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해(1)
<혈해(血海)>
장진자의 탄식이 실내의 분위기를 무겁게 가라앉혔다.
“빈도도 들은 이야기이고 실제로 호기심에 직접 가보기는 했지만, 섬 안으로 직접 들어가 보지는 못했소, 우선 순탄한 뱃길이 섬에 다다르면 무척 험난하게 변하오, 또, 암초가 많은 관계로 여차하면 어선들이 부서져 나가는 것이 예삿일처럼 빈번하니 사공들이 입도하는 것을 꺼리오. 한마디로 인간의 발길자체를 거부하는 죽음의 섬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오.”
“그럴 수가.......!”
하림은 벌린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우리도 여기서 이럴 것이 아니라 뗏목이라도 만들어서 얼른 출발해야하지 않을까?”
장진자의 말에 장검자가 대뜸 일어나더니 창문을 열고 밖의 상황을 주시한다.
“허허......사형! 밖을 좀 보시오, 이런 난리굿이........?”
그의 일성에 창가로 모여든 사람들은 곧 놀란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삼층에서 내려다본 객잔 밖에는 아까 와는 천양지차로 바뀌어 있었기 때문이다.
관도 위를 물샐 틈 없을 정도로 몰려든 군웅들의 모습에 모두들 기암을 하고 뒤로 물러난다.
군웅들은 바삐 몸을 움직이고 있었고 그들은 모두 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에, 하림은 그쪽이 단혼도가 있는 방향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엄청나군, 죽을지 살지 모르는 불나방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장문주 말이 맞네, 어이없는 알이지만 현실로 일어나 버렸네, 이미 마교의 계책이 구(九)할은 뜻을 이룬 것 같으오.”
“그러게 말입니다. 저 정진도장님, 저희들은 이곳에서 그만 작별인사를 드리는 것이 맞을 것 같군요.”
하림이 돌아서서 곤륜오자를 바라보며 빙긋 웃는다.
하림의 말에 정진자등은 적지 않게 당황한 모습을 보이며 정진자가 의아한 얼굴로 묻는다.
“아니....섬에 가는 탈 것 등을 만들려면 우리와 같이 움직이는 것이 장문주도 훨씬 수월하지 않겠소.”
“아하....! 말씀은 고마우나 일단은 제가 이곳 분타도 들려서 일도 봐야 해서, 그렇게 되면 도장님들께 폐를 끼칠 수가 있을 것 같으니 따로 움직이려 합니다.”
“아...! 일이 있으시군....”
말끝을 흐리는 장진자는 낮 빛도 같이 흐렸다.
하림과 같은 고수가 자신들 옆에 있으면 제자들의 안전도 훨씬 보장이 될 것이기에 동행하는 것을 은근히 기대했었는데 초반부터 어긋나고 만 것이다.
“허허...그런 사정이 있었구료. 그럼 멀리 나가지 않겠소. 우리 섬에서 만나도록 합시다.”
“예, 그럼 섬에서 뵙도록 하지요. 보중(保重)하시기 바랍니다.”
“장문주도 보중!”
“보중!”
곤륜오자가 포권을 하자 하림과 소접도 두 손을 마주잡고 예를 취한 후 객방을 빠져나온다.
그들의 뒤를 하오문 분타주 임영이 빠르게 따르고 있다.
객잔의 문 앞에 서서 관도로 나서기 전에 하림은 임영을 바라보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임타주!”
“옛! 문주님! 하교 말씀이 있으십니까요?”
“이곳에 본문의 제자들은 몇 명이나 있나요?”
“정식제자가 오십오 명에 학습제자가 오십여 명 됩니다요.”
“학습제자?”
“예, 문주님께서 취임하시고 생긴 제도로 본문의 제자기 되려면 일정기간 훈련을 한 뒤에, 엄격하게 시험을 거친 뒤 정식제자로 들어올 수 있는 것입죠.”
“흐음.....뭔가 잘 돌아가는 것 같군.”
하림은 흡족한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옆에 있던 소접이 미소를 지으며 꽃잎 같은 입술을 연다.
“호호....본문의 제갈총사가 보통분이 아니잖아요.”
“하하....그러긴 하지. 제갈가에서 성혁형을 못 데리고 가서 안달하는 것 봤잖아.”
“호호...그러게요, 요즘도 툭하면 귀산 제갈노청 대협이 수시로 들락 거린데요.”
“귀산?”
“예, 오라버니 대형인 남궁대협과 같이 강호팔협에 속한 분이죠. 그분이 그렇게 들락 거린데요. 호호호.....!”
“호오....! 그럼 제갈가를 향한 성혁형 마음도 많이 풀어졌겠는걸.....?”
“호호...그렇죠, 아마 그럴 거예요.”
하림은 밝게 웃는 소접을 바라보며 그녀가 참 예쁘다라고 새삼 느꼈다.
“소접!”
그의 진지한 눈빛을 알아챈 소접이 살며시 양 볼을 물들이고 한층 작아진 목소리로 대답한다.
“오라버니...왜요?”
“네가 나보다 훨씬 낮구나. 난 문내 돌아가는 실정을 모르고 있었는데 너야말로 세세히 보고 있었구나.”
“피이......! 그거야, 오라버니는 대외적으로 바쁘니 주변을 못 돌아보고, 소접은 오라버니 주위에서 항상 호위를 해야 하니 세세히 알 수밖에 없지요...뭐...!”
“하하하....그렇구나! 아무튼 고맙다. 소접! 임타주?”
“예....엣!”
두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던 임영이 화들짝 놀라서 급하게 몸을 숙인다.
“임타주는 명심할 것이 있어요. 유념해서 듣고 한 치의 실수가 있어도 안 됩니다.”
“예....옛! 말씀만 하십시오, 문주님!”
“일단은 본문의 제자들은 이번사태에서 빠질 것, 절대로 보물 쟁탈전에 끼어들면 안 됩니다. 그리고 임타주까지 모두 분타로 돌아가서 문을 걸어 잠그세요. 누가와도 문을 열어줘서는 안됩니다. 아시겠죠?”
“전 인원이 말입니까요?”
“그래요, 분타의 전인원이 지금 이 시간부터 밖으로 나오면 안 됩니다. 이 명령은 이번사태가 끝날 때까지입니다.”
“옛! 알겠습니다, 문주님!”
임영의 고개가 힘 있게 꺾인다.
“그럼 돌아가서 시행하세요.”
“그럼, 속하는 물러가겠습니다. 문주님! 보중!”
고개를 끄덕이는 하림을 뒤로하고 임영은 많은 인파속으로 사라져갔다.
“소접, 이제 우리도 가볼까?”
“예, 오라버니!”
두 사람의 신형도 곧이어 인파속으로 사라지고, 삼층에 있던 곤륜오자도 객잔 밖으로 모습을 나타냈다.
그들의 안색은 여전히 밝지 않았다.
장문인의 명으로 내려오긴 했지만 여전히 이 보물쟁탈전이 달갑지 않은 것이다.
장진자의 긴 한숨이 객잔 문 앞을 맴돌 때, 그들도 인파속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하림이 소접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곳은 서녕의 관도를 벗어나서 숲으로 이루어진 산길을 한참이나 벗어나 있는 지점이었다.
그들의 주위로 여전이 많은 인영이 눈에 들어 왔으나 아까처럼 많지는 않았다.
하림과 소접은 서로 눈짓을 하고 갑자기 몸을 솟구쳤다.
옷자락하나 날리는 소리가 안 나는 신출귀몰한 신형이, 옆에 있던 이들은 그저 이상한 낌새에 의아한 눈짓만 이리저리 돌릴 뿐이다.
-휘이이이!
높은 나무 군들 위로 두개의 인형이 바람을 가르며 쏘아나가고 있다.
하림의 백의장삼과 소접의 궁장의가 바람에 길게 휘날리며 하얀 연기가 스쳐지나가는 환영을 보여준다.
-투둑!
쏘아나가던 신형을 내려선 곳이 아무도 지나지 않은 산길, 하림은 소접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는다.
그의 옆에 내려서서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두 눈을 크게 뜨고 있는 소접은 그런 하림을 바라본다.
“오라버니, 왜 내려 선거죠?”
“........?”
하림은 씨익 웃으며 어깨위에서 졸고 있는 금아를 힐끔 쳐다본다.
“금아! 섬을 찾아갈 수 있겠지?”
-까아아아아!
금아는 언제 졸았냐는 듯 하림의 어깨에서 힘차게 솟아올라 숲으로 사라진다.
금아의 뒤를 쫒던 시선이 소접에게 향한 하림은, 소접의 손을 덥석 잡는 것이 아닌가?
“앗! 오라버...니....?”
“가자! 소접! 오늘 내가 너에게 신세계를 보여주마!”
“어머멋.....! 오라버니....무....무슨.....?”
하림은 그녀의 손을 끌며 앞서가고 소접은 끌리듯 가는데, 어째 소접의 얼굴이 묘하게 변하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동시에 얼굴조차 홍당무로 변해서 이제 목덜미까지 붉게 변해버리는 것이었다.
“저..어...오라버니....! 여.....여기서 이러는 것은....아닌.....”
“음...? 뭐가....? 아무튼 따라와 봐! 오늘 너에게 새로운 첫 경험을 안겨주마!”
“흑....오라버니....대낮부터 이런 숲속에서...?”
“...........?”
“저....어...오라버니 아무리 급해도 여기서 이건 아닌 것 같아요. 좋은날 날 잡아서 분위기 좋은 방도.....”
이제는 전신이 빨갛게 변한 소접이, 하림이 이끄는 숲으로 안 들어가려고 발버둥을 치면서 꼼지락거리자, 하림이 실소를 터트렸다.
“후훗.....! 얘가 지금 뭐래? 너 지금 무슨 상상을 하는 거야!”
-휘리리리릭!
순식간에 그의 신형이 울창한 나무숲으로 가려진 곳으로 소접을 달고 사라진다.
그리고 들여오는 외마디의 두개의 비명소리가 창공을 찢을 듯 터져 나왔다.
“까아아아악!”
-까아아아악!
두개의 비슷하지만 확연하게 틀린 비명소리와 괴 소음은 천지를 뒤흔들 정도였다.
그 뒤에 거대한 물체가 날개 짓으로 돌풍을 만들어내며 창공으로 솟아올랐다.
그리고 한 번 더 뒤를 잇는 비명소리.
“까아아아아악!
그것은 분명 소접의 애절한 비명소리였다.
*****
호수라 하 기에는 넓은 바다를 연상시키고, 바다라 하 기에는 너무 잔잔한 호수 같은 물결들이 은빛에 찬란하게 빛을 발하고 있다.
창공을 날면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하림과 소접은 그 그림 같은 풍경에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특히 소접은 처음 금아의 등에 반강제적으로 태워졌을 때, 지독한 공포심에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었다.
그러나 이내 찾아든 하림이 장담하던 그 첫 경험은 짜릿하다 못해 굉장하다는 것을 느끼고, 슬며시 실눈을 뜨면서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더욱이 지금 하림의 등 뒤에 바짝 붙어 앉아서 그의 배에 손까지 둘러 힘껏 안고 있지 않은가?
스치는 바람에 하림의 살 냄새까지 느껴지는 것 같아서, 소접은 이제 두 눈이 또랑또랑해지기 시작했다.
하림의 등에 머리를 묻어 보기도하고 배에 두른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그를 느껴보기도 했다.
소접의 어느새 자신이 불손한 상상을 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고 있었다.
꿈에도 바라던 님의 품안이 아니던가?
뭐...품안은 아니지만 등이면 또 어떻던가...?
또다시 배시시 웃던 소접이 우연히 아래의 절경에 눈을 두게 되고, 그 절경에 감탄 섞인 탄성을 질렀다.
“아.....아....!”
이때, 하림의 시선이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섬이 서서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금아! 저긴가?)
(응, 맞아! 저곳이야! 벌써 피비린내가 진동을 하는 걸?)
금안의 말에 하림은 정말로 바람에 섞인 피 냄새를 느낄 수 있었다.
“흠......!”
한 폭의 묵화처럼 기암괴석이 주위를 둘러싸고 웬 지 흐리한 안개마저 드리워져 보이는 신비해 보이는 섬, 지금 그곳으로 모여들고 있는 수많은 배들과 뗏목무리들......
그 틈으로 들려오는 잔잔한 비명소리들....
그건 분명히 사람이 최후의 순간에 내지르는 비명소리임이 분명했다.
하림은 금아에게 섬 주위를 돌게 했다.
금아는 이제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섬을 원을 그리며 돌기 시작했다.
“흠.....!”
“아아아아......!”
금아의 등위에 앉아있는 남녀의 입에서 각기 다른 신음이 새어 나왔다.
- 작가의말
춥네요.....무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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