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왕(3)
<도왕(3)>
“완전히 괴물이군.”
“누구? 천룡대주 말인가?”
“그럼 누구이겠나, 천하의 도왕을 반초식차이로 이기다니, 믿을 수가 없군.”
“이것이 정말 실화란 말인가, 누가 이 사실을 믿으려 할까.”
“어떻게 저 나이에 저런 무위를 가질 수가 있는 것이지?”
“이 사람아, 강호에서 나이가 무슨 상관이겠는가? 강하지 않으면 내일 아침에 들판에서 고혼이 되고 마는 세상일세.”
“하긴....뭐, 이 사람아, 나도 괜히 그러겠는가. 내 나이를 생각하니 난 뭐했나 싶고 괜한 상실감에 불쑥 튀어나온 소릴세.”
“후유....이해하네, 나라고 다르겠는가?”
“그나저나 천룡대는 땡잡았군, 나도 천룡대주의 면접 때 떨어지지만 않았어도.....”
“에끼...흘러간 시간은 다시 오지 않네. 혹여 라도 우리 인봉대 대주가 들으면 미운털 박히기 딱 일세 그려.”
“헙.....이크...못들은 소리로 하게.....”
구름같이 모여든 군중들이 하림등은 이미 자리를 떠났는데도, 그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저마다 웅성거렸다.
그것은 하림의 천룡대도 별반 다르지 않았는데, 한쪽에 모여서 하림과 도왕이 비무했던 흔적들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저마다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우리대주는 정말 괴물이었군.”
“천하의 도왕을.......!”
평소 미소를 달고 살아서 소면이라 부르는 소면야도 편필이 넋이 나간사람처럼 말하고, 그 옆에서 옥소서생 설소양이 힘없이 되받는다.
다른 이들의 표정도 두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았고, 마치 꿈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표정들로 일관되어있다.
“저번에 보았을 때보다 한 단계 더 진화했어.......!”
원숭이처럼 털이 많은 사마갈이 힘없이 중얼거렸다.
“사형님, 무슨 말이우.”
“저번에 말했던 식인광마 있잖은가. 내가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을 때 우리대주가 짠하고 나타나서, 단칼에 식인광마를 베어버렸을 때보다 지금의 경지가 훨씬 진화했다고...”
“헐.....그게 얼마나 지났다고, 진화를 한다는 말이오.”
“그나저나 자네들, 사람들 얼굴 보았나?”
사마갈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치켜든다.
“사형님, 무슨 말씀이우.”
뇌전섬도 조관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묻는다.
“대주의 무공을 보고 모두가 감탄해서 우리를 부러워하는 것 말일세.”
“아하.....하하하하.....! 봤지요, 어깨에 힘 좀 줬습니다.”
등에 검을 맨 매풍검협 왕흔이 앞으로 나서면서 사마갈을 바라보고 심각하게 묻는다.
“그런데 한 가지 애매한 것이 있어서 말이오.”
“애매한 것이라니?”
“아니, 그렇잖소, 우리는 분명히 무림맹에서 시험을 보고 천룡대에 들어왔는데, 어찌어찌하다보니 대주의 사병(私兵) 되어 있잖소.”
“사병이라니.....?”
사마갈의 물음에 왕흔이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말을 잇는다.
“대주의 신분이 천룡대주이기 전에 이미 하오문주라 들었소, 그럼 우리는 이미 대주와 모종의 계약을 맺었고, 그의 밑으로 들어왔으니 이제는 하오문의 제자가 된 것이 아니겠소?”
“흐음....그것이 그렇게 되는 것인가?”
중인들은 왕흔의 말을 듣고 새삼 생각해보니 틀린 말이 아닌지라, 잠시 대화가 끊긴다.
무림맹이라는 것만 생각하고 있었던 그들은, 하림의 하오문에 대해서는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말을 듣고 나니까 새삼 여러 가지 문제가 고개를 드는 것도 사실이라서, 선뜻 나서서 말을 꺼내기가 애매하다.
“이런 제길....알량한 가문타령 좋아하는 노인네가 그렇잖아도 못마땅해 하는데, 인연 끊자고 난리 치겠구나.”
“이거 당형의 문제만도 아니 것 같소, 이 몸도 그러니......”
독비절도 당수영이 투덜거리자, 거도를 등에 맨 거령도 철명산도 말을 거든다.
“흥.....!”
이때 싸늘한 코웃음소리가 장내에 크게 울린다.
모두의 시선이 한곳으로 집중되었는데 바로 화봉 금서옥이었다.
“하오문, 즉 대주의 신분이 하오문이라 부끄럽다는 건가요. 그럼 지금이라도 그만두면 되겠군요.”
평소 말수가 적은 금서옥이었지만, 지금은 싸늘한 얼굴에 고운아미까지 사정없이 찌푸리고 있다.
“아..아....니...금낭자, 그런 것이 아니고......!”
“흥, 아니긴 뭐 아니에요. 금언니의 말이 정확한데....!”
“헉...이제 제갈낭자까지.....?”
말을 꺼낸 당수영과 철명산이 제갈송령까지 나서자 당황하여 말을 잇지 못한다.
바로이때.
-휘리리릭....!
“누가 오라버니의 하오문이 부끄럽다 하는 건가요.”
허공에서 비단이 나부끼는 소리가 세차게 들려오며 조소접이 사뿐히 내려앉는다.
그녀 또한 고운 아미를 찌푸린 채로 당수영을 노려보면서 입을 연다.
“이곳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당소협은 오라버니한테 말해 줄 테니, 오늘부로 나가도 될 거예요.”
“헉...! 조낭자.....이건.....!”
“소접, 왔구나.”
“호호...그래, 송령 너도 오라버니의 천룡대에 들어왔다는 소리 들었어.”
“호호....그래, 대주께 시험 보는데 떨려서 죽는 줄 알았지 뭐니.”
“어머....너도 심사를 봤어?”
“그럼, 지지배, 너 오라버니가 얼마나 냉정한사람인지 모르지. 한 치에 틈도 없이 죽을힘을 다해서 심사 봤어 이것아.”
“호호.....잘했어, 그래야, 정당한 것이지. 억울해 하지 마, 나도 심사보고 들어 갈 거니까?”
“어머, 너도?”
“그래.”
“넌, 차기 검후가 될 사람이잖아.”
“그것 때문에 지금까지 사부님께 허락 받아내느라 죽을 뻔했지 뭐니...”
“그럼, 검후께서 허락하신거니...?”
“호호....응, 오라버니 아니면 턱도 없었을 거야.”
“호호...잘됐다..얘....참, 인사해, 금언니야.”
제갈송령이 금서옥의 팔을 붙잡고 조소접에게 이끈다.
“어머, 이렇게 예쁜 언니가......전 검각의 조소접이에요. 잘 부탁드려요. 언니.”
“호호....제갈동생에게 말씀 많이 들었어요, 들어보니 우리 서로 한살차이인데 친구하는 것이 어때요?”
“어머....언니, 화통하군요? 저희야 좋죠. 호호호....!”
“호호.....!”
그녀들은 서로 손을 잡고 깔깔 거리고 웃는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그녀들만 바라보고 멍하니 서있기만 하고, 특히 당수영과 철명산은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 한다.
이때, 조소접이 그들에게로 시선을 돌리자, 찔끔한 당수영과 철명산이 황급히 시선을 피한다.
“여기 두 분께만 말하는 것이 아니고 모두 잘 들어보세요. 오라버니 즉, 하오문주이신 여러분의 대주는 모두가 주저 없이 손가락질하는 하오문의 문주랍니다. 어쩌면 그 손가락질이 그분을 따르는 한 여러분들에게도 쏟아질 수 있어요. 그래서 하는 말인데 그것이 두려우면 지금이라도 탈퇴하시면 아무 불이익이 없도록 제가 도와드리죠.”
그녀의 말에 모두가 눈알만 돌리고 있다.
어쩌다 말 몇 마디가 이상한 곳으로 빠져서 다른 곳으로 새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역시 세월의 무게가 있는 탓일까?
사마갈이 앞으로 나서며 빙그레 웃는다.
하지만 그의 웃음은 큰 입이 길게 벌어지자, 정말로 원숭이의 미소 띤 얼굴을 보는 것처럼 해학적인 모습에, 세 소녀는 살포시 입을 가리고 웃는다.
“마침, 말이 나왔으니 이쯤해서 우리도 조낭자 말처럼 확실히 해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그래. 자, 어차피 나는 애초부터 대주를 보고 따라온 몸이니 끝까지 대주만 보고 가겠네. 아닌 사람은 지금이라도 빠지게. 지금부터 셋을 빠르게 셀 생각이네, 이것은 서로 눈치 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방법이니, 그 짧은 순간에 얼른 선택들 하시게, 따르는 사람은 이쪽, 그렇지 않은 사람은 저쪽....!”
말을 의식적으로 끊은 사마갈이 좌중을 한번 쓰윽 한번 씩 쳐다보고 말을 잇는다.
“자, 세겠네, 하나, 둘, 셋!”
-우르르르.........!
넋을 놓고 멍하니 앉거나 서있던 사람들이 한순간에 몸을 날렸다.
연무장을 가득매운 흙먼지가 그들의 모습을 완전히 가려버렸다.
***
하림과 도왕의 비무는 무림맹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몰려나와서 지켜보았다.
그중에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사람들은 당연히 들어 있었고, 그들의 생각은 거의 대동소이(大同小異)했다.
그렇지 않아도 하림의 약진이 못마땅한 사람들이었는데, 무공까지 탁월한 하림의 모습에 시기심까지 끓어오르는 것이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쳐낸다던가, 그들은 그저 천한 하오문의 하림이 못마땅할 뿐이다.
그러나 그의 무공을 보고 쉽게 도발해 올 사람들은 없다.
쉬쉬거리지만 화산과의 일이 암암리에 소문이 모두 돌았기 때문이니라.
특히 며칠 전부터 점창파와 곤륜파, 그리고 청성파의 인물들이 모두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 말들이 많았다.
사람들은 그 이면이 무척 궁금했으나 맹주인 도경진인이 함구령을 내린 탓에, 누구하나 속 시원하게 속사정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모두가 하림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대부분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에서도 전통과 뿌리가 깊은 곳들이었다.
역시 뿌리 깊은 나무는 어지간한 바람에 쓰러지지 않는 이치와 같은 것인가.
하림과 더불어 각파의 수뇌들까지 맹주전으로 들어와서 넓은 방안이 가득 메웠다.
“오늘은 여러분들이 궁금해 하는 문제들을 속 시원하게 밝히려 이 자리에 모셨소.”
도경진인이 찻잔을 내려놓고 입을 연다.
그의 목소리는 나직하면서도 힘이 있었다.
“우선 화산파의 일을 말씀드리겠소, 화산은 자파로 돌아갔소. 이유는 육장문인이 사특한 마음을 품고 마공을 연구하고 있었소.”
“헛.....그런.....!”
“그럴 수가.....?”
도경진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곳곳에서 헛바람 빠지는 신음이 흘러나온다.
“어떻게 화산이 마공을.....정녕 믿지 못하겠소이다.”
공동파 장문인인 복마일검 종초성이 떨리는 눈빛으로 말한다.
도경진인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럴 것이오, 나도 처음에는 놀랐으니....하지만 사실이오, 그리고 더욱 놀라운 사실은 바로 오늘 아침에 올라온 소식이오.”
“또 무엇이오, 맹주.”
“육대본 화산장문이 며칠 전 주화입마에 빠지고 말았다는 소식이오. 그의 아들은 육금황은 화산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하오.”
“헛....이럴 수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화산장문이 마공을 익히다가 주화입마에 빠지다니....”
“아미타불.....이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소이다, 맹주.”
소림방장인 광해대사가 도경진인을 향해 불호를 외면서 말했다.
도경진인은 담담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야지요, 화산은 향후 십년간 봉문하기로 하였소.”
“하아......!”
여기저기 탄식이 새어 나온다.
“아직 애기해 드릴 것이 또 남아 있소.”
“혹시 점창, 곤륜, 청성의 일이 오이 까?”
“그래요, 그들도 화산과 비슷한 시기에 마공비급을 획득하고 익히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 무림맹에 보고 하지 않은 죄가 있소, 그 뒷면에 숨겨진 저의가 상당히 의심되는 부분이 있소이다. 그래서 작금의 상황을 감안하여 일 년 간의 자숙을 명했소이다.”
“허,,,,참,,,,이런 시국에 정말 큰일이군....그럼 봉문이 아니고 자숙이오?”
“그럴 수밖에요, 이것은 마교의 농간이었소, 마공도 그들 것이었소. 모든 협의를 씌워서 봉문 시키기에는 현 강호의 속사정이 좋지 않잖소. 애써 정파를 분열시키려는 마교의 농간에 휘말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소.”
도경진인의 말에 무당장문인인 구궁신검 도명이 묻는다.
“그런데 화산의 벌이 좀 무거운 것 같소, 사형.”
“음......그것은 말이야, 사제. 자신들의 치부를 알고 있는 천룡대주를 죽여 입막음하려는 시도를 했기 때문이야.”
“아....그것이 역시 사실이었군. 천룡대주와 치열한 일전을 벌렸다는 소문을 들어서 말이오.”
“종장문, 맞아요, 자신들의 죄를 덮고 마공을 익혀, 무림을 어떻게 해보려한 정황이 뚜렷해서 벌을 무겁게 줄 수밖에 없었소.”
“무량수불.....아..어리석은 사람 같으니라고.....어쩐지 불화가 끊이지 않더니 마공 탓이었구나.”
“아미타불, 큰 일이구료, 강호엔 시시각각 어두운 그림자가 몰려올 판인데.....”
“대사, 그러게 말이오. 단지 이 모든 것을 노도의 독단으로 처리한 것을 양해 바라오, 더 이상 길게 끌어 우리들마저 분열이 조장될까 저어한 마음이 컷 소이다.”
“맹주의 고심이 느껴지오이다. 아미타불.....!”
“이해해주니 모두 고맙소. 그럼 우리 천룡대주에게 물어보고 싶은 말이 있소이다.”
- 작가의말
빠른전개를 하고 싶은데 날씨탓인가요,
역시 쉬엄쉬엄 가겠습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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