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 통나무 사업(5)
“저녁 8시 경입니다.”
지금 시계가 5시니 대략 3시간이 남았다.
이미 놈들의 각종 통신장비는 수거하였고 시핑진에게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보내달라고 했기에, 3시간 정도는 충분할 것 같았다.
태산은 서둘러 메이란과 경호원을 돌려보내었다. 한사코 가지 않겠다는 그녀였지만 태산의 한마디에 순한 양이 되어 갈 수 있었다.
“당신으로 인해 내가 힘을 쓸 수 없다면 그게 우리 모두를 위험하게 만드는 겁니다. 그러니 나를 믿고 얼른 안전한 곳으로 가세요.”
“그래요. 아가씨! 우리도 태산님께 큰 도움이 못 되니 이만 물러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언제부터인지 이 녀석들이 나를 태산님이라고 부른다. 귀여운 놈들.
그렇게 메이란과 경호원 둘이 그곳을 떠나고 얼마나 흘렀을까?
날이 어둑해지며 창밖에는 어느새 땅거미가 내리고 있었다.
저 멀리서 흙먼지가 일어나며 여러 대의 차량이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맨 앞의 선두차량은 멀리서 보아도 튼튼해 보이는 외관이 느껴졌다. 중국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사륜구동 장갑용 ‘험비’라는 모델이었다.
성 모양의 구 호텔 주차장에 도착한 차량은 모두 여섯 대였다.
먼저 차량에서 내려선 병력은 스페츠나츠 출신의 용병들로 보였다. 전투 복장에 중화기로 무장한 것을 보니 이놈들은 정말로 중국 공안들을 전혀 겁내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어서 하차한 사람들은 한눈에 보아도 의료진으로 보였다.
의료진 가운을 입은 남자 네 명에 여자 네명, 의사와 간호사 한 명씩 4개 조인 모양이다.
의료진중 절반은 동양인, 절반은 러시아인으로 보였다.
차량이동으로 지친 듯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기지개를 켜며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전투 조원으로 보이는 한 녀석이 무전기를 들고 무어라 말을 하자 남은 전투 조원들이 일제히 경계태세를 취했다.
‘음, 정말 훈련이 잘 되보이는 놈들이구나.’
방금 무전을 취하던 놈의 손에 위성 전화기가 들려있었고 어딘가에 통화를 하고 있었다.
잠시후 태산이 전화기를 모아둔 곳에 전화벨이 울렸다. 근데 벨소리가 밀리 알렉세예비치 발라키레프의 피아노 곡이었다.
러시아 국민악파를 대표하는 러시아 5인조의 지도자였던 그의 피아노곡을 핸드폰 벨소리로 지정한 전화를 보니 러시아불곰의 전화였다.
그는 아직 기절한 상태에서 깨어나질 못하였기에 태산이 대신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건 상대는 다름 아닌 조직의 중간 보스였다. 의료진이 도착했는데 왜 마중을 안 나갔냐고 따지는 전화였다.
태산은 유창한 러시아어로 마치 러시아불곰인것처럼 대답해 주었다.
“장태산이 요란을 떨어 제압하느라 힘들어서 그렇습니다. 그냥 들어오면 되지 한두 번도 아닌데 꼭 상전 대우를 받아야 합니까?”
“그래, 그래. 알았어. 내가 그냥 들어가라고 할테니 그만 칭얼거려. 아! 드미트리! 그거 말이야 그년···, 진메이란은 죽이지 말고 잘 가두어둬, 내가 맛보고 통나무로 쓰든 뭘 하든 할 거니까?”
“······.”
‘그래 넌 내가 반드시 찢어 죽여주지.’
태산은 본의 아니게 또 한 번 죽이고자 하는 마음을 크게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통화가 끝나고 의료진과 용병들이 입구를 통해 들어왔다.
태산은 이미 홀에 있던 놈들을 전부 임시 감옥에 가두어 놓고 혼자 그들을 맞이했다.
의료진들이 태산을 보고는 놀라 뒤로 물러서자 용병들이 앞으로 나서며 태산을 향해 경계태세를 취했다.
“누구냐?”
“나? 니들이 오늘 보기로 한 장태산!”
태산의 말에 놈은 흠칫 놀라며 총의 안전장치를 풀며 격발 자세를 취했다.
“러시아불곰과 레드는 어디있지?”
“알려주면 넌 내게 뭘 줄 건데?”
태산과 말을 주고받던 용병이 그들의 리더인 모양이었다. 그는 피식 웃으며 태산의 말에 답아닌 답을 주었다.
“니가 우리에게 받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편안한 죽음을 내리는 자비(?) 정도라고 해두지!”
“그래? 그럼 그런 자비를 내가 너희들에게 내려도 군소리하기 없기다.”
둘의 대화가 거슬렀는지 유럽인으로 보이는 의사 한 명이 그에게 재촉하듯 말했다.
“이봐! 시간이 없어. 오늘 장기 끄집어내야 하는 통나무가 얼마나 많은 줄 알지?”
뒤에 따라온 듯한 동양인 의사 둘은, 험악한 분위기에 잔뜩 위축되어, 겁먹고는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유럽의사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용병 리더의 왼손가락 검지와 중지를 겹쳐, 돌격 앞으로 제스처를 취하자 그의 뒤에 서 있던 세 놈이 앞으로 나섰다.
그들은 일제히 돌격 소총 자세를 취하며 태산을 향해 사격을 가해왔다.
‘투타타타탕!’
‘퍼퍼퍽’
태산의 몸에 적중한 탄환이 단순히 뭉그러져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그만 폭발이 일어나고 있었다.
일종의 철갑탄과 소이탄이 합쳐진 특수 총탄이었다.
그의 몸에 명중된 총탄의 충격으로 태산의 몸은 몸이 서너 발걸음 뒤로 밀리더니 연속한 충격에 몇 미터를 날아갔다.
쓰러진 태산이 머리를 흔들며 정신 차리려는 듯 상체를 일으키자 이번엔 유탄발사기를 격발시켜 태산의 정면에 날려왔다.
‘쿠쾅~!’
‘후두둑!’
주위의 구조물이 부서져 태산이 받은 충격을 가늠케 했다.
“이런 씨발라~먹을 shake it.”
태산은 상체를 일으킴과 동시에 앞으로 튀어나가며 돌격조의 공격을 피함과 동시에, 하단 차기, 중단 찌르기, 상단 돌려차기를 세 명에게 강하게 먹여주었다.
한 방에 나가떨어진 세 명 뒤에, 이번엔 특이한 총구 모양과 나사가 꼬여 있는 형태의 총열을 가진 총을 든 두 명이 태산을 향해 발사해 왔다.
‘퓨슉!’
‘푸~왁!’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다.
태산의 왼쪽 어깨에 적중하자 그의 몸뚱이가 충격을 받은 어깨를 중심으로 바람개비 돌 듯 튀어 오르며 수십 바퀴를 돌아버리는 것이었다.
‘이게 뭐······.’
절로 입이 떡 벌어지는 무기였다. 어깨가 얼얼하다 못해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았다.
형태로 보아하니 일종의 레일건 같았다.
‘아니 저렇게 소형으로 레일건이 만들어진단 말인가?’
영화에서나 등장할 법한 무기가 여기에서는 그냥 막 나오는구나.
만일 태산이 아니었다면 몸통에 벌써 구멍이 나고, 이미 목숨은 장담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을 것이다.
태산은 팔을 돌려보곤 이상이 없는지 다시 몸 상태를 체크 했다.
‘지금부터는 무작정 부딪히는 것은 피해야겠군. 각개 격파다.’
태산의 몸이 움직인다 싶은 순간, 레일건을 든 한 명의 턱이 태산의 발차기 때문에 부숴지며 그의 뇌에 뇌진탕을 일으켰다.
그리고 돌아서는 탄력으로 팔꿈치와 뒤돌아차기를 먹였다.
들고선 레일건의 몸체가 바스러졌고, 연이어 그놈의 옆구리가 접히며 날아가 기둥에 부딪혔다.
남은 전투 용병은 리더를 제외하고 네 명!
태산은 잠시 호흡을 고르고 그들이 각자의 대검을 꺼내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용병 리더의 지휘 아래 그들은 사방에 진용을 갖추고 공격을 해왔다.
태산은 그들의 대검 공격을 예전처럼 쉽게 받아줄 생각이 없었다.
왜냐하면, 대검의 형태가 일반적이지 않고 가운데가 갈라져 있으며, 날의 빛깔이 짙은 먹빛을 강하게 풍기는 게 단순한 칼 종류가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네 사람이 만드는 합동 공격은 무시무시했다.
피하기에 급격하다 보니 공격은 엄두를 내지도 못하고 있었다.
‘쉭! 쉬익!’
겨우 두 합 정도의 교전에 태산은 굉장히 불편하면서 불쾌했다.
참다못해 그는 실험적으로 놈들의 대검에 살짝 닿아보았다.
‘파찌찍~!’
“크아악!”
태산의 입에서 크나큰 비명이 터져 나왔다.
전격(電擊)을 일으키는 대검이었다.
고압전기를 발생시켜 상대에 타격을 주는 무기를 개량한 모양이었다.
정신이 아득하니 혼이 나갈 지경이었다.
‘음! 상당한 고압이구나. 진짜 조심해야겠다.’
태산은 자세를 바꿔 가벼운 풋워크를 밟으며 사방을 회전하며 놈들을 상대했다.
뒤의 녀석이 찔러오는 대검을 비켜 피함과 동시에 오른쪽 스트레이트, 연속으로 주먹을 거두는 속도와 함께 왼손 어퍼컷을, 세 번째 놈을 탄력받은 상태에서 오른발로 몸통을 가격시켰다.
남은 한 명은 태산을 노려보며 동료가 쓰러지며 흘린 대검을 주워들곤 쌍검으로 마주했다.
태산이 성큼 다가가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태산에게 전격 대검을 가져다 댔다.
그와 동시에 태산 역시 그에게 손을 뻗어 그의 목덜미를 잡았다.
‘파찌찌직!’
“크아악!, 아악!”
이번엔 두 명의 비명이 들렸다.
태산이 감전되기 전에 놈을 잡았기에 둘은 동시에 감전되었던 것이었다.
태산은 그래도 무사했지만, 그는 온몸이 타버린 듯했다. 아마도 만 볼트, 아니 수천 볼트가 넘는 모양이다.
이제 용병 리더만이 태산을 적대시하며 노려보고 있었다.
“이봐! 인제 그만 항복하지?”
그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허리에서 무기를 두른 요대를 풀어 내리고는 두 손을 들어 항복을 표시했다.
의료진 역시 모두 두 손을 들어 항복을 표시했다.
태산은 의료진 중에 동양인으로 보이는 두 사람의 남자 의사를 눈여겨보았다.
“여기 왜 온 것인지는 아나요?”
태산의 물음에 두 사람이 흠칫 놀라며 태산을 쳐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태산이 방금 한 말은 러시아 말도 아니고, 중국말도 아니었다. 대한민국 표준 서울말이었다.
그 둘은 한국 사람, 한국인 의료진이란 것이었다.
“아니 왜? 중국까지 와서 이러는 겁니까?”
“······.”
뭔가 말을 하려 했지만, 입만 삐죽대고는 차마 말이 나오지 않나 보다.
“당신들 이거 범죄인 것은 알고 있는 건가요?”
“살고 싶어 그랬습니다.”
둘 중 조금 더 나이든 의사가 태산을 향해 먼저 입을 뗐다.
“저들이 죽인다고 협박한 건가요?”
“뭐, 그것도 ···.”
다른 이유가 또 있다는 말이구나.
“자세히 말하는 것이 좋을 겁니다. 좀 있으면 중국 인민군과 공안 그리고 한국의 국정원에서도 여기에 도착할 거니까요.”
둘은 깜짝 놀라며 초초한 눈빛을 보내왔다.
쓰러진 전투 요원들을 모아와 손발을 묶어 다시 감금해두고 의료진들만 따로 모아 대화를 이어갔다.
이제는 체념한 듯 나이 많은 의사가 주저리주저리 말을 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동업했던 동료 의사의 의료소송을 뒤집어쓰고 빚더미에 앉아서, 한국에서는 더는 의사를 할 수가 없더군. 결국, 가족들과 함께 전 재산을 털어 중국행을 택했습니다.”
잠시 숨을 고르고는 담담히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중국에 처음 와 개업할 때, 한국 사람의 도움을 받았는데 그때 동포로부터 임대차 관련 사기를 당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가족들 벌어먹이려고 페이닥터로 들어갔는데 시키는 수술을 하다보니 ······. 처음에는 이런 것인 줄 몰랐습니다. 병원에서 정상적인 장기이식 수술인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수술 집도에 매달렸습니다. 실력을 인정받으니 월급과 보너스도 올려주고 집도 옮겨 주더군요. 감사한 마음에 더욱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랬는데요?”
“그게, 가족들을 인질로 잡고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전부 죽이겠다고···, 그래서 지금까지 그들이 시키는 수술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가족들은 어디 있나요?”
“그···, 오늘 가셨던 대서가(大西街)의 안쪽 안가가 몇 채 있습니다. 저와 같은 의사 가족들이 모여있습니다. 대략 대여섯 가족 될 겁니다.”
그때였다. 유럽의사가 가진 전화기의 벨이 울려 퍼지며 그곳의 주의를 환기 시켰다.
“미스터 장태산! 당신을 바꾸라고 합니다.”
태산이 전화를 바꿔들자 전화기 속에서 익숙한 음성이 들려왔다.
“태산씨!~ 악!”
메이란의 비명이었다.
- 작가의말
여러분 덕분입니다.
신인베스트와 장르베스트에 계속 작품이 등장하는것을 보니 너무 감개무량합니다.
앞으로도 더욱 열심히 달려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아요 추천과
선호작 등록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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