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오문의 위세(1)
하오문의 위세(1)
하림의 발걸음이 바빠졌다.
사도옥의 출현이 분명하다.
스스로 느끼기에 강한 불안감은 그의 뇌를 한껏 긴장시켰다.
그가 이끄는 행렬이 길게 이어졌다.
하림이 앞장서고 대원들이 위풍당당하게 뒤를 따르며, 그 뒤를 검안추가 이끄는 팔두마차와 하오문의 제자들이 따른다.
그리고 또 그 뒤를 이어 금파상단의 마차와 사람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야 한혈보마의 엉덩이를 내려치고, 쏜살같이 영파로 달려가고 싶으나, 뒤에 실린 하오대제의 동상과 만년한철 또한 하림으로서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무가지보이다.
귀양의 금파상단의 혈겁으로 인하여, 다음날부터 강호에 퍼지기 시작한 소문은 일파만파 겉잡을 수없이 퍼져나갔다.
그동안에 백마방과 전투에서 크게 재미를 느껴보지 못한 무림맹으로서는, 이번 천룡대의 쾌거가 아주 톡 쏘는 시원한 맛의 소식이나 진배없었다.
그러나 무림맹은 승리의 소식보다 하림이 이끄는 천룡대의 재등장이 무척 기꺼웠다.
그리고 소문대로 그들이 가진 무시무시한 무위소식에, 반신반의하면서도 박수를 치며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하오문, 하림이 천뢰옥에 폐관하는 동안에 하오문은, 한마디로 구름 속에 신룡이 승천하는 격이었다.
무려 천여 년을 잠자코 있던 그들이, 몇 년 사이에 강호에서 불같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모두 하림이 없는 동안에 군사 역을 맡고 있는, 제갈성혁이 동분서주하면서 하오문을 일궈냈다.
그의 비상한 머리는 앞날을 내다보았고, 치밀하게 계획하며 수많은 대소계획들을 이루어 나갔다.
심지어 그동안에 총관 역을 하며 하오문을 이끌어 왔던, 비돈 가우량마저 이 젊은 청년에게 진심으로 탄복하여 따르기를 주저하지 않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오죽하면 제갈성혁에게 새로 생긴 별호가 신산일까.
더욱이 하오문이 전격적으로 강호활동하면서 신산 제갈성혁이 휘하제자들에게 베푼 혜택들은 놀라울 정도였다.
그들에게 재물을 나누어주고 자립을 독려하는 한편, 사업체를 물려주고 그에 대한 세금을 걷는 일에 주력을 했다.
더불어 기녀들의 처우가 향상되었고, 점소이들의 신수가 훤해진 것은 말해 무엇 할까.
이는 하림이 꿈꿔왔던 일로 누구보다 그의 속내를 잘 아는 신산 제갈성혁이 만들어 나간 것이다.
대략 삼년의 시간,
그것은 하림을 변화시켰지만 그를 에워싼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귀중한 시간이었던 셈이다.
환사라고도 불리는 적혈마도 장하림과 무림천룡대의 출현은, 그렇게 강호를 떠들썩하게 뒤흔들며 어느 한순간에 나왔다.
아울러 무림맹을 골치 아프게 했던 백마방의 혈겁 소식들도 그 시간 이후로 잠잠해졌다.
그들 또한 하림의 등장과 함께, 단한명도 살아남지 못하고 몰사당한 마두들 소식에 엄청나게 당황하고 있을 것이다.
그 덕이었을까?
호남성과 강서성을 지나는 하림의 앞을 막아서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백오십 명이 넘는 무인들과 여러 대의 팔두마차가 대로행을하고 있는 긴 행렬이다.
무수하게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모았지만, 누구하나 시비를 거는 사람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특별하게 귀주성 성주의 이름으로 발행된 통행증은, 지나는 성마다 그들을 마치 칙사라도 대하는 것처럼 반겼다.
이렇게 대규모로 움직일 때는 성과 성을 드나들 때, 꽤 많은 수속들이 시간과 인내를 요하는 일이다.
하지만 하림 일행이 등장할 때는 그 모든 것들은 자유롭게 일사천리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하림은 그렇게 마상에서 한번 내리지도 않고, 성내 출입을 허가 받아가며 드디어 절강성의 영파현으로 들어섰다.
그때가 바로 귀양에서 출발한지 무려보름 만이었다.
영파현,
현재 강호에서 가장 뜨겁게 대두되는 곳이다.
바로 하오문의 총타가 이곳 영파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덕에 일개 작은 현이었던 영파는 삼년 전 기억보다 엄청나게 커져 있었다.
더 많은 인파들이 모여들었으며 하오문과 거래관계에 있던 크고 작은 상단이나 점포들이 줄이어 들어왔다.
좌천됐다고 울상을 짓고 살던 현감도 얼굴이 활짝 피었고, 황제의 비호까지 얻어낸 하오문을 성심을 다해 돕고 있었다.
하림일행이 영파에 들어서는 순간,
관도위에 움직이는 모든 사람들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선두에 들어오는 하림과 대원들.
한혈보마와 설총마 위에 올라탄 그들의 신위는, 가히 누구도 범접할 수없는 극강의 기세를 내뿜고 있었다.
보는 이마다 절로 고개가 숙여질 정도로, 그들이 가진 위압감은 모든 사람들의 고개를 저절로 숙이게 만들었다.
긴 행렬이 현 내로 들어서면서, 서서히 말을 몰아 움직이고 있는 하림은 몰라보게 변모한 영파에 혀를 내둘렀다.
그러나 그들은 잠시 후 자신들의 앞을 막아서는, 거대한 위용의 장원 앞에 걸음을 멈추며,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말았다.
“이....이것이 하오문이라고......?”
하림은 커다란 편액이 달린 정문 위를 바라보고 할 말을 잊고 말았다.
<하오문>
마치 그를 놀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커다란 글씨로 쓰여 있는 편액, 그 아래 많은 이들이 모여서 다가오는 하림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전횡이보였고 제갈성혁과 그 뒤를 따르는 네 형제가 보였다.
“문주님을 뵈옵니다.”
“문주님을 뵈옵니다.”
하림이 말을 세우고 하오문의 전각들을 바라보고 놀라는 사이, 그들이 일제히 포권을 하며 고개를 숙인다.
하림은 그제야 그들에게 시선을 옮기며 밝게 미소 지었다.
“모두들 나와 계시는군요. 고맙습니다.”
그도 마주 포권하며 일일이 눈을 맞춰가며 눈인사를 했다.
“무사히 귀환하심을 축하드립니다.”
제갈성혁이 앞으로 나서며 하림의 팔을 잡는다.
“고마워, 형, 고생 많았네, 본문의 위용이 장난이 아니야.”
“이것이 모두 문주님의 영명(英名) 덕분 아니겠습니까.”
“하하....이것이 어디 나 때문인가, 본문의 군사께서 훌륭한 탓 인 게지.”
“하하.....나를 이렇게 만들어준 이가 바로 문주 아니오?”
“하하....역시 신산께서는 겸손하기까지 하셔.”
“놀리는구나, 아무튼 잘 왔다, 잘 왔어...조금만 늦었어도 무림맹의 어느 분이 뒷목잡고 쓰러질 뻔 했는데....”
“엉? 무슨 소리야?”
“하하...무림맹 총사 문성 제갈선생 이야기지.”
“하하....그 양반이 많이 분주하신 모양이군.”
“그렇지 않아도 참지 못하고 지금, 이곳으로 오고 계실거야.”
“그래? 무슨 일로 그 멀리서 이곳까지 온다는 말이지?”
“나름 신경 써서 대우해준 천룡대가, 몇 년 동안 소리 소문조차 찾을 길이 없으니, 그 양반으로서는 속이 타들어갈 수밖에....지금까지 나름 많이 참았던 것이겠지.”
“음...그렇군, 그분 입장에서는 머리가 터질 만도 하겠네, 그렇다고 매사 느긋한 맹주께서 나서서 움직여 줄 리가 만무하고 말이야.”
“기별이 온 걸로 봐서는 아마도 내일이나 모래쯤 도착하실 것이네.”
제갈성혁의 눈이 새삼 깊다.
물론 하림만의 하림의 생각이다.
자세히 들여다 본 그의 눈 속은 상당히 깊었고 묘한 현기가 담겨 있었다.
“그나저나 성혁 형도 많은 진전이 있었군, 형이야 말로 축하해.”
하림의 말에 제갈성혁이 씨익 웃는다.
“이 모든 것이 문주님의 화해와 같은 깊으신 은덕 덕분이 아니겠습니까. 속하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소이다.”
그의 농담 섞인 말에 하림이 빙긋 웃는다.
“천하멸복 신산귀계를 모두 통달한 모양이군.”
“이 사람아, 그 심오하고 귀중한 것을 어떻게 이 단시간에 모두 습득할 수 있겠는가. 어림없는 소리일세.”
제갈성혁이 어림없다는 듯 두 손을 내젖는다.
“하지만 내 눈에는 그렇게 안 보이는데.....저기 지어져 있는 본문의 전각들조차 범상치 않고 말이야.”
“역시 문주의 눈은 속일수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네. 잘 보았어, 저건 모두 진법이 응용되었지.”
제갈성혁이 놀랍다는 표정을 지으며 하림을 올려다본다.
“역시 그렇군.”
“맞아, 문주가 선물로 준 천하삼십육 대진법으로 전각들을 지었지, 나중에 자세하게 보고하겠지만 이것들의 묘용을 안다면 문주도 대만족일거야. 물론 아마 나를 다시 보게 될 거야.”
“하하....스스로 금칠할 정도로 대단한 거야?”
“하하....당연하지...살아 움직이는 전각이라고 들어봤어? 아마 생각도 못하겠지?”
“뭐? 농담해?”
하림이 어이없다는 듯 두 눈을 크게 뜨면 반문하고 다른 이들도 처음 듣는 양, 두 귀를 집중해서 듣고 있다.
그들의 표정 또한 경탄의 기색이 완연하다.
그냥 흘러봤던 전각들에 무슨 생명이라도 점지한 것인가?
제갈성혁이 말하는 것으로 본다면 분명 무슨 진법을 배치한 것 같은데, 살아있다고 표현하는 자체는, 조금 과장된 것이 아닌가하는 그런 표정들도 다분히 보이고 있다.
“삼년 만에 처음 나타난 문주 면전에서 쓸데없이 농담할 정도로 그렇게 개념 없지 않거든?”
“하하...아무튼 형의 작품이 기대가 되는군. 송령아.”
“예, 주공?”
낭랑하게 대소를 터트린 하림이 갑자기 송령을 부르자, 깜짝 놀란 그녀가 앞으로 나온다.
“인사해라, 이 사람은 아마 너의 사촌 오라버니 될 것이다.”
“헛....!”
“어머.....?”
돌연한 하림의 말에 제갈성혁과 제갈송령이 대경실색을 한다.
“문주....너....너......?”
설마 하림이 자신의 본래신분을 이 자리에서 드러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제갈성혁의 얼굴에 노기까지 떠올랐다.
“형, 그렇게 분해 할 필요 없어, 이것은 모두 형을 좀 더 자유롭게 만들어주고 싶어서 하는 거야.”
“너 이게 대체 무슨 행동이야, 너 전날, 우리 형제들이 성(性)같은 것은 잊고 살자고 했던 맹서를 잊은 것이야?”
“그럴 리가....하지만 생각해봐, 지금 마음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는 불안감이 형을 옭아매고 있는 거, 안보여? 내 눈에는 이렇게 훤히 보이는데....?”
“...........?”
“왜, 말을 못하지? 형도 그렇잖아, 곧 제갈총사가 이곳에 도착할 텐데, 그를 대할 심정이 어떨지 뻔하잖아. 제갈총사는 사사로이 따진다면, 형의 숙부가 되는 것이니.”
“..........크흠....”
“이럴 때는 풀어 놓는 것이야, 이제는 형이야말로 대제갈세가에 견주어도 전혀 꿀릴 것 없는 대하오문의 총사 아니신가?”
“하...하림아....! 너의 뜻은 이제 알겠어, 하지만 네 말도 사실이니 부인하지도 못하겠고, 다만 내가 염려하는 것은 할아버님을 향한 내 복수심이 아직도 남아 있다는 것이야. 그래서 애써 제갈세가를 무시하고 살아가려 했던 것, 너도 그건 잘 알잖아.”
한숨을 내쉰 제갈성혁이 차분하게 평정을 되찾았다.
하림은 그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웃는다.
“그분도 자식을 향한 잘못된 사랑이 만들어낸 비극이었어, 아마 그동안 적지 않은 후회를 하지 않았겠어?”
“휴우,,,,,,모르겠다!”
“저어......주공....이게 무슨 상황이신지...?”
참지 못한 제갈송령이 하림을 올려다보면서 묻는다.
하림은 그녀를 보며 쓴웃음을 짓는다.
“성혁형은 바로 너의 돌아가신 막내숙부의 독자이시다.”
“아.......!”
뜻밖의 말에 제갈송령의 입에서 탄성이 새어 나온다.
“분명 돌아가셨다는 그 비운의......?”
“그래 그분이야....”
제갈송령의 커다란 두 눈이 일시에 슬픔에 일렁이며 제갈성혁을 빤히 바라본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허리를 접어 제갈성혁에게 인사를 한다.
“송령이 성혁오라버니를 뵈어요.”
“.....이....이.....런....! 반...반갑구나....송.....송령아.”
제갈성혁의 마음이 내려앉는다.
자신의 앞에 절세라고 표현해도 하나도 과하지 않을 절세미녀가 사촌동생이 되어 고개를 숙이고 있다.
자신과 같은 피를 나눈 이와 처음 나누는 인사다.
제갈성혁은 터질 것 같은 이 마음이 더욱 진한 아픔으로 다가온다.
제갈송령 또한 그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이미 오래전에 제갈성혁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세가에서 쉬쉬거리는 몇 개의 사연이 있는 이야기 중에 하나였는데, 그녀는 그때 많은 충격을 받고 할아버지인 제갈천세를 한동안 피해 다녔던 기억이 있었다.
두 사람을 에워싸고 있는 다른 의형제들 또한 애잔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어색함에 선뜻 다가서지 못하는 제갈성혁을 보고 하림은 빙긋 웃는다.
어차피 어려운 길은 자신이 뚫었다.
나머지는 자신의 의도를 충분히 알아챈 영리한 제갈송령이 잘 풀어나가 줄 것이다.
“자, 언제까지 세워만 둘 거야. 나도 얼른 살아 움직이는 본문의 건물들을 자세히 보고 싶다고....”
“아아......!”
하림의 말에 전횡이 화들짝 놀라며 앞으로 나선다.
하림은 그의 붉은 핏기가 도는 안색을 살펴보고 빙긋 웃는다.
“하하....전호법도 마냥 놀고만 있지 않았군요. 잘하면 쉽게 단전을 복구할 수 있겠어.”
“아....모든 것이 문주님의 화해와 같은 은덕입니다, 감사합니다, 문주님.”
“아니지요, 그동안 본문을 위하여 오로지 힘을 쓴 전호법의 의지라 생각 하지요.”
“과찬이십니다. 문주님, 어서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하하....그럽시다,”
하림은 그들을 따라 드디어 하오문의 문턱을 넘어선다.
삼년 전과는 모든 것이 달라진 하오문,
이제 자신이 넘고 있는 이 정문위에 달려 있는 편액은, 하림이 천뢰옥에서 가져온 거대한 편액으로 바뀌어 달게 될 것이다.
대하오문이라 쓰여 있는 그, 커다란 편액으로 말이다.
- 작가의말
하림이 삼년 만에 강호에 나와 하오문으로 돌아 갑니다.
길거리 수다가 꽤 길었군요.
하고 싶은 수다는 더 많은데 아무래도 자리잡고 앉아야 할 것 같습니다. ㅋ
묵묵히 읽어 주시는 독자님들께 감사인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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