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가자(2).
앞으로 가자(2).
사방이 암석으로 둘러 싸여 보이는 이곳은 아마도 석실인 것 같다.
족히 어른 신장의 열배는 될 것 같은 방대한 석실은 한마디로 금광이 휘황한 보고(寶庫)였다.
“흐흐흐흐흐.......!”
석실 중에에 백의를 입은 그림자가 길게 늘여 뜨려 있다.
“흐흐....그동안에 열심히 뛰어다닌 보람이 이곳에도 있었구나. 좋구나, 좋아...! 흐흐흐흐....!”
쉼 없이 입가에 음소를 날리고 있는 백의인의 정체는 놀랍게도 바로 하림이었다.
“흐흐흐.....! 도대체 이것에 가치를 따진다면 얼마나 될까, 그렇다면 아마도 나는 천하제일의 거부(巨富)...? 푸흐흐흐흐...하하핫.....!”
그는 복받이는 희열에 참지 못하고 앙천대소를 터트렸다.
그 소리는 넒은 석실에 메아리치며 한동안 웅웅 거렸다.
하림이 대하오문으로 돌아온 것이 이틀 전이다.
그동안 하림은 다시 봐도 놀랄 만큼 커진 하오문의 규모에 혀를 내둘렀다.
이틀 동안 밀려있던 업무보고로 성혁에게 시달리며 울상을 짓고 있던 그가, 성혁이 잠시 한눈을 파는 동안 은신법을 써가면서까지 이쪽으로 들어와 숨은 것이다.
-드르르르륵.....!
암석사이로 보이지 않던 틈이 열리면서 도림이 들어서며 하림의 안색을 살핀다.
그 바람에 한동안 낄낄대고 웃던 하림이 급 정색을 하며 바라봤다.
“주공, 모두 모였습니다.”
“아...그래? 참, 도림 이곳을 좀 보라!”
“예?”
“보라고 이안에 뭐가 있는지를.....!”
“아.....! 으음.......! 좀....많.....많군요.”
“흐흐....그렇지? 많지?”
하림은 멈추었던 웃음을 참느라 애써 입가를 실룩거린다.
“이것을 보고 무슨 생각나는 거 있어?”
“제가요...? 주공, 생각을....해야 되는 겁니까?”
“뭐어.....이걸 보고도 아무 생각도 없단 말인가? 무슨 사람이 이렇게 목석이야!”
“그게....보...보물들이 참 많군요. 으음....강호에 내놓으면 당장 혈겁천하를 만들어버릴 비급이 지천입니다. 뭐...이정도 생...생각은 듭니다만.. 주공!”
도림의 말에 하림의 안색이 일그러졌다.
“음....가만 보면 도림은 정서적으로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이 확실해. 그렇지 않다면 이런 반응이 나올 수가 없어.”
“음...주공, 제 정서적인 감정에 무슨 문제라도 있어 보입니까?”
“흐흐....그럼, 당연하지, 이걸 보고도 담담하면 이상하잖아.”
“그....그런가요...?”
“도림, 자네 손에 쥐고 있는 보도(寶刀)도 따지자면 천하에 수위를 다투는 칼이야, 그런 것 보면 아주 욕심이 없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말이야.”
“주...주공....! 무..인은 아무래도 자신의 병장기를 제일의 호신위로 삼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것도 주공께서 억지로 쥐어주셨던 것 입니다 만.....!”
“커험....! 내....내가.....?”
“예...! 잊으셨습니까? 하오동부에서...?”
“아....몰라....몰라...도림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겠지...뭐...!”
“저어...주공...! 혹시 좋으신 겁니까?”
“뭐....뭐가...?”
도림의 물음에 하림이 주춤거린다.
도림은 사방에 걸려있는 병장기와 고서들, 그리고 석실중앙에 단을 만들어 전시해놓은, 기진이보들을 바라보며 하림에게 묻는 것이다.
“뭐어....내말은 성혁형이 이곳에 혼신의 힘을 쏟아서 만들었구나...뭐 이런 마음이지....!”
“아...그러신 겁니까? 전 또 물욕이 전혀 없던 주공께서 웬 일이신가 했습니다...하핫...!”
하림의 이마에 빠직 힘줄이 튀어나온다.
하지만 곧바로 힘 잃은 말처럼 솟았던 어깨가 늘어져 내리고 만다.
“뭐....보물들이야, 온통 지천에 깔렸는데 굳이 욕심내며 좋아할 필요가 있나....?”
“그렇지요, 주공! 속하는 주공의 그런 마음이 정말 좋습니다.”
“그런 마음?”
“예, 자고로 물욕에 달아오른 주군을 모신다는 것은 견디기 힘들다 했습니다. 밑에 있는 사람이 아무리 발 벗고 뛰어도 그 욕심을 채워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전 참 복이 많은 놈입니다.”
“커험....사람도 참, 걱....걱정도 팔자군....나..나에게 물욕이 있을 것이 무언가....?”
“하하...역시 저의 주군이시죠, 속하는 다시 한 번 감복했습니다.”
“커험.....감복은 무슨.....참...다 모였다고? 그럼 어서 가야지.”
하림은 어기적거리며 석문으로 몸을 돌렸다.
그 뒤를 도림이 입가를 들어 올리며 미소를 짓고 따라 나선다.
하지만 곧바로 그는 하림의 등에 얼굴을 박을 뻔해서 그 자리에 설수밖에 없었다.
하림이 우뚝 서며 몸을 돌렸기 때문이다.
“저어....도림..!”
“예...주공...말씀하시지요.”
“이곳에 기(氣)가 좀 있어 보이지 않나?”
“예엣...기요?”
“그래...기...!”
“주공...미흡한 속하가 느끼기는.....아..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습니다만...!”
“그으래? 난 많이 느껴지는데, 이곳을 내 연공실로 삼을까 했는데......!”
“네에...? 주공의 연공실은 이전 석실이 더 좋게 보이는데요?”
“그래....뭐, 도림이 그렇다면 할 수 없지 뭐....가자..그럼...!”
하림의 솟았던 어깨가 다시 늘어지며 몸을 돌린다.
그 뒤를 도림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따라간다.
보광이 솟구치던 석실은 두 사람의 그림자를 묻으며, 흔들리는 유등에 온몸을 맡기고 있을 뿐이다.
***
대하오문의 대청전.
정말 오랜만에 많은 사람이 넓은 회의청에 모여 있다.
상석에는 당연히 하림이 태사의에 앉아있고, 그의 좌우에는 도림과 운령이 그를 보좌하고 있다.
바로 아래 자리는 남궁필도가 앉아있고, 거기서 좌우로 긴 회의청 탁자가 이어졌다.
좌로 길게 펼쳐진 의자에는 도림과 운령은 뺀 이십일웅이 자리를 잡고, 우측에는 제갈성혁을 비롯한 의형제들과, 전 하오문주였던 전횡과 귀영살막의 설양, 하림의 그림자 호위였던 온혁세, 담운천, 설예주까지 자리하고 있었다.
“그동안 수고가 많았네요, 본문이 나도 몰라보게 크게 발전했네요.”
“이 모든 것이 문주님께서 이루신 위업입니다.”
먼저 입을 연 하림의 말에 제갈성혁이 미소를 디우며 말을 받았다.
“아냐, 성혁형, 기대이상이야, 특히 암석으로 이뤄진 곳을 파서 지하세계를 만들어놓은 형의 수고는, 한마디로 말로는 형용할 수 없을 정도야, 정말 맘에 들어,”
“하하....문주님의 마음에 든다니 정말 기분이 좋군요. 이제 본문의 이곳은 어느 누가 와도 끄떡없습니다.”
“그럼, 혈마가 와도.....?”
하림의 말에 성혁이 순간 주춤한다.
“혈....혈마라....! 저의 생각으로는...아마도 쉽게 혈마에게 이 자리를 내주지 않을 겁니다, 문주님!”
“으음.....! 성혁형이 직접 설계한 진식으로 이루어진 공간이라서 장담할 수 있단 말이구나.”
“문주님, 제가 직접 혈마를 대면한 적이 없어서 조금 조심스럽고, 본진이 마기를 만나면 어떻게 반응할지가 저도 참 궁금합니다만.... 아마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하하...좋아! 뭐 혈마가 여기까지 쳐들어오겠어?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고....자...! 보자!”
하림은 의식적으로 말을 끊고 많은 사람들을 일일이 둘러보았다.
순간 찾아온 정적이 사위를 감싼다.
“본문의 위세는 이만큼 커졌는데 거기에 비에 무력은 뒤떨어지지, 내가 이십일웅을 데리고 강호를 나간다면 본문은 먹기 좋은 텅 빈 곳간으로 변하고 말지. 아마도 우리의 무위가 중원 천지를 강타하지 않았다면, 그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침탈되었을 것이야.”
“.............!”
“............!”
“말이 없는 걸보니 대부분 수긍하는 모양이군, 그래서 이번에 내가 많은 생각을 했어, 혈마를 죽으라고 쫒아봐야 실익이 없다고, 왜냐면 서로 부딪쳐봐야 승자가 없거든, 그럴 바에야 백도 전체가 일어나서 혈마에게 달려들어야 맞지, 우리의 힘만으로는 어렵다는 말이지.”
“................!”
잠시 말을 끊어도 누구하나 나서는 자가 없다.
모두가 귀를 쫑긋 세우고 그의 말에 빠져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이제 우리도 누구도 넘볼 수없는 무력을 가진 전단(戰團)을 만들어야겠어, 쪼잔하게 남의 뒷주머니나 털어서 정보나 파는 하오문 잡배같은 짓은 이제 고만해야지.”
“아....!”
우측 탁자 쪽에서 낮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하림은 그쪽을 힐끗 쳐다보고 말을 이어간다.
“먼저, 군룡각을 맡을 성혁형, 휘하에 삼백명 이상의 제자를 양성하도록 해”
“군사업무인데 제자를....?”
지명을 받은 성혁이 진지하게 묻는다.
“성혁형, 머릿속에 아무리 천지를 뒤엎을 귀계가 있어도, 무력이 뒤받침 되지 못한다면 만사 불통이야, 형도 앞으로 내가 도와 줄 테니 무공에 전념하도록 해,”
“존....존...명....!”
성혁이 하림의 말에 두말도 내뱉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부복한다.
하림의 말이 한 치도 어긋남이 없는 것이다.
여태껏 그의 노력으로 만들어 왔다면 이제 누군가의 도움으로든 무공의 끝자락을 보아야 할 것이다.
하물며 그가 직접 도와준다 하지 않은가.
부복한 성혁의 뒤통수를 바라보던 하림이 시선을 돌렸다.
“다음은 내가 많이 생각해 온 것인데, 과연 이것이 괜찮은 생각인지 분명치 않아 많이 망설였지만, 역시 실행에 올리기로 했어. 설양!”
설양은 하림의 말에 퍼뜩 놀라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부복한다.
“문주, 부르셨습니까?”
“그동안에 쉬었다고 몸이 녹슬지 않았지?”
“하하....제자들의 무공사부를 하느라 옛날보다 팔팔하지 뭡니까, 문주!”
“호오....그거 정말 잘되었군. 그럼 본문의 암룡각을 맡기지.”
“암...암룡각요?”
“암룡각은 본문의 그림자 속에서 활동하는 은자들을 양성하는 곳이야.”
“아....그럼......?”
“그래 맞아, 적어도 암룡각주가 가지고 있는 살수기법은 후세에 남기고 가야지.”
“아.....문주, 감...감사합니다. 복....복명!”
이마를 찧은 설양을 바라보며 하림이 웃는다.
“암룡각은 암암리에 본문을 지켜주는 큰 대들보가 될 것이다. 이 넓은 중원천지의 모든 정보를 모으려면 시작은 일천명은 돼야할 것이야.”
“존명....!”
“설양의 제자들 혁세, 운천, 예주는 각주를 도와 본문의 대들보를 만들어줘야 할 것이야.”
“하....하지만, 주공, 저희들은 주공의 그림자 암영인데......?”
설예주가 제일먼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하림을 바라보며 큰소리로 외친다.
그녀를 따라 담운천과 운혁세도 일어났지만 하림이 고개를 내젖는다.
“아니야, 이제는 내 안위보다는 본문의 무력을 높이는데 매진해야 돼, 그러니 이제 사부를 도와 본문에 제이의 귀영살막을 만들어줘!”
“............!”
“............!”
할 말이 많았던 세 사람이 일순 말문을 잃어버리고 잠깐 동안 멍하게 서있었다,
그동안 하림의 그림자로 살면서 그들도 하림에게 받은 것이 많았다,
하오동부에서는 그들 역시 공천석유를 복용했고 하림에게서 무공을 전수받았다.
지난세월동안 그의 그림자 속에서 살았던 것이 아니고, 제자와 스승이 되어 칼을 맞대며 살아왔던 것이다.
세 사람의 얼굴에 짙은 어둠이 깔렸다.
특히 설예주의 고운얼굴은 금방이라도 눈물이 흐를 것처럼 흐려졌다.
하림은 서서히 무너져 내리며 부복하는 그들을 바라보고 낮은 한숨을 불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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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존꿈 꾸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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