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인의가 의선인
활인의가 의선인
천목산.
절강성의 끝자락과 안휘성의 경계를 물고 있는 성.
산세가 험하고 많은 전설을 품고 있는 태고의 명산.
이곳은 사람의 인적이 끊이지 않았고. 그이유중하나가 바로 활인당이라는 의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활인당.
활인의가라는 속칭도 있고, 의가로서 정통을 가지고 있는 활인의가.
의선인이라는 별호를 황제에게 내려 받을 정도로 가주의 의술은 많은 칭송을 얻고 있다.
천목산에 들어서서 잘 닦여 있는 산길로 한식경을 걸었을까?
작지 않은 규모의 장원이 세 사람의 앞길을 막았다.
하림은 하얀 천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고, 도림과 운령은 그런 하림의 뒤편에서 병풍과 같이 서있었다.
“이곳이군.”
“그런 것 같습니다, 주공.”
“으음....활인의가라.....! 좋군. 들어가 보지.”
“앞서겠습니다.”
하림의 앞을 운령이 앞으로 나간다.
그는 반쯤 열려 있는 장원의 문으로 얼굴을 들이민다.
그러나 그는 이내 고개를 빼서 하림을 돌아본다.
“주공, 의외로 사람이 많습니다. 그냥 들어가도 누구하나 신경을 쓰지 않겠는데요?”
“그럴 것 같군, 그냥 들어가지.”
하림은 말을 마치고 운령이 이끄는 데로 안으로 들어섰다.
활인당 안은 과연 많은 이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장원의 초입인 대청앞마당은 적지 않은 환자들이 누워서 치료를 받고 있었고, 그들은 대부분 경상의 환자로 보였다.
그리고 그들을 돌보는 이들은 푸른 청삼을 입고 있었는데, 몸가짐은 조심스럽고 많은 절제가 들어가 있다는 것을 세 사람은 느낄 수 있었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활인의가라는 명성이 헛된 것은 아닌 것 같군.”
“그렇습니다. 이 산중에서 저 정도 절도를 가지고 산다는 것은 대단한 것이죠.”
도림의 말에 하림이 고개를 끄덕였다.
“운령, 되도록 조용하게 장주를 찾도록......!”
“예, 주공....!”
세 사람이 안으로 들어가도 누구하나 나서서 그들을 막아서지 않았다.
한참을 두리번거리고 느린 걸음으로 안으로 들어가고 있을 때였다.
-휘리리리릭......!
“비켜라...!”
“앞을 막지마라...!”
적의를 입은 자들이 붉은 가마를 매고 정문을 부수듯 밀고, 허공을 날다시피 하며 쏟아져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하림등도 눈빛을 빛내며 한쪽으로 몸을 비켜섰다.
“의가주.....의가주...아니...의선인은 어디 있느냐?”
“의선인을 앞으로 데려와라!”
그들은 대뜸 서슬이 파랗게 장내를 한순간에 얼어붙게 만들었다.
모든 사람들의 조용하던 동작이 그만, 일시에 약속이나 한 듯이 멈춰 섰다.
그들 사이로 허리가 구부러진 노인이 앞을 혜치고 나온다.
그의 손에는 낡은 장부가 펼쳐진 채 바람에 팔락이고 있다.
“에허허.....누구요? 이 활선당에서는 이렇게 큰소리를 내면 아니 되오.”
“이....이......! 장주를 데려 오거라, 본문의 소가주께서 큰 부상을 입으셨다.”
“에허.....이런....못알아들었구만.....아...글쎄 이곳 활선당에서는 중환자들이 있어서 큰소리를 내면은 그들의 목숨이 위태롭다니까?”
“늙은이......썩 잔말 말고 의선인을 데려오라는데......!”
“에허.....선인께서는 지금 중환자를 보고 계셔서 거동할 수 없소. 그러니 총관인 나에게 말해보시구랴.”
총관이라는 노인의 말에 호통을 내지르던 적의 대한의 얼굴이 더욱 흉악하게 변해갔다.
“뭣이! 안에 있으면서도 본 적룡문의 영접을 이리 한단 말인가? 이것들이 사전에 인편으로 다급함을 알렸는데도 본문을 이따위로 취급하다니, 활인가가 오늘로서 그 문을 닫을 생각인게로구나.”
“에허.....진정하시구랴, 적룡문의 인편은 받았으나, 그것 때문에 본 활인가의 본업이 멈출수는 없소이다. 이곳을 찾는 이들은 모두 환자들이라서 한시라도 등한시한다면 순식간에 병자들이 사망하게 될거라오.”
“흥! 그것은 내 알바 아니다, 어서 의선인에게 안내 하거라!”
“에허......이를 어쩐담....!”
적의인의 고함에 총관이라는 노인이 난색을 띠었다.
그러나 말한 것과는 달리 얼굴에 나타난 표정은 너무도 여유로웠다.
“그럼 잠시만 이곳에서 기다려보시오. 아마도 장주께서 급한 환자를 보시고 나오실 것이라오.”
“아마도...?.......이것들이......! 본문의 소가주가 죽어가고 있단 말이다. 어서 서둘지 못할까?”
“에허.....좀 참으시구랴, 그럼 어디 소가주를 내놔보시오, 우선 나라도 봐주리라.....”
“이....익.....!”
분노가 절정에 이른 적의인의 안색이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올랐지만, 한결 같이 여유로운 신색으로 대꾸를 하는 노인을 쳐내지는 못했다.
그는 억지로 노기를 내려 앉히며 부관에게 눈짓을 했다.
“소가주를 가마에서 조심해서 내려라.”
“예....대주...!‘
십여 명의 적의인들이 절도 있게 움직여 가마에서 피갑 칠이 되어 있는 젊은 남자를 꺼내, 활인가에서 가져온 밀차에 올려놓는다.
이미 기식이 엄연하여 숨조차 가늘게 쉬는 것으로 보아서, 얼마 지나지 않는다면 그의 생명이 곧 끊어질 것이 자명해 보인다.
적룡문,
이름으로도 충분한 물론 사파이다.
하지만 그들은 정당하게 사파임을 부정하지 않고 떳떳하게 밝히면서, 강호에 그 이름을 걸고 세를 넓히고 있었다.
적룡문주 적천마도 사동천.
덩치만큼 담도 크고 호탕하다고 알려진 사파의 거두.
하지만 냉혈한이라고 소문난 그는 원래원칙을 고수하고, 자신의 틀에서 한 치라도 벗어난다면 철저하게 손속에 인정을 두지 않았다.
그의 잔인한 손속은 보는 이들은 치를 떨 만큼 냉혹했다.
많은 도박장과 기류와 객잔등을 운영하면서 고리대금업까지 손을 댄 그는, 철저하게 자신들도 백도임을 주장하면서 이끌어가고 있었기에, 무림맹에서도 곤혹스런바가 있겠지만 섣불리 그들을 징치하지 못했다.
적룡문은 그렇게 백도천하에서 당당하게 기생하고 있는 사파였다.
“에허......다 죽은 시체라 해도 믿겠구만....클클클......!”
“닥쳐라! 소가주는 아직 살아계시다.”
소가주가 죽으면 자신들은 이미 죽을 목숨이라, 적의대한의 얼굴이 시커멓게 변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 것이다.
“에허......그런데 어쩌다 이리 된 것이오, 칼침을 무려 스무 방이나 맞으셨구랴!”
“그....그것.....그것이......!”
섣불리 말을 잇지 못하는 그의 눈에 안쪽에서 서서히 몸을 드러내는 청수한 백의 노인이 눈에 들어 왔다.
그는 지금까지와 달리 몸을 날려 그 노인에게 다가가서 포권을 한다.
“의선인님을 뵙습니다. 언젠가 본문의 문주님을 따라왔다가 뵌 적이 있습니다.”
전신에서 소탈한 기운이 그를 둘러싸고 있었고, 그 노인의 모습은 푸른 대나무를 연상시키는 것처럼 청수했다.
“그대들이 적룡문이로군, 그런데 이곳에서는 극히 조용해야한다는 규칙도 알면서 어기는군.”
“죄...송합니다. 너무 화급한 일이라서...그만...!”
“갈....! 나에게 그 환자가 그 환자일 뿐이다. 어디서 변명을 하려 드는냐?”
의선인의 청수하던 인상에 노기가 떠오르며 대갈을 터트리자, 어쩔 줄 몰라 하던 대한이 급기야 무릎을 꿇는다.
“선인께서는 노여움을 거두어 주십시오. 소가주의 목숨에 소인들 모두의 목숨이 달려 있는지라, 순간적으로 이성을 잃었던 것 같습니다, 선인님.”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그를 내려다보며, 의선인이 할 수없이 한숨을 불어낸다.
“일어나게, 내 한번은 그대들 장주의 얼굴을 봐서 넘어가주지. 하지만 두 번은 용납이 안될 것이야!”
“예엣...! 감사합니다. 의선인님....!”
의선인은 밀차에 누워있는 젊은 남자의 맥을 짚어보고 한참을 살펴보고 있다.
그런 그의 신색은 아무런 변화가 없다.
이윽고 그의 꾹 닫혀 있던 입에서 나직한 말이 흘러 나왔다.
“총관, 상처를 닦고 천지괴항활명탕을 먹이게, 심맥이 안정이 되어야, 다음 손을 쓸 수 있을게야!”
“에허....알겠습니다. 장주님!”
“모두 물러가라! 꼴도 보기 싫다.”
의선인이 적의인들을 휘둘러보면서 노기를 뿜는다.
적의인들은 찔끔거리며 자신들의 소가주가 있는 밀차를 밀고 안으로 급하게 사라진다.
“하여간 힘만 쎈.....무식한.....! 에힝.....!”
의선인은 고개를 내젓고 주위에 누워있는 환자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하림은 그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가만히 있었다.
그가 살펴본 의선인의 내기는 약간의 내공과 푸른색의 내기가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음....역시 청명하군.....!”
뜬금없는 하림의 말에 도림등은 의아했지만 묻지 않고 그대로 넘어가다.
그들이 조용히 의선인을 관찰하고 있는 동안, 의선인이 차츰 그들이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그는 환자를 차례로 보면서 움직이고 있었기에, 익숙한 길을 좌우로 살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으응.....?”
환자를 살던 그가 하림등이 서있는 곳에서 고개를 들었다.
네 사람의 눈동자가 얽히면서 교차한다.
한동안 눈길을 끊지 못하고 대치하고 있던 네 사람은 각기 고개를 돌리며 정색을 했다.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의선인이었다.
“멀쩡하다 못해 내력이 넘치는 사람들이 이곳 활인가에 어쩐 일이시오.”
“예, 선인, 우리는 본시 대하오문의 사람으로 문주님을 모시고 의선인님을 만나러 온 것입니다.”
운령의 말에 의선인의 안색이 약간 변하였다.
“대하오문....?”
“예, 대하오문입니다.”
“음....그곳에서 왜 본인을 보러 오신 것이오.”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는 그를 바라보며 하림이 앞으로 나섣다
“장하림이 의선인을 뵈어요.”
“장하림 문주, 적혈마도라는 그 문주가 맞소? 그런데 여인의 몸이라니.....?”
의선인은 하림의 음성을 듣고 그의 위아래를 쓸어보며 의아하게 묻는다.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하림의 이마의 힘줄이 불거진다.
그러나 이내 한숨을 내쉬고 말을 꺼낸다.
“선인, 지금 본인의 몸속에 피치 못할 사정을 음기를 품고 있어서 그래요.”
“으음......장문주, 지금 살펴보니 기이하구려, 음양이 같이 휘돌고 있지 않은가?”
“역시 의선인이시군요, 한눈에 알아보시다니...대단해요....!”
하림의 말에 의선인은 대꾸도 하지 않고 하림의 위아래를 훑어보는데 여념이 없다.
조금 지나자 그은 거침없이 하림의 곳곳을 만지면 두드려보기까지 한다.
그러나 하림은 그의 행동을 그대로 두었다.
“햐아......대단하군...어떻게 한사람의 몸에 ......이건 정말 기적이라 할 수밖에 없군....햐아....이거....이거.....!”
의선인은 순간적으로 자신을 잊고 하림의 몸 안에 들어가 버린 느낌이다.
하림의 몸은 한마디로 그가 평생 수련한 의술을 정면으로 뒤집는 것이었지만, 그는 하림의 몸에서 맹렬하게 휘돌고 있는 음양이기에 완전히 매료되고 말았다.
어떻게 이럴수가 있단 말인가?
한낱 인간의 몸이......
“장문주, 부....부탁이 있소.”
“부탁이요?”
“그렇소, 문주의 팔목에 진맥 좀 해보면 안 되겠소?”
“하하...어려울 것은 없지만 이미 온몸을 꽤 뚫어보시지 않았나요?”
“으음.....문주의 몸은 대우주.....아니 삼라만상의 그...초자연의......아무튼 말로 설명하기 어렵소. 그러니 진맥한번하게 해주시요.”
의선인이 정중하게 부탁하자, 하림도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러시지요, 뭐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정말이오? 이런 고마울 때가.....허허...!”
그는 대소를 터트리면서 하림의 완맥을 덥석 잡았다.
반개한 눈으로 하림의 팔목에 진맥을 하는 의선인, 그런 그의 얼굴이 기이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수시로 얼굴색을 변해가길 수차례. 드디어 그의 반개한 눈이 떠지고 입에서는 긴 한숨을 토해냈다.
“정말 놀라운 일이오, 한마디로 문주의 내력 속에는 소우주가 자리 잡고 있구려. 정말 탄복하였소, 또 그 안에 숨겨진 미증유의 그 힘을 가진 내단.....흠....정말로 놀랍소”
“하하....의선인께서는 본인의 내력을 완전히 꿰뚫어 보셨군요. 마치 본인의 밑천이 모두 동이 난 느낌이 드네요...하하.....!”
하림이 웃으며 말을 잇자 의선인의 안색이 변하였다
“핫...이런....! 문주, 그러고 보니 노부가 큰 결례를 한 것 같소. 용서해주시오.”
칠십쯤으로 보인 그가 서슴없이 하림을 향하여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한다.
하림은 눈빛을 빛내며 그를 바라보았다.
“의선인님, 그렇다면 나도 부탁이 하나 있는데......?”
“부.....부탁.....말이오?”
“예...그렇습니다.”
하림의 말에 의선인의 수염이 가늘게 떨렸다.
그는 직감적으로 하림의 부탁이 예사롭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무...무엇이오,,?”
“다름이 아니고 의선인님을 본문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
하림의 말에 의선인이 한순간 할 말을 잃은 모습이다.
하림의 입이 다시 열렸다.
“아시고 계실지 모르지만 무림은 혈왕과의 치열한 대결을 앞두고 있습니다. 아마도 많은 사상자가 생길 것입니다. 잘 알아들었소, 하지만 본 활인가는 이곳을 비우고 문주를 따라 나설 수가 없소이다.”
“아....!”
하림의 의선인의 대답을 듣고 신음을 내뱉었다.
예상은 어느 정도 했지만 한마디로 거절의 소리를 듣고 내심 아득해졌다.
“의선님, 이곳에서 활인 의술을 펼치듯 본문으로 옮기고서도, 가난한사람들에게 의술을 펼치며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하실 수 있습니다. 의선님.”
“휴우,,,,! 장문주의 뜻은 내 잘 알고 있소이다. 그리고 하오문의 약진을 모르는 나도 아니고, 내개인적으로 말한다면 문주의 뜻에 따라 뜻을 같이하고 싶지만, 본가에 대대로 내려오는 조사님이 남긴 지엄한 문규가 발목을 잡고 있음에 쉽지 않은 일이오.”
“대체....발목을 잡는다는 그 문규가 뭐랍니까?”
하림은 약간 언성을 높여서 되물었다.
그의 물음에 의선인의 얼굴에 씁쓸한 표정이 떠오른다.
“아마도 본문의 조사께서 욕심이 좀 많았던 모양이오, 이곳에서 천하제일의 의문을 만들지 못한다면 한발자국도 세상 밖으로 나서지 마라.”
“헐......천하제일의 의문? 이미 활인가는 천하제일의 의문 아닌가요?”
하림이 어이가 없다는 듯 되묻자, 의선인이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내젖는다.
“문주, 우린 아직도 성수신의의 벽을 넘지 못하였소,”
“성수신의요?”
“그렇소. 현존하는 화타는 당연히 성수신의라 할 수 있소!”
“만나보셨습니까?”
“그렇소 몇해 전, 그와 삼박사일동안 침술을 논했는데 내가 지고 말았소,,,,”
“끄응......!”
“먼 길 오셨는데 헛걸음하게되어 미안하오, 문주.”
“...........?”
의선인은 하림의 존재감을 확실히 알았다.
그가 꿰뚫어본, 하림의 내부는 엄청난 것이었다.
그가 가진 내력만으로도 강호상에 견줄 수 있는 자가 없다는 것을 능히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진정 미안하게 말할 수밖에 없는 그를 향해, 하림이 빙끗 웃으며 품속으로 손을 가져갔다.
“하하하....아직 저는 포기 안합니다. 이것을 보시고도 절 따르지 않는다면, 저도 깨끗이 포기하고 물러나죠.”
“............?”
품에서 나온 그의 손에는 낡아서 곧 부스러질 것만 같은 고서가 들려 있었다.
그의 손을 바라보는 의선인의 눈이 경직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슴속에 알 수 없는 어떤 울림이 그의 심장을 강하게 두드리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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