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 적(敵)의 적(敵)은 동지(同志)!(3)
사진 속의 남자는 태산이 구했던 사내였다.
자신을 살려만 주면 목숨도 바치겠노라고 약조했던 사람!
뒤에 본인이 알려줘서 알게 되었지만 그리 기억 못 할 만큼 평범하거나 묻힐 이름은 아니었다.
“왕엽신!”
태산의 입에서 이름하나가 튀어나왔다.
그러자 주변이 더 놀라는 분위기였다.
“태산! 자네가 어찌 이 사람의 이름을 알고 있지?”
팀장보다 더 놀라는 반응을 보인 사내가 권혁 요원이었다.
무언가 분노를 갈무리하려는 듯 음성은 떨렸고 주먹을 꽉 쥐고 있는 모양새가 아무래도 은원(恩怨)이 꽤 깊은 사연으로 얽혀 있나 보다.
“오늘 제가 구한 사람 중 한 사람입니다.”
“왜···, 차라리 ········· 익.”
말끝을 맺지 못하는 걸 보니 죽게 내버려 두지 왜 구했냐고 할 기세다.
황팀장은 권요원의 말을 내버려 둬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해 대화에 끼어들었다.
“이자가 중국 공청단의 해외 실세이며 자금 담당인 왕엽신 이라네.”
황팀장의 말에 태산이 명함을 한 장 건넸다.
명함에는 황엽신의 이름과 연락처 그리고 한중경제합작유한회사 라고 적혀있었다.
“이미 인연이 있으니 잘 된 것 같습니다.”
“무슨 작전인지 말씀 주시지요.”
왕엽신은 한국에서 아시아 자금 조달을 담당한 공청단의 최고 실세로서 표면적으로 삼자 무역이나 투자 명목의 대부업과 M&A 전문으로 중국 본국으로 자금을 보내는 창구 기능이라고 한다. 좀 더 숨겨진 내용은 흑사회와 화교의 검은돈을 세탁하고 그 대가로 공청단에 정치 자금을 조달하는 역할이라고 한다.
장태산은 공청단이 진행하려던 프로젝트를 방해했다.
그들의 해결사와 무력단을 무력으로 발라 버렸다.
그리고 그들의 적인 태자당에게 상하방과 손잡게 하고 시핑진에게 힘을 실어 준 것이었다.
무엇보다 자신들이 이루려 했던 차세대 배터리 공장을 시핑진에게 안겨주고 중한 합작의 성공적인 성과로 포장해서 대외적인 퍼포먼스를 펼쳐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 원흉(?)이 바로 장태산 자신이었다.
“근데 권요원과는 악연이 있는 모양이죠?”
황팀장이 흠칫 놀랜다.
마치 니가 어찌 아느냐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참 나, 말해줘야 아나요?”
“음, 이럴 때 보면 차라리 미현이가 나은 것 같아.”
강미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무슨 말인지 궁금해했다.
“음, 그건 제가 봐도 그렇습니다.”
태산의 말에 병실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웃었다.
단 한 사람만 빼고 ·········.
병원 옥상 휴게실로 자리를 옮긴 황팀장과 권혁요원 그리고 장태산은 자판기 커피를 손에 들고 마주 보고 섰다. 담배를 권하며 불을 붙이던 황팀장이 먼저 말을 꺼냈다.
“시핑진 측에서 긴급으로 정보가 왔어. 공청단 수장인 루오하가 이번 열차사고의 책임을 물어 숙청당하는 과정에서 진짜 실세가 전임인 후화춘이라는 구만.”
“팀장님! 우리가 중국 인물 열전을 알아야 합니까?”
“들어봐! 그런데 후화춘이 잠적을 하면서 중국이 야심적으로 진행하려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친 범 국가적인 프로젝트에 차질이 발생하게 되었다는 거야”
아니, 대가리 한 놈 숨었다고 그 크고 거대한 중국이라는 나라의 대계(大計)가 심각한 문제가 된다니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아니, 뭘 어쨌길래 ······.”
“화교(華僑)는 일반적으로 해외에 거주하는 중국인을 통칭하는 말인 것은 알지?”
“그럼요.”
“그런 화교 조직이 광둥(廣東)방, 푸지엔(福建)방, 차오저우(潮州)방, 객가(客家)방 이렇게 크게 4개로 나뉘어 있는 것은 잘 모를걸세.”
“음, 어쨌든 화교 조직이란 거네요?”
잠시 커피를 한 모금 하더니 말을 이어갔다.
“이 4개의 거대 화교 조직이 양지의 조직이고, 음지에는 흑사회의 대표, 삼합회와 흑련 등이 있지.”
“뜸 들이지 말고 말씀해 주세요.”
“이 거대 음과 양의 조직들이 동남아뿐만 아니라 유럽과 북미로 연결되는 그들의 골든라인이 송두리째 없어진 거라네.”
“음, 전 잘 이해가 안 됩니다.”
권혁요원이 말을 거들었다.
중국 지도층이 미래를 준비하는 장기적 프로젝트로 세계를 동남아시아·중앙아시아·서아시아·아프리카·유럽을 육해공으로 잇는 인프라·무역·금융·문화 교류의 경제벨트 완성하여 강한 중국을 만드려는 계획을 위해 쌓아가며 모아둔 화교와 암흑조직의 양대 비밀자금 라인이 사라져 버렸단다.
그냥 간단히 후화춘이 들고 튀었단다.
근데 어디 있는지 모른단다.
“그래서 왕엽신을 이용해 찾아 달란 말인가요?”
“그렇~취!”
황팀장은 신난 모양이다.
아무래도 이번 작전은 콩고물이 많을 것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아는 듯했다.
“아니 팀장님! 그런 작전은 저보다 뛰어난 국정원 해외 팀들도 많은데 굳이 제게 왜?”
“태산군! 몰라서 묻는 건가?”
“아~ 씨! 몰라요.”
“이번 건, 잘못하면 여럿 갈 거야. 황천으로······ 흐흐흑.”
“아, 무슨 팀장을 연기력으로 땄어요? 정말.”
알았다는 듯 손으로 장난을 걸어오며 말을 이었다.
“들어보니 왕엽신이 자네한테 목숨을 빚졌다더군. 적어도 실마리 정돈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우와, 구명지은(救命之恩)을 정보 얻는데 날려 버리라고요?”
본인이 생각해도 좀 염치가 없다고 생각되었나 보다. 연신 헛기침을 해대었다.
“일말의 단서조차 없습니까?”
“어, 그게 전혀 없어.”
“그럼 왕엽신은?”
“적어도 후화춘이 사라지기 전까지 확실한 자금줄이었으니 어떤 변화나 연결이 될 거라고 봐.”
“아직 권요원님과의 관계를 말씀 안 해주셨는데···.”
과거 문화대혁명 거치면서 권요원과 친분이 깊은 중국측 문화혁명 지도자 중 한 명이 한국으로 망명을 요청했지만, 양국 관계로 망명은 받아들여지지 못했단다.
어쩔 수 없이 민간단체 주도로 넘어왔고 정착에 도움을 주게 되었는데, 그때 권요원과 그 사람이, 정확히는 그 여성과 사랑에 빠져 버렸단다.
그 후 왕엽신이 중국측 자금 업무를 하며 아시아에서 화교라인이 활발하게 가동되자 그 여성이 발각되었고 행동책에 의해 무참히 살해 당했다고 한다. 그것도 권요원이 도와주러 갔는데 도착하는 순간에 죽임을 당했다고 했다. 그러니 어찌 그 분노를 참을 수 있겠는가 말이다.
황팀장은 권요원을 토닥거린 뒤, 태산에게 한 번 더 정중히 말을 건넸다.
“그들이 죽든 말든 상관 않을 것이라네. 중국 측이 원하는 것은 한가지라네.”
“그게 뭐죠?”
“골든 라인을 열어 줄 열쇠.”
“어, 그게 실물인가요?”
황팀장이 또 황당하단 표정을 짓는다.
“그거야 나도 모르지?”
“실물인지, 정보인지도 모르는 걸 나보고 어쩌라고?”
“이번에는 미현이 말고 권요원 붙여줄게. 그리고 현지 서포트 100%, 아니 200%.”
“약속했습니다. 200%”
“오케이.”
황팀장과 장태산은 손과 손을 맞잡았다.
각자의 셈을 달리한 채 말이다.
장태산은 왕엽신이라는 존재가 어쩌면 큰 힘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중국과 아시아, 나아가 세계 금융을 활용한 중국최대 조직의 재무신(財務神)을 내편으로 만들면 여러모로 좋지 않을까?’
***
병원특실이라고 1인실에 약간 고급스러운 소파와 가전제품 일부, 그리고 공간이 조금 넓을 뿐인데 돈은 배나 비싸다. 그래도 왕엽신은 자신에게 이런 대우를 해 줘야 한다고 위로하고 있었다.
‘똑똑똑’
“들어오세요.”
왠 훤칠한 사내가 병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왕엽신은 이내 화사한 웃음으로 그를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은인!”
“몸은 좀 어떠세요.”
“덕분에 멀쩡합니다.”
“그래도 혹 모르니 검사를 모두 해 보세요.”
“하하, 맞습니다. 그래야지요.”
태산은 병문안 오면서 빠질 수 없는 과일 음료를 한 박스 내밀었다.
왕엽신은 웃으며 음료를 빼서 한 병씩 마셨다.
감사의 말 이외에 달리 나눌 말이 없었던 터라 그는 연신 웃음과 과장된 제스처를 반복했다.
태산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핸드폰을 내밀고는 그에게 확인해 보라고 권했다. 화면을 보고 난 왕엽신의 얼굴은 그야말로 사색이 되었다.
“당신을 구하고 보니 우린 인연이 깊더군요.”
“무슨 말···씀······이신지?”
“항저우 열차충돌사고, 당신은 ···공청단! 시핑진과 배터리 공장, 난···장태산!”
“장···태···산! 당신이 정말 장태산입니까?”
자신의 지갑을 열어 민증을 까 보였다.
선명하게 적혀있는 그의 이름이 장! 태! 산!
“맞···네요.”
태산은 언제부터인가 상황 종합과 인지 능력이 점점 좋아지고 있었다. 이 사람이 이런 행동과 눈빛과 감정변화 및 미세한 체온의 변화가 감지되는 것을 보니 많이 알고 있는 모양이다.
‘우하하 심봤다!’
“어디까지 알고 있습니까?”
“그게··· 특별 처리조가 손 한번 못 쓰고 당했다고, 총도 칼도 통하지 않는 무시무시한 괴력의 소유자라고···, 만나면 무조건 피하라고 전달받았습니다.”
“그걸 믿으세요?”
“사실······, 시장통과··· 객차에서의··· 동영상을 보았습니다.”
“우와! 우리 팀에선 없다던데. 그런게 있었어요?”
“네, 중국에선 국가가 구하지 못할 것은 거의 없습니다.”
“뭐야, 그럼 원본 옮기고 삭제했단 말이잖아?”
“네.”
장태산은 왕엽신을 어디까지 믿을지에 대한 간 보기를 그만하기로 했다.
그의 눈을 지긋이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참으로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만드는 미소였다.
“긴말 안 하겠습니다. 내가 누구인 줄 알고, 내가 뭘 바라는지도 알 거고, 내가 어떻게 행동할지도 당연히 아는 분이시니 편하게 말씀드리지요.”
그가 목젖의 침을 삼켰다. 그 소리가 얼마나 컸는지 자신의 얼굴이 다 붉어진 느낌이었다.
“왕대인! 저는 단순히 국가의 녹을 먹는 정부 요원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한국과 중국, 양국의 이익을 위해 희생하는 그런 호구는 더욱 아닙니다. 일개 국가도 무시하지 못할 나의 이 힘으로 세상을 바꿀 겁니다. 내가 아는 정의(正義), 내가 믿는 인의(人義), 그리고 내가 만들 신의(信義)를 위해 노력할 겁니다.”
장태산은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손을 앞으로 쭉 뻗어 왕엽신에게 내밀었다.
“이런 나와 함께 하시겠습니까?”
장태산의 몸에서 마치 백색의 에너지가 감싼 듯 광채가 나와 그의 주변을 둘러싸는 듯했다.
그런 남자가 자신에게 함께 하자고 한다.
어찌 떨리지 않겠는가?
왕엽신은 평생 자신을 지탱하는 신조가 있었다.
‘신의(信義)는 썩지 않는다.(信义是永恒的。)’
장태산의 손을 응시하는데 눈물이 저절로 흘러내렸다.
“장대인! 이미 당신에게 받은 새로운 생명입니다. 이 목숨 다할 때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두 남자는 굳게 잡은 손에 다른 손을 포개며 몸을 껴안았다.
난데없이 병실에서 브로맨스를 찍고 있다.
아~놔! 태산의 로맨스가 먼저인데 언제까지·········.
태산은 정중하게 왕엽신에게 부탁했다.
후화춘이 골든라인을 가지고 잠적했으니 단서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을 도와 중국 배터리 프로젝트에 이은 국제 금융 전문가로서 역할을 요청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편에 함께 할 조직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태달라고 했다.
왕엽신은 모든 걸 내려놓고 태산에게 다 던질 각오로 대화를 나누었다.
태산의 나이가 딱 보아도 20대 초중반이니 아무리 뛰어난 능력이 있다손 치더라도 자금, 즉 돈은 많이 필요할 것이니 자신의 돈을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장태산이 먼저 선수를 쳤다.
“왕대인! 혹시 오해하실까 봐 미리 말씀드립니다. 지금 진행하셨던 모든 중국 측 자금은 그대로 진행해서 중국 측에 넘겨주십시오. 단, 공청단보다 태자단으로 정리해 주시면 서로가 만족할 듯합니다. 제가 시핑진 측에 전해 두겠습니다.”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위해 그런 수고를 기꺼이 해 준단다.
또 눈물이 난다. 왕엽신은 생각했다. 벌써 갱년기인가?
“그러겠습니다. 그러면 장대인께서 진행하려는 자금이······.”
장태산이 빙긋이 웃으며 서류를 한 장 건넸다.
“지금 가지고 계신 법인은 중국과의 거래를 위해 두시고 새로 법인을 하나 만드세요. 제가 100%입니다.”
“네,네.”
대답은 했지만, 서류를 보기 전이었다.
왕엽신이 서류를 펼치자 은행 잔액증명 서류였다.
그것도 금액이
‘100,000,000,000원’
‘음, 그래도 금액이 꽤 되는구나 천···억···.’
“아! 왕대인! 설마 그걸 한화로 보신 건 아니죠?”
“네? 그럼 이게 위엔화? 딸꾹!”
“네, 중국 돈입니다.”
아! 진짜 ‘딸꾹’ 이다.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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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부족하지만 재미있게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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