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 철부지, 어른(5)
“엄만 에○메스 3층, 넌 어디니? 딸!”
“12층 특설 매장요.”
“그럼 열심히 일하고 잠시 후 마치고 보자꾸나.”
“네, 엄마! 너무 무리하진 마세요.”
두 모녀는 각자의 길로 바삐 사라졌다.
백화점 매장 안은 그야말로 ‘혼돈’ 그 자체다.
세일이라는 특수한 시즌이기도 하지만
추석 연휴라는 계절의 영향이 더욱 큰 듯했다.
조아라는 저녁 식사 이후 화장실도 한번 갈 수 없었다.
300평 규모의 특설 할인 이벤트 매장에는 그야말로
‘인산인해(人山人海)’
걷는 것이 아니다.
휩쓸려 가는 거다.
계산원은 계산원대로
포장원은 포장원대로
헬퍼는 헬퍼대로
모두가 미쳐있었다.
‘일에 ······.’
백화점 12층을 특설 이벤트 매장으로 한 이유는
가장 꼭대기 층에서, 가장 가성비가 높은 쇼핑이 가능하도록 전략적 배치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올라가며 내려오며 계속 쇼핑에 노출 시켜,
더 많은 쇼핑을 유도하는 고도의 마케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13층과 14층은 유명 식당가를 배치하여 더 많은 시간을 고객이 머물도록 유도하였다.
15층은 VIP 휴게실, 16층은 금천백화점 전략실이 사용하였고,
17층은 스카이라운지로 미슐랭 레스토랑을 운영하여 수준을 차별화하였다.
‘근데 왜? 최고층인 18층을 안 하고 17층을 스카이라운지로 쓸까?’
그 이유는 어감(?) 때문이었다.
‘18층’
그래서 18층은 금천그룹의 직계이자 금천유통과 금천백화점 대표인 김동철의 사무실과 비서실이 있었다.
그런 연유로 직원들이 오너를 안주 삼아 욕하는 걸 즐겼다.
“이런 18놈···.”
‘입에 착 감긴다. 참으로 찰지다.’
***
평소의 백화점 폐점시간은 오후 8시 30분이지만,
세일기간, 특히 세일페스타는 오후 9시 30분까지였다.
8시가 넘어가자 식사 손님이 줄어든 탓인지 겨우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미스 조! 고생했다. 틈이 날 때, 얼른 화장실 다녀와.”
“다녀와서 영수증 취합해서 갖다 주고.”
특설 이벤트 매장을 전담하는 박주임이 조아라에게 휴식을 권했다.
“네, 감사해요. 얼른 다녀올게요.”
박주임은 조아라의 구김없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명문대생이 인물도 이쁘고 성격도 좋으면 다른 사람들은 우짜란 말이고.’
혼자 중얼거린 탓도 있지만, 괜히 주변의 다른 직원들이 자신을 흘겨보는 착각이 들었다.
조아라는 특설 매장의 영수증을 사무실에 갖다 주고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잠시 엄마를 볼 요량으로 다녀오려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금천백화점의 엘리베이터는 도착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
단지 층수 표시나 도착했음을 알리는 불빛의 점멸만 있을 뿐이었다.
왜 그런지 물으니 그 소리가 쇼핑을 방해하기 때문이란다.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조아라가 탑승을 하려 하자
정면에 있는 여자 손님은 뒤쪽 공간이 충분함에도 비켜서지 않고 혼잣말처럼 투덜댔다.
“직원이면 계단이나 에스컬레이터 타지, 짜증 나게 ······.”
조아라는 순간 멈칫하며 망설이다 돌아섰다.
돌아서며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 안으로 예의 그 여자 손님이 신경질적으로 닫힘 버튼을 연속적으로 누르는 모습을 보았다.
40대 중반의 분위기 있는 여성이었다.
베라왕 디자인의 세미 드레스를 입은 듯 보였다.
닫힘 버튼을 누르던 팔목엔 까르띠에 디자인의 팔찌로 봐서는
금천백화점의 VIP인 듯했다.
‘스카이라운지에서 식사하고 가나 보다.’
‘그래 뭐, 속상한 일이라도 있어서 그렇겠지 에휴.’
스스로 불편한 마음을 위안하며 에스컬레이터로 걸음을 옮겼다.
백화점 중앙을 오각형의 엇각 배치로 층층이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는
이동하는 고객들이 백화점의 규모와, 쇼핑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탁 트인 시야로 백화점 내부의 광대함을 제대로 보여주는 배치였다.
‘내려가는 동안 심심하진 않네.’
‘저건 엄마가 입으면 이쁘겠다.’
‘저런 소품은 이쁜 식탁이 있으면 잘 어울리겠다.’
‘······.’
혼자 아이쇼핑을 즐기며 내려오던 조아라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큰 소리에 저절로 눈길이 향했다.
그곳은 엄마 한승희가 근무하는 3층 매장 입구 쪽이었다.
“매니저!”
“당장 매니저 나오라고 해!”
금천백화점 3층 에○메스 매장 입구에는 벌써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왜~애?”
“뭔데?”
주위에서 안을 들여다보던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황급히 걸음을 옮긴 조아라는 가슴이, 쿵쾅거리는 불편함에 속이 메스꺼웠다.
무거운 맘으로 들여다본 매장 안에는 직원 두 명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직원들의 앞쪽에는 이번 연도의 신상백과 여성용 장지갑이 널브러져 있었다.
“당장 매니저 불러와요!”
“죄송합니다. 사모님!”
그 앞에서 직급이 있어 보이는 직원이 연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당신 말고 매니저 오라고!!!”
“하, 나 참. 어이가 없네.”
‘탁탁탁’
말쑥한 차림의 중년 남녀가 뛰어와 상반신을 굽혀 인사를 했다.
“사모님! 무슨 일이십니까?”
명품관을 담당하는 총괄 매니저 김우진부장과
파견직원 총괄의 정수경과장은
VIP고객인 듯 한 여성을 진정시키려 애쓰고 있었다.
“나, 누군지 알죠?”
“네, 사모님!”
김부장은 인상을 유지하며 속으로 말을 삼켰다.
‘대표님의 새엄마 될 뻔한(?) 사람이지 뭐야’
그렇다. 그녀는 김동철의 아버지 김은석회장의 내연녀였다.
금천그룹 회장의 내연녀라는 타이틀은 싫었지만 회장의 본부인이 병중에 있으니 사별하기 전에는 회장도 자신을 들이지 않겠다고 못 박은 상황이라 더 짜증이 났다.
그 이면에 금천의 명예회장인 김금천회장이 직접내린 명령이기에 받아들여야만 하는 상황이 더 지랄 맞았다.
더욱이 오늘은 여기 17층 레스토랑에서 김은석회장과 식사자리였었다.
명예회장의 하명만 아니었어도 기분이 이렇지는 않을 터였다.
어딘가에, 누군가에게 이 울화를 풀고 싶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잘 걸렸다.
“수선 맡긴 내 가방에서 도둑질해?”
“이걸 어쩔 거야? 당장 경찰 불러.”
“백화점 직원들 교육 이따위로 할 거야?”
“죄송합니다. 사모님! 고정하시고 다시 한번 확인해 보시면···.”
쌍심지를 치켜뜬 그녀의 눈에서 지금 누구 하나 잡아먹겠다는 독기가 서려 있었다.
그녀 앞에 쓰려져 있는 한승희를 보고 조아라는 달려갔다.
“엄마! 왜 그래? 괜찮아?”
조아라는 바닥에 쓰러져있는 한승희 곁에 다가가 엄마를 부축했다.
한승희의 왼쪽 뺨은 손자국이 선명하게 분홍색으로 부어 있었다.
옆에서 몸을 일으키던 여직원의 뺨도 비슷한 흔적이 보였다.
아마도 싸대기를 좀 날려본 경험이 풍부한가 보다.
웬만한 사람은 타인의 뺨을 쉽게 때리지 못한다.
때리라고 해도 선뜻 손을 내지르는 경우는 열에 하나일 것이다.
“엄마! 어떡해. 괜찮아?”
“으응~.”
“도대체 무슨 일이야?”
“이 년은 또 뭔데 ···.”
“당신이 뭔데 울 엄마한테 손찌검하고 그래요.”
조아라와 한승희, 그리고 또 한명의 여직원이 몸을 추스르는 앞에 우뚝 선 여인은
보기에도 아찔한 킬힐을 자랑이라도 하듯 한 발짝 내세우며 멸시의 눈초리로 고음을 내뱉는다.
“내가 금천그룹 회장 사모······.”
“······여기 VVIP야!”
“니들 오늘 잘못 건드렸어.”
조아라는 아까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불쾌 유발 여자’가 지금 자기 엄마를 때렸다는 사실이,
더 큰 불쾌감과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그사이 보안요원들과 임원들이 달려왔다.
“사모님! 고정하시고 무슨 일인지 말씀 주십시오.”
보안요원들은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고,
임원들은 매장 안쪽의 미니홀로 사모와 사람들을 이동시켰다.
임원들과 보안요원들에게 일방적으로 쏟아낸 사모의 주장은 이러했다.
자신이 가져온 가방의 청소와 점검을 위해 매장에 맡겼었다.
가방 안에 선물 받은 물방울다이아 귀걸이세트 넣어두었다.
식사를 마치고 귀걸이를 하기 위해 가지러 왔더니 없어졌단다.
이곳 매장에는 자신이 올 때부터 지금까지 저 두 사람밖에 없었으니,
저 사람들이 훔쳐간 범인이라 생각해 내놓으라고 다그쳤단다.
그런데 아니라고 딱 잡아떼니 더 화가 났다.
결국, 화를 참지 못하고 폭력을 행사한 거다.
“사모님! 일단 확인 먼저 하도록 하겠습니다.”
“정실장! 보안팀에 가서 빨리 여기 매장과 3층 CCTV 확인해 보세요.”
“그리고 두 사람은 다시 말해 보세요.”
“사모님의 백에 내용물을 확인하거나 이동한 적 있나요?”
이사라는 사람이 그래도 합리적으로 확인을 위해 노력 중이었다.
“네, 저희는 그 백이 맡겨진 보관함에 다가간 적도 없습니다.”
“수선 팀에서 청소와 점검확인하고 간 뒤로 보관함을 연적이 없습니다.”
두 사람이 결백을 주장하듯 태도를 밝히자,
그런 소란함에 어수선하던 매장에 들어서던 담당매니저는,
총괄매니저와 임원을 보곤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었다.
김우진부장은 조금 전에 들어선 담당매니저를 보며 눈짓을 보냈다.
‘뭔 일이야?’
‘나도 ······ 몰라요.’
담당매니저는 붕어처럼 입 모양으로 모른다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눈빛은 왠지 모르게 불안한 듯 흔들리고 있었다.
- 작가의말
‘불안불안, 살랑살랑···.’
흔들리는 눈빛이 무엇을 말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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