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룡대(1).
천룡대(1).
귀주성 (貴州省)
귀양(貴陽)은 오래전에 귀방(鬼方)으로 불렀던 곳이다.
그러나 뜻이 좋지 않다하여 다시 귀양(貴陽)으로 바뀐 곳이기도 하다.
귀주성의 중심 성도이며 그렇다보니 각성과 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고 있는 곳이다.
이곳은 하늘을 찌를 것 같은 높은 고도를 가지고 있는 산악지대가 많고, 동으로 내려가면 점차 낮아져, 그다지 높지 않은 구릉지대들이 무수한 곳이기도 하다.
또한 수많은 부족들이 존재하고 그들은 각기 다른 색채의 성격들을 지니고 있어, 분쟁 또한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조금이라도 발전한 문물을 받아들여 타부족의 우위를 점하기위해서, 너도나도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머리가 좀 깨어 있는 자들은, 서둘러 귀양으로 몰려와 터를 잡고 있는 실정이라,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 수밖에 없는 곳이다.
그중에서도 이런 귀양에서 제일의 부(富)를 축척하고, 귀주 제일 상가로 우뚝 서있는 금파상단은 약 오십년부터 이곳에 터를 잡고, 금광사업에 뛰어들어 많은 재물을 쓸어 모으게 된 곳이다.
금파상단의 상단주인 금수창은 상계에서 입지적적인 인물로, 맨몸으로 일으켜 세운 금파상단이, 중원상가서열 십위에 당당히 올라서 세인들을 경악하게 만들었었다.
귀양의 중심가 부촌으로 통하는 관도 끝에 자금성의 구중궁궐만은 못하여도, 그 이하는 할 것 같은 거대한 전각들로 이루어진 장원이 나타난다.
마치 성을 쌓은 듯 지어진 높은 담과 거대한 정문에는, 기세 좋은 무사들까지 배치가 되어 있어 이곳이 상가인지 무림방파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다만 정문에 붙어있는 커다란 현판과 많은 인마가 들고 나는 것을 보고, 이곳이 바로 거상인 금파상단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해가 서쪽으로 넘어가는 시각인 저녁은 귀주성 특성상 지리적으로 빨리 찾아든다.
귀주성은 높은 고도 차이에서 오는 하루는 다른 성에 비해 해가 짧은 편에 속했다.
금방 찾아온 칠흑 같은 어둠에 어느덧 정문에 서있는 수문위사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커다란 횃불들만 일렁거리기 시작할 때, 돌연 서쪽 산 등성이쪽에서 흑영들이 귀신같은 몸놀림으로 금파산장을 향해 날아든다.
-휘이익...!
-휙...휙!
밤하늘을 뒤덮은 듯 흑영들의 모습은 소리 없이 나타나서 높은 담장을 넘어 금파상단 안으로 번개같이 사라졌다.
그리고 얼마간의 정적이 계속 되었을까.
잠시 후, 전각 곳곳에서 화광이 충전하며, 처절한 비명소리가 밤하늘을 뒤덮기 시작했다.
“아아아악...!”
“아악.....!”
“불이다!”
“적이 침입했다.”
“사람 살려......!”
순식간에 조용하던 금파상단은 아비규환의 지옥으로 변해간다.
“흐흐흐흐......본 백마방에 협조하지 않는 자들의 말로이다. 모두 잔인하게 죽여서 만천하에 본방의 무서움을 알려라!”
“흐흐흐흐.....!”
“흐흐흐흐.....!”
처절한 비명소리와 뒤를 이어 어김없이 들려오는 괴소는 소름끼치도록 사이하다.
흡사 유부의 사자들의 진혼곡이련가.
대항을 하거나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가 초반에 조금 나는 듯 했지만, 이제 그 소리마저 끊긴지 꽤 지났다.,
이때가 흑영들이 잠입하고 난 두식경이 흘러 갈 때였다.
이제 괴소 소리마저 잠잠해져 가고, 전각들을 태우는 화광은 이제 걷잡을 수 없는 불길이 되어, 수많은 전각들을 전소시키고 있었다.
이때였다.
-두두두두두.......!
-두두두두두.........!
지축을 울리는 말발굽소리가 무너져가는 금파상단 정문을 향해서 거침없이 다가오고 있었다.
-두두두두.......!
“워....!”
“워워......!”
-쿵!
급하게 말을 세우며 나타난 흑의무복을 입은 자들, 그들은 일관되게 똑같은 흑의 무복에 암적색의 피풍의까지 걸치고, 귀하다는 명마인 눈보다 새하얀 설총마까지 타고 있었다.
다만 그들의 가운데 있는 자는 아주 옛 된 얼굴을 하고 있는 영준한 얼굴의 청년이었는데, 그는 백의 무복을 입고 금방이라도 불타오를 것 같은 새빨간 적색의 말을 타고 있었다.
아마도 일견 보기에 천하에 귀한 명마로 알려진 한혈보마로 보인다.
한혈보마는 땀을 흘리면 피처럼 붉은색의 땀을 흘린다는 그 명마로, 순백색의 설총마와 더불어 하루에 천리를 간다하는 천리마들이이기도하다.
재화가 있어도 쉽게 구하기 힘든 명마들을 타고 나타난 남녀들은 과연 누구일까.
그들은 바로 해월장으로 가고 있는 하림 일행들이었던 것이다.
이들 스물두명이 흘리고 있는 기세는 엄청난 위압감을 주고 있었다.
아마도 다른 무인들이 그곳에서 정면으로 마주보고 있었다면, 아마도 그들은 눈 하나 마주치지 못하고 두려움에 떨어야할 그런 기세를 흘리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한 사람 한 사람이 흘려내는 기세는 일파종사급의 기세에 버금간다.
그것도 한 두 사람이 아닌 무려 스물두명이 내뿜는 위압감은, 과연 중원에서 받아낼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활활 불타는 금파상단을 주시하던 하림이 냉막하게 입을 열었다.
“도림. 상황을 파악하고 백마방 놈들이거든 한 놈도 놓치지 말고 죽여라!”
“존명!”
이내 짧게 대답한 팽도림의 신형이 마상에서 사라진다.
예전 같으면 상상이 가지 않는 그의 모습이다.
사라졌던 팽도림의 신형이 금파상단의 담 위에 잠깐 어른거리다가 이내 모습을 감춘다.
그러나 몇 호흡 지나지 않아 긴 휘파람소리가 야공위로 울려 퍼진다.
-휘이이이익....!
이것은 미리 약속한 천룡대의 은어이다.
즉. 백마방이 맞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렇지......모두 인명부터 구출해, 단 한 놈도 놓치지 말라는 거 명심하구....!”
“존명!”
“존명!”
이내 준비를 하고 있던 대원들의 신형이 팽도림이 넘었던 담장을 넘어 사라진다.
하림은 그 뒤를 이어 전각의 제일 높은 곳을 향해 몸을 날린다.
그리고 이내 잠잠해져가던 금파상단에 또 다시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악.....!”
“웬 놈들이냐...!”
“아악.....!”
그러나 이번에는 비명소리자체가 아까 들렸던 비명소리와는 완전 틀렸다.
그리고 그 소리 뒤에는 어김없이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뒤따랐다.
“악....!”
“아악.....!”
혈광이 난무하는 가운데 어느새 넒은 광장에는 핏물이 흐르고 있다.
그 위를 날뛰는 흑영들과 거센 폭풍처럼 밀어붙이는 백영들의 모습은 노도와 같은 파도의 모습이다.
금파상단을 상대로 잔인한 살육을 벌였던 백마방의 마두들은, 뒤늦게 나타난 천룡대에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들과 부딪치는 자들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많은 초식을 겨룰 필요가 없었다.
천룡대가 지나는 곳에는 마두들의 저항이 극렬했지만 상대가 되지 못했다.
어쩌면 정파인으로써 잔인한 손속을 보여 주고 있었지만, 현장에 있는 누구도 그들이 잔인하다고 느끼지 못했다.
“어...어...디서 이런자들이.......!”
이번에 금파상단을 무너트리라는 명을 받고 움직인 자는 백마(百魔)중에 서열 칠십칠 위인 광폭마도 철장명이었다.
철장명은 오십 여명의 부하를 데리고 금파상단의 담을 넘어선 것이다.
그는 도저히 눈앞에 있는 자들과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몸을 빼기 시작했다.
“모두 피해라! 귀방한다!”
“으악.....!”
그러나 그의 명령에 당연히 들려와야 할 대답소리대신에 처철한 비명소리가 앞 다투어 들려온다.
“에잇....!”
부하들이 한 몸 빼지도 못할 정도로 궁지에 몰렸음을 안 것일까?
이미 상황이 기울어 졌음을 인지한 그는 한 치의 미련 없이 몸을 돌려 세운다.
그러나 이때, 그들에게 죽음을 맞을 뻔한 금파산장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날카로운 외침이 터져 나오는 것이다.
“앗...저자가 도망가려 한다. 상단의 무사들은 저놈을 포위해라.”
거의 황천길 앞에 까지 갔었던 금파상단의 사람들은 비록 삼십 여명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그들은 죽음 직전에 구세주처럼 나타난 흑영들이 흡사 저승의 악귀 같은 자들을 일거에 도륙하는 것을 보고 고마움에 앞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나같이 무공이 평범하지 않았고 흘리는 기세 또한 범상치 않다.
금파상단의 단주인 금수창은 이미 팔순을 바라보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세 명의 아들과 식솔들이 십여 명의 무사들에게 둘러싸여 몸을 피하려 하는 중이었다.
“명아....저분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겠느냐?”
그의 말에 옆에 있던 그의 큰아들인 금명운이 고개를 숙인다.
“아버님, 소자도 잘......”
“흐음...대단한 은공들이시다. 기세로 보아 범상치 않구나.”
이때 바로 그의 탄성이 끝나기도 전에, 현장을 살피던 그의 셋째아들의 입에서 폭갈이 터져 나온 것이다.
“앗...저자가 도망가려 한다. 상단의 무사들은 저놈을 포위해라.”
그리고 그는 몸을 사리지도 않고 검을 빼들고, 어디서 솟은 용기인지 광폭마도 철장명의 앞길을 막아선 것이다.
-챙.....!
“목숨을 버리는 한이 있어도 원수 놈, 네놈을 그냥 보낼 수 없다!”
“흐흐....감히 쥐새끼들이 본좌의 앞길을 막다니, 죽는 것이 소원이라면 들어줄 수밖에.”
-쒜에에에엑.......!
미쳐 신형을 가누기도 전에 금수창의 막내아들인 금수혁의 목으로, 광폭마도 철장명의 도가 맹렬하게 떨어져 내린다.
“아악.....수혁아....!”
“수혁아.....!”
노회한 금수창의 두 눈이 뒤집어질 것처럼 커진다.
철장명의 무정한 도가 금수혁의 목으로 떨어져 내리는 것을 본 그가, 아들들과 동시에 찢어질 것 같은 비명을 지른 것이다.
“느....늦었다......!”
금수혁 또한 갑자기 솟구쳐 떨어지는 철장명의 도를 보고, 이미 피하기에는 때가 늦었음을 인지하고 처연하게 신음을 터트린다.
그들이 익힌 무공의 경지라 해봐야 이제 고작 일류를 접어든 정도, 그 경지로 이런 갑작스런 대마두의 공세를 피하기란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다.
그가 살기를 포기하고 두 눈을 질끈 감는 그 순간.....!
-쑤와와와악!
-싹뚝.....!
-뎅그랑......!
철장명의 입가에 끈적거리는 살소가 어리고, 급기야 그의 도가 금수혁의 목에 닿을 때쯤, 난데없이 허공에서 불이 번쩍한다.
아니 무슨 아닌 밤중에 날벼락?
천둥번개가 몰려오는 것인가?
생뚱맞은 생각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도를 내려 긋는 철장명은, 자신의 의지와는 달리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자신의 머리가 땅위를 뒹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직도 상황을 깨닫지 못한 철장명은 시선을 돌려 자신의 애도를 들고 있는 거한을 본다.
‘앗...저것은.....?’
없다...당연히 있어야할 저자의 머리가 없다.
그렇다면....?
아악.......!
그제야 자신의 목이 잘린 것을 알고 비명을 질러야 하는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허공에서 떨어져 내리는 한 자루의 검이 유유히 허공을 돌며 뒤쪽으로 날아갔다.
“아아아....이기어검이다....!”
“이기어검이라니.....!”
“막내야, 살았구나...!”
금수창과 그의 아들들은 허공에서 계단을 내려오듯 한걸음씩 걸어 내려오는 백의 청년을 바라보며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다.
“허공답보....말로만 들어봤던 허공답보인가....?”
금수창의 노안에 격동으로 인한 탄성이 넘실거린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오늘저녁은 악운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늘에서 저런 천인을 내려 보내주신 것을 보면, 그는 아직도 자신의 운이 다하지 않았음을 깨닫고 천지신명에게 감사를 드린다.
검은 물감을 풀어 놓은 것 같은 묵아을 받아들고, 유유히 땅위로 내려서는 하림을 바라보면서, 금수창을 비롯한 살아있는 상단의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는다.
“은공, 은공의 덕분으로 오늘 이 질긴 목숨과 미천한 노부를 따르는 식솔들이 목숨을 건지게 되었습니다, 이화해와 같은 은공을 어찌 갚을 것인지 그저 이 늙은이의 노안에 눈물만 흘린 뿐이라오.”
“노인장, 일어나세요, 우리는 이런 인사를 받으려고 도운 것이 아닙니다. 강호인이라면 마땅히 곤경에 빠진 사람들을 도와야지요.”
“은공, 그저 백골난망이오, 은공의 귀중한 함자를 알려주면 평생 결초보은하고 살아가겠소.”
하림은 금수창을 일으켜 세우고 그의 아들들도 일어나라 재촉한다.
하림의 뒤로 어느새 대원들이 모여들어 병풍처럼 그를 둘러쌓다.
이미 현장에 백마방의 마두들은 단한명도 살아남지 못했다.
금파상단의 사람들에게 하림과 천룡대는 천외천의 사람들과 같았다.
사람으로 보이지 않고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천인으로 보여 지는 것이었다.
하나같이 영준하고 아름다운 용모의 젊은 남녀들.
그리고 그들이 보여주는 인세의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무위.
비록 상가의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무공과 거리가 그렇게 멀지는 않다.
즉, 잘하지는 못하지만 보는 눈 자체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천룡대가 뿜어내는 기세는 하늘에서 동서남북을 지킨다는 사천왕의 기세가 이럴까?
금파상단의 사람들은 하림과 천룡대원들을 우러러보며 자연스럽게 경배를 하기 시작한다.
난데없이 자신들을 향해 오체투지자세로 절을 하는 사람들을 보고, 할 말을 잃어버린 천룡대원들은 당혹해서 난감한 기색을 띄우면서도, 눈가에는 알 수없는 어떤 뿌듯함에 눈웃음이 새어 나온다.
- 작가의말
내일부터 삼일간 출장이 잡혔습니다.
이해부탁드리며 다녀와서 다시 달리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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