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룡대(3).
천룡대(3).
“신기한 놈이라고....? 큭....!”
하림의 입가가 비틀어진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흑의 노인의 얼굴은 더욱 스산하게 변한다.
“순수한 내공같으면서도 전혀 내공답지 않고, 그렇다고 선기라 부르기도 뭐하고....도대체 네놈은 뭐하는 놈인고?”
하림은 여전히 입가의 조소를 풀지 않으면서 대꾸한다.
“흥..! 썩어 문드러져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노쇠한 육신을 깨워서 세상을 피바다로 만드는, 구린내가 진동하는 영감탱이보다 본 공자가 더 이상할까? 본 공자의 눈엔 노괴가 더 괴상해 보이는 거 알아?”
“갈.......! 감히 이 혈천검마의 눈앞에서 대놓고 모욕하는 말을 주절거리다니, 삼십년 만에 처음 보는 하루살이 같은 놈이로고.....목이 열개라도 되느냐! 네놈은 대체 누구냐?”
“후후.....혈천검마라......좋아, 말해주지.....아마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본 공자는 적혈마도라 부르지!”
하림이 짧게 대답하고 그를 바라보자, 세상이 무너져도 안색하나 변할 것 같지 않던 혈천검마의 눈에 얼핏 놀람의 감정이라는 것이 얼핏 떠오른다.
무림맹도 어쩌지 못했던 자신들을, 유일하게 껄끄럽게 한다는 자가 이 애송이였던 것이다.
그는 그동안 들려왔던 소문이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즉각 느꼈다.
예사로 보기에는 저 애송이의 내력이 아무래도 심히 꺼림직 한 것이기 때문이다.
한순간, 일신에 차가운 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드는 걸 느낀 그는, 유심히 하림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네.....네놈이 무림맹의 천룡대준가하는 그 천둥벌거숭이라던 적혈마도란 말이냐?”
“그래, 난 뭐, 그렇다 치고, 그런데...노괴는 백마방에서 서열이 어떻게 되지?”
“흥, 그깟 서열이 무슨 대수라고 알려하느냐. 하지만 네놈은 오늘 이 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만은 본좌가 확실하게 말해줄 수 있다.”
“하하....아무래도 언급을 회피하는 것을 보니 서열이 바닥인 모양이군, 꼴에 자존심이라 이건가?”
“갈...! 이놈, 본방은 서열보다 본신의 무공이 위아래를 정한다는 사실을 모르느냐?”
“하하...그러니까 그 백 놈 중에 노괴의 서열이 어떻게 되냐고 묻잖아!”
“뭣이....? 백...노옴...? 이....찢어죽일..놈이.....크음...좋다! 그렇게 궁금하면 본좌가 큰 인심을 쓰고 말해주지, 노부의 서열은 오십 위, 이곳에는 내아래 열 명과 같이 왔노라! 됐느냐?”
“하하...그러니까 오십 등 아래 육십 등까지 몰려 왔다는 말이구나, 쳇..! 거들먹거리 길래 대단한 대어인줄 알았더니, 이제 겨우 피라미는 면하는 노괴였다니.....”
“놈, 감....감히 노부를 놀리다니 네놈의 잡아 그 세치 혓바닥부터 잘라 낼 테다!”
하림이 실망했다는 듯 고개를 가로젓자, 혈천검마의 두 눈이 더 이상 찢어질 수없을 만큼 좌우로 갈라졌다.
한순간에 하림의 언변에 놀아났다는 생각이 든 혈천검마의 얼굴이 흉신악살처럼 구겨지며 급기야 온몸에서 살기를 뿜어낸다.
그의 치켜뜬 작은 눈은 붉은 혈광이 넘실거리는듯했고, 그 혈광은 곧 얼굴을 뒤덮고 온몸으로 번져가기 시작했다.
혈천검마가 검을 서서히 뽑아든다.
그의 모습을 바라보던 천룡대들도 검을 빼들고 하림에게 시선을 돌린다.
그의 명령만 떨어진다면 언제든지 뛰어들 태세를 갖춘 것이다.
일촉즉발의 기세가 장내를 뒤덮은 것은 순식간이었다.
양쪽모두 말로 표현이 안 될 만큼의 괴물들인지라, 그들이 발산하는 마기와 기세는 누구도 쉽게 접근하기 어려울 만큼, 극 강하고 가공한 것들이었다.
아마도 그사이로 날아드는 새라도 있다면, 허공중에 가루가 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질 만큼 말이다.
이제 스물한명의 천룡대는 옛날의 그 왜소했던 천룡대가 아니다.
가문이나 문파에서 왕따를 받던 그런 존재들이 아닌 것이다.
어느덧 삼년가까이 하림에게서 지옥 같은 훈련을 받았고, 내공과 일신의 경지가 범인으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일취월장해버렸다.
그저 하림에게 지옥의 관문에 던져져서, 살기위해 몸부림을 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살아남았다.
그러는 사이 자신들도 모르게 없었던 능력을 가지게 되었고, 몰랐던 자신들의 전인미답의 경지에 오르게 되고 만 것이다.
개개인 혼자만 하더라도, 이미 한문파의 지존과 비교해 전혀 꿀릴 것 없을 정도로 높은 경지를 이룬 그들이, 일거에 뿜어내는 기세는 가히 가공스럽기만 하다.
스스로 자신들의 경지를 가늠하지 못하고 있던 대원들은,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지만, 아까 마두들과의 대전에서 자신들의 경지가 이미 보통이 넘어선 것을 깨닫고, 마음속에 일어나는 격동을 애써 참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또다시 나타난 백마방의 마두들을 바라보는 그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뿜어져 나오는 투기를 억제하지 못하고 마음껏 발산하고 있는 중이다.
하림의 뒤에서 잠자코 서있는 것 같았던 젊은것들이, 갑자기 기세가 변하여 거친 투기를 발산하는 것을 보고 혈천검마는 흠칫했다.
‘헛.....! 어느 놈 하나 만만한 놈이 없구나. 이럴 수가.....어떻게 저것들이 모두 무림맹의 일개 졸개들이란 말인가?’
천룡대원들의 기세에 갑자기 떠오른 불길한 생각을 마음속에서 내몰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그의 입에서 거친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여기까지 온 이상 다시 돌아갈 수도 없는 일, 이미 그는 기호지세인 것이다.
“백마방 귀검대는 들어라! 눈앞에 서있는 자들은 우리의 철천지원수인 무림맹의 도당들이다.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모두 살을 발라버려라!”
“옛!”
“옛!”
-스르르르릉...,...!
“흐흐흐......!”
“히히히히......!”
하나같이 괴이한 살소를 뿌리는 자들이 일제히 신형을 뽑아 올리며 대원들을 향해 덮쳐온다.
“우히히히......죽여! 모두 죽여 버려!”
“죽이자....무림맹의 잡종들을...흐흐흐.....!”
전면을 까맣게 뒤덮으며 쏟아져 나오는 마두들을 바라보며 하림의 목소리가 스산하게 울려 퍼진다.
“일단, 검을 빼면 그들에게 자비란 사치다. 한 놈도 살려 두지 마!”
“존명!”
“존명!”
하림의 입에서 건조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그의 목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대원들은 이미 허공을 날고 있었다.
-챙....챙.....챙!
-슛...슛....!
-꽈르르르르...!
-꽈과과과...꽝...!
-꽈광!
순식간에 장내는 아수라장이 되어간다.
약 칠십여 명대 이십여 명, 외견상으로 볼 때는 하림 쪽이 절대적으로 불리해보였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장내를 주시하고 있는 혈천검마의 안색이 시시각각 수시로 변하고 있다.
절대적 우위를 예상했던 싸움이 막상 붙어보니, 생각과는 전혀 딴판으로 흐르고 있는 것이다.
불안한 마음에 쭉 찢어진 작은 눈까지 사정없이 표시 나게 떨리는 사이, 오로지 하림만이 팔짱을 끼고 여유 있게 관망하고 있을 따름이다.
“으악.....!”
“악.....!”
혈천검마의 안색이 붉어지기 시작한 것은, 첫 비명이 자신의 귀검대에서 터져 나오기 시작할 때였다.
“악....!”
한번 터지기 시작한 비명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연이어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
“이...익....! 이놈의 새끼들이.....!”
자신이 데리고 온 인원이 어느새 삼분의 일로 줄어든 것을 본 그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몸을 날리려 움찔거렸다.
“노괴....거기까지....! 한 발짝만 더 움직이면 목이 떨어져 나갈 거야!”
하림이다.
장내의 사정과는 무관한 듯 팔짱을 끼고 주시하고 있던 그가, 혈천검마의 움직임을 스산하게 막아선다.
혈천검마는 이마의 혈관이 불거질 대로 불거져, 하림을 잡아먹을 듯이 쏘아본다.
“이...이.....마빡에 피도 안 마른 새끼가, 어디서 되도 않는 말을 지껄이는 것이더냐!”
“후후.....! 혈천검마! 이제 똥줄이 타나보군.”
하림의 비웃음대로 혈천검마는 연속해서 터지는 수하들의 비명소리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대갈을 터트린다.
이쯤해서 자신이 뛰어들어 죽어가는 부하들을 막아야 되는 것이다.
더 이상 실기를 하게 된다면 그나마 필패하고 말 것이니....
더욱이 저 뺀질거리는 어린것을 만만히 볼 수없는 것이, 저 어린놈이 지니고 있는 내력이 아무래도 많이 수상쩍고 꺼림직 하다.
“이익...! 쌍 노무새끼! 우선은 네놈부터 죽여주마! 야아아아압....!”
인내의 극한 한계를 느낀 그의 거대한 신형이 야공을 덮으며 하림을 덮쳐온다.
그가 내뻗는 검에서 시퍼런 검기가 하얗게 빛살처럼 가닥가닥 뻗어 나온다.
하림의 입이 좌우로 벌어지며 그사이로 박속같은 치아가 살짝 드러난다.
-츄리리리릿...!
-파바바박...!
순식간에 하공을 덮는 검기와 검풍이 일견 보기에 하림을 움직일 수 없도록 사방을 옥죄인다.
“천(天)!”
매서운 검기에 도저히 꼼짝할 수 없을 것 같았던 하림의 입에서, 노갈이 터져 나오며 그의 신형이 느긋하게 움직인다.
그것도 딱 한걸음.
“상(上)!”
폭발적으로 그의 전신을 에워쌓으며 덮쳐오는 마기 섞인 검기들을, 모두 등 쪽으로 흘러 보내며 두 번째 발걸음을 떼었다.
그의 검이 영활한 뱀처럼 느긋하게 야공을 가르며 유영한다.
흡사 가벼운 검무라도 추는 것처럼 살기하나 묻어나지 않는다.
언뜻 비릿한 미소까지 머금은 그의 입가에 더해진 살소가, 스쳐지나가는 혈천검마의 얼굴 위를 훑으며 지나간다.
-츄리리리릿! 츄릿....!
“천(天)!”
시라도 읊듯 낭랑하게 외치는 하림의 목소리가 장내를 청랑하게 울린다.
상황이 상황인데도 어쩐지 느릿하게 들리는 짧은 그의 목소리에는, 기이하게 모두가 싸우다말고 손을 멈추며 고개를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아아.....!”
“아........!”
-쑤아아악....!
모두의 시선을 빼앗기고 그들의 입에서는 너나할 것 없이 이구동성으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스쳐지나가는 두 사람의 절대자의 동작이, 마치 스러져가는 붉은 황혼의 마지막모습을 보는 것처럼 간결하면서도 황홀하게 아름다웠던 것이다.
그의 신형이 세 걸음 딱 걸었을 때, 이미 그의 앞에는 혈천검마의 모습이 없었다.
천공으로 검을 뻗고 있는 하림.
그를 지나쳐서 두 손으로 검을 내려 긋고 있는 혈천검마.
얼음처럼 굳어진 두 사람 사이에는 기이한 정적이 맴돌았다.
-휘이이이잉......!
그사이로 어디선가 불어오는 찬바람이 두 사람의 머리를 살짝 흩날린다.
그 여파였을까?
누군가의 입에서 억눌린 듯한 기이한 신음이 새나오고, 뒤이어 둥근 물체하나가 바닥으로 떨어져 나뒹군다.
“끄륵.......!”
-떼그르르르 .......텅!
“.............!”
“...............?”
순식간에 장내가 일순 조용해졌다.
하림과 혈천검마가 검을 날리는 것을 알아챈 이들이, 암암리에 촉각을 곤두새우고 있다가, 너무도 허무하게 끝나버린 결과에, 아연실색하여 할 말들을 잃은 것이다.
단, 세 걸음 만에 사십 년 전 강호를 떠들썩하게 위진 했던 혈천검마의 머리를 베어버린 것이었다.
이 믿을 수없는 상황에 백마방 인물들의 얼굴에, 각기 당혹과 당황이 한꺼번에 뒤섞여 곧이어 그것은 큰 혼란을 만들어 내었다.
“검마께서 당했다. 모두 후퇴해라!”
“이런.......!”
그들의 심한 동요는 손발이 어지럽게 허둥거렸고, 그것은 그들의 생명을 끝마치는 크나큰 실수를 맞이하게 된다.
무더기로 쓰러져가는 백마방 인물들은 심한 공포감을 느끼며 이제는 아예 줄행랑을 치기 시작한다.
이 판국에 서열 오십 몇 위 최면이 무슨 대수겠는가?
우선은 어깨위에 달려있는 목을 건사하는 것이 필사의 생로인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맞는 천룡대들이 누구던가?
절대적인 하림의 입에서 필살의 명령이 떨어진 상태이다.
무너지기 시작한 마두들의 목숨을 절대 불쌍히 여길 이는 여기 아무도 없다.
그나마 열세였던 싸움이 이제는 쉽게 종말을 향해 달려간다.
“아아아악....!”
“악...!”
많은 인원들을 상대하던 천룡대원들이었지만, 비교적 여유롭게 움직이던 그들이었다.
하지만 이제 도망가는 적을 하나도 놓치지 않기 위하여 동분서주하며 바삐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한명이라도 놓칠 경우에는 저 꼬장꼬장한 주군에게 은근히 갈굼이라도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장내에 연이어 아비규환의 비명들이 터져 나온다.
-뾰로로로롱....!
이때 야공에서 청명하게 낮은 소리를 내며, 금아가 하림의 어깨에 내려앉아 귀불에 부리를 비빈다.
금아는 장내의 상황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듯, 오직 하림의 귓가에 연신 재잘거릴 뿐이다.
(까악....어린주인아, 우리 야식먹자! 움직였으니 야식 먹어야지.....짹....짹.....!)
- 작가의말
성원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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