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방으로....
백마방으로....
하림은 그런 당왕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윽고 입을 연다.
“당왕어르신, 혹시 맥궁이라고 아시지요?”
“맥궁...?”
“예, 혹은 관(官)에서는 등격궁이라고도 하지요.”
“등격궁....? 아....! 전쟁에서 병사들이 쓰는 그 등궁을 말하는군.”
당왕은 하림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인다.
“아마 그럴 것 입니다. 어르신께서는 그 등격궁을 크기를 줄이고 팔목에 차거나 한손으로 쉽게 조작할 수 있게 개조를 하세요.”
“아니..? 그 큰 등격궁을 말인가?”
하림의 말에 당왕은 놀란 눈으로 올려다본다.
본시 등격궁이라 하는 것은 크기도 컸지만, 당기는 시위도 보통 힘으로는 힘들 정도로 강한 활이었다.
그래서 병사들은 전쟁에 나가서 두 사람이 한조로 편성되어, 앞사람의 등에 거궁을 짊어지게 하고, 한사람은 뒤에서 굵은 살을 걸어 시위를 두 손으로 당긴 다음, 쏘아내지 않던가?
물론 그 위력은 웬만한 갑옷은 그냥 관통해 지나갈 정도로 위력적임을 말해 무엇 하리.
“어르신, 줄이는 것이 그것뿐만 아닙니다.”
“..........?”
“우선 들고 계시는 그 광폭천뢰구를 절반의 크기로 줄여서, 화살촉으로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 주세요, 물론 크기를 줄였다고 위력이 떨어지면 안 되겠지요.”
“끄응......! 말도 안 되는......!”
하림의 말에 당왕과 당독호가 긴 신음을 토한다.
“이보게, 장문주, 그것이 어디 말처럼 쉽게 되겠는가, 문주의 생각대로 정말 가능할까?”
“어르신, 물론 시행착오가 좀 있겠지만 전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으음...문주는 정말로 실현가능성이 있다고 믿고 있군....”
“예, 어르신, 저는 광폭천뢰구를 단 며칠사이에 만들어낸, 당가의 장인들 솜씨를 단단히 믿고 있지요.”
“크음.....!”
“아마도 장인들이 각고의 고심 끝에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혹시 각궁에 대해서 문주가 알고 있는 또 다른 생각이 있다면 더 털어 놓으시게.”
“음.....일단, 한사람이 쉽게 들고 다니면서 위력은 커다란 등격궁 못지않게 강해야 한다는 것 정도밖에, 우선은 생각나는 것이 없네요, 어르신.”
“흠......알겠네. 만약에 그것이 완성된다면 혈강시들에게 먹힐 수 있겠는가?”
“생각 컨데 웬만한 고수도 함부로 대할 수 없을 만큼, 당문의 각궁에 공포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당문의 각궁...?”
“하하....당연히 혼자 쏘아낼 수 있으니 각궁이 되겠지요.”
“오.....! 좋군, 만약에 문주가 말한 그대로 만들 수만 있다면, 앞으로 당가는 백 명의 궁수대만 양성해도, 웬만해서는 어디 가서 고개를 수그리지 않아도 되겠군.”
모처럼 당왕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오르기 시작한다.
하림은 그런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마주 미소 지었다.
“아마도요, 내공까지 겸비해서 쏘아내는 그 각궁의 화살은 아마도 못 부술 것이 없을 것입니다. 당문에 누구도 함부로 할 수없는 공포의 전단이 탄생하는 것이지요.”
“아.....! 고맙네, 고마워. 문주는 정말 우리 당가의 귀인일세.”
당왕이 하림의 손을 잡고 말하다가 끝내 두 손을 모아 포권을 한다.
“하하....어르신, 이 모든 것이 당가의 저력이 없었다면 이루어지겠습니까. 그러니 이것은 당가의 실력이라 봅니다. 저는....하하하!”
“이사람.....장문주! 끝까지 노부를 감탄하게 만들고 마는구려....!”
“고맙소, 장문주....! 아버님, 말씀대로 장문주는 우리 당문의 큰 귀인이시오. 앞으로 당가는 장문주가 가는 하오문의 길에 전력을 다해 견마지로를 아끼지 않겠소.”
당왕과 달리 당독호의 눈에 경외의 빛이 한없이 일렁거린다.
당왕과 당독호는 이미 강호에서 잔뼈가 굵어, 이제는 한 시대를 풍미했다는 평가를 받는 명숙들이다.
그런 그들이 자신들의 손자뻘도 안 되는 하림에게 고개 숙이기를 주저 하지 않는다.
어찌되었던 하림에게 그들은 목숨의 빛이 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
하림은 그들을 바라보며 읍을 한다.
“그렇게 생각해주시니 감사드려요, 그리고 이제 작별인사를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작별..이라니...벌써 갈 텐가?”
“여기 총사님과 같이 백마방을 치기로 했습니다, 어르신!”
“아...! 백마방...!”
“예, 이미 들으셨는지 몰라도 강호가 장진도로 뒤숭숭할 때, 백마방이라도 정리를 해야지요.”
“허어...그런데 우리 당가가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겠군.”
“하하.....어르신께서는 얼른 각궁을 완성하셔야지요. 그것은 백마방이 아닌 혈마를 상대로 쏘아져야 할 것입니다.”
하림의 말에 당왕이 어금니를 강하게 깨물었다.
“알았네, 불철주야 식음을 전폐해서라도 이른 시간에 꼭 만들어 내보이겠네, 장문주.”
하림의 그의 굳은 의지가 투영되는 얼굴을 마주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셔야지요, 저는 당가에 거는 기대가 무척 크답니다. 어르신.”
하림의 말이 끝나자, 제갈성곡이 앞으로 나서며 포권을 한다.
“당왕님, 당문주님! 소생도 여기서 작별을 하겠습니다.”
“아....! 총사! 고생이 많구려! 그럼 개왕 늙은이하고 검후도 도착했다하던데 그들은 어디 갔소, 보이지 않는구려. 그들도 함께 가는 것이오?”
“아.....모르셨군요. 그 두 분은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자파로 돌아가셨습니다.”
“이잉....! 그런 일이.....지하에만 박혀 있었더니 이거 소식이 깜깜 이군.”
곤혹스런 표정을 짓는 당왕을 바라보고 하림은 제갈성곡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총사님, 백마방이 있는 감숙성 난주까지는 어림잡아 이틀이면 가겠군요.”
“아마도 그러겠지요.”
“지금 우리 하오문의 정보에는 혈마의 흔적이 잡히지 않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맹의 정보에는 그들의 소식이 있나요?”
하림의 말에 제갈성곡의 얼굴이 모호해진다.
“흠.....사실 본맹의 정보통에서도 혈마의 소식은 없어요, 장문주.”
“이상 하군요, 그들이 이렇게 철저하게 숨을 수 있다니.....”
“좀 꺼림직 합니다.”
“장문주, 아무래도 좀 서둘러야겠어요.”
“그래야 될 것 같군요,”
하림과 제갈성곡을 몸을 돌려 당왕과 당독호를 향해 포권을 한다.
“갈 길이 급박하니 여기서 작별인사를 드리지요.”
“두 분, 보중하세요.”
두 사람의 포권을 받고 당왕도 섭섭한 표정을 지으며 마주 손을 들어 답한다.
“멀리가지 않겠네, 노부도 각궁이 완성되는 대로 장문주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겠네. 그동안 보중하시게.”
“본 당가가 정리되는 대로 정예들을 이끌고 우리도 따라가겠소.”
당독호도 손을 들어 예를 취했다.
“그럼.....!”
짧게 대답하며 하림이 몸을 돌리자, 어느새 운령이 순백색의 설총마를 끌고 다가온다.
“주공, 오르시지요.”
“고마워. 모두 가지!”
-따각, 따각.....!
여러 마리의 말이 당가의 숲을 빠져나와 멀어져가기 시작한다.
뒤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당왕의 눈에 아주 진한 아쉬움이 묻어난다.
“장문주는 정말로 신룡과 같구나. 무공과 귀계가 신인의 경지야.”
“아버님, 그러니 무림맹의 총사까지 그의 말에 따르지 않겠습니까?”
“너도 그렇게 보았느냐?”
“예, 아버님! 몇 년 전부터 장문주의 등장은 남달랐었습니다.”
“아마도 당금 강호는 하오문이 크게 위세를 떨칠 것 같구나. 그렇지 않겠느냐?”
“그렀습니다, 하찮은 배수들이나 천한 자들이라고만 생각했던 자들이, 저런 신룡을 품고 있었다니요, 그 사실이 정말 믿기 힘들 따름이죠.”
“천한 자들이라.......! 하긴 나조차 그들을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왔었구나.....허허.....!”
“...........?”
이미 멀어져서 보이지 않는 하림의 궤적을 쫓는, 두 사람의 얼굴에는 여러 가지 미묘한 감정이 섞여, 본인들조차 이런 감정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헤아리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녕 아깝구나! 저런 자를 우리당가가 품을 수만 있다면, 태산북두라는 소림을 넘어서는 것도 결코 허언이 아닐 진데.......허어......!”
“그러게 말입니다, 장문주가 좀 더 당가에 머물며 꽃다운 여식들에게 눈이라도 돌려주기를 은근히 바랬었는데, 모두 수포로 돌아가 버리고 만 것 같습니다. 아버님.”
“허허허......! 그랬느냐? 선불 맞은 곰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있기에 속으로 툴툴대고 있었더니, 내가 꼬리 여섯 개 달린 여우를 잘못 보았나보구나.”
“하하....여우요? 제가요....?”
호탕하게 웃는 당독호의 시선을 넘어 이미 사라져버린 하림의 뒤라도 보듯이, 당왕의 눈에는 아직도 미련이 걷히지 않고 있었다.
“아...! 그래도 저런 신룡을 이대로 놓치다니.......방법이 없으려나......!”
당왕의 긴 탄식이 숲속의 공기를 무겁게 가라 앉혔다.
***
-두두두두두......!
-두두두두두두.....!
수백의 인마가 먹구름 같은 먼지구름을 만들어내며 들판을 달리고 있다.
감숙으로 들어서는 관도를 지나 난주 쪽을 향하여, 관도를 무시하고, 일직선으로 없는 길을 만들어내며 달리는 모습은, 하늘조차 뒤엎을 폭풍 같은 기세를 품고 있다.
-두두두두두두......!
인마가 지나가고 먼지가 가라앉았을 때, 관도 외에 또 다른 넓은 길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 세가 얼마나 흉험했는지 사천을 떠나 감숙을 향하여 맹렬하게 달리는 그들을, 관에서조차 유심히 지켜 볼 정도로 그 기세는 한마디로 몰아치는 폭풍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백여기 가까운 인마가 속도를 줄이지 않고 내달리는 모습은, 장관을 떠나 곧 전란이라도 일으킬 것 같은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관의 주목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들은, 성내를 거치지 않고 성을 멀찍이 돌아 무조건 감숙성을 넘었다.
그리고 들어선 난주.
그들은 미리 보내놓은 전령을 통해 백마방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 들어간다.
백마방은 기이하게도 사람이 많은 성시가 아닌, 숲이 우거진 산중에 자리 잡고 있었다.
숲길을 따라 한참을 들어가는 곳으로 거대한 장원이 자리 잡고 있다.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 장원은 그 흔한 문지기조차 보이지 않는다.
다만, 이곳이 백마방이 틀림없다는 근거는 굳게 닫힌 정문위에 달려 있는 현판을 보고 알 수 있었다.
수 장 밖이지만 수백의 인마가 멈추고 먼지가 가라앉을 때까지도 백마방의 전각은 고요 그 자체였다.
“흐음......이상하군...!”
낮게 뇌까리는 하림의 곁으로 제갈성곡이 다가온다.
“괴이하네, 인기척이 느껴지지가 않는 것 같소.”
“그러네요, 어쩌면 한발 늦었는지도 모르지요.”
“허어...늦었다라.....이런.......! 곤혹스럽네......”
하림이 말에서 땅으로 내려선다.
그의 행동에 모두가 마상에서 내려온다.
하림의 곁으로 팽도림이 다가온다.
“주공, 인기척이 없습니다, 들어가 볼까요?”
“아니, 내가 가보도록하지.”
“제가 모시겠습니다. 주공!”
하림이 앞장서고 팽도림이 그의 옆을 따라 움직인다.
잠시 걸음을 옮기던 하림이 빠르게 허공으로 솟아올라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의 옆에 팽도림 또한 그의 뒤를 이어 연기처럼 사라진다.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자들이 입을 벌리며 경탄의 기색을 띤다.
“아아...!”
“아.....대단하다, 신묘한 신법.....!”
그러나 다음 순간, 그들은 자신들의 눈이 더 찢어지지 않을까 염려스러울 정도로 치켜 뜰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 앞에 있던 나머지 이십일웅의 신형도 한순간이 홀연히 사라져버리고,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닌가?
- 작가의말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생업으로 인하여 연재가 늦어지고 있습니다.
이점 많이 이해 해주시고 봐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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