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으려는 자들
<막으려는 자들>
하남성, 정주성.
하남의 제일 도읍지이면서 교통의 사통팔달이 잘 발달되어있고, 문물 또한 중원의 어느 곳보다 활발하게 교역이 이루어지고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더욱이 이곳은 중원정파의 총본산이라 할 수 있는 무림맹이 자리하고 있어서, 그 유명세가 더욱 크다 할 수 있었다.
무림맹.
정파의 총단으로서 현 강호의 실세들이 세를 규합하여, 사파와 마도의 발호를 견제하는 총 본부이기도 한 그곳은, 언제나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드넓은 전각 중에 오늘도 유독 고성이 새어나오는 곳이 있었으니, 세월각이라 이름 붙여진 전각 안에서, 날선 고성들이 지붕을 들썩이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것이 말이 되는 소리냐 이 말이오, 내말이...”
하얀 장삼에 백매화가 열 송이 수놓아져 있어, 틀어 올린 머리와 인상이 깐깐하고 빈틈하나 없어 보이는 중년인은, 이마를 찌푸리면서 탁자를 치고 있다.
그의 앞에는 이속(二俗)이도(二道) 차림의 남녀 네 사람이 둥글게 앉아 있었는데, 그들도 모두 심사가 불편한 듯 이마를 깊게 찌푸리고 있었다.
하얀 도복을 입은 팔자수염을 기른 도인이, 방금 소리 친 백매화를 바라보며 입을 연다.
“육장문, 이건 그렇게 무작정 화만 낸다고 될 문제가 아닌 것 같소이다. 우리가 그를 막을 근거가 없어요, 근거가...”
“흥, 난 화산 육장문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오,”
그의 옆에서 말이 끝나자마자 청의를 입은 장년인이 불쑥 끼어든다.
“허어...청성 운장문까지....?”
“아니...그렇지 않소? 조장문...! 무림맹 역사 무려 천년이 넘어가오, 그 역사 속에 어디 천한 하오문 천것들이 한번이라도 들어온 적이 있소이까?”
“허어....이것...참.....!”
“내말이 그 말이오, 여러분. 이건 막아야 됩니다.”
“무림맹의 성역이 더렵혀지는 일이란 말이오.”
화산의 현장문인인 매화신검 육대본과 청성파 장문인 청운비검 운학철이, 입에 침을 튀겨가면서 열변을 쏟아낸다.
반면에 도복을 입고 있는 공동파 장문인 복마일검 조소섭은, 맞은편에 묵묵부답으로 앉아있는 아미파 대정신니와 점창파 운남신검 천일기에게 구원의 눈길을 보내지만, 그들은 끝까지 시선을 피하면서 언급을 회피하고 있었다.
이들은 왜 이렇게 이타적일까?
아마도 오랜 기간 그들만이 누려왔던 어떤 혜택들이, 갑자기 등장한 누군가로부터 없어지는 것이 아닌가하는 깊은 불안감이 우선일 것이다.
그리고 문제는 그 굴러오는 돌이, 천하디 천한 하오문이라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가령, 이중에 가장 뒤늦게 구파에 합류하게 된 청성파야말로, 혹시나 지금 화재의 중심에 있는 하오문이, 자신들의 위치를 빼앗지 않을까하는 노심초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영역에 누군가가 들어온다면, 그건 곧 아군이기보다는, 적군일 가능성이 십 할이라고 생각하는 마음 때문에, 어느 누구도 화산과 청성장문인의 말에 반박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여러 장문들 말을 내가 모르는 것이 아니라오, 하지만 지금은 혈마가 준동한 시기 아니오, 그리고 그 하오문의 적혈마도는 그 혈마를 유일하게 저지하려 했던 사람이오. 그런 사람을 어찌 입성시키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이오. 우리는 그의 말도 들어봐야, 혈마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지 않겠소?”
“흥, 공동의 조장문인은 모르는 소리 하지 마시오, 나는 검후가 보낸 서찰이 전부 맞는다고 확신할 수 없소이다. 여기에는 분명히 적혈마도의 활동부분이 뻥튀기되어 있을 것이라고 장담하오.”
“지금 화산 육장문은 적혈비도 자체를 부인하는 것이오?”
“커...험..! 내 눈으로 안 봤으니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오.”
“아니...그가 식인광마를 처단했다는 소리도 듣지 못하였소?”
“흥, 식인광마? 운이 좋았겠지....아...참,,, 오늘 아침에 들리는 소리에, 그 자리에 마침 개왕이 있었다는 소리도 들리더군요, 어쩌면 개왕의 도움이 있었는지도 모르지요.”
“아니...개왕이 왜 그를 도와준다는 말이오?”
“흥, 내가 알겠소, 아님, 그자가 어떻게 식인광마를 한칼에 베어 넘길 수가 있겠소?”
“육장문은 검후 이장문도 못 믿는 것이오?”
“흥, 아까 말하지 않았소. 난 아무래도 그자의 도움을 받은 이 장문이, 그자를 추켜세웠을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이오.”
“..........?”
복마일검 조소섭이 육대본의 말에 할 말이 궁색해져서 할 말을 찾지 못했다.
-덜컹.....!
이때 잠시 이어지던 침묵에 깨지면서, 문사건을 쓴 장년인이 안으로 걸어 들어온다.
그는 하늘색 문사 복을 입고 있었는데, 두 눈에 반짝이는 신비한 기운은, 뭇사람들을 압도하는 기이한 빛을 띠고 있었다.
따뜻한 미소가 얼굴전체에 떠오르면서 그는 대 학이 그려진 섭선을 펼치며 말했다.
“여기 모두 모여 계셨군요. 무슨 재미있는 대화를 하시기에 밖에까지 생생하게 들려온답니까? 소생도 한자리 낄 수 있을까요?”
“오오...! 마침 문성께서 오시는구만, 잘 오셨소, 그렇지 않아도 아침에 내가 잠시 이야기했던 그 사안 때문에 그러는 게 아니겠소.”
“허허...화산의 육장문인은 그 일이 내내 신경에 거슬리나보오, 또 그이야기를 하셨구려.....!”
“왜, 아니겠소, 이는 무림맹의 권위와 관계있는 일이오, 그러니 그냥 넘길 수 없지요. 그렇지 않소! 여러분!”
“맞소! 우리 청성파도 그렇게 생각하오.”
“맞소, 우리 점창도 마찬 가지오.”
천하문성 제갈성곡 무림맹의 실질적인 총 군사로서, 모든 일을 도맡아하고 있는 그는 지금 별반 표정 없는 얼굴로 사람들을 둘러본다.
“자자...그만하시오, 적혈마도가 이 자리에 있는 것도 아닌데 너무하잖소, 맹에서는 이미 그에게 꼭 무림대회에 참석해달라고, 전언까지 보낸 상태란 말이오.”
그의 말에 청성의 장문인인 운학철이, 노기담긴 얼굴로 제갈성곡을 향해 큰소리로 말한다.
“문상, 그런 일을 우리에게 한마디도 상의하지 않고 내보낸 조치는 너무한 것 아니오?”
“이것 보시오 운학철 장문인, 그럼 이 문상이 장문인들에게 재가를 받고, 명을 내려야 한단 말이오? 정말 그렇게 생각하시오?”
운학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제갈성곡의 눈에서 불길이 쏟아졌다.
생전가야 큰소리한번 낸 적이 없었던, 그의 입에서 이렇게 노한소리가 터져 나온 것은, 극히 이례적이라 할 수 있었다.
순간, 실내가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잠시 시간이 흐른 뒤에 표정을 고친, 제걸성곡이 포권을 하면서 입을 열었다.
“커...험...! 이거 본의 아니게 큰소리가 나왔소, 용서들 하시구려. 자, 좋습니다, 그럼 제가 어떻게 해드리면 되겠습니까?”
“.............?”
“...........?”
서로 눈치들을 보느라, 모두가 대답을 못하고 있다.
제갈성곡의 입이 다시 열렸다.
“이왕 나온 말이니 허심탄회하게 말들 해보세요, 그리고 이 문제는 여기서 매듭을 지읍시다.”
“좋소, 그럼 우리는 그를 맹에 입성하지 못하도록 막아야겠소. 군사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결의에 찬 육대본의 말에 제갈성곡은 빙긋 웃으면서 말한다.
“알았어요, 그럼 그렇게 해보시오. 단, 이건 무림맹의 공통된 행사가 아니라는 점은 분명히 해야겠소.”
“..........?”
“왜? 그럼 된 것 아니오?”
모두가 제갈곡성의 말에 답을 하지 못한다.
무슨 결심이라도 선 것인지, 육대본이 눈을 빛내면서 입을 열었다.
“그럼 군사께 청원할 것이 하나가 있소, 아니 부탁이라고 해둡시다. 이건 꼭 들어주시오.”
“육장문인, 말씀해보시오, 소생이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 해드리겠소.”
“감사하오. 다름이 아니고, 만겁뢰에 갇혀있는 귀면염라하고 지옥귀왕, 둘만 내어주시오?”
“헛.....!”
“앗.....!”
순간 실내에 경악성과 대경실색한 사람들의 모든 시선이 육대본에게 쏠렸다.
“이런 말까지는 좀 그랬는데.....육 장문인....미.쳤.군.요....아니 정파의 지존이란분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실 수 있는 것이오.”
제갈성곡이 어이가 없다는 투로 육대본을 기이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면서도, 육대본의 굳은 의지는 변하지 않았다.
“우리가 그자의 앞에 직접 나설 수는 없는 일 아니오, 그래서 그러는 것이고, 두 마두들의 후사는 우리 오파가 책임지고 원위치로 돌려놓겠소.”
“허허.....나...참, 그래, 삼십년 만에 세상구경을 하는, 두 마두들을 이 세상 밖으로 풀어놓고, 그들을 또 어떻게 원위치 한다는 것이오?”
“우리 오파의 정예들이 마두들을 멀찌감치 뒤따르다가, 그들이 적혈마도 놈을 제거하면, 그때 우리가 마두들을 사냥 할 것이오.”
“...........?”
실내에 또 다시 찾아온 적막 같은 침묵은 끝내, 제갈성곡의 실소가 터짐으로써 끝났다.
“당신들......정말.....대책이 없구료, 좋소, 뭐 소생이 끝까지 반대를 한다 해도, 어떻게든지 실행에 옮길 사람들이니 긴말은 않겠소, 이건 모두 그대들 오파의 주관으로 일어나는 일이오. 책임질 수 있소이까?”
“책임지겠소.”
“그렇소.”
“맞소...”
화산, 점창, 청성파 장문인들이 손을 들면서 찬성을 표했다.
하지만 공동파 조소섭과 아미파 대정신니는 대답을 하지 않고 있었다.
지금껏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던 아미파 대정신니가 오래 만에 처음으로 입을 연다.
“본 아미는 거기에서 빼주세요. 그럼 일어나겠어요.”
“우리 공동파도 빠지오, 그러니 세분이서 도모해보시구려, 나도 가오.”
“이.....잇...!”
“저....저사람들이.....!”
두 사람이 몸을 일으켜서 나가버리고, 방안에 있던 화산, 청성, 점창장문인들은 노기를 토해낸다.
제갈성곡은 의미 있는 웃음을 지으며 그들을 바라본다.
“자, 세분, 그래도 하시겠소?”
“하....하겠소....!”
육대본이 힘겹게 말을 이었다.
“분명히 책임소재는 여러분들에게 있는 것이오?”
".............?"
“알겠소, 그럼 군사실로 갑시다. 이 문제는 전대 마두의 출옥이 연관되어 있으니, 아무래도 문서를 만들어 수결을 하도록 합시다.”
“...........?”
“.........?”
제갈성곡은 그들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몸을 돌려 방을 나간다.
세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내키지 않는 발걸음으로 그의 뒤를 따른다.
앞서가는 제갈성곡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떠오른다.
무림맹의 음모가 익어가는 한 낮이다.
***
“하림아,”
“말씀하시죠.”
“비무 말이다.”
“예, 며칠 동안 쉬었는데, 지금 할까요?”
“그래도 되는데 지금 정세가 이상하게 돌아가는구나.”
철탑같은 팽도림은 하림의 뒤에 병풍처럼 서있었다.
그리고 항상 너스레가 좋았던 홍삼공이, 심각한 얼굴로 하림과 마주 앉아 있다.
하림은 홍삼공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자세를 고쳐 앉는다.
“할아버지 무슨 일 있나요? 혹시 혈마가......?”
“아니야, 혈마가 아니고 이번에는 신강이다.”
“신강?.....신강이면, 마교?”
“그래, 요 며칠 동안 그쪽 동향이 심히 좋지 않다는 구나.”
“왜요? 중원으로 쳐들어오기라도 온답니까?”
“폭발할 때가 되긴 했지, 그들도 오랫동안 참았으니, 내부적으로 쌓이기도 많이 쌓였을 것이다. 밖으로 폭발하지 못하면, 내부로라도 터져버리고 말 때가 됐단다.”
“큰일이군요. 내외우환이 겹치는 꼴이니......”
“아무래도 노부가 빨리 움직여서 정보를 좀 모아야 되겠다. 네 옆에 운령을 남겨 놓을 테니, 나하고 할 말이 있다면 그와 상의하여라.”
“그럼 무림맹에서 뵙겠군요.”
“그렇게 되겠지, 늦지 않도록 가마.”
“그럼 보중 하세요.”
-휘이이익......!
그는 대답대신 긴 휘파람을 남기고, 몸을 뽑아 올려 순식간에 사라져 갔다.
그의 사라져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하림은 갑자기 비여 버린 옆자리가 허전하다는 것을 느꼈다.
“흐음.......!”
잠시 생각에 잠겼던 그는 침상 밑에서 철궤를 꺼내 팽도림에게 건네준다.
“이곳 대륙전장이 있다면서......?”
“대륙전장 말입니까?”
“응....”
“네, 있습니다.”
“이거 가지고 가서 전표로 바꿔오게, 그럼 우리도 길을 떠나도록 하자고.”
“예, 다녀 오겠습.....그런데 무겁군요?”
“응, 좀 그럴 거야, 금자 육백 냥이니까......”
“네에...?”
“안 갈 거야?”
“헛....다녀오겠습니다. 주군!”
그가 번개같이 사라져가고 하림은 또다시 깊은 생각에 빠져 들었다.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연재시간이 좀 들쑥날쑥한 점 사과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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