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 태산의 비밀(5)
“앗! 깜짝이야!”
“저 새끼 뭐냐?”
“야! 망치야! 니, 애새끼들 코 묻은 돈. 삥 뜯었냐?”
저마다 한마디씩들 한다.
남녀가 뒤엉켜있는 민망한 상황에서 벌어진 코미디 같은 순간, 출입문 가까이 있던 호리호리하고 날카롭게 생긴 남자가 자신의 파트너를 밀쳐내고 태산에게 다가갔다.
“너 뭐냐? 나 알아?”
“닝기리, 요샌 개나 소나 똥폼잡고 지랄을 해요.”
출입문을 닫고는 태산의 목을 둘러 어깨동무를 했다.
태산의 키와 근육이 벌크업된 상태여서 녀석의 어깨동무는 매달린 모양새가 되었다.
“와, 새퀴, 졸라리 커요.”
“니가 망치냐?”
“어린놈의 새끼가 어디서 반말이고?”
‘철썩’
놈이 태산의 뺨을 때렸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태산이 놈의 손에 뺨을 갖다 댔다.
놈의 날아오는 손바닥의 주름과 손금의 깊이가 몇mm 인지까지 보일 정도로 느리게 느껴졌다. 그래서 몸이 바뀌고 통증은 어찌 될까? 궁금해서 맞아 보기로 한 것이었다.
통증이 거의 없었다. 그냥 살갗이 닿았다. 정도랄까.
다른 한 놈이 분위기를 더욱 험악하고 무섭게 하려고 맥주병을 거꾸로 쥐고 비틀면서 태산의 머리에 깨뜨렸다.
‘퍼서석’
역시 아픔은 1도 없었다. 더 놀라운 것은 상처가 하나도 안 생긴다는 것이었다.
태산보다 머리하나 정도가 더 커 보이는 덩치가 자리에 일어섰다.
“내가 망친데. 꼬마야 뭔 볼일이고?”
“쌍도끼와 네가 어젯밤에 내 친구를 두드려 팼다며?”
“······.”
알아듣지를 못한 모양이었다.
“여기 종업원 중에 안경 끼고 덩치 작은 웨이터 말이야.”
그러자 알아들었다는 듯, 두 놈이 크게 웃으며 태산을 다시 살폈다.
“그때 한국대 밑에 식당에서 짭새랑 같이 손봐준 애새끼 말하는 모양이네.”
“맞네, 인마도 그때 글마다.”
두 놈이 아는 체하는 거 보니 이놈들이 맞나보다.
“그때 니들도 있었구나? 그날의 이자도 같이 받아야겠다.”
방 안에 아가씨들과 엉켜있는 다른 녀석들은 마치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생긴 양 웃고 떠들고 열심히 물고 빨고 있었다. 아가씨를 제외한 놈들은 대략 여덟 명 정도였다.
태산에게 매달려있던 호리호리한 사내의 손에 어느 새인지 서슬이 시퍼런 도끼가 들려있었다.
“야, 이 씹탱아! 조용히 공부하랬더니 여기가 어디라고 와서 지랄이고. 어?”
도끼의 날을 목으로 두르며 겁주려는 듯 과하게 행동했다.
태산은 엄지와 검지로 도끼의 날을 잡아서 아래로 내리며 좌중을 보고 조용히 말했다.
“망치, 쌍도끼 빼고 다 나가!”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쌍도끼가 태산의 손에 잡힌, 아니 손가락에 잡힌 도끼의 손잡이를 힘차게 아래에서 위로 가르듯 휘둘렀다.
그 궤적을 따라 피 분수가 뿌려지리라 예상을 하고 룸안에서 술 시중을 들던 아가씨들이 비명을 질렀다.
“꺄아악!”
“아악”
기대했던 장면은 연출되지 않았다.
도끼의 날은 여전히 태산의 손에 처음 모양 그대로 잡혀있었고, 쌍도끼라 불린 사내의 손에는 손잡이만이 덩그러니 들려 있었다.
태산의 도끼부분, 다른 말로 액스 헤드(ax head)라고하는 날의 반대 부분을 쌍도끼의 얼굴 정중앙으로 때려 코뼈를 주저앉혔다.
‘크아악!’
‘쿵’
놈이 쓰러짐과 동시에 망치가 태산에게 달려들며 코끼리만 한 다리를 들어 앞차기를 날려왔다.
‘퍼어억’
근데 태산은 미동도 없었다. 망치의 표정은 복잡했다. 지금껏 자신의 발차기를 맞은 다른 놈들은 최소 전치 4주 이상의 진단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일말의 충격도, 미안함도 없는 표정으로 태산은 망치라는 덩치의 다리를 붙잡아 위로 들어 올렸다. 그러자 망치의 몸이 딸려오며 천정의 타일을 뚫고 머리부터 몸통까지 박혀버렸다.
‘부가각, 퍽’
‘후두둑’
‘꺄악~’
‘엄마야~’
천정의 조명과 구조물 일부가 부서져 망치의 몸통을 따라 떨어졌지만 망치는 그대로 박혀 있었다. 망치의 발을 놓자 그제야 앉아있던 놈들이 태산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야합!’
‘이시팔!’
‘개새퀴가 돼져!’
다양한 단음절의 욕지기와 함께 병이며 칼이며 마이크까지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을 가지고 태산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두드려 팼다.
오히려 놈들의 손, 발, 그리고 마이크 등이 뭉개지고 꺾였다.
아~, 칼을 들고 쑤셔댔던 놈은 손잡이에서 미끄러져 칼날에 자신의 손이 베였다.
‘우악’
‘악’
‘이런 씨팔!’
비명이 터져 나오는 가운데 태산은 고민했다.
‘도대체 이놈들은 얼마나 잔인하면 이런 폭력을 아무렇지도 않게 휘두르는 걸까?’
‘당하는 일반인이나 선량한 사람들은 얼마나 무섭고 두려울까?’
태산의 미간이 움찔거린 순간, 그야말로 찰나(刹那)였다.
찰나는 불교에서 시간의 최소단위를 나타내는 말로 75분의 1초(약 0.013초) 정도인데, 그 짧은 순간에 주먹과 발차기를 날렸다.
‘퍽’
‘쾅’
‘허걱’
소리와 함께 방안은 먼지가 가득했다.
이윽고 뿌연 먼지가 가라앉자 아가씨들이 비명을 지르며 문밖으로 달아났고 공포로 얼어붙은 두 사람은 테이블 아래에서 벌벌 떨고만 있었다.
처참했다.
덩치들은 사방의 벽에 처박혀 있었다.
벽의 타일과 내장재가 박살나며 몸통과 팔다리가 처박힌 기괴한 모습은 태산이 보아도 몸서리쳐질 정도였다.
‘후다닥’
바깥에서 분주한 소리가 들렸다.
놈들의 동료였다.
그러고 보니 김흥도부장도 같이 있는 것 아닌가?
‘오호라. 저놈도 한패였구나. 그런데도 찬열이가 당하도록 방치했단 말이지?’
태산은 오늘 아예 놈들을 뿌리 뽑자고 생각했다.
“야! 저 새끼 주안파다 족쳐!”
지들 멋대로 사람을 조폭 만든다.
어제 싸웠다는 상대 조직인 줄 아는 모양이다.
복도를 가득 메운 깡패들을 보니 참교육과 함께 테스트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여 미터가 넘어 보이는 복도를 ‘스~윽’하고 지나오는 동안 오십 명에 가까운 깡패들이 만신창이로 변해버렸다.
벽에 얼굴이 함몰되어 박힌 놈,
천장에 대가리가 박혀서 대롱거리는 놈.
바닥에 허리가 접혀 기는 놈,
무엇보다 흉측한 건 마치 육포가 된 듯 뭉개져 버린 놈들이 곳곳에 널브러져 있었다.
아마도 뼈와 신경과 근육이 모조리 손상되어 회복하더라도 정상이 되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김흥도부장은 사시나무 떨듯 다리가 떨렸다.
더는 서 있지 못해 결국 주저앉고 말았다.
“제발, 용서···해주세요. 살려···주세···요.”
태산은 놈에게 다가갔다.
“여기 보스가 누구야?”
“아직, 안··· 오셨···습니···다.”
“보스한테 전해!”
“네,네. 말씀만 주십시오.”
“찬열이 피해보상하고 퇴직금 정산 잘 하자고. 알았지?”
“네, 네, 알겠습니다.”
“내일 저녁 7시, 내가 다시 온다.”
“네, 준비하겠습니다.”
태산이 지나쳐 가자 눈길을 피하느라 고개 숙이기 바쁜 종업원들은 삼삼오오 몰려 떨고만 있었다. 단람주점 안은 전쟁이 난 것처럼 처참한 폭력의 흔적들로 얼룩져 있었다. 그렇게 폭력의 새역사가 쓰이고 있었다.
***
‘콰창창’
재떨이가 허공을 날아 장식장의 유리문을 박살냈다.
사무실의 분위기는 무겁다 못해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부천파 보스 박후만은 자신의 최측근인 다섯 명의 사내를 노려보며 말했다.
“명색이 부천파 오호대장군(五虎大將軍)이라는 니들은 뭐하고 있었어?”
“······.”
박후만은 삼국지를 좋아했다. 그래서 자신의 부하들에게 삼국지에 등장하는 장수들의 별호를 붙여쓰길 즐겼다. 그래서 자신의 직속 오인방을 오호대장군(五虎大將軍)이라 불렀다.
“죄송합니다. 형님!”
“이게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우리가 일마! 깡패야?”
“아! 죄송합니다. 회장님!”
박후만은 지역의 소규모 조직에서 세를 불려 덩치를 키운 조폭이었다.
주류납품과 보도방, 콜, 마약, 인신매매, 대부업, 대리운전, 오피방, 클럽, 단란주점, 마사지, 스파, 프랜차이즈 등등 돈 되는 일을 위해 다양한 사업으로 세력을 확장해 인천지역의 거물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경찰 고위직과 일선 팀장급들과의 연결을 돈독히 하는 동시에 지역 정치인과 꾸준히 관계성을 강화해 왔었다.
그 결과로 수십 개의 업체를 거느린 회장이라는 타이틀을 달았기에 보스라는 말을 듣기 싫어했다.
어쨌거나 깡패는 깡패였다.
그 본성을 어쩌지 못해 자신의 부하들을 조져대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 저녁 7시에 온다고?”
“네!”
“너희들은 어찌할 거냐?”
“맡겨주십시오. 회장님!”
박후만은 조소를 지었다.
“야! 육십여 명의 애들이 개작살 나서 전부 중환자 신세라는데 어쩌려고?”
“정면으로 붙어서, 한 놈한테 작살난거 소문나면? 노리는 새끼들이 한둘이야?”
“우릴 얼마나 좆같이 보겠어?”
“회장님! 저희가 놈을 데리고 작업부두로가 조용히 담그겠습니다.”
“믿어도 돼?”
“맡겨주십시오.”
다시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음흉한 눈을 번쩍이 돌아보았다.
“병원에 있다는 알바놈은?”
“저, 그게. 그놈이 데려갔다고 합니다.”
“그럼 그놈 집은?”
“거기도 벌써··· 싹 데려갔는지 아직 코빼기도 안 보입니다.”
“우이씨, 이번엔 확실히 처리해.”
“넵, 회장님!”
***
손목시계에 시간을 확인하니 오후 7시 5분 전이었다.
단란주점의 입구와 주차장은 조용했다.
주변 분위기와 대조적인 느낌이었다.
입구에 도착하니 덩치 한 명이 대기하고 있다가 태산을 발견하고는 안내를 한다.
“차량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내부 수리로 사장님께서 모셔오시라고 합니다. 차량으로 가시지요.”
봉고였다면 행패를 부리려 했으나 중형세단이라 열어주는 뒷좌석에 탔다.
차는 미끄러지듯 유흥가를 떠났다.
도착한 곳은 인천항 근방의 보세창고, 냉동창고들이 모여 있는 곳 같았다.
문을 열고 양옆으로 늘어서서 태산을 맞이했다.
늘어선 덩치들의 행렬은 창고 안으로까지 이어져 있었다.
창고 안, 덩치들의 행렬 끝자락에 자리를 잡고 앉은 박후만의 등 뒤에 다섯명의 사내들이 병풍처럼 서 있었고 오른편 창고의 벽면에는 드럼통이 대여섯 개가 뚜껑이 열린 채 있었다.
“이봐 학생! 니가 우리 업장을 아작 낸 놈이냐?”
“당신이 단란주점 사장인가요?”
“이 새끼가?”
“뭐, 당신?”
“저 시팔놈이.”
놈들이 험악한 욕설과 표정으로 태산을 위협하자 박후만이 손을 들어 저지했다.
뒤에 도열했던 병풍들이 앞으로 나서며 태산을 둘러쌌다.
“이봐! 우리 회장님께서 조용히 봐 주려고 해도 일이 너무 커져서 너 하나 가지고는 시마이가 안 된다고 하시는데, 니 생각은?”
“그렇지요, 당신들이 생각해도 내가 어제 그런 거로 그만둘 거란 생각은 아니겠지요?”
“???”
“니 친구와 그놈 가족들도 빼돌리고, 그러면 우리가 못 찾을 거 같아?”
“니 친구도, 너도, 그리고 니들 가족들 모두 다 저렇게 만들어줄게.”
한 놈이 가리키는 손끝에 드럼통들이 보였다.
“우리 돈 빌려서 안 갚고, 우리 말 안 듣고 손해 끼치는 놈들, 모조리 잡아서 몸으로 만까이하지 저렇게.”
다시 드럼통을 턱으로 가리킨다.
태산은 궁금해서 다가가 안을 보았다.
순간 역겨운 냄새가 눈보다 먼저 드럼통 안을 보았다.
태산의 눈은 충격으로 피가 거꾸로 쏫아 오르는 감정의 폭발을 느꼈다.
“이런 개···새···.”
***
- 작가의말
한 주간 고생 많으셨습니다.
주말동안 충전하시고 회복되세요.
월요일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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