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교혈전(5).
마교혈전(5).
“호호호.....냉소혼, 감히 본 낭자로 하여금 검을 뽑게 하다니, 중원의 검이 얼마나 매서운지 몸으로 한번 느껴보아라!”
“네년은 누구냐?”
“호호...머리가 상당히 나쁘구나, 잘 들어 보아라, 본 낭자는 검봉이다.”
“검봉?....남해 보타암의 그 검봉?”
“호호호...그래도 귀는 있어서 본 낭자에 대하여 들은 것은 있구나!”
소접은 한손에 검을 들고 허리까지 흔들며 깔깔 웃는다.
그녀의 웃음소리가 커질수록 냉소혼의 안색이 점점 노기에 물들어갔다.
“아....어쩌다 저런 냄새나는 계집한테까지 모멸을 당한단 말인가?”
그는 이곳으로 군웅들을 몰고 들어올 때, 마교 내에서는 상당한 우려를 자아냈었다.
지금 이곳으로 들어온 마교 전력은 고작해야 총 전력에 삼할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몰려든 군웅들을 오합지졸로 판단하고, 이곳에서 전멸을 시키기 위해 마교 소교주가 운용할 수 있는 전력들만 이끌고 진격한 것이다.
칠 할이나 되는 무력부대를 마교에 고스란히 남겨두고, 자신의 고집으로 인해 이곳에서 뼈를 묻게 생겼으니 그로써는 기도 안찰일일 것이다.
그러나 이판사판 이곳에서 죽음을 맞아도 명예롭지 못하고, 어떻게 구사일생으로 마교에 살아 돌아간다 한들 자신의 입지는 상당히 줄어들고 말 것이다.
아니 어쩌면 천년대업을 망친 죄로 교주인 자신의 부친에게 죽음을 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짧은 시간에 많은 생각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는 냉소혼의 얼굴에 어쩔 수없는 투기가 솟아 올랐다.
까짓 거 예서죽으나 돌아가서 죽으나 죽는 것은 매한가지다.
그럴 바에야, 차기 검후라는 저년이라도 저승길 동무로 삼아야겠다.
“냄새나는 계집! 저승길이 멀지 않겠구나! 같이 가자....!”
-휘리리리릭.....!
냉소혼의 몸이 번뜩이면서 소접을 향해 여러 가닥의 검기를 쏘아낸다.
“흥....! 냉가야, 네놈의 그 냄새나는 주둥아리부터 뭉개주마! ”
소접은 짧게 코웃음 치며 허공으로 몸을 날린다.
그녀의 검은 가벼우면서도 쾌활했다.
-촤르르르륵....!
_꽈꽝....!
두개의 신형이 엇갈려 떨어져 내렸다.
“야앗.....!”
혼신의 힘으로 전개한 일 검이 싱겁게 빗나가자, 냉소혼은 짧은 기합과 합께 허공 속으로 사라진다.
“흥....!”
신법이라면 애초부터 하림이 중하게 여기며 집중적으로 가르친바 있다.
소접의 입에서 차가운 냉소가 흐르고, 그녀 또한 허공을 계단삼아 오보를 내딛더니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허....허공답보다....검봉이 허공답보를 ....!”
“앗....! 두 사람이 사라졌다!”
“냉소혼의 무공은 어딘지 모르게 사이하다....!”
“어디로 갔지...?”
지켜보던 군웅들의 입에서 저마다 의문 가득한 탄성이 쏟아져 나온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빈 허공에서 쥐어짜는 비명이 새어 나온 것은 그 순간 이였다.
“크흑.....!”
-사삭......!
냉소혼이 왼손을 감싸며 어느새 한쪽 무릎을 꿇고 있다.
“으윽......내손......내손이.....!”
그의 무릎 옆에서 아직도 신경이 살아서 움직이는 그의 왼손목이 댕강 떨어져 나가 있었다.
“으윽.....!”
“호호...냉가야, 어떠냐? 이제야 본 낭자의 무서움을 알겠느냐?”
“이...이...사갈보다도 독한 년.....!”
“호호....이 험난한 강호에서 독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하였다, 냉가야, 수일 전에 주공과 나에게 독약을 뿌린 것을 갚아야하지 않겠느냐? 이제 손목을 떼어 냈으니 이번에는 팔뚝차례다, 그다음은 반쪽 남은 팔을 그 쓸모없는 어깨에서 떼어 내주겠어.”
“으....이년이.....! 으아아아아앗......!”
냉소혼이 검을 시전하면서 방어를 도외시한 듯 소접을 향해 돌진해온다.
-쑤아아아악.....!
“죽어라.....! 이년.....!”
“호호호호.......!”
-사라라라락.....!
찰랑거리는 고소를 남기고 소접이 허공 속으로 녹아든다.
-싸아악...!
“아아아악.....!”
-사사사삿!
“크아악....!
희뿌연 광채가 허공 속에서 번뜩이면서 두 차례 단말마 비명이 냉소혼의 입속에서 터져 나온다.
“으윽......! 내 팔이.....내 팔이.....!”
단, 두 번의 출수로 천하에 마교소교주 냉소혼의 팔을 이등분하며 서서히 지상으로 내려서는 소접, 그녀의 얼굴에 어느덧 살얼음 같은 냉기가 몇 꺼풀 쌓여 있는 것 같다.
“이번에는 오른쪽 발이다. 냉가야....!”
-저벅....! 저벅....!
그녀가 걸음을 떼자, 냉소혼의 얼굴이 사색이 된다.
“오지 마....오지 마....!”
이미 자신이 가진 마교의 절세무공이 이들에게는 전혀 소용없다는 것을 깨달아버린 냉소혼.
떨어져 나가버린 팔 대신 왼쪽 어깨를 잡고 뒷걸음치며 절규하듯 외친다.
그의 주위로 마교 제자들이 에워싸고 있었지만, 그를 따라 뒷걸음질만 칠뿐 누구하나 나서지를 않는다.
-저벅저벅...!
소접의 발자국소리가 마치 저승사자의 살소처럼 냉소천의 가슴속으로 파고든다.
삼십 평생을 살면서 지금처럼 공포에 떨어본 적이 어디 한번이라도 있었던가?
그것도 상대가 한낮 자신보다 더 어린 여자임에야....
-저벅저벅......!
“으으으으.......오지 마....제발.....!”
-저벅저벅.....!
말없이 다가서던 소접이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쑤아아아악!
-사라라라랑......!
그 후...
“크아아아악....!”
힘없이 바닥을 끌던 냉소혼의 오른쪽 다리가 통 채로 하늘을 날았다.
“아아아아악....! 내발....!.....내다리....! 컥!”
비명을 내뱉던 냉소혼이 두 눈을 하얗게 까뒤집으며 뒤로 넘어가버린다.
“앗...! 소교주님....!”
“소교주님이 혼절하셨다.”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마교 제자들이 호들갑을 떨면서 냉소혼의 몸을 받아든다.
하지만 그들의 두 눈은 잔뜩 겁에 질려 주눅이 들어있다.
하림의 눈치를 보는 그들은 잘려진 냉소혼의 팔과 다리까지 감싸 안으며 챙긴다.
“소교주님의 떨어진 팔과 다리는 독수사의시라면 틀림없이 해결책이 있을 것이다.”
기절해버린 냉소혼을 바라보다가 차가운 얼굴로 돌아서던 소접은, 마교제자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고 하림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떼어낸 팔과 다리를 다시 붙인다는 소리에 아예 없애버리는 것이 어떠냐는 눈빛이다.
그러나 하림은 고개를 가로 젓는다.
“소접, 그만 돌아와!”
“하지만 주공.....!”
“하하....독수사의라 했던가? 나도 제어하기 힘든 독을 만든 자야, 그가 어떤 의술로 냉가를 재생시키는지 똑똑히 봐야겠어.”
소접은 그가 춘약을 말한다는 것을 알고 두 볼을 빨갛게 붉혔다.
어찌되었던 그 덕분에 하림과 아주 찐한 사랑을 나누며 한 몸이 되지 않았던가?
그날 생각에 갑자기 온몸이 배배꼬이는 것을 느낀 소접은, 부끄러움에 고개를 푹 수그리고 안으로 들어온다.
“와아......! 과연 나찰검봉이다.!”
“와아....! 검봉이 마교 소교주를 오초 안에 눌러 버렸다.”
“와....아....! 나찰검봉! 하오문의 나찰검봉 만세.....!”
갑자기 터진 군웅들의 함성에 소접은 깜짝 놀라며 고개를 치켜들었다.
나찰검봉이라고...?
또 하나의 별호가 소접에게 붙었다.
사실, 소접은 이렇게까지 패도 적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하림을 따르면서 숱 없는 죽음의 난관을 겪었다.
무공단련이라는 미명아래 그녀는 목숨이 여벌로 몇 개씩 있지 않는다면, 절대 건널 수없는 지옥의 관문을 걸어 온 것이다.
과연 현 강호에 어느 사내가 그녀 앞에 떳떳하게 도전해올 수 있을까?
이때 두 줄기 경기가 소접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슈...쑹....!
-터...턱....!
“으....음.....!”
먼 거리에서 쏘아낸 하림의 지풍이 냉소혼의 혈도를 파고들며 냉소혼이 힘겹게 두 눈을 뜬다.
-쑤아아아악.....!
하림의 신형이 순식간에 공기를 압축하듯 냉소혼의 앞에 나타냈다.
군웅들은 누구하나 하림이 언제 어떻게 움직였는지 제대로 본 사람이 하나도 없다.
“으으,,,,,,,살....살려줘!”
희미하게 돌아온 의식 속에서 냉소혼이 하림의 무표정한 얼굴을 발견하고 힘겹게 입을 열었다.
“냉가야, 그렇게도 살고 싶은 것이냐?”
하림의 말에 냉소혼이 격하게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인다.
“살려줘!”
하림이 냉소혼의 눈앞으로 자세를 낮춘 후 그의 턱을 한손으로 움켜잡았다.
냉소혼은 턱이 부셔져나가는 고통을 느꼈으나, 바로 눈앞에 있는 하림의 얼굴이 무서워 이맛살만 찌푸릴 뿐 입조차 열지 못한다.
“좋아! 어차피 한손거리도 안 되는 몸들이라 살려 주려했지. 첫째, 앞으로 중원 쪽으로 오줌도 싸지 않을 것! 대답해!”
“...........아....! 알았다!”
“알았다? 말이 상당히 짧다?”
“히끅.....알...알...알았소....!”
“좋아! 그렇게만 하면 마교로 돌아갈 수 있다. 둘, 본 대하오문이 중원에 존재하는 한, 마교는 신강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다!”
“그...그...그것은.....내가 결정할 수 없....없소.”
냉소혼이 곤란한 듯 더듬거리면서 말을 마치자, 하림의 눈가가 좁혀진다.
순간, 그의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위압감이 순식간에 비수가 되어 냉소혼을 비롯한 마교도들의 전신으로 쏘아 나간다.
“흐억...!”
“흐으으악....!”
“아아아아....!”
무려 삼백이 넘는 자들이 중간에 있었으나 누구하나 나서지 못하고 추풍낙엽처럼 떨어져나가나.
그러나 하림이 의도적으로 살기를 제어했기에 부상을 입은 자들은 나오지 않았다.
“모두 이 자리에서 죽기를 바라나?”
“으으으으......윽! 살.....살려주시오....! 장문주...!”
냉소혼은 온몸을 옥죄이는 살기에 전신을 사시나무 떨듯이 떨어댄다.
“으으으으.....윽....! 살려.....!”
“흥...!”
하림은 냉소혼의 이마에 힘줄이 금방이라도 피부를 뚫고 터져 나올 때 쯤 내기를 거두어 들였다.
“뭐...! 좋아! 너희들 마음대로 해봐!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꾸역꾸역 밀고 내려와 보던지, 아님, 혈마에게 먹혀서 존재도 없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리던지....아무튼 다시 한 번 내 눈에 띤다면, 그때는 천년마교라는 너희들,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만들어주지.”
“고...고맙소....살려주어서.....문주의 말씀을 본교의 교주께 필히 전하겠소.....!”
“흥.....! 본인이 살심을 누르고 소교주를 살려 보내는 뜻을 깊게 생각해봐야 할 거야.”
“알....알....겠소....!”
하림이 차가운 안색으로 얼굴을 굳히며 말하자, 냉소혼은 더욱 고개를 숙이며 읍소한다.
“그럼, 가보라는 말로 알아듣고 우리는 이만 가보겠소.”
하림이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젓자, 냉소혼은 기다렸다는 듯이 힘없이 몸을 돌렸다.
“돌,,,돌아간다.....모두.....!”
“조...존명...!”
천여 명이 좀 안 되는 마교도들이 목숨을 건지고 몸을 돌렸다.
그들은 어깨를 늘어뜨리고 바닷가 쪽으로 터덜거리며 걸어갔다.
하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군웅들의 눈에는 원한이 가득하다.
“어딜 도망가느냐...!”
“살부지수는 하늘이 뒤집혀도 갚는 것이다. 네놈들에게 목숨을 일은 부친의 한을 풀겠다.....아얏....!”
“와아아아아....! 그래 죽여야 한다....!”
“마교는 살려둬서는 안 된다....모조리 죽여라!”
느릿하게 걷던 마교도들이 정신이 번쩍 난 듯 혼신의 힘을 다해서 몸을 날린다.
그 뒤를 성난 군웅들이 도검을 날리면서 쫓아가고, 냉소혼을 어깨위로 들어 올린 마교도들 또한, 정신없이 군웅들을 피해서 몸을 날린다.
삽시간에 몰려가는 군웅들이 모두 마교도들을 향해 빠져나가자, 그 자리에는 곤륜오자와 강호팔협이 무표정한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다.
하림은 굳이 군웅들을 막지 않았다.
어차피 수일동안 백천신검의 유물로 인해 마교는 많은 사람을 죽였다.
인과는 당연지사 응보가 따르는 법,
하림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어린다.
저쪽에서 남궁필도가 몸을 날려 쏘아오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 뒤로 나머지 강호팔협과 곤륜오자가 당연하게 몸을 날리고 있었다.
- 작가의말
편안한 밤 되시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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