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氣) 싸움(?)
기(氣) 싸움(?)
천연덕스럽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방호상의 옷깃을 여며 주고, 흐트러진 법송의 승복을 가지런히 펴준다.
법송과 방호상의 두 눈에 비친 하림의 모습은 두 얼굴을 지닌 소악마처럼 보였다.
(이왕이면 활짝 웃는 것이 좋을 거야, 그래야 그 알량한 대주 자리를 지키는데 이상이 없을 테니까. 그리고 한번만 더 본 대하오문에 기어오르려한다면, 이번처럼 보기 좋게 넘어가지 않을 거야, 명심하도록....!)
스산하게 웃는 하림에게서 그들의 뇌리에 울려 퍼지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혜광심어, 굳이 입술을 달싹거리지 않고도 마음속의 심어로 상대에게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경지, 상하단전 전체가 소통되지 않으면 결코 흉내도 내지 못하는 절기이다.
“아아....! 혜광심어......!”
“아...!”
두 사람은 하림의 스산한 목소리도 목소리였지만 그가 혜광심어를 아무렇지 않게 시전 하는 것에 대해서 더욱 큰 충격을 받았다.
그제야 자신들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삼년 전보다 더 괴물이 되어 있는 하림. 그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이구동성으로 입을 연다.
“잘 알겠소, 다소 실례가 있었으니 용서해 주시구려.”
“미안하오, 장문주님, 충고를 받아드리겠소.”
“하하....우리 모두 젊은데 장문주님이라니요, 듣기 거북하니 편하게 이야기하도록 하지요.”
하림이 환하게 웃으면서 말을 받았고 방호상의 얼굴이 찔끔거린다.
“알...알겠소...!”
“자자.....무슨 일이오, 두 분 대주는 어디가 편찮은 것이오?”
전후사정을 잘 알고 있는 제갈성곡이 시치미를 떼고 끼어들었다.
“아..아니...괜찮습니다. 총사님....!”
“그럼 방대주는....?”
“아아....저도 아무 일 없습니다....총...총사님...!”
“허허...그것 잘됐군요. 여기서 이럴 것이 아니라, 마침 당문주께서 식사대접을 한다고 하니 요 앞 객잔으로 자리를 옮길까요?”
“아....네에....!”
말을 마친 그들은 은연중에 하림에게서 멀리 떨어져 걷는다.
그런 두 사람의 눈에는 하림에 대한 은은한 두려움이 가시지 않고 있었다.
갑자기 법송은 사문인 소림의 방장 광해대사와 몇 년 전에 나누었던 대화가 얼핏 떠올랐다.
그때 하림은 무림대회의 우승자로 무장원을 하며 소림의 대환단과 소환단을 부상으로 받았었다.
그 후 총사를 통해 대환단 한 알을 또 받아갔다는 말을 듣고, 법송은 참지 못하고 광해대사를 찾아간 적이 있었다.
“사부님, 제자들에게는 대환단과 소환단을 인색하게 내려주시면서, 하물며 소림과 아무런 연고도 없는 적혈마도에게는 이렇듯 선심을 쓰시는 것입니까?”
그때 광해대사는 묘한 표정으로 자신을 한참동안 바라보시더니 이윽고 말문을 열었었다.
“법송아! 넌 언제고 그 불같은 성격과 무학에 지나친 승부욕으로 인해, 크게 경을 치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틈이 나는 대로 불경에 심취하도록 하여라.”
“사...사부님.....!”
“그래. 내가 왜 적혈마도 장시주에게 본사에도 몇 알 없는 대환단을 아낌없이 내려 주냐고 물었느냐?”
“예, 사부님!”
“아미타불! 법송아, 잘 들어 보거라! 장시주에게는 천인지상과 만악지상의 두개의 선천지상이 있다. 너도 불경을 놓지 않고 있었으니 두 선천화인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고 있겠지?”
“허억...! 어떻게 한사람의 몸에서 그 두개의 상반된 선천화인이 발견될 수 있는 것인지요.”
“그래, 네 말이 맞다, 결코 인세에는 나타날 수없는 선천화인이지. 그중에 하나만 나와도 세상을 평정할 수 있는 운명을 가진 천인과 마왕의 사주이니, 이는 온 세상을 통 털어 유일무이하다하여도 어폐가 아닐 것이다.”
“어쩐지.....그는 예사롭지가 않았습니다. 사부님.”
“법송아, 여기까지는 이 사부가 들여다본 그의 사주이고, 어찌된 까닭인지 그는 천인의 경지를 밟아가고 있었다. 초년의 운으로 보아 그는 당연히 지금쯤 무림을 뒤엎을 마두가 되어 있어야했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반대로 혈마로 부터 무림을 구하려 애쓰고 있는 것이다. 너는 이해가 되느냐?”
“사...사부님, 전 거기까지는 잘.....!”
뒤통수를 어루만지며 곤혹스런 표정을 짓는 자신에게 광해는 자애롭게 웃어주었다.
“무릇, 법송 네가 나의 제자라면 당연히 장시주의 행보에 기꺼이 한 팔을 거들어야 할 것이니라, 혹여 쓸데없는 호기로 그와 맞서지 말고 이사부가 그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베풀었던 것처럼 너도 그를 따라야 할 것이니라.”
“사....사...사부님.......!”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삼년이라는 시간동안에 사부인 광해와 나누었던 이 대화를 아득히 잊고 지냈었던 것이다.
법송은 멍하게 하림을 바라보았다.
마음속에 독심을 품고 있는 사람처럼 보이기도하고, 외면상 한없이 여리고 착하게 보이는 미인지상으로 보이기도 한다.
여인의 살결보다 더 희고 금방이라도 분가루가 묻어날 것만 같은 그의 얼굴에는 하얗게 꽃이 피어 하늘거리는 듯하다.
사부의 말이 맞았다.
그것도 모르고 저런 자를 건드리려 하였다니, 법송은 사부의 말대로 이제는 법전을 들고 불경을 다독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미타불.....!”
나직이 불호를 뇌까리는 법송을 생소하게 바라보며 방호상 또한, 그간에 잊고 있었던 도호를 읊조릴 뻔 했다.
무당에서 폐관을 끝내고 무림맹으로 떠나올 때, 대사형 양석호로부터 신신당부하는 것을 들었던 방호상은, 그제야 자신의 대사형이 이야기하던 것을 떠올렸다.
절대로 하림과 반목하지마라는 대사형의 얼굴에는 근심이 어려 있었다.
아마도 방호상 자신을 잘 알고 있는 대사형이 그때부터 이런 사태를 예견했었는지 모른다.
“적혈마도 장하림, 그는 인중지룡이고 장차 하오문과 더불어 무림에 큰 획을 그을 사람이다. 될 수 있으면 그와의 관계를 나쁘게 만들지 말거라.”
그때는 대사형의 말을 흘려들었었다.
또 폐관을 막 끝내고 나오는 터였는지라 세상, 무서운 것도 없었을 때였다.
방호상은 큰 한숨을 내쉬고 자신의 눈빛과 비슷한 빛을 머금고 있는 법송을 바라보며 가만히 고개를 젓는다.
아마도 두 사람만은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현 상황을 애써 지우고 싶을 것이다.
***
하림은 객잔의 큰방에서 운기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운기를 마친 그는 주위가 조용한 것을 느끼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운령....!”
“예, 주공....!”
어느새 방 천정에서 운령이 그림자처럼 떨어져 내린다.
“쯧쯧.....천정은 왜 또 기어 올 라 간 거야!”
하림의 말에 운령이 히죽 웃으며 뒤통수를 긁적인다.
“버...버릇이 되서 그래요, 주공!”
“쯧....하여간.....살수 놀음이 뭐가 좋다고, 정 그렇다면 또 검은 옷 입고 그림자로 살게 해줄까?”
“허억...! 주공! 그...그것만은....이제.....헤헤....!”
운령이 펄쩍 뛰면서 종내에는 헤실 거리며 두 손을 모으고 하림을 향해 울상을 짓는다.
하림은 불쌍한 표정의 그를 바라보며 피식 웃고 입을 열었다.
“왜 이렇게 조용하지? 모두 어디 갔어?”
하림의 말에 운령이 피식 웃는다.
“말도 마세요, 주공. 모두 지황대와 인봉대에 불려갔어요.”
“불려가? 왜?”
“왜긴요, 티꺼우니까 한번 붙어 보자 하는 거지요.”
“호오......! 그런 거야? 우두머리가 정신을 못 차리니 밑에 사람들도 똑같군. 운령..!”
“예, 주공!”
“모두에게 일러! 누구를 막론하고 기어오르는 자들은 대하오문의 이름으로 철저하게 짓밟아버리라고...!”
“정말입니까? 그래도 돼요?”
“쓰읍....! 그럼 내가 빈말하겠어?”
“대하오문의 이름으로....?”
“그래 대하오문의 이름으로.....!”
“옙! 주공! 부리나케 다녀오겠습니다. 잠시만 계세요. 헤헤헤.....!”
신이 난 듯 운령의 신형이 그림자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하림이 그의 종적에서 눈을 떼며 피식 웃었다.
세상 사람들은 아마도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대하오문의 위세를 보게 될 것이다.
지금을 위해서 그동안 하림이 노심초사해왔으니 하오이십일웅은 그 결실이었다.
상념에 잠겨있던 그는 앞에 놓인 찻잔을 들었다.
-벌컥...,!
“오라버니!”
막 입으로 가져가던 찻잔을 방안으로 뛰어드는 조소접으로 인해 다시 내려놓았다.
“소접, 말만한 소저가 웬 호들갑이야?”
“피이...호들갑이라니, 고리타분한건 오라버니라구요. 그렇지 않니....?”
그녀는 하림에게 눈을 하얗게 흘기고 자신을 따라 들어오는 제갈송령과 금서옥에게 말한다.
그녀들은 조소접에 말에 동시에 고개를 끄덕인다.
“맞아! 주공께선 좀 그렇긴 해!”
금서옥의 말에 조소접이 큰소리로 말한다.
“너희들, 언제까지 주공주공 할래? 이런 자리에서는 오라버니라 해야지!”
“오....오라버니...?”
“그래....!”
“.........?”
허리에 손을 얹고 당차게 말하는 조소접을 바라보며 두 소녀는 얼굴을 빨갛게 물들인다.
“어...어떻게.......!”
“어떻게 라니.......! 내말이 맞죠? 오라버니?”
조소접은 당당하게 권리라도 말하듯 하림에게 시선을 돌리며 큰소리로 외치듯 말한다.
하림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흔든다.
“하여간....갈수록 내말은 뺀질거리고 안 듣는구나!”
“헤헤헤....허락해줘요, 오라버니.....서옥과 송령도 오라버니로 부르게 말이에요.”
“언제는 네가 내말을 들었더냐?”
“헤헤헤.....그거 허락인거지요? 오라버니!”
조소접은 신이 나서 두 소녀 옆으로 다가선다.
“오라버니가 좋다고 허락했으니 어디 한번 오라버니라고 불러봐!”
두 소녀는 꿈에서도 바라는 일이 우연치 않게 찾아왔지만, 수줍음으로 인해 꽃 같은 얼굴을 빨갛게 물들였다.
“오......오,,,,오라버,,,,니.....!”
“서옥 너도...!”
“오...라버...니...!”
“호호호호.....됐어, 됐어....! 오라버니 어때요?”
하림은 조소접을 바라보며 고개를 흔들고 말았다.
“하여간에.....이제 도저히 천방지축이라 못 말리겠구나...! 송령?”
“네에.....주공...아니...오라....버...니?”
그녀는 화들짝 놀라며 버벅 거렸다.
하림의 고개가 또 가로 저어진다.
“저번에 익힌 난화검법 후 네 초식은 끊어 치는 절도가 필요한데, 넌 그것이 부족했다. 알고 있었느냐?”
“그...랬나요? 오라버니?”
“그래, 그 부분에 신경을 많이 써야 달라진 검법을 보게 될 거야. 그리고 서옥!”
“예엣! 오...라버니?”
“넌 앞부분 네 초식까지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가서 변화가 끊기는 것이 흠이다, 알고 있느냐?”
“아아.....어쩐지....어딘가 이상하다 느낄 수는 있었어요, 오라버니.”
“좋아! 그 부분을 부드럽게 내기를 움직여 느리게 시전 한다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것이야.”
“예, 고마워요. 오라버니.”
두 소녀는 밝게 웃으며 하림을 존경어린 눈빛으로 바라본다.
반면에 조소접은 입술이 튀어나오면서 볼 맨 소리를 한다.
“오라버니...나는 나는......왜 나에 대해서는 말 안 해 주는데....?”
“넌 됐어. 사람을 곤란하게 만든 벌이야.”
“히잉......너무해...!”
조소접은 금방이라도 눈물이 흘러나올 것처럼 울상을 지었다.
“꿈 깨...! 아무리그래도 안 알려준다. 그나저나 너희는 어데 갔다가 온 거야?”
“아...호호호,,,,,!”
제갈송령이 생각이 난 듯 탄성을 발하며 크게 웃자, 나머지 두 소녀들도 교소를 터트렸다.
“오라버니, 우리 아미파에서 불러 갔다 오는 길이야.”
“아미파?”
“응, 불러서 갔더니 지황대와 인봉대 여자들이 죄다 모여 있지 뭐야.”
“그으래? 왜 불렀는데.”
“호호호.....뭐 우리가 뜨는 것이 눈에 가시라는 것 아니겠어?”
“그래?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호호.....!”
“호호호.....!”
그녀들은 대답대신 허리까지 붙잡고 찰랑거리는 교소를 터트린다.
한참을 웃던 그녀들이 웃음을 멈추고 금서옥이 발그레해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마도 그녀들은 한동안 절룩거리거나 왼손으로 밥을 먹어야 할 거예요. 우리가 조금 독하게 손을 썼거든요.”
“뭐야. 그럼 운령을 만난거야? 시간상 안 맞는데?”
“운령요? 아니요, 안 만났는데...?”
“그럼 너희는 처음부터 작정하고 그들을 손 본거야?”
“그럼요, 쪼그만 한 것들이 번지수도 모르고 기어오르잖아요, 그걸 냅 둬요? 우리가 누군데.....누구한테 배웠는데, 배운 대로 오라버니처럼 차곡차곡 꼭꼭 밟아버렸지..뭐!”
“아이쿠,,,두야!”
“호호...우리 잘했지요? 오라버니...?”
세 여자는 또다시 통쾌한 듯 깔깔거리고 하림은 뒷목을 잡는다.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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