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화 : 통나무 사업(4)
랄프가 보기에 러시아불곰이 장태산의 주먹을 온몸으로 고스란히 받아 주는 것처럼 보였다.
러시아불곰의 복부에서는 생전 처음 경험하는 통증이 온몸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그는 생각했다. 자신을 이런 통증에 떨게 하는 존재가 있었던가? 아무도 없었다.
자신이 누구인가? 영하 사오십 도의 추위에서 아름드리나무를 도끼질 한두 번 만에 통째로 베어 비탈길에 굴려, 나무가 내려오기도 전에 먼저 내려가 온몸으로 그 나무를 받아내는 괴력의 불사신이라 불리는 ‘러시아불곰’이었다.
그런 자신이 한국이라는 동양의 조그마한 나라에서 온 이십 대의 청년에 불과한 그의 주먹 한 방에 온몸이 내려앉는 강렬한 통증으로 정신이 혼미해지고 있었다.
‘크흐흡.’
신음에 가까운 비명.
랄프는 놀라고 있었다.
러시아불곰은 과거 군용 수송 트럭이 눈길에 미끌려 동지들이 죽을 위기에서 맨손으로 차를 막아낸 인물이 아니었던가.
트럭에 받혀도 오히려 멀쩡했던 그가 장태산이 내지른 주먹 한 방에 온몸이 경직되어 신음을 흘렸다.
러시아불곰 드미트리는 양 주먹을 다시 움켜쥐고 온몸의 투기(鬪氣)를 끌어올리자 주변에 공기의 소용돌이가 일어났다.
“으야압!”
그의 비명에 가까운 기합에 태산의 몸이 두세 걸음을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이건 마치 무림맹주의 투기(鬪氣)와 유사했다. 아니 어쩌면 그보다 좀 더 우위라고나 할까?
그의 두 눈에는 흉흉한 붉은 기운이 감돌고 등 뒤에선 얼음송곳이 파고드는 듯한 냉기가 스멀스멀 피어 올랐다.
러시아불곰의 손바닥 공격에 이은 발차기와 팔꿈치 공격의 연계기는 환상적이었다.
만약 종합격투기였다면 거의 완벽한 콤비네이션 연계기였기에 아마 대적할 상대가 없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의 상대는 지구상 가장 힘(?)쎈 남자 장태산이었다.
손바닥은 손바닥으로, 발차기는 발차기로, 그리고 팔꿈치 공격은 돌려막기로 흘려버렸다.
연이어 돌려차기가 그의 목덜미에 적중하면서 둔탁한 파열음이 공간에 울려퍼졌다.
‘퍼~억!’
러시아불곰이 한쪽 무릎을 꿇고는 태산을 바라보았다.
‘이놈, 확실히 대단하구나! 그냥 대충 상대하다간 큰일 나겠다. 이제 전심전력으로 제대로 붙어보자’
그러면서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태산 역시 생각했다.
‘확실히 이놈들은 다르구나. 다른 놈들 같았으면 벌써 쓰러지거나 골로갔을 터인데 말이다.’
러시아불곰은 순식간에 날아오르며 무릎 차기를 태산의 턱에 적중시켰다. 태산의 손바닥이 다행히도 막아내긴 했지만, 충격으로 머리가 흔들리긴 했다.
다시 양발의 가로베기로 다리를 잡아 넘어뜨리려 하자 역으로 태산이 그의 몸통을 잡아 찍어눌렀다.
‘쿠와왕~!’
커다란 곰 두 마리가 격돌하는 모양새이다 보니 어느 사람도 주위에 합세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랄프가 조용히 관전하고 있던 메이란 일행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경호원 두 친구가 그를 막아섰다.
랄프의 주먹이 순간 공중에서 두 번 사라졌다 나타났다.
‘퍽!’
두 경호원의 안면은 주먹에 적중한 타격음과 동시에 피부의 떨림이 나타나며 안면근육이 충격에 일그러졌고, 그들의 의식은 잠시 외출할 수밖에 없었다.
‘털썩.’
뭐야? 메이란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저들은 명색이 무림맹에서 호법의 지위에 맞먹는 경호원들이 아니던가?
그런 그들이 고작 러시아인이 내지른 주먹 한 방에 기절한단 말인가?
그녀는 자신이 태산의 인질이 또다시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급히 공력을 끌어올려 랄프, 아니 ‘브라트바의 레드’를 상대할 준비를 하였다.
그녀의 팔과 주먹과 손바닥이 우아한 원을 그리며 태극권의 자세를 취하자 브라트바의 레드 눈빛이 아주 잠깐 붉은 기운을 뿜으며 그녀에게 쏘아져 갔다.
‘쐐에액~!’
그녀는 레드의 공격을 최상의 유술로 흘려냄과 동시에 되받아치는 공격을 펼쳤다.
그의 손가락이 한곳에 모인 강맹한 공격이 원을 그리듯 돌려 감는 우아한 몸짓에 홀려짐과 동시에 그녀의 부드러우면서도 정확한 발차기가 레드의 안면을 파고들었다.
‘파바밧!’
레드의 얼굴이 뒤로 젖혀지면서 몸이 일순 공중제비를 돈다고 느낀 순간, 발이 땅에 닿기도 전에 다시 그의 공격이 메이란에게 파고들었다.
이번에 그녀는 레드의 공격을 피할 수 없었다.
정통으로 적중한 발차기와 권격(拳擊)으로 그녀의 몸이 건물 벽면에 날아가 세차게 부딪히며 엄청난 충격음을 만들었다.
‘쿠와앙!’
장태산이 그 장면을 바라보던 순간을 놓치지 않고 러시아불곰은 흘려 피한 그의 발차기를 몸통 잡기로 양손 깍지를 껴, 있는 힘껏 쥐고선 뒤집기 스플렉스를 성공시켰다.
태산이 쓰러진 자리에 온통 흙먼지가 일어나서인지 상황이 어떤지 분간이 되질 않았다.
순간 검은 그림자가 일렁인다고 느낌과 동시에 메이란이 쓰러진 방향에 서있던 브라트바의 레드, 랄프의 옆구리에 커다란 충격이 전해져 왔다.
태산이 어느 틈엔가 랄프에게 옆차기를 날렸던 것이었다.
랄프의 전투 감각은 가히 동물적이었다. 그의 왼손이 태산의 발차기를 막았지만, 충격에 의한 반동으로 그의 몸이 십여 미터 이상 밀려나고 말았다.
“휘유! 역시 장태산!”
“이봐 레드! 이거 아무래도 이번만큼은 자네 도움이 필요한데. 힘좀 보태줘.”
러시아불곰 드미트리의 말에 랄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태산은 슬쩍 메이란의 상태를 확인한 뒤 그 둘을 유인하기라도 하듯 홀의 중앙으로 유인하였다.
“뭐, 대충 실력은 알았으니 이번에는 제대로 덤벼보라고, 이제부터는 안 봐주려니까.”
태산의 도발에 두 녀석은 자존심이 상했는지 오로지 무력으로만 태산에게 달려들었다.
‘바라던 바다.’
오히려 태산이 원하던 방식으로 녀석들의 공격이 전개되자, 소위 단전이라는 곳에 잔뜩 힘을 주고는 양팔을 교차시키며 힘껏 펼쳐서 그 둘을 밀어 버렸다.
‘쿠콰콰~앙!’
엄청난 파열음이 공간을 가득 메우며 주변 일대가 전부 먼지에 휩싸여 버렸다.
달려들던 두 녀석의 온몸에 남아 있던 옷가지는 그야말로 천 조각이 되어 너덜거리고, 온몸은 피투성이에 전신에 타박상을 입은 것처럼 피부가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
눈에선 핏발이 선 상태여서 피눈물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굳게 다문 입술 사이로 얼마나 세게 깨물었는지 핏물이 입꼬리를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크헉!’
‘울컥!’
그 둘은 마침내 제자리에 주저앉아 입안 가득 피를 토해내었다.
그 둘은 더는 태산에게 대항할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태산이 그 둘에게 다가가 마지막 한 방, 피니시 펀치를 날려줬다.
이름하여 마지막 한방! 딱콩, 아니 땡코, 아니 꿀밤이라는 표현이 적절하겠다.
공포의 꿀밤을 하나씩 선사하자 머리에 엄청난 혹이 부풀어 오름과 동시에 의식의 외출이 시작되었다.
마무리되었다고 느낀 순간, 뒤편의 출입구에서 문이 열리며 십여 명의 무장 병력이 뛰어 들어왔다.
태산은 자세를 낮춰 태클을 거는 레슬링 선수가 상대를 파고드는 것처럼 그들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갔다.
‘타타타탕!’
그중에 제법 판단이 빠른 적이 있었다. 태산의 행동을 보고 즉각적인 대응 사격을 가해왔으니 말이다.
아랑곳하지 않고 다가가 그들을 양팔로 잡아 밀어붙이며 벽을 쓸고 지나갔다.
콘크리트와 철골구조물들이 무장병력의 몸통과 머리, 그리고 팔, 다리에 엉켜 살점과 뼈가 떨어져 나가도록, 놈들을 온몸으로 쓸어버렸다.
왼쪽으로 한 번!
다시 오른쪽으로 한 번!
단, 두 번 만에 십여 명의 무장병력은 궤멸 되었다.
서둘러 메이란을 찾아 그녀를 돌보았다. 치료하기에 앞서 주변을 다시 수색해 보았다.
이 건물에는 이제는 움직이거나 위협이 되는 존재는 없어 보였다.
장태산의 힐링 비기(祕技)인 ‘내 손은 약손’을 펼쳐 메이란의 부상을 치료하였다.
그리고 추가로 두 경호원의 회복을 도와 정신을 차리게 하자, 둘은 감사하다 하면서도 너무 놀라 어찌할 줄을 모르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몸을 회복한 세 사람과 함께 주변을 둘러보며 정보를 모았다.
다행히 그곳에서 태산과 전투를 벌인 이들 중에 죽은 이는 아무도 없었다.
정신을 차리기 시작한 놈들부터 심문하니 갖가지 정보들이 흘러나왔다.
너무도 충격적이고 놀라운 사실이었다.
러시아마피아와 중국마피아, 그리고 중국 관피아와 러시아 관피아.
이들이 얼키설키 어울려 벌이는 참혹한 비즈니스를 하고 있었다.
이른바 ‘통나무 사업’이었다.
말 그대로 사람의 장기밀매는 물론 장기이식 수술과 각종 의료 시술을 불법적으로 하는 사업이었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의 의술과 중국의 사람장사라는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엄청난 시너지를 내고 있었고, 양국의 지방정부의 썩은 관료들이 자신의 사리사욕에 이들과의 동맹을 굳건히 하고 있었다.
그리고 러시아는 특히 각종 약물실험과 인체 실험을 통해 물리적인 한계를 뛰어넘는 만화속 캐릭터와 같은 수퍼솔져, 특수요원들을 만들기 위해 더욱 다양한 장기와 인체가 필요했었다.
그런 그들의 노력에 어느 정도 열매를 맺었던 결과물 중의 하나가 바로 ‘러시아불곰’과 ‘브라트바의 레드’ 였다.
일반인으로써는 결코 가질 수 없는 물리적 파워와 압도적인 피지컬 능력과 전투 시에 발생하는 극강의 생존 능력 등등은 그동안의 결과와 수치 데이터가 그것을 증명해 왔었다.
그래서 더욱 장태산의 의학적, 생물학적 데이터를 연구하려 했던 것이었다.
정신을 차린 놈들에게 계속된 질문을 하던 중, 시체에 관해서 물었다.
“이 사람들은 죽지도 않았는데 왜 여기로 데려왔지?”
“그래야 자신들의 몸값을 가족에게 주니까요?”
“그게 무슨 말이야?”
그들은 태산 일행과의 충돌로 죽지 않았지만, 대외적인 뉴스에서는 죽은 것으로 처리되고 자신의 몸뚱이는 장기밀매와 장기이식의 재료로 팔려 간다는 것이었다.
그래야 자신들의 몸값을 2배 이상 높게 쳐서 가족들이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저들이 죽음을 불사하고 대든 이유에 그럼 배경이···.’
이건 뭐, 돈 때문에 죽겠다는 것이잖는가?
특히 중국의 신고되지 않은 인구가 얼마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노동자 인구가 얼마나 많은가?
참으로 안타까웠다.
“그럼 이 많은 장기가 한꺼번에 거래될 곳은 있다는 말인가?”
“없어서 못 팔아요.”
“도대체 누가 이리도 많은 장기를···?”
태산이 엄청나게 펼쳐저 있는 침대를 바라보며 탄식을 하자 정신차린 한 놈이 말을 이었다.
“동유럽은 물론이고, 특히 아시아와 한국이 가장 많은 수요층입니다.”
“뭐라고? 한국인이?”
“네, 거의 절반 정도가 한국 고객입니다.”
‘이런 미친······, 도대체 누가···?’
태산은 믿을 수 없었다.
그는 서둘러 이 사태를 어찌할지를 고민하다 한국의 국정원과 시핑진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오늘 제대로 현장을 잡아 삼국(三國)의 고질적인 병폐와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겠다고 맘먹고 있었다.
“여기에 또 누가 오기로 되어있지?”
태산의 질문에 성의껏 대답하던 놈이 머뭇거리며 겨우 입을 열었다.
“네, 장기 적출과 이식을 ······ 위한 준비팀이 ··· 오기로 되어있습니다.”
“언제?”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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