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대회(5)----(3권분량 완.)
<무림대회(5)>
-츄릿....!
-스파아앗!
-푸욱.....!
하림의 신형이 삼면이 온통 바위인 틈새에서 새처럼 날아오른다.
-쿠궁.....!
그가 사라지고 난후 바위곳곳에서 새빨간 선혈이 분수처럼 솟구친다.
그리고 무언가 쓰러지는 둔탁한 소음 속에 바위의 형상이 사라지고 바닥에는 여섯 구의 시체만 남아 있었다.
주유산 중턱에 오래된 고목위에 늑대의 탈을 쓴 흑의 사내가 산 아래 쪽을 쳐다보면서 미동도 없이 서있다.
-휘리리리릭!
-휘리리릭!
이때 그의 주위로 두개의 인영이 비호같이 날아든다.
먼저와 있던 사내와 같은 늑대의 탈을 쓴 자들이다.
그러나 그들의 늑대 탈은 하얀색이었고, 먼저 있던 자의 탈은 검은색을 띠고 있다.
“단주님, 속수무책으로 놈에게 당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우리단의 은형술이 전혀 먹혀들고 있지 않습니다. 적혈마도, 어린놈이 정말 무서운 놈입니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단주.”
그들은 속사포처럼 흑색탈에게 쏟아낸다.
천살단의 단주 흑랑, 이자에 대해서 알고 있는 자는 극히 드물다.
그는 오직 흑랑이란 이름으로 알려져 있었으며, 새롭게 부각하는 천살단의 단주라는 사실과 그가 흑랑으로 불린다는 것밖에, 모든 것은 수수께끼에 쌓여 있는 인물이다.
흑랑은 수하들의 보고를 들으면서 늑대의 탈밖에 나와 있는 두 눈을 깜빡이지도 않았다.
“전부 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우리가 섣불리 화산의 능구렁이에게 넘어가버린 것 같다.”
“하지만 육대본의 제안이 우리가 놓아버리기에는 너무 아깝지 않았습니까?”
“그래, 화산이 무림맹을 손에 넣는다면, 우리에게도 한구역의 주인으로 인정해준다던 그 말에 너무 혹해버렸지. 그것이 쥐약이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던 이 못난 단주의 실책이었다.”
“단....단주......!”
“단..주......!”
흑랑의 꼿꼿하던 시선이 화산을 입에 담을 때 유독 심하게 요동을 쳤다.
그를 바라보는 백랑들의 시선도 다르지 않게 흔들리고 있다.
흑랑은 눈빛을 고치고 두 사람을 바라보며 강하게 묻는다.
“지금 상황은....?”
“천살단 백오십 명중에 남아 있는 자는 삼십여 명 정도 입니다.”
“끄....으...응.....! 놈의 피해는...?”
“전....전무입니다. 심지어 놈이 입은 백삼에 피한방울도 튀지 않았습니다. 흑랑!”
“흐으음........이럴 수가.....! 어쩐지 화산에서 노심초사하는 것 같더니.....적혈마도 어린놈이 정말 대단하구나....”
“단주님, 이쯤해서 포기하고 발을 빼면 어떻겠습니까?”
“발을 빼자고......?”
“예, 단주.....이렇게 끝까지 간다면 우리는 몰락하고 말겁니다.”
“그럼 포기한다면....? 그래서 몇 명의 목숨이 살아난다면 우리 천살단은 유지 될 것 같은가?”
“단...단주....처음에는 힘들겠지만 지금 양성중인 아이들이 강호로 나오게 되면, 그때는 다시 세상을 도모해 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않아! 우리가 온전히 발을 뺀다 해도, 화산의 놈들이 증거인멸을 노리고 우리를 멸하러 들것이다. 애초에 육대본이 우리를 찍었을 때, 우리는 이미 꼼짝할 수없는 거미줄에 걸려든 것이나 진배없었다, 난 그걸 너무 늦게 깨달았고...”
“단...단주......!”
흑랑을 바라보는 백랑들은 안타까운 눈빛을 띠며 말문을 열수 없었다.
“너희는 지금 작전을 중지하고 남은 인원을 추스려 최대한 빨리 이곳을 나가서 안가로 돌아가라.”
“그..그럼...단주님은...?”
“애꿎은 아이들이 이 못난 나 때문에 피워보지도 못하고 억울하게 죽어갔는데, 이대로 도망갈 수는 없지 않느냐?”
“헉....! 안됩니다. 단주!”
백랑의 탈을 쓴 두 사람이 대경해서 황급히 흑랑에게 다가선다.
“기로야......!”
“형.....영....님......!”
흑랑의 입에서 사적인 이름이 튀어나오자 백랑 중 한 사내가 어깨를 부르르 떤다.
“기로야, 지금은 내 말이 정답이다. 빨리 가거라. 그래야 한아이라도 살 수 있다. 그동안 정말 고마웠구나.”
“흐....억....! 형...님...!”
“어서 가래두, 남은 얘들을 모두 죽일 셈이더냐?”
“흐......억.....형님,,,, 보중하십시요.”
“단주님......!”
두 사내는 흑랑을 향해 허리를 깊히 숙인 후에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휘이이이익.........!”
그들의 입에서 동시에 긴 휘파람소리가 나오며 저 멀리까지 뻗어갔다.
“고맙구나, 내세에 다시 만나면 이 은혜는 꼭 갚으마, 시간이 있다면 육늙은이도 데려가고 싶지만 적혈마도 한 놈도 장담할 수 없으니 그것이 아쉽구나.......!”
흑랑의 입에서 약간은 서글픈 육성이 흘러나오더니 말을 마쳤을 때, 그의 신형이 연기처럼 사라지고 난후였다.
한편, 하림은 자신을 향해 조여 오던 살기들이 어느새 하나둘씩 뒤로 빠져 나가고 있는 것을 느끼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잘됐군, 마침 지겨워질 참이었는데.....그나저나 화산의 검귀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구나.”
하림은 주유산의 거대한 그림자를 올려다보았다.
저위쯤에 모두 함정을 파고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미 살수들의 공격이 자신에게 해를 끼치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으니, 무언가 또 다른 꿍꿍이를 만들어 낼 것이다.
하림은 육대본의 음침한 얼굴을 떠올렸다.
자신이 육대본을 죽이게 된다면 사람들은 속을 알 수 없으니, 무조건 적혈마도를 무림공적으로 몰아 부칠 것이다.
그것이 약간 걸리긴 했으나 마침 전횡이 소림방장 광해대사와 친목이 있다 해서, 그에게 살짝 언질을 주라 했으니 어쩌면 지독한 누명에서는 벗어날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비무대회의 우승은 물 건너가고 말 것이다.
이유야 어찌됐던지 구파의 장문인을 해했으니 그런 인물에게 우승을 넘겨주지는 않을 것이다.
하림은 입맛이 썼다.
대환단을 얻어서 꼭 삼화취정의 경지에 오르고 싶어 욕심을 냈었다.
그러나 때 아닌 오지랖으로 인해서 그것이 물거품으로 변하게 생겼다.
좀 더 신중하게 처신해서 인면수심의 화산파를 만천하에 알리고 궁지로 몰았어야 했다.
때늦은 후회는 그 손해가 뼈아프게 다가왔다.
“휘유....어쩔 수 없지, 모든 것이 신중하지 못했던 나의 탓이니....가볼까?”
하림은 자신의 앞쪽에는 이제 거슬리는 살기가 하나도 보이지 않는 것을 느끼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파라라락.........!
그러나 다음 순간 하림은 옆으로 몸을 날려 두 바퀴 반을 허공에서 몸을 뒤집었다.
그가 있던 자리에 긴 장검이 땅속에서 나오며 사정없이 훑고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흐음....대단한자......!”
하림은 적아를 들어 방금 사라진 자의 기척을 향해 도기를 뿌린다.
-쓰르르릉........!
-파....파바박....!
돌덩이가 퀴고 흙먼지 구름이 자욱하게 일어난다.
그사이로 어둠보다 진한 흑영이 얼핏 모습을 드러냈다가 사라진다.
“도망간다...? 후후.....!”
하림의 신형이 그림자를 따라 나무 위쪽으로 날아간다.
그리고 어느 바위 앞쪽으로 떨어져 내린다.
“하아아아얍.....!”
-우르르르.....꽝꽝!
바위가 산산조각나면서 하나의 인형이 땅위를 구르며 일장이나 뒤로 물러난다.
“쿨,,,룩....!”
흑영의 입부분에서 선홍색 선혈이 낙숫물처럼 쏟아진다.
“대....대단하군, 명불허전이야! 적혈마도.....”
“호오.....이제야 말을 할 줄 아는 살귀를 만났군.”
하림의 말에 흑랑의 두 눈에 노기가 잔뜩 서린다.
그것은 수많은 수하를 잃은 원한이 치밀어 오른 까닭이다.
“적혈마도, 오늘저녁에 네놈의 손에 사라진 수하들의 원한을 갚으러 내가 직접 왔다.”
“하하....그대가 우두머리인 모양이군, 천살단의 단주쯤 되나?”
“본단이 천살단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구나. 적혈마도.”
“살수들이 너무 조용해서 봤더니 하나같이 혀들이 없더군. 대단해, 스스로 혀를 잘라 내다니 말이야.”
“적혈마도, 모르는 소리 말아라! 본단은 원래 말을 못하는 사람들을 제자로 거두어 들일뿐, 누구하나 혀를 잘라내지 않았다.”
“아......이런......내가 오해 했었군.....미안....!”
하림은 진정으로 미안한 마음에 포권을 한다.
의외였던 것이다.
살귀를 만들기 위해 혀를 일부러 잘아냈다 생각했었는데 그것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흥, 그렇다고 네놈이 우리 아이들을 죽인 것은 용서가 되지 않는다.”
“하하....먼저 나를 죽이겠다고 달려든 사람들은 누구더라? 그리고 그 사람 같지 않은 육대본의 사탕발림에 속아서, 나를 죽이러했으니 굳이 원한을 따진다면, 우두머리인 그대에게 있는 것이 아닌가?”
“닥쳐. 적혈마도, 곱게 죽이지 않겠다.”
말을 마친 흑랑이 전면에서 순식간에 모습을 감춘다.
하지만 하림의 기감에는 그가 어디에 은신하고 있는지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이미 하림에게 한번 읽혔던 기는 그의 눈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하림은 적아를 들고 산위 쪽으로 서서히 몸을 움직였다.
흑랑의 기척은 일장쯤 뒤쪽에 있다.
그리고 전면에 한 삼십 장쯤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은신해 있는 것이 그의 촉각에 모두 인식이 되었다.
하림은 흑랑을 굳이 의식하지 않으면서 위로 오른다.
뒤를 쫒는 흑랑은 오히려 어리둥절하며 기회를 엿보기 위해서 사방으로 몸을 날려본다.
하지만 저 평범한 몸놀림인데 한 치의 허점도 보이지가 않는 것이다.
흑랑은 이미 자신이 적혈마도에게 상대가 되지 않는 것을 알아챘다.
한순간에 자괴감이 물밀듯이 밀려들었지만, 잠깐사이에 모두 주검으로 변해버린 천살단의 부하들을 생각하니, 이미 자신은 목숨을 내놨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숨을 몰아쉬던 그가 더욱 깊이 몸을 숨기면서 어둠속으로 신형을 묻어버렸다.
이제 전방 이십 장 정도에 화산의 제자가 있을 것이다.
하림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이미 육대본의 거친 기류를 잡아냈기 때문이다.
-저벅 저벅.......!
고요한 야음에 하림의 발소리만 커다랗게 밤하늘을 울린다.
-츄릿!
-츄리릿!
숲으로 들어서는 하림의 옆구리로 새하얀 장검이 상하로 짓쳐들어온다.
갑작스런 기습에도 하림은 적아를 들어 반 바퀴 돌리며 장검들을 쳐낸다.
“요옷.....!”
화산의 무복을 입는 자 두 명이 하림의 적아에 실린 내력을 감당하지 못하고 뒤로 물러난다.
이때 하림의 입에서 불같은 노성이 터져 나온다.
그의 목소리는 야공을 울리는 천둥소리처럼 컸다.
“육대본 늙은이야, 본 공자를 여기까지 오라 해놓고 손님 접대가 형편없구나.”
“........?”
하지만 아무 대답이 오지 않는다.
전면에 하림을 반원 형태로 둘러싼 다섯 명의 화산제자들만이 두 눈에 살기를 띠우고 있을 뿐이다.
하림의 입이 다시 열린다.
“육가야, 다시 말한다. 손님 대접을 이렇게 한다면 애꿎은 제자들의 목숨만 날아갈 것이다.”
“이노옴....! 그 입 닥치지 못할까?”
노골적인 하림의 도발에 더 이상 참기 힘들었을까?
산위 쪽에서 쩌렁쩌렁 울리는 육대본의노성이 터져 나온다.
“하하....드디어 나타나는구나, 육가야! 어서 눈앞에 있는 제자들을 치우지 않는다면 나도 손속에 사정을 둘 수 없다.”
“놈, 그렇게 자신 있으면 어디 해보아라! 화산의 제자들이여, 저놈은 우리 화산의 대적이다. 오늘밤에 저놈을 없애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놈을 꼭 죽여야 할 것이다.”
“예엣!
“옙!”
“넵..!”
육대본의 노성에 사방에서 우뇌와 같은 대답이 쏟아져 나온다.
하림은 서서히 적아를 들어 올렸다.
잠잠하던 붉은 도기가 적아를 감싸며 흡사 불덩이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죽는 것이 소원이라면, 원대로 해주지, 절대로 날 원망하지 마라, 그대들의 짐승 같은 수장을 탓하라....!”
-촤르르륵......!
“하아아아압!
하림의 신형이 허공으로 날며 일도양단의 기세로 허공에서 떨어져 내린다.
-우르르르릉.....꽝꽝!
“으악.....악...!”
“아아악!..............사람살....려.....!”
세 명의 목을 한순간에 쳐버린 적아가 폭포수같이 쏟아지는 선혈을 두 갈래로 가르며 또다시 두 명의 몸을 가른다.
찰라 간에 앞을 막고 있던 다섯 명의 목숨이 양단되어 자욱한 혈향과 함께 사라졌다.
“끼야아아아아호........!”
치밀어 오르는 살기로 인하여 벌써 눈가가 붉어지기 시작한 하림의 입에서, 괴이한 소성이 휘파람처럼 길게 흘러나오더니, 그의 신형이 산위를 향해 쏜살같이 쏘아져 나간다.
- 작가의말
장마가 기네요.
긴장마에 답답해서 아까 이곳저곳을 드라이브 삼아 둘러 보았습니다.
안성쪽에 많은 피해가 있더군요.
가재도구를 꺼내고 흙탕물을 닦아내면서, 웃음기 없는 그분들의 얼굴을 보고 저도 내내 불편했습니다.
모쪼록 더이상 피해가 없으셨으면 하는 마음 뿐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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