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영사괴
<암영사괴>
-휘이이이잉........!
지독한 마기에 대경실색한 하림과 양석호는, 객잔의 지붕을 뚫고 하늘로 치솟았다.
그들이 내려앉은 지붕위로 거센 바람이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며 저 멀리 달아난다.
두 사람이 미쳐 신형을 세우기도 전에, 그들은 전면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는 네 명의 적의노인들을 발견하고, 급하게 천근추 신법으로 기왓장을 밞으며 내려섰다.
죽음의 빛깔보다 더 어둡고 지독한 마기를 뿌려대고 있는, 나이를 짐작하지 못할 네 명의 적의노인. 그리고 그들 주위로 스멀거리며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묵빛의 지독한 마기들.
두 사람이 지붕을 뚫고 자신들의 면전으로 내려서자, 적의노인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몸을 일으켜 세웠다.
“환영인사가 거친 애송이들이군.”
“흐흐흐....죽을 자리 잡아서 찾아온 놈들이니, 불만스러워도 꾹 참고 해탈시켜 주세나.”
“흐흐흐....간만에 맛보는 손맛은 날 서서히 달아오르게 한다네.”
“흐흐...두말하면 잔소리지. 어서 이놈들을 해치우고 아래 있는 놈들 피 맛부터 봐야겠네.”
각기 한마디씩 하는 네 사람을 바라보는 하림과 양석호는, 아직도 이곳을 장악하고 있는 지독한 마기에 몸서리를 쳤다.
“...........?”
“흠...지독하군.”
하림은 묵묵히 눈을 빛내며 노인들을 바라보고 있었으나, 양석호는 끝내 입을 열어 신음을 토해낸다.
그리고 조용히 검 끝을 땅으로 내려놓는다.
그의 입이 열리면서 노인들을 향해 그 마기에 대항이라도 하듯이 일성을 지른다.
“당신들이 요즘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만겁뢰를 도망쳐 나온 마인들이오?”
“뭣이...? 당신...? 우러러보기도 까마득한 존장을 대하고 당신이라니...말버릇이 아주 똥개보다 못한 놈이로구나, 흘흘흘......!”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살인을 밥 먹듯이 해대는 마두가, 사람에게 깍듯이 존장의 대우를 받고 싶다? 하하...당신들이야말로 지나가는 변견이 파안대소를 터트릴 일이군요.”
“이...노옴...! 보아하니 말코 도사 놈 냄새가 아주 코를 찌르는구나, 네놈은 무당에서 온 놈이더냐?”
제일 오른쪽에 있던 적의인이 두 눈에 흉광을 번뜩이며, 양석호를 죽일 듯이 노려본다.
“하하....그래도 용케 두 눈은 멀지 않았나보군요.”
“흐음......태명 말코는 지금도 건재 하렸다?”
“허....본인의 사조님 되시는 분을 잘 아시나 봅니다?”
“꺄드득.....그 말코 놈이 살아있냐고 묻고 있지 않느냐?”
“아쉽게도 이미 사조님께서는 몇 해 전에 등선하셨소.”
“아아아악! 태명...! 이놈이 벌써 죽다니.....이럴 수가 없어....이럴 수가 없다.!”
“그러게 말이다, 지금까지 그놈을 갈기갈기 찢어 죽이는 꿈만 수천 번을 꾸었다.”
분노에 휩싸인 적의인들의 온몸에서, 어둠보다 더 짙은 마기가 용솟음치기 시작한다.
하림과 양석호는 그들의 마기에 대항하기 위해 진기를 끌어올리며, 잡고 있는 병기에 서서히 힘을 가하기 시작했다.
“태명말코를 찢어죽이기 위해서 이날 이때까지 살아왔건만, 모든 것이 부질없었던가?”
“아제야! 그럼 꿩 대신 닭이라고 우선 저놈 먼저 찢어놓고 난후에, 무당을 초토화 시켜버리면 되지 않느냐?”
“흘흘......그럴 수밖에 없겠군. 이왕 나온 거 화끈하게 뒤집어 놓는 것도, 이 노년에 즐거운 일이겠지.”
적의 노인들은 눈앞에 있는 하림과 양석호를 바라보면서, 연약한 먹잇감을 희롱이라도 하듯이 사이하게 웃으며 입맛을 다셨다.
이때 하림의 귀에 운령의 목소리가 가느다랗게 들러온다.
(공자님, 암영사괴라는 과거 흑마방의 태상들로 무당의 태명진인으로 인해, 만겁뢰에 갇히게 된 원한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고마워요, 운령.)
(별말씀을요, 개개인의 특징이 없고 전대마두들이다보니, 자료가 없어서 더 이상 드릴말씀이 없습니다. 공자님.)
하림은 적아를 어깨에 걸친 채 암영사괴라는 적의노인들을 향해 서서히 걸음을 옮겼다.
“암영사괴라고.....?”
“헛! 애송이놈이 우리를 알아?”
“맞는군, 그렇다면 말이 필요없지. 노마들의 사정은 내 알바 아니고, 더 이상 그 지저분한 마기를 뿌려 댄다면 나도 참지 않겠어!”
“..............?”
“...........?”
양석호를 향해 두었던 시선을 하림에게 돌리며, 그들은 하림이 쏟아내는 투기에 마기를 더욱 끌어 올린다.
“어...어린놈이 대단하구나.....!”
“내가 그 더러운 마기 좀 그만 뿜어내라 했잖아! 이 늙은이들아!”
-휘루루루룽.......!
하림의 몸놀림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빨라졌다.
-스스스슷.....!
그가 휘두르는 적아는 괴이한 소성을 발하며 적의 노인들을 향해 붉은 도기를 쏘아낸다.
“허엇! 이놈이....”
“이 애송이 새끼가......”
돌연한 붉은 도기가 엄습해오자, 마기를 풍겨내던 노인들이 분분히 몸을 날려 피한다.
하지만 하림은 공격을 멈추지 않은 채 덥쳐 가며 대갈일성을 터트린다.
-쓰르르르릉.....!
“늙은이들...도망가지마라! 본 공자가 친히 관짝으로 집어넣어주마!”
“허...이놈, 선불 맞은 멧돼지 같은 놈이로세.....!”
“에라이...이놈아!”
두 명의 적의 노인이 하림을 향해 자신들의 장기인 암영신장을 쏟아낸다.
-챙!챙!
그들의 갈고리 같은 손가락이 적아의 도면을 때리면서, 거세게 쏟아낸 장력이 하림의 가슴을 향해 직격하듯 들어간다.
“흥...!”
하림은 가볍게 코웃음 치면서 적아를 세차게 휘두르며, 두 노인들을 압박해 들어간다.
순식간에 어울려서 묵색의 마기에 둘러싸인 하림은, 그들과 백 여초를 겨루며 허공을 누비고 다녔다.
“야앗.....!”
그들이 맹렬하게 도와 장을 날리고 있을 때, 양석호 또한 두 노인을 덮쳐가면서 허공에 검화를 수놓기 시작했다.
_우르르릉.......!
-꽈과과과꽝......!
삽시간에 주위의 기왓장이 하늘을 날았고, 객잔 안에 있던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져 도망가기 시작했다.
멀쩡하던 전각 한 채가 한쪽부터 뼈대만 앙상하게 남기 시작했고, 무림인들로 보이는 수많은 사람들은 멀리 떨어진 전각의 지붕에서, 이 용호상박의 결전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보기위해서 눈빛을 빛내며 모여들었다.
그러나 하림의 수신위들은 멀리가지 못하고, 근처 전각에서 여차하면 뛰어들기세로 무기를 빼들고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마음을 졸이고 있었다.
암영사괴, 약 삼십 년 전쯤, 거대한 중원이 좁다고 휩쓸고 다니던 거마들이다.
그들이 가는 곳마다, 피가 강을 이루었고, 하루라도 피를 보지 않으면 잠을 자지 못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살인을 즐겼다.
그러는 그들의 앞을 막아선 이들이 있었으니, 그들이 바로 당시 무당파 장문인이었던 태명진인과 무당십룡이었다.
당시의 무당파는 소림과 더불어 가장 강력한 세를 이루고 있었는데, 그들 중 하나가 바로 무당십룡을 나타내기도 했다.
무당십룡, 그중에 지금의 장문인인 구궁진검 도명이 주축을 이루며, 무당의 전성기를 일으켜 세우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도명의 제자가 바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무당천룡 양석호이기도 하다.
태명에 대한 암영사괴의 복수심은 하늘을 꿰뚫고도 남음이 있으리라.
그도 그럴 것이 태명과 무당십룡에 의해 사로잡혀서, 만겁뢰에 갇혔으니 그 원한이 왜 크지 않겠는가?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간의 공격은 일진일퇴를 거듭하며 살벌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때 하림은 한쪽에서 기회를 노리고 있는 수신호위들을 발견하고 그들에게 전음을 보냈다.
(도림은 나에게, 나머지는 양형님을 돕도록....)
하림의 전음은 길게 이어질 수가 없었다.
두 거마가 여전히 그를 향해 얼굴이 따가울 정도로 마기를 뿌리며 덮쳐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림의 의중을 알아채지 못할 수신위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은 바로 몸을 날렸다.
“하야야얍...!”
“이야얍......!”
팽도림의 도가 하림을 덮쳐가는 적의 노인의 등을 향해서 떨어져 내렸다.
난데없는 공격이 하늘을 쪼개버릴 기세로 덮쳐들어오자, 적의노인은 대경실색해서 주춤거릴수 밖에 없었다.
그 짧은 순간의 기세가 꺾인 찰라를 하림은 결코 놓치지 않는다.
-휴루루루룽......!
적아의 도끝에서 불꽃이라도 일어날 것처럼 빨갛게 달아오른다.
하림이 극성으로 열양진기를 끌어올리고 있는 중이니라.
-쫘르르르륵!
두 거마는 하림의 일격이 심상치 않음을 깨닫고 동시에 두 눈을 마주쳤다.
그 짧은 순간 그들의 몸은 마치 탄력 받은 공처럼 튕겨져 올랐다.
“아....앗...!”
그들의 신형이 좌우로 가라지는 순간 하림의 입에서 앙천대소가 터져 나온다.
“하하하하........천. 라. 지. 망......!”
-쿠르르르릉.......!
-우르르르르릉......!
“아앗!”
“피해랏....!”
“으....으..음....!”
허공을 덮는 붉은 도기 가운데에서 답답한 신음이 터져 나오고, 급기야 객잔의 전각이 서서히 기울기 시작한다.
-꽈과과과꽝....!
“으....윽......!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멀쩡하던 전각은, 누군가의 입에서 나온 비명과 함께 폭삭 무너져 내린다.
-꽈르르르릉.........!
“아아아아.......!”
“아.....아......!”
관전하던 사람들의 입에서 신음인지 탄성인지모를 소리가 흘러 나왔다.
그리고 자욱한 먼지구름이 가라앉기 전에 한사람이 그 속에서 걸어 나왔다.
팽도림이었다.
그는 시선을 바삐 움직이며 하림의 신형을 찾고 있었고, 양석호 쪽의 대결은 어느새 멈춘 채로 이쪽을 향해 경악의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드디어 뿌연 먼지구름이 지면으로 내려앉으며, 장내의 모습이 일목요연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아앗...주공.!”
“주공....!”
하림의 수신위들이 몸을 날린다.
페허가 된 중심에 하림이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고 있지 않은가?
팽도림등은 대경실색해서 하림 쪽으로 몸을 날리는 순간, 하림은 한쪽 팔을 들어 그들을 저지했다.
“오지마....늙은이들이 부상을 입은 것 같으니 포위만 해!”
하림의 말대로 일장밖에 각기 쓰러진 두 명의 노인들이, 피를 뿜어내며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네...네...놈은 누구냐.....?”
기혈을 억누르고 있는 하림을 향해, 양석호와 손을 섞던 노마하나가 말을 걸어온다.
그의 얼굴은 눈앞에 현실을 믿지 못한다는 빛이 역력했고, 하림을 향해서 물어 올 때는 거의 두 눈이 튀어 나올 것처럼 커져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 솜털도 가시지 않는 것 같은 애송이가, 자신들을 아니 그것도 두 사람이나 죽음으로 몰고 갈수가 있단 말인가?
그러나 그것은 하림을 너무 모르는 소리다.
애초에 하림은 두 노인에게서 한 치의 빈틈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오기조원을 거치고난 난 뒤, 눈에 들어오는 기류의 투명한 선들이 일체 약점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빈틈이 없다.
한순간 폭풍처럼 밀려오는 긴장감에 하림은 온몸을 수축시켰었다.
그러나 다음순간 온몸을 휘도는 음한지기가, 그의 열기를 차갑게 식히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팽팽하던 그 찰라에 팽도림이 끼어 들어오면서, 두 노마의 기류가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었다.
그리고 그 짧은 순간에 드러나는 그들의 기막 앞에 검은 점들....그것은 바로 두 노마가 휘두르는 장력의 허점들이었던 것이다.
검게 드러난 빈 점으로 쏟아져 들어간, 하림의 천라지망, 팔만사천도법의 팔 초식, 두 노괴에게는 아마 재앙과도 같은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거의 양패구상수준.
거마의 저력은 확실히 놀라운 구석이 있었다.
완벽하게 천라지망이 들어갔다고 득의한 순간에, 그 거마들의 장력이 마치 반탄력처럼 거세가 쏘아져 나온 것이다.
한쪽 무릎을 바닥에 댄 하림이 목울대로 올라오는 핏덩이를 꾹꾹 눌러 참았다.
겨우 기혈을 안정시키고 있을 때, 하림의 답을 기다리고 있던 노마가 답답한 듯 다시 입을 열었다.
“네놈은 누구냐고 묻지 않느냐?”
“나...? 적혈마도 장하림이라 하지.....!”
“적혈마도.....!”
“아....적혈마도였다니......!”
“역시...명불허전........!”
노인은 두 눈만 뒤룩거리고 있었고, 주위에서 관전하던 사람들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적혈마도....라.........!”
“..............?”
바닥에 무릎을 대고 있던 하림이 서서히 일어난다.
그리고 아무 말도 없이 부상을 입고 쓰러져 있는, 노마들을 향해 신형을 날리는 것이 아닌가?
“앗....!”
“놈...놈...을 잡아...저...놈이.......!”
“하야야얏....!”
“아아아안....돼.....!”
하림의 신형이 어느새 팽도림의 머리 위를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그가 힘껏 들어 올린 적아의 도 끝에 맺혀 있던 한 방울의 선혈이, 기어코 허공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그와 일직선상에 있는, 대경실색해서 두 눈이 거의 튀어나와 왕방울만 해진 두 노마의 얼굴에는, 순식간에 찾아온 어두운 절망감으로 생기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나마 그 얼굴조차 덮쳐오는 하림의 거대한 그림자로 인하여 곧 보이지 않게 되었다.
-슈아아아악.......!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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