈들은 대놓고 빼앗는 강도였다.
할인 금리, 할인 이자, 할인 수수료··· 가져다 붙일 수 있는 명목은 다 만들어 차감해서 준단다. 만기가 한 달 조금 남은 것을 절반이나 떼고 준다고 한다.
그래서 안 하겠다고 나오다가 잡혔다.
뺏겼다.
두드려 맞았다.
그리고 여기에 갇혔다.
이놈들은 사람 목숨이 아무렇지도 않은가 보다.
무서웠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분했다.
이런 놈들이 판치는 세상에 내 가족들이 살아가야 한다니 겁이 났다.
적어도 내 딸만은, 대한민국만은 안전하고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니 그리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이를 악물고 몸을 흔들어대며 외쳤다.
“제···발 살···려주···세···요.”
점점 무감각해지는 의식에서 간절히 속으로 빌었다.
‘누구라도 좋으니 제발 살려만 주세요.’
내 복수를 할 수 있게 도와주면 내 목숨을 바치겠노라 다짐을 하였다.
점점 의식은 얼어가고 있었다.
파고드는 냉기가 잠식한 청각의 끝자락에 미세한 아이스 브레이킹이 발생했다.
‘파칭’
‘끼이익’
‘철컹’
“이봐요!”
“아저씨!”
“괜찮아요?”
“정신 차리세요.”
냉동창고의 문이 활짝 열리며 누군가 자신의 몸을 흔들어 깨웠다.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러자 그 남자가 자신을 들고 냉동고 밖으로 옮겨 주었다.
마치 빈 종이 상자를 나르듯 한쪽 팔로 번쩍 들었기에 놀랐다.
‘딸꾹’
냉동고를 벗어나자 주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한편의 수라도(修羅道)가 눈 앞에 펼쳐진 듯했다.
수십, 아니 족히 이 백여 명은 넘어 보이는 인원들이 처참하게 널브러진 지옥도가 펼쳐져 있었다.
손발에 묶인 밧줄을 풀어내며 고개를 들자 창고 가운데 우뚝 선 청년의 자태가 보였다.
눈부셨다.
고마웠다.
“괜찮으세요?”
“고마워요.”
“경찰과 119 불렀으니 조금만 견디세요.”
“정말 고마워.”
경광음과 싸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119구조대원들이 다가와 냉동고에서 구출된 남자들을 보살폈다.
담요와 핫팩 그리고 응급키트로 처치하며 이동하기 위해 준비 중이었다.
경찰들은 처참한 광경에 넋이 나간 듯했다.
박후만을 알아본 형사 두명이 그에게 다가가 상황을 살피며 귓속말을 주고 받았다.
형사들이 손짓을 하자 맞은편에 있던 형사 둘이 다가와 태산의 양팔에 수갑을 채웠다.
“당신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과 특수폭행, 살인미수 현행범으로 체포합니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당신이 한 발언은 법정에서 불리하게 사용될 수 있습니다.”
“······.”
- 작가의말
예약 설정이 잘못되어 월요일 06:30 업데이트 할 것을 지금 합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본 작품은 가상의 인물과 사건으로 만들어진 허구의 이야기 입니다.
특정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과는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작가의 일방적인 글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바라는 방향이나 내용이 있으신 경우, 직설적인 표현을 댓글로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적극적인 반영이 되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한 주의 시작입니다. 모두모두 화이팅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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