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화 : 추악한 추억(2)
‘콰드드득~!’
김동철은 차량 밖에서 들려오는 쇳덩이의 마찰음에 순간 머리털이 바짝 서버리는 것이었다.
가드레일의 한 면을 그대로 갈아버리며 겨우 멈춰 설 수 있었다.
다행히 에어백은 터지지 않았고 자신도 다친곳은 없어 보였다. 그제야 한숨이 절로 나오는 것이었다.
“휴우우! 큰일 날 뻔했다. 와 씨! 엿되는 줄.”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차에서 내려 반대편의 손상부위를 확인하려고 보니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김동철은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왜냐하면 가드레일과 자동차 사이에 바로 사람이 자전거와 함께 찌부려져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채 몸을 덜덜 떨고 있는 것이 아닌가.
겨우겨우 바람을 뚫고 들려오는 살려달라는 가느다란 소리가 마치 생명유지장치의 단음 마냥 가늘지만, 선명히 김동철의 귓속을 날카롭게 파고들고 있었다.
김동철은 넋이나가 바라보는 둥 마는 둥 혼자서 무어라 중얼거리고만 있을 뿐이었다.
매서운 바람이 내리는 눈발에 흩날리다 어느새 펑펑 쏟아지기 시작한 눈의 무게에 짓눌려가자 그 차가움에 퍼뜩 현실을 자각한 김동철은 떨리는 손으로 전화기를 꺼내 들어 버튼을 누르기 시작했다.
‘일일구···’
그러나 마지막 숫자, 구번을 누르지 못하고 있었다.
피투성이 사람이 다시 한번 마지막 힘을 쥐어 짜내며 살려 달라, 말을 하고는 기절해 버렸다.
덜덜 떨기 시작한 김동철은 자신의 전화기를 들고 최근 전화목록에서 표인범에게 전화를 하였다.
“으으으······ 혀 엉, 나··· 으으흑, 나좀 도와줘.”
눈이 하염없이 내리는 12월의 끝자락에서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해갈 즈음 가로등마저 눈발에 침잠되어 어둑해져 가고 있던 깊은 밤, 저 멀리서 미끄러지듯 지그재그로 달려오는 차량 한 대가 눈에 띄었다.
차선을 가로막기라도 할 듯이 다급히 차를 세운후 표인범이 가뿐 숨을 내쉬며 차에서 내려섰다.
그런데 그의 얼굴에는 놀라고 흥분해서가 아닌 술기운에 의한 홍조가 번지고 있었고 입에서는 이미 위스키와 꼬냑과 맥주가 짬뽕이 된 알코올 냄새가 진동했다.
“동철아! 너 괜찮냐?”
그는 김동철을 살피며 어디 다친곳은 없는지 물은 다음 다시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동철이 가리키는 곳을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구역질을 해버렸다.
오기전에 마셔댄 술이 토를 유발할 정도로 기괴하고 흉측하게 뭉개져 버린 사람과 자전거가 차와 가드레일 사이에 끼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표인범은 일단 주변의 CCTV가 있는지 확인한 다음, 김동철을 자신의 차로 데려갔다.
“일단 동철이 너! 내 차 타고 아까 말한 그곳으로 빨랑 가 있어. 여긴 ··· 내가 처리할 테니까 말이야.”
“그···럼 여···긴 ······.”
“내가 알아서 한다니까. 얼른 가.”
표인범은 김동철이 자신의 차를 타고 떠나자 곧바로 자신의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여보세요! 어! 난데, 일하나 하자. 지금 당장. 왜? 싫어? 너 배부르구나···, 알았으면 빨리 와 여기가 어디냐 하면 ······.”
통화를 끝낸 표인범은 너부데데한 면상으로 한껏 심호흡하더니 가드레일과 차 사이에 끼어있는 사람에게 다가갔다.
그는 이미 머리부터 드러난 부위에는 온통 피를 뒤집어쓴 데다 눈이 내려 마치 피와 함께 얼어버린 듯 보였다. 그리고 그의 호흡은 멈춰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이는 대략 스물이 안 되어 보이는 앳된 학생인 듯했으나 피범벅의 얼굴로는 그나마 성별이 남자라는 정도밖에 알 수는 없었다.
표인범이 가드레일의 윗부분을 잡고 몸을 일으키려 할 때였다.
‘처척!’
그 사람의 손이 표인범의 손등을 겹쳐 잡으며 곧 끊어질 듯한 숨을 몰아쉬자 표인범은 소스라치게 놀라 비명을 지르며 뒤로 자빠졌다.
어둠이 그 장면의 메아리를 담아내고 있었다.
“우와악! 시팔! 놀래라. 죽은줄 알았는데, 아직··· 살아 있었던 거야? 어쩌지? 아! 새끼 하려면 확실히 할 것이지 니미~!”
표인범은 다시 몸을 일으켜 세운뒤 그 남자를 바라보았다. 아까는 분명 숨이 멈추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가늘게 호흡을 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도 선명하게 보였다. 그것은 바로 입김 때문이었다.
그러나 표인범은 서두르거나 함부로 행동하지는 않았다. 침착하고 차분하게 자신이 연락을 취한 상대방을 기다리고 있었다.
눈길을 뚫고 달려온 봉고 한 대가 표인범에게 다가오더니 신속하게 내려서자마자 인사와 함께 작업(?)을 시작했다.
표인범은 그들을 지켜보며 라이터의 불을 붙여 담배 한 개를 깊숙이 폐부 끝까지 빨아 당겼다.
봉고에서 내린 네 남자는 각기 다른 일을, 묵묵히 시작하고 있었다.
한 사람은 주변 교통관제 카메라나 블랙박스를 살피고 있었다.
다른 한 사람은 가드레일 손상과 스키드마크 및 파손 정도를 체크하고 있었다.
그리고 남은 두 사람은 김동철의 차량을 운전하면서 사고를 당한 사람을 가드레일과 분리해 수습하고 있었다.
표인범이 그 남자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그 놈 ··· 아직 ··· 살아있어.”
“그래서 뭐! 어쩌라구? 살려? 죽여?”
“아니 내 말은 그렇다는 거지···.”
“표사장! 어디 한두 번인가? 걱정말게 우리가 다 알아서 하겠네. 그나저나 도련님이 많이 놀랐겠구먼. 어여 가서 부잣집 도련님이나 챙겨!”
제일 나이 지긋해 보이는 턱수염의 사내가 가드레일에 너덜해진 사내의 몸과 자전거를 분리해내며 표인범에게 가라고 턱으로 인사를 했다.
“이봐! 난 ··· 어찌 가라고 그래?”
“와하하! 그렇구만 애들아 총알 하나 불러 드려라.”
잠시후 표인범을 태워갈 승용차 한 대가 도착하자 예의 턱수염사내가 표인범에게 인사를 건넸다.
“표사장! 이번 건은 좀 특별하네. 아직 숨이 붙어있지 않나, 그러니 도련님에게 제대로 처리비용 받아줘. 알았지?”
“그래, 걱정마시게! 아! 그렇지 않아도 지난번에 내가 부탁한다던 건 말야. 아예 이참에 이 건과 합쳐서 제값을 쳐주려하는데 어때!”
턱수염의 사내는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이내
“아아! 그 백화점 모녀와 사내놈 말야?”
“어! 그래! 사내놈은 조지고 두 계집년은 제대로 맛 봐야 해!”
턱수염 사내는 음흉한 미소를 띄며 표인범을 보고는 강한 자신감을 드러내고는 손으로 음탕한 붕가붕가 모양을 해댔다.
“걱정말게. 네 신년 선물로 잘 준비하고 있으니 말이야. 기대하라고.”
표인범이 자리를 떠나자 사내들은 신속하게 주변 정리를 마치고 조금 전의 사고 현장에서 만들어진 부산물은 모조리 차에다 실은 다음 현장에 작게 불을 질러 소각이 끝나는 것을 확인하고 소화기로 완전히 증거를 덮어버렸다.
그리고는 봉고와 김동철의 차량을 타고 그곳을 유유히 떠나 버렸다.
***
별장에 도착한 김동철은 초조한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이미 별장 안에는 반라의 늘씬하고 쭉쭉빵빵한 미녀들이 술판이 벌어진 체 EDM 사운드에 흐느적거리고 있었지만, 그의 눈에는 그런 것들이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오히려 가드레일에 피투성이가 된 그 사람의 눈매와 소리가 너무도 선명히 들리는 것 같아 더욱 불안하고 두렵기만 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김동철은 평소 자신이 애용하는 서재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책장 가장자리의 책을 뒤적이자 하얀가루가 담겨있는 작은 봉투를 꺼내들고 책상으로 다가가 그 위에 소분하여 코로 들이 마시기 시작했다.
유학시절 처음 배운 각성제의 강렬한 첫 맛을 결코 잊을 수가 없었다. 그 뒤로 첫 경험을 할때도 이런 강렬한 추억은 비할바가 없었다.
그렇게 자극에 무디어 갈 즈음, 표인범이 맛보여준 색다른 강렬한 자극! 그것은 황홀경 그 자체였다. 모든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만큼 너무도 강렬했기에 그 약을 하고 난 뒤 즐기는 질펀한 섹스는 세상 다시없을 쾌락을 선사해 주었다.
표인범이 그 약을 항상 이 책장에 숨겨 놓았다는 것을 기억해 찾아서 흡입했던 것이었다.
한창 흥에 겨워진 별장의 열기는 식을 줄 모르고 있었는데 마침 표인범이 도착하여 김동철을 찾아갔다..
그는 충격에 입을 떡하고 벌리고는 김동철을 넋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놈의 코에는 이미 하얀가루가 양쪽 콧구멍에 잔뜩 묻어 있었고 옷은 모조리 발가벗은채로 아가씨 둘을 붙잡은 상태로 서재 한쪽의 백호 카펫 위에서 뒹굴고 있었다. 그중에 한 여성은 그의 손아귀에 목을 잡혀 숨을 못 쉬는지 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이 미친··· 야 ··· 임마! 도대체 약을 얼마나 빤 거야. 미치겠네.”
표인범은 서둘러 김동철의 손에서 여성의 목을 풀어놓자 그녀는 침과 눈물이 범벅이 되어 콜록이며 욕을 흘리더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버렸다.
그러자 김동철도 벌떡 일어나더니 다시 그 여성의 머리채를 부여잡고 자신의 사타구니 쪽으로 당겨 넣는 것이었다.
그녀는 비명을 질렀지만, 누구도 거기에서 반응하는 사람은 없었다.
표인범은 김동철을 끌어안다시피 해서 그를 침실로 옮겨놓고는 칵테일 주사를 찾아 그에게 놓아주고 그제야 자신은 술을 한잔 진하게 마셨다.
거실에 대기중이던 비서실 직원들과 자신의 똘마니들에게 아가씨들을 데리고 돌아가라는 지시를 내리고 그제서야 한 숨을 돌리고 있었다.
김동철 이 미친놈은 환각 상태에서 여자를 범하다 죽일 뻔한 것이 벌써 두 번째다. 정작 제 놈은 깨어나면 전혀 기억에 없다고 하니 참으로 편리한 놈이다.
그렇지만 자신에게는 얼마나 좋은가. 표인범 그의 손에 마이크로 SD카드가 무려 세 개가 있었다.
하나는 김동철의 사고 차량 블랙박스에서 빼낸 메모리 카드였고, 또 다른 하나는 이곳 별장 서재에서 약을 빠는 장면이 담긴 메모리카드,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전라의 상태로 여성을 강제 성추행하는 장면과 교살하려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긴 메모리 카드였다.
‘흐흐흐! 동생아! 니가 이 형님 동앗줄이 돼줘야겠다.’
그렇게 2015년의 마지막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 작가의말
이제 9월입니다.
세월은 너무 무섭습니다.
코로나도 무섭습니다.
그러나
독자 여러분의 응원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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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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