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령구궁천뢰옥
<마령구궁천뢰옥>
전횡의 얼굴에 이제는 뚜렷한 표정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하림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 속에는, 무한한 갈망과 뚜렷하지 않은 어떤 설렘이 가득 서려 있었다.
“본문의 역사는 천년도 넘어 정확한 기원은, 그 이상이라고만 전해져 내려오고 있을 만큼, 강호의 어떤 세력보다도 오래되었다 전해오고 있소. 그리고 본문의 시조이신 하오대제께선 그 당시 천하무적이셨다 하오. 그분께서는 궁핍하고 비참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최하위층의 실태를 우연히 발견하고, 몇 날을 고심 끝에 문파를 설립하고 비참한 인생을 살고 있는 자들을 모아 대하오문이라 명명하였소..................”
만사불통 전횡의 길고긴 이야기가 대하오문의 시조(始祖)라는 하오대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그의 말을 종합해보면 당시 무신으로 추앙받던 천무신검 해검양이, 몇 백 년만의 처음 겪는 지독한 수해와 기근으로 많은 사람들이 병들고 굶주리며, 비참한 생활을 하다가 영양실조 등으로 죽어 나가는 것을 목격하고, 가슴을 아파하며 그들을 모아서 문파를 개파하고, 이름을 대하오문이라 하였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의 신분들은 도둑과 기녀, 점소이와 허드렛일로 끼니를 이어가는 자들이 모여들었고, 해검양의 물심양면으로 쏟아 붓는 정성에 그들은 서서히 정상의 삶으로 돌아와 세상에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무신으로 추앙받는 해검양이다보니, 그가 문을 연 대하오문에는 구파일방과 무림세가들의 전폭적인 지원이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삼십 여년이 흘러갔을까, 대하오문은 당당히 구파일방에 일문이라는 신조어를 더 보태어 만들만큼 강성해지기 시작했다.
구파일문일방, 해검양의 후광으로 단숨에 천하일문으로 발돋움한 대하오문, 그렇게 유구한 전통의 강호구파일문일방 대열에 합류를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십여 년이 더 흘러갔을 때 뜻하지 않은 사건들이 대하오문을 중심으로, 서서히 그 머리를 치켜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 시점은 어느덧 고령으로 접어든 해검양은 천하를 유랑하면서 빈민을 구제하고 있었고, 대하오문의 문주위에 오른 해검양의 유일한 제자는, 대하오문의 과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이쯤해서 큰 실정을 하고 말았다.
그 원인들은 많았지만 강호일방이었던 개방조차, 저 뒤로 따돌려버린 대하오문의 기세는, 연일 욱일승천하듯이 크고 높아만 갔고, 그 여파로 인하여 세상을 바로 볼 줄 몰랐던 문주는 기고만장해버리고 만 것이다.
극협의 자만감과 아집, 그리고 어마어마한 배경이 욕심을 불러왔고, 그것은 대하오문을 파국으로 치달리게 했다.
심지어 이제 구파일방들조차 거대방파로 자리 잡은 대하오문을 두려워하기 시작했고, 모든 사람들이 대하오문의 인물들과 마주서게 되면, 괜한 주눅에 몸부터 움츠러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대하오문이 가지고 있는 어마무시한 정보력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정보력은 누가 말하지 않아도, 자연적으로 천하각지로부터 쉴 새 없이 밀려들고 있었다.
모아진 정보들은 문주에 의해서 비싼 값에 세상으로 팔려나가기 시작했고, 대하오문은 해검양이 만들어놓은 정체성은 잃어버리고, 반면에 남의 불행을 밟으며 만든 행복을 구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된 데에는 대하오문을 구성하고 있는 자들의 면면에 있었다.
모든 대하오문의 문인들은 생활 속에 깊숙이 간여되어있는 직업들을 가진 사람들이다.
쉽게 얘기하면 술을 팔고 물건을 훔치거나 행인들의 주머니를 탈탈 털어버린다.
그리고 취중진담의 진리대로 자신들도 모르게 가슴 깊은 곳에 꼭꼭 숨겨 놓았던, 한마디로 죽을 때까지 가져 가야될법한 자신들의 비밀들을 손쉽게 털어놔 버린다.
그렇지 않으면 염연한 목적을 가지고 기녀가 접근하여, 목표의 상대에게 미인계도 불사하면서, 그를 통하여 귀중한 정보들을 토설하게 만드는 것은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자신들만 아는 비밀스런 장소에 아주 깊숙이 묻어놓은 비밀문서들은, 양상군자들의 좋은 돈벌이가 되었고, 이렇게 쌓인 모든 정보들은 모조리 대하오문으로 모여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양은 어마어마하게 방대했고 심지어 황궁의 비사들까지 예외가 없어서, 한때는 황제조차도 대하오문을 향해 읍소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미 산더미같이 모여드는 재화들은 모두 정보를 팔아서 생긴 것들로, 물처럼 뿌려대는 재화의 힘은, 한순간에 대하오문을 누구도 범접할 수없는 권한을 가진. 거대문파로 강호를 은연중에 지배하게 만들었다.
한마디로 엄청난 재화들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져왔고, 대하오문의 무위 또한 무신인 해검양의 무학이기에 천하에서 따라 올 자가 없을 정도였다.
대하오문에서 사들인 정보로 경쟁문파의 도덕성을 치명적으로 퍼트려 멸문에 이르게 하고, 상가(商家) 쪽에서는 역시 비싼 정보를 사들여, 경쟁 상가를 몰락에 빠트리는 것은 흔하디흔한 일이 되어버렸다.
심지어 개인 간에도 사소한 음심(淫心)에서 시작 되서, 남의 미모의 처를 빼앗아오기 위해, 대하오문에서 그녀의 남편에 대한 정보를 사들이고, 이것을 그 남편의 가장 치명적인 적에게 흘러들어가게 만든 다음, 몰락하거나 죽게 만들어버리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천하를 떠돌면서 외유 중이던 해검양이, 황제의 초대로 황궁에 들어섰을 때, 황제의 입을 통해서 모든 사실을 알게 된 해검양은 불같이 대노하게 된다.
그리고 한달음에 달려간 그는, 대하오문의 문주로 있던 자신의 제자를 단전을 깨트려 무공을 회수하고 만다.
천무신검 해검양, 그는 어느덧 자신의 손으로조차 무너트릴 수 없을 정도로 비대해져버린, 대하오문의 실태를 파악하고 통탄을 하면서 대하오문의 편액을 자신의 손으로 떼어내게 된다.
“이제 세상에서 대하오문은 더 이상 없다, 있다면 그저 더러운 자들의 하오문만 있을 뿐이다.”
분개해서 천하에 대고 외치는 그의 긴 수염이 폭풍에 휘돌듯이 휘날렸다고 전해 내려온다.
그리고 그는 이제 더러운 하오문이 되어버린 총단을 순식간에 폐허로 만들어버리고, 세상을 혐오하며 은거하는 것처럼 강호에서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다.
그러나 해검양은 실상 깊은 오지를 선택해서 하오문에 대한 족쇄를 채우기 시작했으니, 이는 그가 심혈을 다해서 만들어낸 마령구궁천뢰옥이었다.
이때가 해검양의 나이 일백이십 세였다.
그리고 세상은 그를 하오대제라 불렀다.
마령구궁천뢰옥(魔靈九宮天牢獄).
이는 현세에는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지옥의 마겁뢰였고, 하오문으로서는 벗어날 수없는 천형의 지옥뢰에 갇히게 된 것이었다.
그이후로 몰락한 하오문은 근근이 이어지면서, 세상에서 천하 디 천한 대접을 받기 시작했고, 세인들의 가래침 세례는 오히려 흔하게 받아들여졌다.
세월이 흐르면서 하오문은 간간히 문주를 내세웠고, 그들은 필연적으로 어김없이 모처에 있는 마령구궁천뢰옥에 들어가야만 했다.
이는 해검양이 만들어놓은 지고한 조사의 법령으로 정해져 있었고, 이를 무시한다면 하오문 문주의 위는 결코 오를 수가 없었다.
여기까지 단숨에 말을 이어온 전횡은 숨이 차는지, 잠시 숨을 고르고 찻잔을 들어 단숨에 비워 버렸다.
하림은 그를 바라보면서 궁금했던 것을 묻는다.
“마령구궁천뢰옥은 무엇인가요?”
어느덧 하림의 말투도 약간은 진정을 찾아 존대를 하고 있었다.
이제는 전횡이 마음을 열고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장공자, 그것은 하오문의 천형과 다름이 없지요, 문주 된 자는 당연히 천뢰옥에 들어 조사께서 만들어놓은 시험을 통과해야 합니다.”
“시....험이라......?”
“예, 그것은 기관진식일수도 있고 요괴들이 득실거리는 기문의 둔갑술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곳은 이 세상에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생지옥의 문이라 봐도 과언이 아니겠군요.”
“흠,.......!”
“천뢰옥에는 모두 사십팔 개의 관문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모두 통과해야만 하오문의 문주로써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럼 만약에 통과하지 못하다면........?”
하림이 빠르게 묻자 전횡은 나직이 웃는다.
“흐흐....바로 저처럼 되고 마는 것이지요.”
“.........?”
“이해가 안가는 모양이군요.”
“아니, 이해했죠, 그러니까 통과를 못한다면 단전이 부숴 지고 내공을 잃고 만다?”
“하하...역시 잘 아시는군요. 이해가 빠르십니다.”
전횡은 뭐가 그리 좋은지 유쾌하게 웃어 제긴다.
그는 이 밤에 벌써 여러 차례 가슴을 활짝 열고 웃고 있는 것이다.
비록 평소에 웃음과는 담을 싼 그는 모르고 있겠지만 말이다.
“그럼 전문주는 사십팔 관중에 몇 관까지 통과했죠?”
“으...음......십일 관문에서 단전이 깨지고 말았지요.”
“음.......!”
하림의 입에서 침음이 흘러 나왔다.
지금은 비록 내공의 흐름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전횡이다.
이는 그가 단전이 없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그가 가졌던 내공의 흔적은 결코 그 크기가 작지가 않았다.
적어도 하림이 알아볼 수 있는 선에서는 그렇다.
“그곳은 엄청 놀라운 곳이겠군, 그 정도라니......!”
“지금도 결코 생각하고 싶지 않은 곳이랍니다.”
전횡은 그 순간을 생각하는 듯 가볍게 몸서리를 친다.
“전문주, 그럼 지금까지 그곳을 통과한사람은....?”
“결코 없소, 조사의 법령에 따라 실패한 문주는 절대로 강호에 나갈 수가 없었고, 겨우 제자를 들이는 정도로 만족해야했죠, 그러기에 본문은 무력을 가진 집단이 되지 못했고, 지금까지 강호의 제일 밑바닥에서 천대받으며 살고 있는 것이랍니다.”
“으....음.......!”
하림은 또다시 침음을 내뱉는다.
하오문이라는 곳에 이런 사정이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전횡의 말속으로 빠져드는 것을 느꼈다.
“그럼 만약에 그곳을 통과하게 된다면......?”
“조사님의 유훈에 의한다면 대하오문의 영광을 다시 보게 될 것이라 하셨소.”
“대하오문의 영광이라........대하오문.......!”
“하오문의 숙원이지요, 이제 장공자께 드릴 말이 있소.”
“나에게.....?”
“예, 사실 이 말을 하고 싶어서 노부는 아까부터 안달을 하고 있었소.”
전횡의 안색이 붉게 변하며, 격정에 찬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장공자, 사실 공자께서 물어본 무심경이란 단어는 노부가 단언컨데, 이 세상에서 그 존재를 아는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소.”
“.........?”
“아니, 굳이 말한다면 딱 세 사람만 아는 단어가 되겠군요.”
“방금 전에는 한사람도 없다 하지 않았나요?”
“바로 해검양조사님과 장공자, 그리고 그 무심경을 기억하고 있는 노부이지요.”
“으...음.....!”
“조사께서는 훗날, 무심경을 찾는 자가 세상에 나올 것이니, 그에게 하오문을 맡기라 하셨소.”
“........?”
전횡은 불타오르는 눈으로 하림을 바라보고 하림은 멍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공자, 이 말이 무슨 뜻인 줄을 잘 알고 있겠지요?”
“그러니까..........그러니까 나더러 이 하오문을 맡아 달라, 이 말인가요?”
“왜 아니겠습니까? 조사께서는 유일하게 그만이 하오문의 굴레를 거두고 신조(神鳥)를 깨울 수 있다 하였습니다.”
“신조.....?”
“네, 조사께서 남기신 기서에 의하면 천뢰옥의 마지막 사십팔 관의 수호자라 하더군요, 신조를 얻는 순간 사십팔 관을 통과하고 무심경을 얻게 되리라 하셨습니다.”
“흐음...무심경을 얻으려면 나더러 사십팔 관을 통과하란 소리로밖에 안 들리는군.”
-쿵.......!
“장공자, 일백이십팔 대 하오문주 전횡이 공자를 뵈오, 부디 하오문을 이끌어 주시오.”
전횡이 한쪽무릎을 꿇고 하림을 향해 고개를 숙인다.
그의 돌연한 행동에 하림은 두 눈을 크게 뜨고 뒤로 한걸음 물러선다.
“난데없이 이무슨 행동인가요? 어서 일어나세요.”
“공자, 이미 느끼시겠지만 이것은 공자께 필연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휴우........!”
하림의 입에서 긴 한숨이 새어 나왔다.
천요성승의 유훈을 따른다면 무심경을 얻기 위해서, 당연히 하오문의 금지인 사십팔천뢰옥에 걸어들어 가야된다.
그런데 그곳은 하오문의 조사인 해검양이 안배해놓은 곳이다.
더욱이 무심경과 단단하게 결속지어 놓은 채로 말이다.
무심경이 있다는 천뢰옥의 소재가 어디에 있는 줄만 안다면, 몰래 잠입이라도 시도 해보겠지만, 저 고집스런 전횡의 머릿속에 있는 그곳은 결코 쉽게 얻어낼 수 없을 것이다.
“휘유......!”
하림의 입에서 긴 한숨이 또 새어 나온다.
이 지긋지긋한 하오문과는 절대로 얽히고 싶지 않았었다.
이.....이런....우라질.........무....무심경........을 어찌한다......?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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