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오문의 위세(2).
하오문의 위세(2).
하오대제 해검양,
그는 알았을까?
자신의 사후 천년이나 지나서 이 거대하고 웅장한 대하오문의 위용을 내려다보고 있을 줄, 그는 과연 알았을까?
바다가 있는 수백 장 절벽이 있는 곳,
하오문이 일목요연하게 내려다보이는 수려한 장관을 이루는 높은 봉우리위에, 우뚝 서있는 그의 커다란 동상이 밝게 비치고 있는 태양빛에 의해 더욱 반짝거리고 있다.
삼년 전에 비해 엄청나게 커져버린 하오문의 장원은, 자금성에 버금갈 만큼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이전에 하림이 보았던 무림맹은 오히려 수수하다 느낄 정도로,
하림이 제갈성혁에게 물었었다.
굳이 이렇게 크게 벌릴 필요가 있었냐고....
그때 제갈성혁을 아무 말 없이 행동으로 보여 줬었다.
전각마다 그걸 바치고 있는 주춧돌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전각을 굳게 받치고 있어야할 주춧돌이 그의 내력에 서서히 밀려나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아래에 있던 또 다른 주춧돌모양의 석기둥이 올라오면서 주위 경물이 변하기 시작한다.
하림은 순식간에 사방이 어둠에 짙게 싸이면서 앞도 분간 못할 정도로 밀려드는 안개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제갈성혁은 숨겨진 비밀이 또 있다고 말하였으나, 하림은 그거 멍하게 고개만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하림이 돌아오면서 하오문은 긴 기지개를 펴고 서서히 몸을 일으키고 있는 셈이다.
그런 하오문으로 오늘 아침 새로운 손님이 찾아들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여전히 건강하시군요.”
하림이 본청에서 걸어 나오며, 하얀 백의에 문사건을 걸치고 섭선을 부치며, 여유롭게 들어오고 있는 중년인을 향하여 포권을 한다.
바로 무림맹의 군사 제갈성곡이 호위무사들을 대거 거느리고 하오문에 도착한 것이다.
“본인이 드디어 천룡대 대주의 귀한 얼굴을 보게 되는군요.”
제갈성곡은 하림을 바라보며 그동안의 무소식이 야속하다는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그리고 하림의 좌우로 길게 늘어서있는 대원들을 일일이 살펴보며, 내심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어....어떻게 저들이.......?’
엄청난 기세를 뿜어내고 있는 그들을 바라보는 제갈성곡의 눈가가 미미하게 경련을 일으킨다.
‘이정도 일 줄이야, 이건 아예 일파 지존들을 능가한다?’
물론 그 속에는 그가 아끼는 자신의 질녀인 제갈송령까지 포함되어 있다.
제갈송령을 바라보는 제갈성곡의 눈은 더 커질 수 없을 만큼 커진다.
그녀의 기세가 이미 세가의 제일고수인 자신의 부친을 능가해보이지 않는가?
“어...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불과 삼년만이다, 그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는 자신의 질녀인 제갈송령에게서 차마 시선을 돌리지 못하며, 경악을 떨구지 못하고 있다.
강단이 있고 무재(武才)를 지니고 있는 아이었지만 반면에 여리고도 부드러운 아이였다.
그런 아이의 몸에서 이제 저런 패도적인 기운이 흘러나올 줄이야.
그의 시선이 이윽고 하림에게 돌아온다.
도대체 저자는 이들에게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일까?
평소 명석하고 하늘을 뒤집을만한 경천의 재주를 가진 그도, 이 순간만큼은 도저히 할 말을 잃고 그저 멍하게 상대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많이 놀라신 모양이군요. 총사님!”
하림의 미소가 박속같은 치아까지 내보이며 환하게 주위를 비춘다.
“천룡대주.....아...아니....문주.....! 이...이것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오....?”
“하하.....보시는 대롭니다. 그들이 삼년동안 지옥의 시간을 극복한 결과이지요.”
“그....그렇지만 이건 사기(詐欺)요, 겨우 삼년동안에 이룰만한 경지가 아니란 말이오!”
제갈성곡은 외친 듯 하며 하림을 향해 자신의 속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푸하하하....사기요?...하하하....총사님의 표현이......하하....!”
“맞소, 대주, 어떻게 삼년 만에 저들을 이렇게 바꿔 놓을 수 있다는 말이오? 그러니 사기일수밖에....?”
“하하....어찌되었던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그리고 마침 잘 오셨습니다. 이제 안으로 들어가서 차분히 말씀 나누시지요.”
하림이 잡아끄는 바람에 제갈성곡이 타의 반으로 끌려 안으로 들어선다.
그사이 일면식이 있는 대원들이 그에게 인사를 하고 제갈송령 또한 환한 미소로 그를 맞는다.
“호호....숙부님, 건강해보이세요.”
“이놈아, 네 부모들이 하루를 편히 못 보내고 있다. 그동안에 내가 얼마나 그 원망을 들었는지 아느냐?”
제갈성곡이 지금도 믿어지지 않을 만큼 성장해버린 그녀를 바라보며, 그 답지 않게 새삼 그녀를 향해 억울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호호....이제 목에 힘주셔도 돼요, 이렇게 멀쩡하잖아요.”
“이놈아, 이게 멀쩡한 것이더냐. 어디서 요물이 다되어 왔구나.”
“호호,,,,뭐라구요? 요물...?”
그녀는 간드러지게 웃으며 그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간다.
제갈성곡을 호위하며 따라 들어온 호위대는 제갈성곡의 뒤편에, 하림을 에워싼 대원들은 하림의 뒤편에 당당히 서있다.
그 모습을 휘둘러본 제갈성곡이 또다시 그 위용에 감탄을 내뱉는다.
“오면서 천룡대의 활약상을 듣고 반신반의했는데. 직접 보니 오히려 소문이 많이 약했던 것 같소.”
“하하....총사님, 우리에게는 백마방 따위가 감히 앞길을 막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림의 한마디에 제갈성곡의 미간이 활짝 펴졌다.
“예나 지금이나 천룡대주의 말은 본인의 마음을 한결 가볍게 주는 힘이 있어요.”
“문제는 혈마지요, 저도 보고를 받아서 알고 있습니다.”
혈마의 문제가 대두되자 제갈성곡의 이마가 다시 좁혀진다.
“휴우....요즘은 본인이 중책을 맡고 있는 이자리가 너무 무거울 뿐이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신강 쪽 마교가 조용해 준 것이 조금이나마 위안이 될 뿐이오.”
“그렇군요. 무척 힘드시겠습니다.”
“이를 말이오, 얼마나 견디기 힘들었으면 이곳으로 본인이 불철주야 달려올 수밖에 없질 않았겠소?”
“...........?”
하림이 그저 고개만 주억거리자, 제갈성곡이 말을 잇는다.
“혈마로 보이는 자들이 이미 중원으로 들어선 것으로 보이오. 대주의 생각을 들어볼 수 있겠소.”
그의 얼굴이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정기가 번뜩인다.
“총사님, 저라고 혈마에 대해서 자유롭겠습니까? 평생의 난적으로 삼아 그때그때 대처를 할 수 밖에요, 그러나, 한가지....!”
“한...한가지...?”
“네, 딱 한 가지는 우리는 아마 전대미문의 제일 무서운 적을 맞이하게 되었다는 사실이에요.”
“혈마를 직접 격은 문주의 말이니 정확하겠지요.”
“혈마가 어떤 목적을 가졌는지 두고 보아야겠습니다. 그래야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이 생기겠지요.”
“목적이라고...?...혈마에게도 피를 갈구하는것 말고도 목적이 있을수 있다?”
“예, 각성한 혈마는 아마도 어떤 목적이 생길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던 그때 가서 우리는 대처해나가야지요, 예를 들어 마교와도 이해타산이 맞는 동변상련의 처지라면, 손을 잡고 공동으로 혈마에게 검을 들 수 있다는 말입니다.”
“마...마교와도....”
“당연하지요. 그렇게 해야 합니다. 물론 그들도 살기위해서는 우리와 손을 잡을 수밖에 없을 것이고요.”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난단 말이오?”
제갈성곡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얼굴에서 지울 수 없었다.
“혈마란 그런 놈입니다. 마교가 중원을 침범하는 것도 목숨이 살아있어야 가능한 일이겠지요, 파죽지세의 혈마에게 존폐의 위협을 받게 된다면, 틀림없이 손을 벌리고 협력을 청할 것입니다.”
“믿을 수가 없군. 어떻게 그럴 수가.....”
“혈마란 그렇게 믿을 수없는 무서운 존재입니다. 두고 보세요.”
“하지만 이전의 혈마는 이성을 잃고 주체 또한 없는 오직 피만 쫓는 마물이었다 들었소.”
“휴우.....총사님, 저도 당금의 혈마가 그런 자였으면 한결 마음이 놓일 것입니다. 하지만 제 감(感)은 그걸 계속 부정하고 있어요, 눈을 감으면 죽음이 보입니다. 세상이 온통 새빨간 피로 뒤덮인 그림이 그려져요.”
“아....어떻게 그럴 수가......?”
하림의 말에 계속 이어질수록 제갈성곡이 떨리는 눈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한편에서 그를 바라보는 또 한사람의 눈 또한, 그 못지않게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바로 제갈성혁이 그였다.
비록하림이 일을 벌이고 제갈송령에게 밝혀버렸으나, 그이후로도 수많은 고민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는 그였기 때문이다.
다행이 어제오늘 은근히 다가와서 자신을 위로하며, 손을 내밀어주는 제갈송령의 행동에 많은 안정을 되찾고 있긴 했지만 말이다.
막상 제갈성곡을 바라보는 그의 마음은 착잡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었다.
혈육을 향해 비수를 쉽게 내려놓을 수없는 마음은 그의 고뇌를 더욱 깊게 만들었다.
이후, 하림과 제갈성곡은 오직 팽도림만 뒤에 두고 독대에 들어갔다.
잠시나마 편히 여독을 풀고 음식을 먹으며 많은 안정을 찾은 제갈성곡이 모처럼 편한 마음으로 하림과 마주앉아 있다.
“일단, 총사님께서도 서장에서 일어난 살겁의 원흉을 혈마로 보는 것이 맞지요?”
“아마 그렇지 않겠소? 문주, 그럼 우리 무림맹이 어떤 대책을 세워야 되겠는가?”
하림은 그의 말에 두 눈을 멀뚱거리며 그의 안색을 살폈다.
“제가 보기에는 이미 총사님의 마음속에는 대책을 세워 두신 것 같은데요?”
“역시 문주의 눈을 속이지 못하겠소, 그러나 본인은 문주의 생각이 듣고 싶었던 참이라오.”
“만약 이 시점에서 저의 생각을 굳이 물어보신다면 제 생각은 하나뿐이라 봅니다.”
“아....역시....!”
“바로 총사님과 같은 생각이지요.”
하림의 말에 제갈성곡이 빤히 그를 바라본다.
이윽고.
“그럼, 문주의 생각도 무림령을 발동해야 된다는 것인가요?”
“아마도 무림령이라는 것이 모든 정파인들을 모으는 것이라면 바로 맞혔습니다.”
“아...역시 문주의 생각 또한 그렇구료.”
“각자가 자파에서 본인들만 수성하는 것은 전혀 도움이 안 됩니다. 아마도 들어 닥친 혈마에 의해서 몰살당하고 멸문하고 말겠지요.”
“아아....!”
“총사님께서는 맹주님과 의논하여 무림령을 발동하고 전시체계를 선포하여야 하겠지요.”
“물론 그래야지요, 본인도 그것이 최우선이라 믿고 있어요.”
제갈성곡의 얼굴에 굳은 의지가 피워 오른다.
그동안에 막혔던 부분이 하림과 의견일치를 보이면서 틈이 열리며 조금은 시원해진 것이다.
하림은 그의 그런 얼굴을 보면서 어떤 연민을 느낀다.
자리가 자리인 만큼 한 번도 보지 못한 적에게 두려움을 느끼고, 막막한 대세의 계획까지 수립해 나가야하는 군사의 운명, 유유자적하고 싶은 하림으로서는 가히 생각조차하기 싫은 일이리라.
“서둘러 돌아가야 될 것 같아요, 맹주님과 의논해서 하루라도 빨리 진행해야지요.”
“모처럼 오셨는데 쉬지도 못하시는군요.”
“어쩔 수 없지요, 하지만 오늘은 묵어야겠습니다. 령이가 할 말이 있다하니 질녀하고 오랜 회포나 풀고 가야겠어요.”
“당연히 그러셔야지요.”
하림은 짐작 가는 일이라, 고개를 끄덕거렸다.
대하오문의 문턱을 넘어 들락거리는 사람들은 하루에도 그 수를 셀 수가 없을 지경으로 많다.
그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위세 등등한 대하오문의 거대함에 찬탄을 금치 못한다.
이미 제갈성혁에 의해 문에서 차출하여 뽑은 제자들이 천여 명이 넘어가고 있어 가히 무가로써도 이제 한발을 들여놓을 수 있게 되었다.
대하오문,
하림에 의해서 편액이 바뀌었고 제자들은 자연스레 대하오문이라 부르며 만족스러워 했다.
하림은 대원들에게 열흘간의 휴식시간을 주었다.
그간에 만나지 못한 가족들을 만나보고 그들과의 거취문제까지 논하여 결정하라는 지시를 했다.
즉, 이미 시작된 혈겁에서 가족을 지키기 위한 결정을 하라는 것이다.
원한다면 하오문으로 거취를 정하는 것도 한방법이리라.
어둠은 오늘도 어김없이 세상을 까맣게 물들이고 있다.
제갈성곡을 모처럼 제갈송령의 손에 이끌려, 하오문에서 휴식을 하며 여가를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놓은,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경치 좋은 누각에 앉아 있다.
그들의 탁자에는 좋은 향이 나는 술과 음식이 돌탁을 가득 메우고 있다.
일순배씩 돌며 술을 따르던 제갈송령이 이윽고 제갈성곡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숙부님.”
“오냐, 잘난 질녀야.”
제갈성곡이 게츠무레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본다.
그의 볼은 오랜만에 찾아온 취기를 즐기려는 듯 빨갛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아직도 비운에 가신 막내 숙부님, 기억하시고 계시겠죠?”
“...........?”
제갈성곡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그녀의 말에 두 눈을 치켜떴다.
순간적으로 일신에 달아오르던 기분 좋은 취기가 삽시간에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자신의 질녀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그는 그녀의 등 뒤 저만큼쯤에 어둠속 깊이 묻혀있는 어떤 사내가 눈에 들어온다.
“헉.....넌...넌........서문아? 막내야...?”
대경실색해서 휘둥그레 커진 그의 두 눈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커져있었다
- 작가의말
즐거운 휴일 보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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