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화 : 브라트바 대격돌(1)
“누구냐?”
“장태산! 긴말하지 않는다. 시간이 촉박하니 본론만 이야기하지. 지금 당장 중국군과 공안을 돌려보내고 우리 애들 풀어줘.”
신경을 긁는듯한 쇳소리를 내는 저음의 목소리였다.
“인질의 확인과 안전이 먼저다.”
“두 번 말하지 않는다. 경고의 의미다.”
그가 전화기에 잠시의 정적이 흐르더니 순간 탕하는 총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다시 전화기 화면에 올라온 사진이 도착했다는 메시지가 보였다.
사진을 열자 경호원 친구 중에 한 사람이 허벅지에 총상을 입고는 자신의 다리를 부여잡고 고통에 소리를 지르고 있는 모습이었다.
당연히 그 옆에는 메이란이 안쓰러운 표정으로 그를 붙잡고 있는 모습도 사진에 잡혀있었다.
태산은 순간 머리가 복잡했다.
‘어찌해야 하나?’
“시간이 없다고 했다.”
“알았다. 지금 바로 연락하지. 잠시만 기다려.”
“아, 전화는 끊지 마! 이 상태로 켜 둬!”
“그러지.”
태산은 자신의 전화기로 시핑진주석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이해해 달라며 일단 군과 경찰을 물러 달라고 부탁을 했다.
분명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짐작했기에 시주석은 흔쾌히 태산의 요청을 들어주었다.
“이봐! 중국군과 공안은 돌려보냈다. 그러니 인질을 풀어줘.”
“하하하! 인질을 그리 쉽게 풀어줄 수 있나? 일단은 내 자그마한 부탁을 하나만 들어줘. 그럼 내가 파격적으로 생각해 보지.”
태산은 끌려다니는 이런 상황 자체가 싫었다.
‘이래선 안 된다. 뭔가 돌파구를 찾지 않으면 모두가 낭패다.’
태산은 결심한 듯 전화기에대고 담담히 이야기를 전했다.
“그래, 니가 바라는 게 뭐냐?”
“간단해, 거기 있는 의료진이 통나무 작업을 하도록 해주고 우리 애들 풀어주면 돼.”
“그래? 그냥 다 달라는 말로 들리는데?”
“어! 맞아.”
“그럼 인질은?”
“그런 다음 파격적으로 내가 생각해 본다고 했잖아? 보기보다 기억력이 안 좋구먼. 그래.”
태산은 대화하는 중에 시간과 거리를 유추해서 메이란이 이동했을 거리를 가늠해 보았다.
“일단은 당신 말을 믿어야 한단 말이지? 좋아! 나도 파격적으로 생각해서 모두 풀어줄게. 그러나 작업은 지금 안돼!”
“뭐라고?”
“당신 애들 모두 기절해있는 놈들이라 어차피 풀어줘도 가지도 못해. 그래서 내가 의료진 데리고 이동할 거니까 서로 좋은 게 좋은 거로 하자고. 알지?”
“이봐! 장태산! 지금 너의 인질이 내게 있다는 걸 잊진 않았지?”
“어! 근데 왜?”
“왜? 네놈이 명령하냐 이 말이다.”
“너만 하고 나는 할 수 없는 거냐?”
“그건 ······.”
“너보다 내가 인질 수가 훨씬 더 많은데 ······, 굳이 따지겠다면 한번 따져 보던가?”
“이런 시발라버릴 쉐끼. 내가 안 봐준다 했지?”
전화기 너머로 또 한 번의 총성이 들렸다.
‘타~앙!’
반대로 태산의 전화기에서 기관총이 난사되는 소리가 타고 들려왔다. 그가 놀라며 황급히 물었다.
“뭐 ···, 뭐냐?”
“뭐긴 뭐야. 니가 말한 것처럼 경고지.”
태산은 그에게 사진을 한 장 보내주었다.
여러 명의 용병이 피떡이 되어 쓰러져 있는 모습이었다. 물론 그들을 향해 발사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는 사진이었다.
이어서 장태산의 음성이 크고 분명하게 놈이 있는 곳에서 울려 퍼졌다.
“미스 진 메이란! 장태산입니다. 당신을 구하지 못해 정말 미안하고 죄송합니다. 그러나 이것 두 가지만은 약속하지요. 첫째, 당신을 진심으로 좋아했습니다. 그건 앞으로도 변함없을 겁니다. 그리고 두 번째, 당신을 납치하고 내게 협박한 그 놈을 반드시 찾아서 찢어 죽여 버리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나를 원망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태산의 음성이 전화기에서 그녀에게로 전달이 되었기에 그녀는 기꺼이 큰소리로 화답을 해주었다.
“알겠어요. 날 상관하지 말아요.”
그녀의 화답이 들려오자 태산은 지체없이 말을 이었다.
“이봐! 내가 말했다시피 당신 부하들을 여기 두고 의사들만 데리고 갈 거야. 그러니 알아서 해.”
‘뚝.’
태산이 전화를 끊어버리자 놈은 황당해 할 말을 잃었다.
‘뭐, 이런 놈이 다 있지?’
놈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짓다가 황급히 전화를 다시 걸기 시작했다.
한참동안 신호가 가고, 이윽고 전화를 받았다.
“이 미친 종자야!감히 내가 말하는데 전화를 끊어? 너 정말 뒤진다.”
“······.”
“이번에는 대꾸도 없어?”
“저기 저는 닥터 율리히입니다. 미스터장은 운전한다고 제가 전화기를 들고 있습니다.”
놈은 더욱 황당했지만 이내 평정심을 유지하고 예의 쇳소리로 말을 이었다.
“우리 애들은 두고 닥터들만 데리고 움직였단 말이지?”
“어!”
전화기를 태산의 입에 가까이 가져다 덴 율리히가 공손히 전화기를 붙잡고 눈치를 보고 있었다.
“일단 그 정도로 참아주마. 그런데 지금 어디 가는 거냐?”
“그걸 굳이 알려줘야 해?”
“말하면 혹시 알아? 나도 알려줄지?”
“린퉁구! 병마용 근처 지나고 있어. 됐지?”
“그니까? 어디로 가려는 거냐?”
“아직은 나도 잘 모르겠어? 그냥 무작정 가는 거야.”
‘끼~익!’
태산이 몰던 험비가 거친 소리를 내고는 멈추었다. 율리히에게 빼앗다시피 한 전화기를 집어 든 태산이 말을 조곤조곤 읊조리듯 말했다.
“근데 말이야! 내가 누군지도 알고, 어딘지도 알면서. 넌 누군지 알려주지도 않는 거냐? 그건 예의가 아닌데 말이지.”
“흐흐흐, 그렇군. 적어도 내가 누군지는 알려주는게 맞겠지. 좋아! 내가 바로 세르게이 옵친스키! 브라트바의 세르게이다.”
“··· 브라트바의 세르게이가 누군데?”
“모···, 모르는 거냐?”
“어! 몰라!”
“이런 스~파!”
“이봐! 미안한데, 네가 누군지 몰라.”
“······.”
태산이 전화기에서 얼굴을 떼고는 닥터 율리히에게 입 모양만 내며 소리는 작게, 그가 누구냐고 물었다.
그가 바로 러시아의 정점. 브라트바의 2인자인 세르게이라고 했다.
현재 러시아마피아는 40여 개의 파벌에 20만 명 이상이 활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거리의 상점인 키오스크를 운영하거나 세금을 갈취하는 키오스크 마피아.
또 합법적인 사업을 가장한 비즈니스 마피아, 관료 마피아, 그리고 콜렉터 마피아. 이렇게 대표적인 4대 마피아가 러시아에 퍼져 있었다.
그 중 브라트바는 모든 마피아의 정점에 있는 최고, 최대의 조직이었다.
세르게이 옵친스키는 과거 국가보안위원회(國家保安委員會) (Комите́т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й безопа́сности, 코미테트 고수다르스트벤노이 베조파스노스티, КГБ 카게베)라고 불리운 악명 높은 소비에트 연방정보기관 KGB의 핵심 행동책이자 정보총책이었다.
그는 자신의 권력과 무력과 인맥, 그리고 정보를 이용해 순식간에 군, 경 및 정치권과 관료들까지 장악하여 브라트바를 최대조직으로 올려놓은 핵심구성원이었다.
“아니 조직의 2인자께서 바쁜 러시아를 두고 이리 멀고 먼 중국 시안까지 와서 뭐 하는 거니?”
“네 놈 정도 되어야 내가 손수 상대하는 보람이 있지 않겠나?”
“뭐, 그다지 영광스럽다는 생각이 안 드네. 하는 짓은 양아치라서 그런가?”
세르게이의 얼굴이 와락 찡그려졌다.
“너!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지껄인 죄에 대한 벌을 받아야겠다.”
“뭐 굳이 준다면 한번 받아볼게.”
전화기 너머로 갑작스러운 비명이 울려왔다.
‘아아악!’
세르게이가 메이란의 머리채를 틀어쥐고 끌어와 자신의 책상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직접 벌을 주려 했건만, 네 놈이 받을 수 없다면 대리자가 받는 수밖에···.”
“이봐! 세르게이. 너 지금 실수 무지하게 하는 거야! 그러니 그쯤에서 멈추고, ··· 바라는 게 뭐냐?”
“크크크, 진작 그리 나와야지.”
‘역시 내게 바라는 뭔가가 있었구나.’
“알았다. 알았으니까 이제 그만하자.”
통화는 그리하면서 운전도 그렇고 태산 혼자 한없이 바빠 보였다.
“미스터 장! 지금 닥터율리히에게 너의 피를 채취하게 해줘 그리고 니 차를 그 의사들에게 주고 거기서 내려 그러면···.”
“그러면?”
“미스 진과 일행을 차에 태워 네가 있는 곳으로 보내주지.”
“좋아 그렇게 하지. 반드시 약속을 지켜라. 그런데 내가 어디 있는지는 알고?”
“우리 차에 GPS 하나 없을까 봐?”
전화를 끊은 태산은 이유 없이 자꾸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태산은 잠시 고민해 보았다.
브라트바의 2인자와 자신은 접점이 없었다.
단지 생양아치 같은 놈과 화산에서의 충돌과 그로 인한 은원(恩怨)만이 있었다. 그런데 그가 왜 나에게 이런 적대를 해오는 걸까?
여기서 의문점은 더 깊어만 갔다.
명색이 러시아마피아 최대 조직의 2인자가 직접 나설만큼 중요한 일인가? 아니다. 그럼 자신의 입지와 조직원들까지 희생해가며 그가 얻는 것은 ······그리 많은 것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지금까지 잘 해오던, 사업권이었던 장기이식과 장기밀매사업까지 리스크를 떠안으며 자신과 척을 지고 부딪혀야 하는 이유가 뭐냐는 것이었다.
답은 하나였다.
누군가의 사주(使嗾)밖에 없다.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자신과 주변을 위험에 빠뜨리려 한다면 ···, 뭘 해야 하는지 알지 않나?
부딪히면 누군가는 물러서고 깨지고 패배하기 마련이다.
‘나! 장태산은 당당히 나아가고, 깨부수고, 이길 것이다.’
태산의 주먹은 마침내 평온을 찾아 너무도 자연스러워진 피부색으로 돌아와 있었다.
손을 펴서 운전대를 두드리던 태산이 닥터들에게 말을 전했다.
“여기서 내리세요.”
“그럼 ··· 우리 풀어주는 건가요?”
“아니요? 잡아가는 겁니다.”
“아니! 누가요?”
태산의 손가락이 창을 두드리자 어둠을 뚫고 갑자기 대테러 특수부대 복장을 한 무장 군인들이 다가왔다.
그들은 일제히 차문을 열어 탑승자를 내리게 했다.
태산이 내리자 그중에서 리더로 보이는 사람이 절도있는 경례를 붙였다.
“장태산님! 인민무장경찰부대 흑표돌격대장 조자룽 인사 올립니다.”
시주석이 보내온 믿을만한 친구라는 사람인가 보다.
태산 역시 반갑게 인사하고 이동 중에 부탁한 스텔스 무음 헬기로 이동했다.
장태산이 헬기에 오르자 그가 메모를 건네고는 크게 경례하며 돌아가서 자기 일을 했다.
아마도 저들을 안전하게 보호함과 동시에 저들의 가족들을 구출하는 작전을 할 것이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태산은 이동 중에 세르게이에게 쉴 새 없이 쓸데없는 말로 시간을 끌었던 것이었다.
전파를 이용한 삼각측량법으로 중국과 한국의 정보국을 이용하여 통화 상대에 대한 정보와 범죄사실, 그리고 인질 내용과 적의 위치까지 알아내고 있었던 것이었다.
무음으로 조용히 흙먼지를 일으키며 날아오르는 헬기 속에서 장태산은 메모를 펼쳐보았다. 시주석이 그에게 전한 내용이었다.
‘군을 동원하면 러시아와의 군사문제에다 정치적인 문제까지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네. 그러니 자네가 이해해주고 이번 기회에 러시아에 대한 우리 인민의 희생을 막도록 꼭 좀 도와주게. 그리고 조자룽 그 친구는 아주 귀히 쓸 수 있을거네 좋은 인연 부탁함세.’
군대를 물리고 경찰 최정예, 그것도 자신의 최측근을 투입한 시주석에게 고마움의 선물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던중 조종사가 벌써 도착했음을 알려왔다.
태산은 무전에다 대고 모두 대기하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카운트했다.
“셋, 둘, 하나! 고!!!”
- 작가의말
최근 무더위가 기승입니다.
아무래도 더위로 인해 문제가 있습니다.
좀 시원하게 지내야 겠습니다.
여러분 모두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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