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 적(敵)은 누구?(4)
역시 나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택시기사가 조금 전부터 운전이 아닌 외부 환경에 자꾸 신경 쓰고 있는 것이 태산의 눈에 거슬렸다. 그런데 주변의 차량도 수상해 보였다. 더 확실한 것은 역으로 가는 길이 아닌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옆에서 열심히 태블릿PC 화면으로 무언가를 보고 있는 강미현을 보니 왜 지원팀 붙박이였는지 알만했다.
태산은 말없이 강미현에게 안전벨트를 매주었다.
순간 흠칫하며 태산을 쳐다본다.
“왜? 뭐?”
이 여자 자꾸 귀여워 보인다.
“아니, 안전벨트 매라고.”
“갑자기 왜?”
장태산은 다정한 모습을 연출하며 자연스럽게 강미현의 귀에 귓속말을 전하려고 입을 가리며 다가갔다. 순간 흠칫거리며 태산의 다가감을 피한다.
“태산씨, 왜 이래요? 우리 얼른 가야 해요.”
이 여자 봐라.
이리 눈치도 없다.
도대체 요원은 어찌 되었는지 정말 궁금하다.
순간 택시기사의 낌새가 바뀐 듯했다.
아직 국도를 벗어나지 않아 속도가 그리 높지 않았다. 전방에 있는 SUV와 후방의 봉고가 한패로 보여 신경 쓰였다.
“아무래도 우릴 노리는 놈들 같아요. 그러니 조심해요.”
태산은 강미현에게 주의하라고 한 다음, 두 발을 들어 올렸다가 바닥을 향해 내렸다.
택시 뒷좌석의 바닥이 내려앉으며 태산의 발이 도로의 아스팔트를 파고들어 차량이 강제 멈춤 되었다. 그와 동시에 뒤따르던 봉고 차량이 택시를 들이받았다.
‘콰~앙’
강미현은 강제 멈춤의 충격에 이은 승합차의 추돌에 따른 연속적인 충격으로 정신을 못 차렸다. 그 와중에 태산의 손이 강미현의 머리를 감싸 있어서 약간의 부상도 없었다.
택시 기사는 목을 부여잡고 정신을 차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고 승합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재빠르게 택시를 에워싸고 있었다. 그사이 앞서가던 SUV도 돌아와 합세하였다.
장태산은 강미현을 차 안에 있으라고 하고 내렸다.
홍콩 영화에 등장하는 삼합회 조직원처럼 보였다.
일곱 명의 손에는 모두 사람 팔 길이만 한 도(刀)가 들려있었다.
“Who are you? What seems to be the problem?”
“······.”
태산이 물었지만, 이놈들은 대꾸가 없다.
그 말인즉슨, 대화는 몸으로 하면 되는 거다.
좌우 양측의 두 명이 칼을 휘둘러 팔과 다리를 노렸다.
동시에 정면의 사내는 몸통 찌르기를 해 왔다.
‘음, 묻고 따지지도 않고 걍 덤빈다고? 목적이 단순 명료하단 거군.’
태산은 편한 마음으로 이들을 대적하기로 했다.
피하지 않았다. 정면으로 파고든 놈을 왼손 어퍼컷을 올리자 그의 오른편 갈비뼈가 내려앉으며 몸이 한 4~5미터 떠올라 날아갔다. 영 옆의 두 명은 몸을 회전하며 주먹과 팔꿈치로 안면과 목에 타격을 가했다. 연이은 회전 발차기와 무릎치기가 적중한 두 사람도 날아갔다.
구부린 무릎을 펴며 앞차기를 딱!
복부를 걷어차인 녀석은 일직선으로 날아가 건너편 가게의 쇼윈도우에 처박혔다.
‘슝~ 퍽!’
연이어 달려가는 속도로 싸대기를 한방씩 날렸다. 맞고 쓰러지는 것이 아니었다. 날아가 처박혔다. 남은 세 명은 달려들기보다 거리를 재며 공격을 준비했고 그중에 한 명은 품속의 총을 꺼내려 했다.
태산은 기다리지 않고 왼편에 선 남자의 팔을 포함한 몸통 전체를 쓸어 오듯 쳐서 오른편으로 휘두르자 가운데에서 총을 꺼내려던 남자도 미처 대응하지 못한 채 함께 오른편으로 계속 쓸려갔다.
오른편 끝에 서 있던 사내도 여지없이 휩쓸리며 승합차의 측면에 완전히 박혀 버렸다.
‘1타 3피’ 성공이었다.
상황이 정리되자 택시에서 강미현을 내리게 하고 택시 기사를 끄집어내 심문을 했다.
쉽게 대답하지 않는다. 강미현이 더듬거리며 협박해봐야 통할 리도 없다.
장태산은 자신의 가방에서 새 신발을 꺼내 갈아 신었다. 왜냐하면, 차를 멈추는 과정에서 발이 닿으며 신발이 모조리 닳고 터져버렸기 때문이다.
태산이 택시기사에게 다가가 말했다.
“한 번에 하나씩, 묻는 말에 대답 안 하면 손가락이 작살날 거라고 통역해 줘요.”
그리 전했는지 어떤지는 몰라도 놈은 결연한 표정이었다.
“너, 어디 소속이야?”
“·········.”
강미현이 물었음에도 놈은 대답이 없다.
‘빠각’
“크악~”
엄지손가락이 완전히 꺽였다.
“역으로 가는 길이 아니었지, 어디로 가는 길이었어?”
“·········.”
’빠직‘
“아아악”
집게손가락이 흉측하게 두 번째 마디부터 완전히 뒤틀어져 버렸다.
놈은 다른 손으로 태산의 팔목을 잡아 말리며 신음을 흘리며 남은 손을 덜덜 떨고 있었다.
이번엔 왼손의 남은 손가락 세 개를 동시에 잡았다.
“우리를 어쩌려고 했어?”
“기차에 탑승하지 못하게 하라고 ······.”
다행히 대답은 바로 나왔다.
“정확히!”
“죽이라고 했습니다.”
강미현의 실시간 통역은 태산의 무시무시한 기세까지 그대로 전해지는 듯했다.
“누구야?”
“中华人民共和国国家安全部”
강미현이 인상을 구겼다.
“어디라고 합니까?”
“Ministry of State Security(MSS) 통칭 국가안전부라고 하는 중국 정보국 요원이라고 합니다.”
“강요원! 지금 외교마찰 걱정하는 거죠?”
“그래요!”
“이럴 때 프로토콜은 어찌 되나요?”
“최소한의 선조치 후, 팀장 연락을 기다려야 합니다.”
“선조치의 범위는요?”
“대상자 말살, 음, 그건 블랙의 경우이고 우린 주변에 증인이 너무 많습니다.”
태산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미 쓰러진 놈들은 죽지는 않았겠지만, 전부가 처박힌 상태여서 의식 자체가 없었다.
그러나 상가와 건물에 숨어서 지켜보는 두려움에 떠는 민간인들이 적지 않았다.
강미현에게 다시 한번 통역을 전하라고 당부했다.
“우리가 여기 왜 왔는지 알지?”
“是的我知道”
강미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태산은 협박하듯, 아니 협박했다. 그리고 협박을 품은 자신의 의지를 전했다.
“지금부터 우릴 추적하거나 우리가 하는 일에 방해하는 놈들은 모두 죽는다. 그리고 그 책임은, 네놈에게 명령을 내린 상관과 국가안전부 국장에게, 최종적으로 총서기에게까지 물을 것이니 잘 전달해서 서로 얼굴 볼일 없도록 하자”
“·········.”
이번엔 강미현이 황당한 표정으로 아무 말 없이 태산을 쳐다보았다.
빨리 통역하라고 재촉하듯 겸연쩍은 표정을 그녀에게 해 보였다.
강미현은 어디까지 전했는지는 모르지만, 열심히 태산의 의지를 전했다.
놈은 뭐 씹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장태산은 놈을 내려놓고 강미현에게 SUV를 가리키며 탑승하라고 신호를 보내고 운전석으로 몸을 옮겼다. 그들이 떠날 때까지 중국 공안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토록 많은 신고가 들어갔음에도 말이다.
SUV는 미친 속도로 국도에서 고속도로로 올라왔다.
강미현은 연신 오른쪽 왼쪽을 말하며 안전벨트와 손잡이만을 꼭 쥐고 있었다.
아마 저놈은 ’고속희희광란증(高速嬉嬉狂亂症)‘이라도 있나 보다.
이렇게 빠른 속도로 달리는데, 표정은 좋아 죽는다.
아무래도 미친놈이 분명한 것 같았다.
항저우동역은 매우 복잡했다. 고속철과 일반열차가 모두 환승을 하는 허브역으로 새롭게 확장하는 공사가 한창이었기 때문에 역을 이용하는 승객과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인부와 승무원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미현씨! 열차 종류와 좌석은요?”
“아직, 확인이 안 됩니다.”
“그럼 우리 측 블랙 요원은요?”
“우리와 반대 구역에서 연락 대기 중이에요.”
“접선자 신원은요?”
“여기요.”
강미현이 건네준 태블릿의 화면에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2:8 가르마의 올린 머리를 한 사내가 금테안경을 끼고 있었다. 외모는 특출난 것이 없었다. 다만 안경테에 가려지긴 했지만 오른 눈썹 끝부분에 사마귀처럼 튀어나온 점이 확연히 눈에 띄었다.
태블릿 화면 하단에 인적사항이 잔뜩 적혀있었다.
성삼연구소 권영훈수석연구원, MIT출신, 반도체 설계, 배터리 설계, 소재공학 분야의 권위자, ······.
“아니 이런 놈이 뭐가 부족해서 기술 유출을 하려는 걸까요?”
“우리가 그래서 여기 있는 거죠. 설계도면 유출 막고 직접 확인할 필요가 있겠죠.”
“본사에서도 이유를 모른답니까?”
“그러니 서둘러 저희가 온 거잖아요.”
태산의 기차역사의 한가운데 서서 플랫폼을 바라보았다.
참! 신기한 일이다. 사람을 바라보면 마치 줌인(Zoom-in)을 한 것처럼 크고 선명하게 보였다.
뇌의 회로에 안면인식 카메라로 살펴보듯 플랫폼을 오가는 수많은 사람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강미현은 그런 장태산이 무얼 하는지 몰랐지만 조금 전에 보여준 엄청난 무력(武力)을 보았기에 이번 작전에서의 자신이 안내 역할이면 된다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갑자기 강미현의 손을 잡아끌고 한 고속열차에 올라탔다.
“7번 플랫폼의 출발열차를 탑승했다고 연락하세요.”
“누구에게······.”
이 여자 정말 현장 뛰면 안 되겠다.
“항저우발 푸저우행 열차, 지금 출발한다고 요원에게 전하세요. 빨리!”
강미현이 버벅거리며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태산은 잡은 손을 놓지 않고 계속 열차 칸을 이동했다.
귀빈실 객차 칸을 지나며 태산은 살피던 고개를 더는 확인하지 않고 직진해서 지나갔다.
“강미현씨! 이 객차, 가운데에 권영훈이 있습니다. 방금 확인했으니 이쪽 출입문은 당신이 맡으세요.”
태산이 객차 가운데로 가서 권영훈의 침대칸을 열자 놀라며 경직된 채 쳐다보고만 있었다.
“谁呀?”
“한국말로 해도 됩니다.”
“누구세요?”
“한국국가정보원 장태산입니다.”
“절, ······ 잡으러 온 건가요?”
“아뇨.”
“??? 그럼 왜?”
“바로 잡을 기회를 드리려고요?”
“무엇을······.”
“당신이 돈 때문에 이러지는 않을 거란 걸 알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도대체 뭐 때문에 이러는지 회사도 국정원도 알 수가 없다고 하네요. 그 말은 곧 당신이 아무에게도 밝힐 수 없는 뭔가가 있다는 거고.”
“그래서 이제와서 제가 포기할 것 같습니까?”
“지금이라도 바로잡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됩니다.”
권영훈은 고민하는 눈치였다. 이때 결정적 한방. 딱!
“얼른 도면 주세요. 대통령 재가를 받은 면책권을 드릴께요.”
손에 서류를 팔랑거리며 흔들어 보였다.
권영훈은 고민하더니 결심한 듯 원형 화구를 장태산에게 전했다. 태산이 열어서 도면을 확인했다. 사진으로 본 해당 원본 도면이 맞았다.
어깨에 비스듬히 화구통을 매면서 손에 쥔 서류를 전해주었다.
“이제 접선책과 사연을 들어볼 수 있을까요?”
중국이 지금 새로운 격변의 시기라고 한다. 태산에게 중국의 역사를 가르쳐준다.
중국 최고지도자는 당직, 공직, 군직으로 나뉘어 있다.
당직은 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
공직은 국가 주석,
군직은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이다.
덩샤오○핑 이후 중국의 지도자들은 대체로 저 직책을 겸직한다. 또한, 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는 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을 겸하기 때문에, 중국의 최고지도자는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 겸 중화인민공화국 주석 겸 중화인민공화국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겸 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겸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이 된다.
한마디로 1인 체재라는 것이었다.
이런 1인 체제를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 최고지도자의 영도력을 보여야 하는데, 이번에 그들이 준비한 것이 바로 반도체와 배터리 분야였다고 한다.
권영훈 자신은 3년 전에 결혼한 아내가 사실은 화교 3세였고 처가의 사업과 가족들이 인질이라는 것이었다. 알면서도 처가와 아내 그리고 갓 태어난 자신의 아이를 모른척할 수 없었다고 했다. 무엇보다 도움을 구할 때가 없었으며 그저 죽고 싶었다고 했다.
“차마 돌도 안 지난 애를 두고 죽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 나라를 등질 마음도 없습니다.”
“도면을 제가 만든 거라 원본에도 일부 핵심 과정의 값이 교묘히 변경되어 있어 로스율이 크기 때문에, 결국 한국의 도움 없이는 할 수 없도록 했습니다.”
“접선책은 ······”
“저기··· 오는··· 저··· 사람······입니다.”
***
- 작가의말
고속희희광란증(高速嬉嬉狂亂症) :
운전에서 속도를 높일수록 기분이 좋아져 실실 웃는 현상을 가진 증세로,
필자가 젊은 시절 잠시 앓고 지나간 희귀증.
모두 안전 운전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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