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두들(3)
<마두들(3)>
기사멸조, 쉽게 말해 스승을 속이고 사문을 업신여기거나 배반하였다는 말과 같은데,
“흥, 정말 파렴치한 인면수심의 자 들이구나, 이정도 인간들인 줄 알았으면 크게 터트려 문제를 부상시키는 것이 더 나을 뻔 했는데......”
하림이 화를 참아내며 탄식을 한다.
그의 뇌리에 맑은 눈을 반짝거리던 표화검 손광표의 얼굴이 떠오른다.
“저희는 마두를 쫒고 형제들 셋을 붙여 놨었는데, 자파로 돌아가는 도중에 청장문인이 손수 집법당으로 넘겨 처단하려 하였죠, 손소협의 무공을 회수한다고 단전을 파훼하려는 순간, 형제들 셋이 달려들어 겨우 도망쳤다합니다.”
“..........?”
말없이 듣고만 있는 하림을 바라보면서 검안추는 침을 꼴깍 삼켰다.
“다행히 운령형...아니...소협이 미리 개방의 형제들에게 언질을 넣어 준 덕에, 그들의 도움을 받고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요.”
하림은 운령을 힐끗 쳐다보고 검안추에게 시선을 돌렸다.
“지금은 어떤 상태인가? 문도들은 무사해?”
“지금 무한(武漢)의 개방 분타에 몸을 의탁하고 있고, 세 형제들 중 한명이 부상을 입고 실종중이고 나머지는 건재합니다.”
“실종....?”
“예, 하지만 어디에고 포로가 되었다거나 죽었다는 흔적은 없는 것으로 보아, 아직은 무사한 걸로 보입니다.”
“찾아, 삼조가 모두 가서 찾아! 알았지?”
“삼조 전부가요? 전부는 아니어도 지금 행적을 쫒아 대원들을 보냈습니다만, 그럼 지금 임무를.......?”
검안추의 눈이 동그랗게 변해 하림을 바라본다.
“며칠 임무를 중단한다고 강호에 마두들이 죄다 도망가나, 위험에 빠진 형제하나 찾는 것이 백 마두 잡는 것보다 중하다.”
“하오면 손소협은.......?”
“그는 멀쩡해?”
“예, 정신적으로 많이 무너져 내린 것 말고는 몸은 괜찮습니다, 문주님.”
“운이 좋군.”
“피붙이 같았던 점창 사람들이 하나같이 죽이려고 달려들었으니까요, 그 충격이 꽤 컸던 모양입니다.”
“음......그에게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해, 그쯤해서 우리는 물러나고....!”
“저어....그런데........?”
“............?”
“그 와중에도 손소협이 문주님을 꼭 뵙게 해달라고 한답니다.”
“나를....왜?”
“글쎄요.....”
말끝을 흐리는 검안추의 눈을 바라보는 하림, 검안추는 슬며시 눈을 내려 깐다.
하림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말문을 연다.
“그가 무한에 있다 하였지?”
“예, 문주님.”
“좋아, 그럼 어차피 우린 전귀를 잡으러 무한을 가야하니 겹치는 길이네, 무한에서 기다리라 하고, 전귀라는 자는 그대로 무한에 있겠지?”
“예, 문주님, 붙여 논 형제들에게서 그렇게 연락이 오고 있습니다.”
“흐음.....운령!”
“예, 주공!”
주공이란 말에 또 도끼눈이 되어 운령을 한번 흘겨보다가 그가 씨익 미소를 짓자, 말을 이어가는 하림이다.
“전귀에 대해서 잘아나?”
“주공, 전해들은 바에 의하면 그자는 지독하게 금과 은량에 집착하는 자로 밝혀져 있습니다. 심지어는 은 한 냥에도 의뢰를 받아 살행을 했을 정도라 합니다.”
“마두로써 한 치의 손색없는 자군.”
“은연중 들리는 말에는 그렇게 해서 모아놓은 금이 꽤 많아 모처에 은밀히 숨겨놓았을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주공.”
“그를 포획한 무림맹에서도 찾아내지 못한.....?”
“예, 주공, 혓바닥을 삼분의 이나 끊어내는 고문에도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으래..? 그렇단 말이지......?”
하림은 잠시 곰곰이 생각을 하더니 검안추를 바라보고 말한다.
“문도들에게 모두 알려 부상당한 제자부터 찾는다.”
“옛! 문주님!”
하림은 공수를 하고 사라져가는 검안추를 바라보며 천룡대원들을 바라보며 몸을 움직인다.
“자, 우리도 가자, 전귀를 잡아 탈탈 털어 공분타주하고 철상이 목숨 값을 두둑이 받아내야지.”
하림이 먼저 몸을 날리자 대원들이 팽도림이 바로 뒤를 잇고, 나머지 대원들이 사라져 간다.
그들이 모두 허공을 날아 사라져 버린 공간은 썰렁했지만, 엎드려서 끝없이 절을 하고 있는 금호채 사람들은 일어날 줄을 몰랐다.
***
무한(武漢).
호북성의 중심성도로 상업이 활성화되어 많은 인파가 끊이지 않는 곳이다.
중원의 여러 대 성도 중에서도 그 규모가 크게 빠지지 않는 무한은 언제나 많은 사람들이 넘쳐흘렀다.
그러나보니 기루와 도박장도 성업을 할 수밖에 없고, 그런 곳에는 수많은 인생들이 들락거리며 술에 취해 고함을 지르고 주사를 늘어놓고, 도박으로 전 재산을 탕진한 후 칼부림을 하며 피를 불러 모으기 일쑤다.
그리고 그런 곳에는 여지없이 기루가 있었고 수많은 하오문도들이 존재한다.
희화루,
무한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호화로운 기루이다.
희화루의 밤이 삼경을 넘기고 새벽을 향해 달리고 있을 때, 몇 개의 인형이 희화루 깊은 곳으로 사라졌다.
그들은 모두 네 명으로 불야성처럼 환하던 희화루가 점점 그 빛을 잃어가고 있을 즈음에, 가장 끝 쪽에 있는 이층 전각 지붕위에 소리 없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그들의 신형은 어둠에 묻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화려한 금침의 커다란 침상은 은은한 홍촉이 몸을 떨어대며 비추고 있다.
사내라고 보기에는 약간은 여윈 듯 보이는 사내의 품속에 깊이 잠이든 여인이 안겨 있다.
물론 상체를 드러낸 야윈 사내도 잠에 빠져 있는 것은 분명하다.
커다란 방안의 위쪽에는 그들이 먹고 마셨던 흔적들이 질펀하게 탁자 위를 어지럽혀 있었고, 세상모르게 잠든 것처럼 보이는 두 남녀는 실오라기하나 걸치지 않고 잠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부스럭....!
이때 여인의 날씬한 교구가 꿈틀거리더니 깊이 잠들었다 보았던 여인의 두 눈이 살며시 뜨였다.
그녀는 제일 먼저 잠든 사내의 동정을 살피더니 자신의 젓 가슴을 누르고 있는 사내의 손을 조심스레 들어내며 빠져 나온다.
전라의 여인이 두어 발자국쯤 침상에서 떨어졌을까?
“어디 가는 것이지?”
약간은 날카로우면서도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그녀의 얼굴에 당황의 빛을 떠올리게 만든다.
“어...어머...! 상공...깨셨어요? 조심해서 일어난다고 한 것인데.....”
그녀는 전라의 몸을 빙그르 돌리며 사내의 면전으로 돌아선다.
그녀의 얼굴에 떠올랐던 당황스런 표정은 이미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놀라운 임기응변이다.
“묻잖아, 어디 가냐고...?”
“호호....천첩이 어디 가겠어요, 소피가 마려워서 측간에 가려는 것이지요. 상공도 참!”
“흥, 네년이 죽으려고 환장을 했구나, 감히 본좌의 감(感)을 무시하려하다니....”
“감이요? 상공 무슨 말씀이세요?”
침상에서 느릿하게 몸을 일으키던 사내가 비릿하게 웃으며 흡사 독사의 눈처럼 번들거리는 시선으로 그녀를 쏘아본다.
그녀는 그런 그의 시선에 몸을 부르르 떨며 한걸음 뒤로 물러난다.
“상....상.....상공......!”
“흐흐....네년은 유독 요 며칠 동안 본좌를 감시하는 시선을 보내왔다. 그동안의 정리를 생각해서 목숨을 살려두려 했는데 끝까지 거짓말로 본좌를 우롱하는구나.”
“상...상공......오...오해를......!”
사색이 되어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나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사내의 살소는 더욱 진해져 갔다.
그는 손을 내밀어 그녀를 향해 장심을 드러내자, 물러나던 여인이 사내를 향해 미끄러질 듯이 딸려 온다.
“아악.....!”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며 사내에게 빨려 들어가던 여인의 입에서 뾰족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사내의 손아귀에 그녀의 육봉이 거의 잡힐 찰라, 흔들리던 홍촉불빛이 더욱 요란하게 흔들이는 것이 아닌가?
-싸아아아악.....!
“윽.....!”
금침의 침상위에 검붉은 선혈이 화려한 장미꽃을 여러 송이 만들어 내며 사내의 팔이 허공을 날았다.
그의 입에서 창졸간에 비명이 터져 나오고, 아직도 사태를 이해 못하는 두 눈은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만큼 커져 있었다.
“웬.....웬...웬놈이냐.....!”
다음순간, 그의 눈에 백설보다 하얀 백의장삼을 입은 약관의 소년이 빙글거리며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 아닌가.
하림이다. 그의 뒤쪽으로 몇 명이 더 보였는데, 그들은 바로 팽도림과 운령, 그리고 사마갈이 따르고 있었다.
하림의 뒤에 있던 운령이 앞으로 나서면서, 겁에 질려 떨고 있는 여인의 데리고 밖으로 나간다.
어느 순간 고양이 앞에 쥐 신세가 된 것 같은 사내는, 그 모습을 눈앞에서 보면서도 미동도 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의 뇌리에는 이미 여인이라는 존재는 까마득히 사라지고 무섭게 회전하고 있었다.
어려보이지만 결코 범상치 않는 놈이 자신의 팔을 한순간에 베어냈다.
평소 예리한 감각을 지니고 있던 자신은 전혀 낌새조차 느낄 수 없었다.
그리고 저 여유는 강호에서 오랜 생을 굴러먹던, 노강호나 보여 줄법한 능글능글한 태도 아니던가?
쉽게 경거망동을 하였다가는 자신의 목 위에 있는 머리도, 저 침상 밑에 뒹구는 앙상한 팔처럼 힘없이 나동그라질 것이다.
그나마 도망갈 수 있다면 항상 베개 밑에 찔러 넣어 놓은 단도밖에 없다.
태연하게 팔이 떨어져 나간 위치를 점해, 지혈을 하는 그의 눈에 두려움이 묻어 지나간다.
“살수 전귀...? 맞나....?”
하림의 입에서 맑은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그 목소리를 들은 사내는 본인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마치 거짓을 말하면 금 새 저 어린놈의 손에 들린 단도가 목을 훑고 지나 갈 것처럼 느껴졌었기 때문이다.
“맞군! 얼마 전 관도 위를 걷던 뚱뚱한 노인하나와 젊은 남자의 목을 따고 백 냥씩, 이백 냥을 훔쳐서 사라졌다. 맞나.......”
“그....그건.....잘 생각이 안 나오.....대체 누구시오?”
더듬거리는 그가 상체를 앉은 채로 꼿꼿하게 세우며 고개를 흔들고 부정한다.
그러던 사이 그의 하나 남은 손이 어느새 베개 밑으로 들어가서, 단도의 손잡이를 움켜쥐고 있었다.
“우리가 누구냐고? 훗....! 우리는 무림맹 천룡대!”
“허억....!”
사내의 두 눈이 더욱 커지며 동공이 쉬지 않고 흔들거린다.
한번 무림맹에게 데었던 기억을 가지고 있는지라, 몸이 벌써 반응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때 거의 잘릴 뻔한 혀가 갑자기 쑤셔대는 것 같아서, 사내는 하마터면 욕지기가 새 나올 뻔했다.
“다시 묻지! 기회는 단 한번뿐이니 놓치지 말도록......! 뚱뚱한 사내 둘의 목을 동시에 베었다, 그리고 각자 백 냥씩, 이백 냥을 품에서 꺼내 사라졌지. 네놈인가?”
어린놈이 스산하게 물어오는 것이 이미 들통이 난 것을 느꼈지만, 이 시점에서 곧바로 인정을 해버리면 또다시 그 지긋지긋한 뇌옥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그는 생지옥 같았던 뇌옥을 떠올리며 고개를 마구 저었다.
비록 팔 하나가 떨어져 나갔지만 그로 인해 더욱 생존욕구가 일어나는 것인 줄도 모른다.
“아...아니오...절대 그런 일은 없었....아아악.....!”
힘차게 고개를 내젓던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처절한 비명이 방안에 울려 퍼졌다.
또다시 화려한 금침위에 혈화를 뿌려대며 마저 남은 팔 하나가 허공을 날고 있는 것이다.
“악......이 악독한 놈.....정파라는 놈의 심성이 사갈보다 더 독하구나.”
양팔을 잃은 전귀가 이제 겁으로 둘러싸여있던 두 눈에 원독이 가득한 채로 악을 써댄다.
“훗....마귀 놈이 할 소리는 아니지 않나....자 또 물어보지...듣자하니 금만 보면 환장해서 긁어모아 숨겨놓은 곳이 있다 들었다. 그곳이 어디냐?”
“허억.....! 없다...그런 거....아니...모른다.....!”
전귀의 두 눈이 당황한 듯 흔들린다.
하림은 개의치 않고 씨익 웃는다.
“잘 들어, 난 너한테 흥미 없어, 있다면 오직 네놈이 숨겨놓은 금전에만 관심이 있을 뿐, 그리고 한 가지 충고를 해주고 싶군, 이제 한번 물을 때마다 네 양다리 하나씩을 잘라 낼 거야. 그리고 마지막에는 죽어도 털어 놓을 수밖에 없는 방법을 쓰게 되지.”
“모른다, 그리고 있다 한들 네놈에게 말할 줄 아느냐?”
말을 마치자마자 그가 입안을 오물거린다.
그러나 하림이 어느새 그의 턱을 쥐고는 긴 혀를 쑥 뽑아 올린다.
“왜? 혀라도 깨물려고...? 꿈 깨...너에겐 그런 것조차 호사가 될 테니.....자! 다시 묻지...어디에 숨겼어?”
“모른다.....악적...! 아아아악!”
몸을 비틀며 강하게 거부하던 그의 몸에서 다리하나가 무릎아래에서 잘라져 나간다.
극심한 고통에 몸부림치던 전귀가 스르륵 기절을 해버린다.
“흥, 기절을 해?.....”
-타닥...탁!
하림의 발로 전귀의 요혈 몇 개를 건드린다.
“끄....응....!”
기절해있던 전귀가 깨어나면서 이제는 공포의 빛을 가득담은 눈초리로 하림을 보면서 애원한다.
“제에발.....살려주시오, 목숨만 살려 주시오....!”
“그래 살려 줄 테니 불으라고.”
“정말 나는 모르오, 그런 거 없단 말이오.”
“흥, 정 그렇다면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지. 하지만 그 고통스런 후유증은 모두 네 탓 일거야.”
“제발 살려 달란 말이오.”
그는 하림이 또 다가오자 몸을 꿈틀대면서 애원을 한다.
하지만 하림의 발이 멈추지 않자, 그는 표독스런 표정으로 돌변하며 하림을 쏘아보고 악을 썼다.
“그래, 죽여라, 새끼야! 내가 입을 열줄 아느냐? 흥, 어림도 없다 새끼야!”
돌변한 그의 반응에 입 꼬리를 위로 치켜 올리던 하림이 그의 가슴 요혈 몇 개를 건드렸다.
-투둑...투두둑....! 타탁!
“아.....아아악.......악.....!”
음양회혼멸사대법.
하림이 전귀에게 죽임을 당한 공호광과 마철상에게 고통을 주기위해서 썼던 바로 그 수법이 다시 세상에 펼쳐진 것이다.
목에 칼을 찔러 넣어 자살하는 것이 더 고급스럽게 느껴진다는 저주받은 고문술....
그 고통이 얼마나 지독한지 누구나 시술을 한자가 유도하는 대로 불어버릴 수밖에 없는, 어떻게 보면 분근착골은 비교도 안 되는 악랄한 수법인 것이다.
- 작가의말
성원에 감사합니다.
Comment '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