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 태산의 비밀(1)
조아라는 순간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엄마랑 자판기 커피를 마시고 남은 동전이 손에 잡혔다.
“할게요. 여기 100원.”
금천백화점 직원들의 얼굴에 쓰여 있다.
‘아주 신났네, 놀구 자빠졌네.’
얼빠진 그들의 표정을 바라보며
남자는 전화기를 꺼내들고 통화버튼을 길게 누르고 있었다.
“대표님! 여기 금천백화점 강남점 3층 에○메스 매장입니다”
“조금 전 제가 의뢰를 받았습니다.”
“네, 지금부터 제 일(JOB) 입니다.”
“네, 바로 오십시오.”
남자는 전화를 끊고 김우진부장을 바라보았다.
“지금부터 제 의뢰인에게 직접적인 행동과 말은 삼가 주세요.”
“법무 전담팀이 오고 있으니까요?”
“분명히 경고했습니다.”
조아라는 멍했다. 변호사도 아니고 팀이란다.
그러고 보니 저 남자를 어디선가 본 듯했다.
아까 직원 휴게실에서 생수통 물병을 갈아주던 건장한 체구의 사내였다.
‘맞아, 아까 직원휴게소, 생수통?’
생수통을 교환해주던 물배달 납품업체직원으로 알았는데? 정말 뭐 하는 사람일까?
정체가 뭐길래 생수 배달을 하면서 명품 쇼핑을 하는 걸까?
명품 재테크하는 사람인가? 혼자 별의별 생각이 나래를 펼치고 있었다.
어쨌든 호감이 가는 사람이었다.
***
“법무법인 태산의 대표 변호사 김철석입니다.”
명함을 건네는 김철석의 등 뒤로 20여명의 인원이 서있다.
전부 ‘법무법인태산’의 변호사란다.
금천백화점 강남점의 3층에 난데없이 법정 드라마가 연출되었다.
조아라를 포함한 세 여자는 말문이 막혔지만 왠지 든든했다.
김철석변호사는 방향을 바꿔 다시 한번 공손하게 한 남자에게 인사를 올렸다.
아직 20대 중반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 사내가 왠지 대단해 보였다.
김철석변호사는 뒤의 직원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법무법인 태산의 변호사들은 곳곳을 누비며 일을 시작하고 있었다.
증인 확보, CCTV 확보, 사진 촬영 등등
그때였다.
아웃소싱과 파견업체, 그리고 용역을 전담하는 인력업체의 대표와 전무가 헐레벌떡 들어왔다. 아마도 금천백화점 측에서 연락했나 보다.
대표라는 작자가 한승희와 다른 직원을 보며 나무라듯 다그쳤다.
이어서 전무라는 사람도 마치 연출한 듯 입을 맞춘 모양으로 핍박을 한다.
“무조건 잘못했다고 빌고,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하겠다고 하지 뭐 하세요?”
“일 그만하고 싶어요. 가뜩이나 계약연장이 코앞인데 초치지 맙시다.”
“뭐 이런 일 한두 번 있는 것도 아니고 웬만하면 그냥 넘어갑시다.”
백화점 매장의 직영사원은 전체 종사자의 10~20% 이내이었다.
협력업체 소속 사원은 전체 종사자의 80% 이상이었다.
계약직, 용역직, 파견직, 일용직, 임시직, 아르바이트 등 다양한 비정규직인 백화점 여성노동자들이기에 해고나 갑질은 그들에게는 무서운 협박이었고 그저 일상의 폭력이었다.
용역 업체 사장은 특히 폭군 황제나 다름없었다.
그러기에 한승희를 포함한 세 사람은 그냥 백화점에게 점수 따기 좋은 구실이고 맛 좋은 먹잇감이었다.
‘이번 추석에 보너스 좀 챙기겠다. 흐흐 저것들은 나중에 따로 조져야지.’
그런데 이제 보니 한승희도 중년의 나이지만 꽤 미모와 기품이 있어보여 눈길이 갔지만,
젊은 아르바이트 조아라는 연예인 뺨칠 정도로, 아니 당장 연예인과 배틀을 시켜도 발라버릴 정도의 미모였다.
‘저런 애를 왜 몰랐지? 요즘 바빠서 그런가?’
‘이번 연휴 끝나고 한번 ··· 츄르릅.’
혼자서 온갖 상상과 나름의 통밥을 굴리던 중이었다.
“당신이 금강용역 표인범사장 인가요?”
명품 정장을 도배한 중년의 멋진 법조인 김철석변호사가 표인범사장을 불렀다.
마침 뒤에 서있던 변호사가 태블릿PC를 대표변호사에게 전했다.
“표인범! 금천백화점 김동철사장과는 이종사촌, 금강용역 사장, 금천유통의 인력파견 비율 85%, 임금착취, 금품갈취, 공갈, 협박, 금품수수, 강간, 폭행, 특수상해, 횡령에 배임, 그리고 노동 착취까지. 당신은 빨리 돌아가서 단단히 준비하세요.”
‘헉, 이게 뭔 소린가? 이 사람들이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
표인범은 순간 등골이 서늘했다.
“당, 당신이 누구기에 그런 소릴 하는 거야?”
건네받은 명함을 보곤 얼어붙은 마네킨 마냥 멍하니 설 수밖에 없었다.
‘법무법인 태산’
대한민국 서열 1, 2위를 다투는 법무법인이며 전 세계 다섯손가락 안에 든다는 글로벌 법조 기업이다.
대한민국에는 최근 새로운 불문율이 생겼다.
그것은 바로
‘어떤 경우든 법무법인 태산과는 척을 지지마라.’ 였다.
김철석변호사는 금천백화점의 이사와 부장에게 다가가
옷깃을 털어주며 잔잔한 인사를 건넸다.
“여기계신 세분의 저희 의뢰인을 대신해서 말씀드리지요.”
“최대한 성의를 갖추고 합의에 나서주실 것을 당부드립니다.”
“아, 혹시나 모르실까 봐 미리 말씀드립니다. 명예훼손, 폭행, 계약위반, 특수직무유기, 강요 방조, 직권남용,··· 어마어마합니다. 준비 잘하세요.”
돌아서며 자신의 직원들에게
“세분을 TS메디컬 센터로 모시고 가세요.”
“VIP실로 모시는 것 잊지 말고요.”
“물론 정밀검진과 진단서 준비도 철저히 해 주세요.”
이 모든 과정을 조용히 쳐다보던 사태의 주인공에게 조아라는 다가갔다.
“초면에 너무 감사합니다.”
“초면에 너무 오지랖을 피웠습니다.”
“장태산입니다.”
“아, 장, 태산씨! 저는 조아라라고 합니다.”
가볍게 목례를 마친 그가 자신의 엄마에게 다가갔다.
“괜찮으신 거죠?”
“아까 제게 권해주신 이 커프스와 핀 세트, 그리고 벨트와 시계 맘에 듭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저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여러분의 편이 될 거니까 파이팅입니다.”
한승희는 일련의 일들도 너무 고마웠지만
지금 해준 말들이 너무 감사했다.
‘내 편이란다.’
‘남편과 사별하고 난 이후 내 편이라곤 딸 조아라밖에 없었다.’
‘억울해도 참으려 했다. 딸을 위해서.’
‘그런데 참지 말라고 한다. 그래서 안 참을 거다.’
‘그리 맘을 먹고 나니 오히려 맘이 편해졌다.’
한승희는 장태산의 손을 꼭 쥐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이 날이 조아라가 장태산을 처음 만난 운명의 날이었다.
***
2019년 12월 24일 17:30
조아라는 장태산을 처음 만난 그날을 결코 잊지 못 한다.
만약 그를 만나지 못 했다면, 그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면,
엄마와 자신은 어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그날의 인연이 지금의 인연으로 발전하기까지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그것은 그것대로 추억으로 공유할 수 있어서 고마웠다.
오늘 데이트를 하자고 한다.
‘기쁘다. 어디를 가자고 할까?’
‘무얼 먹자고 할까?’
그리고
‘······.’
‘띠디디’
그녀의 회상을 방해라고 하듯 전화가 울렸다.
“네, TS 비서실입니다.”
“네,”
“······.”
“네, 알겠습니다.”
조아라는 급히 컴퓨터 화면의 상단 엑스라고 표시된 아이콘을 더블클릭 했다.
모니터 화면은 순식간에 레드 라이트가 점멸되며 자동으로 각국의 주요 정보기관들의 명칭이 떠올랐다.
단축 코드를 입력하자 화면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국정원 _ 내각조사실 _ MI6 _ 모사드 _ CIA _ 국가안전부’
‘한국 _ 일본 _ 영국 _ 이스라엘 _ 미국 _ 중국’
관련된 나라들의 정보기관과 연계된 프로젝트라는 의미다.
그와 동시에 장태산이 방으로 돌아왔다.
“조비서! 확인 된 거지?”
장태산이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TS 씨큐리티 오메가팀이 보내온 라스트 프로토콜입니다.”
장태산은 잠깐의 정적을 가지곤,
이내 평정심을 유지하며
조아라에게 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거 미안해서 어떡하지, 아무래도 데이트는 다녀와서 합시다.”
장태산의 스마트폰에 문자가 올라왔다.
‘헬기 도착’
“다녀올게요.”
“네, 잘 다녀오세요.”
“저, 예쁘게 기다리고 있을게요.”
조아라의 미소가 한편으로는 감사했다.
그녀의 인사를 가슴에 품고 장태산은 건물 최상층부의 헬기 착륙장으로 이동했다.
석촌대로에 위치한 초고층 타워의 헬기장에 모양도 특이한 군용 헬기가 위용을 뽐내며 엔진음을 배출하고 있었다. AH-1Z Viper(바이퍼) 공격용 헬기였다.
장태산이 헬기에 오르자 맹렬한 프로펠러의 파공음이 하늘을 수놓았다.
‘휘위윙 휘위윙’
헬기는 순식간에 노을 지는 서쪽하늘을 뒤로하고 어둑해진 동쪽을 향해 나아갔다.
붉은 하늘이 마치 앞일의 불길함을 예언하듯이 맹렬히 어둠에 잠식되고 있었다.
한줌 남은 노을의 잔재가 사라질 쯤 이었다.
조아라는 벽면 한쪽에 배치된 수십대의 TV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TV는 전 세계 각국의 유명채널들이 방영되고 있었다.
뉴스채널 타이틀에 거의 대부분 동일한 자막이 떠올랐다.
‘Breaking News!'
***
- 작가의말
본 작품은 가상의 인물과 사건으로 만들어진 허구의 이야기 입니다.
특정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과는 무관하며 작품 내 나오는 장소와 지명, 내용 또한 극적 전개를 위해 과장, 변형이 존재함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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