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왕(1)
<도왕(1)>
“난 여러분들의 청룡대주이기 이전에 하오문의 문주이다, 여러분들은 지금도 하오문이 모리배 잡배들이라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내가 있는 이 하오문은 틀리다. 단지 오랜 역사와는 달리 조사의 유명에 의해 활동을 일체 하지 않고 있었던 것뿐이다. 앞으로 나는 하오문이 가진 최대한의 장점들을 살려서 나만의 강호를 만들어갈 생각이다.”
“대주님, 그 장점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오.”
설소양의 물음에 하림이 빙긋 웃는다.
“하오문은 모르는 것이 없다.”
“예...?”
“모르는 게 없다는 것이 장점이라고....”
“아......!”
“이해가 쉽도록 내가 한 가지 보여주지. 검조장 들어와 봐..!”
-쓰르륵....!
하림의 말이 끝나기 전에 비호대 삼조 검안추가 천장에서 몸을 드러낸다.
그의 등장에 몇 사람의 입에서 나직한 탄성이 새어나온다.
“충...! 부르셨습니까, 문주님...!”
“사람이....충 같은 거 하지 말라니까.....!”
“.......버릇이 되서 그렇습니다....”
궁색한 검안추의 변명에 하림이 실소를 터트리고.
“일전에 공타주와 철상이를 죽인 자가 누구라고....?”
“아....! 금뢰옥에서 탈출한 전귀였습니다.”
“전귀....? 지금 그자는 어디에 있나..?”
“들어온 소식은 없지만 이 밤이 가기 전에 알아볼 수 있습니다.”
“좋아! 내일 아침에 듣도록 하지.”
“충.....!”
“아.....확!”
“헉....!”
-휘리릭.....!
하림이 주먹을 들어 올리자, 검안추의 두 눈이 왕방울만해지면서 허공으로 몸을 날려 사라져 버린다.
“씁......!”
허공에 빈 주먹질을 할 뻔했던 하림이 슬그머니 팔을 내리고 모두를 바라본다.
“보았지...? 이것이 하오문의 힘이다. 내가 원하면 뭐든 알아낼 수 있다. 우리에겐 중원 구석구석에서 활동하는 기녀들과 점원들이 있는 한, 이 거대한 중원도 우리의 손바닥 안이라 보면 된다.”
하림의 자신 있는 말에 모두가 공감을 하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인다.
하림의 말을 듣고 이제야 하오문의 실체를 어렴풋이 깨달은 대원들은 하림의 강한어조에 흠뻑 빠져들어 있었다.
강호인들은 대체로 강한 자를 동경한다.
그것이 나이가 어려도 배울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얼마든지 앞자리를 내어줄 수 있는 강자존의 철저한 세계이기 때문이다.
하림은 바라보는 이들의 눈빛은 바로 그것이었다.
***
팽도림이 하림에게 돌아온 것은 꼬박 사흘이나 흐른 뒤였다.
이마의 태양혈이 불룩한 것으로 봐서 꽤 높은 성취를 이루어 낸 것 같았다.
그는 하림을 보자마자 한쪽 무릎을 꿇으며 예를 취한다.
“주공, 은공에 감읍합니다,”
“일어나....왜들 이렇게 무릎 꿇는 것을 즐기는 거야.”
팽도림은 하림이 불편해 하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주저 없이 몸을 일으켜 세운다.
“그래, 성취는....?”
“다행히 주공께 실망을 주지 않을 정도는 된 것 같습니다.”
“그걸 로는 부족해, 밤낮을 가리지 말고 내가 알려준 도법을 십이 성까지 익히도록 해!”
“예, 주공.”
“그럼 얼마나 늘었는지 오랜만에 도림과 비무 한 번 해볼까?”
“아.....감사합니다, 주공....!”
하림이 집무실을 벗어나자 연무장에서 연마를 하고 있던 대원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여서 그를 맞는다.
하림이 지나가고 팽도림이 따르자 슬금슬금 눈치를 보던 대원들이 너도나도 우르르 몰려간다.
연무장 한가운데 서있는 하림이 뒤쪽을 바라보면서 나직이 입을 연다.
“운령....!”
“예...공자님...!”
하림의 먼전에 뚝 떨어져 내리는 운령, 그의 신법은 하오문 삼 조장 검안추보다 훨씬 매끄럽고 부드러웠다.
“오늘부로 천룡대원이야, 할아버지께 허락 얻었으니 그렇게 알고 있어. 아참...혹시 싫으면 얘기하고...?”
“정말이십니까?”
“그럼 이런 걸 왜 속일까? 싫어..?”
“헉...싫다니요, 모실 수 있게 되서 영광입니다. 공자...아니...대주님....”
“후훗...그러니 이제 몸 숨기고 지붕으로 다니지 말고 떳떳이 다니도록 해....”
“검은 옷 안 입어도 되겠죠?”
“그럼... 복장은 자유지..?”
“하하하....좋군요, 대주님, 죽기 전에 꼭 휜 옷 한 번 입어 보는 게 소원이었죠.”
“후훗....소원 한 번 소박하군....”
“감사합니다, 대주님.”
하림이 고개를 끄덕이고 팽도림을 바라본다.
“자, 시작할까?”
“예, 주공...”
팽도림이 거도를 뽑으면서 장내에는 숨 막히는 정적이 찾아든다.
하림도 적아를 서서히 빼들고 아래로 늘어트린다.
“주군, 갑니다.....야아압....!”
“...........!”
“유원벽력도......!”
-우르르르르릉!
팽도림의 말이 끝나자마자 하늘에서 난데없는 뇌성이 울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것들은 곧 번개를 동반하며 하림을 향해 쏟아져 내린다.
“좋군...아주 좋아...!”
하림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어린다.
-챙....챙....!
연신 불꽃이 작렬하면서 두개의 보도가 부딪친다.
팽도림의 공격은 예전과 다르게 묵직하면서도 부드러웠다.
하지만 익힌 지가 며칠 되지 않아 아직은 깊은 조예는 나오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하림은 팽도림의 자질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짧은 시간에 유원벽력도의 요의를 파악한 것이다.
“좋군...! 천생 무골이군.”
그는 환하게 미소 지으며 공세를 취하지 않고 받아 치는 데에 치중했다.
팽도림이 원하는 공격을 마음대로 퍼부어 보라는 듯이....
두 사람의 비무를 관전하는 대원들은, 보기보다 경지가 깊은 팽도림의 무위에 깜짝 놀라는 눈치다.
-우르르르릉....!
여전히 뇌성을 동반한 팽도림의 공격은 계속되고 있었고, 도끼리 부딪치는 소리까지 합세해서 무림맹 안에 쩌렁쩌렁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정도 소란스러움이 계속되는데 모든 이들의 시선을 모을 수밖에...
그중에서 특히 주목받을만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개왕과 밥을 먹다가 튀어나온 도왕이었다.
“저....저것이.....?”
그는 나오자마자 팽도림이 하림과 비무하고 있다는 것에 놀랐으나, 팽도림이 전개하는 도법을 보고 점점 두 눈이 커져가며 입을 떡 벌린다.
“분명 혼원벽력도이거늘......어찌 저런 변화가 가능하단 말인가?”
“팽가야, 왜 뭐가 이상한 거냐?”
“변....변했다. 팽가의 대표적인 도법이 변했단 말이다.”
“그으래...? 노개는 잘 모르겠는데.....?”
“우라질.....늙은 거지가 혼원벽력도를 어찌 알꼬...!”
“이...이런...늙은이 말하는 본새 보게나....”
“이건 아무래도 네놈 손자라던 저놈이 수상하다......!”
“하림이....?”
“시끄럽다, 네놈하고는 나중에 얘기하자....”
홍삼공을 향해 눈을 부라린 팽립은 팽도림이 휘두르는 도의 궤적에 온 신경을 곤두세워 바라본다.
그리고 가늘게 눈을 좁힌 그의 얼굴에 서서히 경악하는 안색이 떠오른다.
“저....저.......어떻게 저기서 저 궤적이 가능한 것인가?”
그는 입까지 크게 벌리고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몸을 띄워 올린다.
“멈춰라! 이놈들아....!”
비무를 하고 있는 중앙으로 뛰어내리는 팽립을 보고 팽도림과 하림이 황급하게 도를 거둔다.
“할...할아버님께서......?”
“도왕 어르신을 뵙습니다.
팽립은 팽도림을 바라보며 손을 내젓는다.
“네놈은 들어가 있어라.”
“........?”
“뭐하느냐, 들어가라는 말이 안 들리느냐..?”
“예...에....! 할아버님...”
그가 몸을 돌려 연무장 밖으로 나가자, 팽립이 뱁새눈을 치켜뜨면서 하림을 노려본다.
하림은 날카로운 팽립의 눈초리에 찔끔해서 한걸음을 뒤로 물러난다.
‘이거 내가 경솔했구나. 아무래도 저 늙은이가 혼원벽력도를 손대놓은걸 알아버린 모양인데....’
그는 자책하며 팽립을 향해 읍을 한다.
“도왕어르신께서는 저에게 볼일이 있으신 것 같군요.”
“이놈! 분명 네놈 짓이렸다.”
뜨끔한 하림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눈을 크게 뜬다.
“무얼 말씀하시는 건지.....?”
“이놈, 능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어물쩍 넘어가려 하는구나.”
“하하핫....눈치 채셨습니까?”
“이놈아 본가의 도법을 저렇게 표시 나게 바꿔놓았는데, 이 몸이 모르겠느냐, 도대체 어떻게 한 것이냐. 어떻게 저런 도법이 가능한 것이냔 말이다.”
하림이 멋쩍은 듯 옆머리를 쓸어 올리고 팽립은 속이 타는 듯 궁금증을 폭발한다.
“어르신, 그것은 그냥 저의 무리(武理)로써 재해석해 본 것입니다. 그리고 허락도 맡지 않고 세가의 도법에 손을 댄 것을 용서하여 주시지요.”
“이놈아, 그것이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된 놈이 무예를 십년도 연마하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저런 것이 가능하냐고 묻는 것이다.”
“하핫.....전 도림이 남이 아니라서 그런지 제 눈에는 훤히 그 길이 보였습니다. 물론 믿지 않으시겠지만 말입니다.”
“이놈....그렇다면 네놈이 움직이는 비급 아니겠느냐? 그것이 말이 된다는 말이더냐?”
“뭐....닥달을 하셔도 저는 딱히 그 말씀밖에 없습니다만....!”
더욱 눈을 가늘게 뜨며 바라보던 팽립이 손에 들린 도를 빼어든다.
-챙.....!
하림은 올 것이 왔다는 듯 체념하고 고개를 흔들었고, 팽립은 그의 표정을 보면서 일갈한다.
“마침, 잘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손주 놈을 냉큼 뺏어간 네놈이 고까울리 없었는데, 이번 기회에 손 한번 섞어 보자구나.”
“헛....도왕 어르신......!”
“네놈이 노부도 곤란하게 만든다면 저 늙은 거지와 같이 네놈의 평생 후견인이 되어주마.”
무림에서 팽립의 위치, 물론 절대적이다.
앞으로는 모르겠지만 현재는 그의 한마디가 곧 무림의 정의가 되는 시대이다.
하림은 그의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다.
물론 아까부터 도왕이 쏘아 보내는 투기에 꽉 쥔 주먹에서 땀이 흘려 내릴 지경이었고,
“휴우,,,,어쩔 수 없군요. 어르신 그럼 실례를 저지르겠습니다.”
하림은 짐짓 마지못해서 그러는 것처럼 느릿하게 적아를 뽑아든다.
하지만 눈치 없는 적아의 도신은 벌써부터 주인의 의중을 간파한 듯 붉은 기류가 번들거리고 있었다.
“좋구나.! 명도로구나. 이름이 있느냐?”
“적혈마도, 적아라 부릅니다.”
“허어...네놈 명호와 같구나.”
“우연이었습니다. 어르신...”
“허허....기가 막힌 우연이군, 만년한철이더냐?”
“예, 어르신, 마침 알아보시는군요.”
“도를 만든 명장이 누구인지 정말 대단하군, 만년한철로 저런 색을 내기가 쉽지 않으련만 진정 만나보고 싶어지는구나.”
“만나실수 있으실 것입니다.”
“호오....그래, 기대가 크구나.....허헛...”
도의 명사답게 하림의 적아를 한눈에 꿰뚫어보는 안목에 하림도 놀라기는 마찬 가지었다.
“자, 시작해볼까?”
“예, 어르신, 그럼 먼저 가겠습니다.”
“그래, 기꺼이 오너라.!”
활짝 웃는 팽립이 두 팔을 벌리면서 크게 웃는다.
-쫘르르르륵....!
드디어 하림의 적아가 허공을 가른다.
그러나 그가 쓰는 도법은 팔만사천도가 아닌 유원벽력도였다.
단번에 알아본 팽립이 두 눈을 진지하게 반짝인다.
팽립은 팽도림이 휘둘렀던 도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 본 것이다.
“그래...오너라.....! 얼마든지.......”
- 작가의말
하림의 의도된 도발?
아니겠쭁.....? ㅎ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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